세상에 놀라운 일이 세 가지 있다. 첫째는 세상이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압도적으로 존재한다. 천연덕스럽게 존재한다. 어떻게 존재할 수 있지? 믿어지지 않는 일이다. 입이 떡 벌어지는 일이다. 납득하기 어렵지만 세상의 존재는 사실이므로 받아들이는 수 밖에 없다.
둘째는 내가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내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세상의 존재와 부재 사이에 아무런 차이가 없다. 물질이 영혼을 취하여 생명으로 도약하듯이 세상의 존재를 알아볼만큼 진보한 인격의 존재로 인하여 세상은 마침내 눈을 뜬다.
셋째는 세상과 나의 연결이다. 어떤 둘이 존재하되 서로 만나지 않으면 그것은 둘 다 존재하지 않는 것과 같다. 내가 죽어서 없어진다고 해도 누군가는 세상을 인식할 것이며 그 누군가는 또다른 나와 같으니 나는 불멸한다.
그것은 불가분의 관계다. 관계의 세상은 태어나지도 않고 죽지도 않고 사라지지도 않는다. 다만 공유하고, 통하고, 역할을 획득하여 완성될 뿐이다. 태어나고 죽고 사라지는 것은 내게 주어진 몇 페이지의 대본이다. 세상에는 또다른 대본이 인간 숫자 만큼 있다.
라디오와 방송국은 통하므로 서로를 완성한다. 그것은 태어나고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관계맺고 그 관계를 복제하는 것이다. 세상과 세상을 지켜보는 눈동자는 관계를 맺고 서로 통하므로 완성된다.
내가 없는 세상과, 세상이 없는 나는 미완성이다. 영혼이 없는 육체와 육체가 없는 영혼은 미완성이다. 연주자가 없는 악기와 악기가 없는 연주자는 미완성이다. 깨달음은 세상과 인간이 서로 공유하고 그러므로 통하여 둘의 관계를 완성하는 것이다.
신이 내게 무언가 이득을 준다면 그것은 신이 아니다. 나와 단절된 내 바깥의 어떤 존재는 나의 적이다. 우리에게 가족과 동료가 소중한 이유는 나와 공유하는 것이 있기 때문이다. 서로 아무 것도 공유하지 않는다면 죽여도 죄가 안 되는 타자다.
신이 존재한다는 것과 세상이 존재한다는 것은 같다. 신이 있다는 말은 세상이 그냥 있는게 아니라 나와 무언가를 공유하고 서로 통하므로 비로소 역할을 얻어 완성된다는 말이다. 신과 나는 불가분이므로 신의 존재 자체가 인간의 기쁨이어야 한다.
통하느냐가 중요하다. 방송하지 않는 방송국이나 고장난 라디오는 존재하지 않는 것과 같다. 연주되지 않는 악기나 악기가 없는 연주자는 존재하지 않는 것과 같다. 호흡하기 전까지는 생명이 아니고 역할을 얻기 전까지는 존재가 아니다.
무언가를 깨달았다면 깨달은 것이 아니다. 무언가는 바깥에 있다. 안에서 낳는 것이 진짜다. 떨어져나온 무언가는 존재에 미치지 못한다. 이것과 저것이 구분된다면 존재는 불성립이다. 만나서 공유하고 통하여 역할을 나누고 불가분의 관계를 맺었을 때 비로소 존재에 이른다.
깨달음은 중심과의 연결을 깨닫는 것이다. 배우는 공유하는 대본에 의해 무대와 연결된다. 강의 지류는 본류를 공유하고, 형제는 부모를 공유하고, 동료는 팀을 공유한다. 말단은 공유에 의해 중심과 연결된다. 개인은 역할에 의해 집단과 연결된다.
자동차는 시동이 걸려야 모든 부품이 통한다. 생명은 호흡을 해야 혈관에 피가 통한다. 사회는 부단히 진보해야 문명에 지성이 통한다. 통한다는 것은 하나가 전체를 대표한다는 것이다. 하나가 느끼는 것을 모두가 느끼는 것이 통하는 것이다.
통하면 하나가 전체를 대신한다. 한 사람의 생각이 모두의 생각이 된다. 우주 안에 존재하는 모든 것이 공유하는 생각을 나의 생각으로 삼는 것이 깨달음이다. 공유하고 통하므로 역할을 얻어 완성되는 관계의 존재 그 자체가 기쁨이어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