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인간의 동기는 집단으로부터 주어진다. 야망, 의지, 신념, 욕망, 탐욕 따위 개인적 동기는 모두 거짓말이다. 나쁜 사람이 나쁜 짓을 하는 이유는 사회를 건드려서 반응을 끌어내려는 것이다. 집단을 의식한 행동이다. 동기는 집단에서 나온다. 도둑질을 해서 작은 이득을 얻겠다는 타산이 아니라 반사회성을 즐기는 것이다. 집단과 대적하는 즐거움을 느끼려는 행동이다. 사회를 이겨먹으려고 관종짓을 하는 것이다. 그럴 때 짐승들은 흥분한다. 호르몬이 나와준다. 북을 치는 이유는 소리가 나기 때문이다. 반응이 있으므로 자극하는 것이다. 게임이론이 답을 제시한다. 본질은 상호의존성이다. 광주시민은 왜 일어났을까? 인간은 원래 그렇게 한다. 짐승은 도망가지만 인간은 일어선다. 광주시민이 왜 일어났는지 모르겠다는 사람은 인간이라는 존재를 오해하고 있다. 전쟁이 나면 어떻게 할 것인가? 설문조사를 하면 70퍼센트는 도망치겠다고 대답한다. 왜? 당장 내 손에 총이 없기 때문이다. 실제로 전쟁이 일어나고 내 손에 총이 쥐어지면 인간은 도망가지 않는다. 전시에는 극도로 스트레스를 받기 때문에 도망갈 수가 없게 된다. 사람들이 인간을 오해한다. 인간은 존엄하다. 도망칠 때도 있지만 그것은 대오가 무너지고 지휘관이 없을 때다. 이길 수 없으므로 도망친다. 이길 수 있다는 비전이 보이면 인간은 결코 물러서지 않는다. 짐승은 도망간다. 광주시민은 이기려고 싸웠고 그래서 이겼다. 이길 수 있다는 비전을 봤고 그래서 싸웠다. 도청을 접수하고 승리했다. 그것으로 충분하다. 그 정도면 승리가 충분하므로 해산했다. 정의는 한 번만 이기면 되지만 불의는 모든 싸움을 다 이겨야 한다. 광주는 한 번을 이겨서 민중의 가슴에 민주의 불씨를 붙였다. 그 불은 아직 꺼지지 않았다. 짐승들은 왜 그랬을까? 짐승들도 이겨먹으려고 그런다. 그러나 짐승은 지게 되어 있다. 인간과 짐승의 싸움은 영원하다. 생명이 바이러스와 공존하듯이 인간과 짐승은 싸우면서 공존한다. 그리고 진보한다. 결국 인간이 짐승을 이긴다. 그것이 역사다. 짐승은 사라지지 않고 반성하지도 않는다. 짐승을 불러주는 수요가 있으면 고개를 쳐들고 수요가 없으면 음지로 숨어든다. 광주는 사람을 죽여본 전두환 짐승들이 사람 죽이는 재주를 과시한 거였다. 인간은 짐승들의 도발에 절대 굴복하지 않는다. 광주는 인간의 존엄을 증명했고 그러므로 승리한 것이다. 존엄의 증명으로 충분했고 나머지는 산 자의 몫이다. 민중의 자발적 창의성이 역사의 주인이 된 싸움은 고대 그리스의 살라미스해전 때부터 시작된 것이다. 그리고 역사의 페이지마다 빠짐없이 등장한다. 한국에서는 동학농민전쟁이 그랬고, 3.1만세가 그랬고, 419가 그랬고, 광주항쟁이 그랬고, 6월항쟁이 그랬고, 촛불항쟁이 그랬다. 민중의 불은 꺼지는 법이 없다. 역사의 맥박을 느낄 때 인간이라면 흥분해야 한다. 전율해야 한다. 침묵하는 짐승은 인간에 못 미친다. 100살 먹은 철학자도 있다고 하지만 사회가 말을 요구할 때 말했다는 증거가 없다. 입이 없어서 말하지 못한다. 입이 없는 자는 인간이 아니다. 짐승과 싸워서 인간다움을 증명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왜 사는가? 안 살아도 되는데 굳이 산다면 이유가 있어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