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크게 충격받은 사람은 거인영감이었을 것이다. 물건도 되찾지 못하고 온 집안이 울음바다가 되었다. 그 다음이 자오씨 댁이었다. 수재가 관가로 고소하러 갔다가 혁명당에게 걸려 변발을 잘렸고 현상금 스무냥도 낭비해버렸기 때문이다. 그 집안도 울음바다가 되었다. ‘그들은 차차 지나간 시대의 늙은이들로 전락해갔다.’ (아큐정전-루신)』
가장 크게 충격받은 정당은 한나라당이다. 정권도 되찾지 못하고 온 집안이 울음바다가 되었다. 그 다음이 민주당이다. 우리당을 고소하러 갔다가 혁명당에게 걸려 변발을 잘리고 말았다. 그 집안도 울음바다가 되었다. 그들은 차차 지나간 시대의 늙은이들로 전락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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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또한 역경을 뚫고 진도 나가지 않으면 안되오 . 굶주린 역사에 추월 당하지 않기 위하여.. 』 |
역사는 매우 굶주려 있다
시비곡직을 가리자고 하면
‘훗날 역사의 심판에 맡기자’고 한다. 때가 무르익어 그 역사가 드디어
심판하려고 하면 이렇게 버팅기곤 한다. ‘다 지나간 일 가지고
왜 또 그러슈?’
친일반민족특별법이 국회를 통과하였다.
계급이 중좌 이상은 되어야 친일인가? 창씨개명하면 곧 친일인가? 박정희는 졸병이라서 친일이 아닌가? 도무지 친일과 친일 아닌 것의 경계선은 어드메 쯤에 있단 말인가? 언제나 그렇듯이 정답은 나와 있다.
“그 역사가 만족할 때 까지.”
역사는 살아있다. 역사는 역사 자신의 논리를 가지고 있다. 지금 그 살아있는 역사는 매우 굶주려 있다. 그 역사라는 넘은 도무지 만족을 모른다. 해방어름의 그 시절만 해도 친일의 기준은 비교적 관대한 편이었다. 춘원 이광수도 반성하면 용서해주자는 분위기였다.
미당도 살았고, 조동일보도 그 덕택에 살아남았고, 심지어 박정희도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그때만 해도.. 그 역사는 625의 전쟁에, 미소의 이데올로기 싸움에 경황이 없었던 것이었다. 그리고 세월이 흘렀다. 그 역사가 다시 정신을 차리고 돌아본다.
누구 잘못인가?
누구의 잘못도 아니다. 박정희의 잘못도 아니다. 미당 서정주의 잘못도 아니다. 정신대 모집에 여념이 없었던 모윤숙, 김활란, 노천명들의 잘못도 아니다. 부민관에서 연설한번 한 것이 전부인 조병옥의 잘못도 아니다. 누구 잘못인가?
누가 그 역사로 하여금 굶주리게 했는가?
역사가 필요로 하는 것은.. 하나의 강력한 구심점이다. 지구상의 많은 나라들은 종교를 그 구심점으로 삼고 있다. 허나 우리나라는 종교국가가 아니다. 또 어떤 나라들은 사회주의의 이념을 그 구심점으로 삼고 있다.
한국사의 새로운 구심점은?
도올 김용옥은 강의에서 이르기를.. 조선을 개국한 사람들은 ‘상식의 합의’라는 유교적 합리주의를 그 이념적 구심점으로 삼았다고 한다. 조선의 선비들이 불교라는 낡은 굴대를 폐기하고, 유교주의라는 새 굴대로 그 역사라는 수레바퀴의 축을 갈아끼웠듯이.. 지금 이 시대는 또한 새로운 세기의 장정을 앞두고 더 튼튼한 수레바퀴의 축을 구하고자 하는 것이다.
역사는 언제라도 진보하고자 한다. 위대한 장정을 앞두고 그 낡은 굴대부터 갈아끼우라고 명령한다. 그 소명을 거스를 것인가?
그게 없으면.. 그 역사라는 수레바퀴의 굴대가 없으면.. 그 역사가 굴러가지 않는다. 그 역사의 자동차가 150마력의 엔진을 탑재하지 못하여 도무지 나아가지 못한다. 어떻게든 역사는.. 그 성장의 동력원을, 그 엔진을 조달해내고야 만다.
그것이 달성될 때 까지.. 역사는 준엄한 심판작업을 계속한다. 어떻게?
친일파를 발굴하고, 색출하고, 또 심판하고, 또 응징하는 방법으로.. 그러므로 역사의 준엄한 명령인 것이다. 역사의 심판하는 정도는 갈수록 준엄해질 뿐이다. 우리가 기어이 그 새로운 수레의 굴대를 완성할 때 까지.. 그 심판의 강도를 더해갈 뿐이다.
이 작업은 100년이고 천년이고 끝나지 않는다. 그 만족을 모르는 역사가 끝끝내 만족할 때 까지.. 그 역사가 배부를 때 까지.. 누가 이 역사로 하여금 굶주리게 했는가? 그들의 죄가 참으로 크다.
역사가 심판하려고 한다. 이문열들의 비명소리가 들린다. 문안의 거인영감네 댁도, 웨이장의 자오씨네 댁도 울음바다가 되었다고 한다. 그들은 차차 지나간 시대의 늙은이들로 전락해 갈 것이다. 그렇게 살라하고.. 그렇게 살라하고.. 우리는 우리의 길을 가지 않으면 안된다.
‘신들메’는 틀린 말이다. 들메끈을 고쳐매고 우리 나아가지 않으면 안된다. 저 굶주린 역사에 추월되지 말고, 더 굶주린 우리 진도 나가지 않으면 안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