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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ad 13917 vote 0 2004.02.25 (15:22:01)

새 정부 출범 1년이다. 고생했다. 민주당도, 한나라당도, 유권자들도 고생했다. 고생한 보람을 찾아야 한다. 산모의 진통이 컸던 만큼 옥동자로 보상받아야 한다. 개혁이라는 이름의 옥동자로 고생한 보람을 찾자는 것이 국민의 바램이다.

『 먹이를 주지 말라고 경고문까지 써붙여 놨건만 ~. 』

민주당과 한나라당은 아기를 낳는 과정이 너무 고통스러우니 낳은 아기를 도로 자궁 속으로 밀어넣자는 주장이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이건 사리에 맞지 않다.

노무현이 경선자금을 고백하고 있다. 고통이다. 경선을 함께한 김중권, 이인제, 한화갑, 유종근, 정동영, 김근태도 고통을 느낀다. 당내경선을 치른 조순형, 추미애도, 국민경선을 모방한 한나라당도 마찬가지로 고통을 느낀다.

기꺼이 십자가에 오르겠다는 노무현이다. 얼씨구나 하고 노무현을 십자가에 달아매는 방법으로 자기네의 고통을 전가하려는 당신네들의 강심장도 참 대단하다. 그 과정을 지켜보는 유권자들도 고통을 느끼기는 매 한가지다.

대중은 어떻게든 그 고통의 댓가를 받아내고야 만다. ‘부활’이라는 이름의 속편이 기다리고 있다.

노무현의 계산된 고백
필자가 노무현식 정치를 ‘고도의 전략’으로 풀이하는 것을 반대하는 독자들이 많았다. 아직도 그러한지 궁금하다. 최근 김용옥과의 대담에서 드러났듯이, 또 어제 경선자금 고백으로 드러났듯이, 노무현의 정치행보는 100프로 계산된 것이다.

오해하는 사람도 많다. ‘계산’이라는 것이 꼭 주판알 튀기고, 잔머리 굴리고 그러는거 아니다. 본능이다. 노무현 쯤 되는 고수는.. 척하면 삼천리다. 그게 머리가 안돌아가서 일일이 주판을 튕기고 뒷구멍으로 모사를 꾸미고 그러겠는가?

밑바닥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어떤 일의 전과정에 참여해 본 사람이라면.. 일머리를 아는 사람이라면.. 축적된 노하우에서 얻은 직관에 의해 그 정도는 자동으로 나온다. 노무현급 고수가 되면 그거 계산하는데 0.1초 쯤 걸린다.

그게 자동이 아니라면 필자가 노무현의 행보를 어떻게 대강이라도 예측할 수 있었겠는가?

분명히 말하지만.. 고수도 있고 하수도 있다. 유인조가 있는가 하면 체포조도 있다. 노무현의 고백은 유인조 역할이고 정동영의 새정치는 체포조 역할이다. ‘경선자금 고백은 노무현의 지지율을 3프로 떨어뜨리지만, 새정치에 대한 지지율을 5프로 끌어올린다.’

그렇다면 2프로 남는 장사가 아닌가? 이건 간단한 계산이다. 이 정도 계산도 못하면 바보다. 인터뷰를 보면 알겠지만 노무현은 천재다. 도사급은 되는 김용옥을 갖고 놀았다.

생각해보라. 경선자금을 고백했다는 이유로 우리가 노무현을 비난한다면 노무현은 더 이상 고백을 안할 것이다. 검찰도 수사를 안할 것이다. 누가 손해를 보는가? 유권자가 손해를 본다. 유권자는 곧 죽어도 호기심 뿐이다. 궁금한건 못참는다.

특검도 하고, 청문회도 하고, 뭐든지 다 파헤치고 보자는 것이 유권자 마음이다. 고백했다는 이유로 응징한다면, 누가 고백할 것이며 유권자의 호기심은 누가 채워주는가? 당장은 10억 해먹은(?) 노무현을 비판하지만, 새정치를 지지하는 것으로 보상한다.

이것이 큰 흐름이다. 그 흐름을 읽을 줄 아는 것이다.

유권자는 뭔가 감춘다는 인상을 주는 정당을 싫어한다. 옷로비만 해도 그렇다. 500만원짜리 실패한 로비가 문제가 아니라, 뭔가 감춘다는 인상을 줘서, 유권자를 왕따시킨 결과로 반감을 산 것이다.

노무현의 고백은 대통령이 자기 손에 들고 있던 마이크를 유권자들에게 넘기므로서, 할말도 많은 유권자들에게 한마디씩 말할 기회를 준 것이다. 그런 식으로 참여시키는 것이며, 유권자는 그러한 참여를 통해 소외를 극복하는 것이다.

유권자들도 그렇다. 당장은 화가 치밀어서 노무현을 욕하지만 속으로는 그렇게라도 마이크를 넘겨준 데 대해 고마워한다. 그 고마움에 대한 답례는 노무현이 아닌 정동영을 지지하는 것으로 보상한다. 노무현이 스스로 죽어서 우리당을 살린다.

한 알의 밀알이 썩어서 거름이 되듯이 말이다.  

인간을 신뢰할 수 있는가?
노무현의 고백.. 한마디로 요약하면 ‘인간에 대한 무한한 신뢰’이다. 신뢰가 없이는 절대로 고백 못한다. 성당의 신부님을 믿지 않는다면 어떻게 고백하겠는가? 끝끝내 인간을 믿을 수 있어야 한다. 그대 인간을 믿을 수 있는가?

개혁세력 일부가 대오를 이탈하여 동남쪽으로 간 이유는 지역주의를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영남의 지역주의를 두려워한다. 인간을 믿지 못하기 때문이다. 영남사람도 인간임을 알아야 한다. 그 인간을 믿을 수 있어야 한다.

흔히들 말하기로.. 한국인들은 정치과잉이라고 한다. 천만에! 허상이다. 지역주의는 한마디로.. 정치에 대한 ‘무관심, 무책임, 비겁’의 결정체라 할 수 있다. ‘나는 이러구 팔짱끼고 삐딱하게 돌아앉아 있을 테니.. 니들이 알아서 내 문제를 해결해달라’는 책임회피의 절정이다.

까놓고 진실을 말하자. 한국인의 다수는 정치과잉이 아니라.. 정치무관심이다. 그들은 정치를 회피하여 지역주의로 도망친 것이다. 왜? 지역주의가 건재한 이상 특별한 변화는 일어나지 않는다. 지역주의가 버티고 있는 이상 큰 변화는 없을 것이므로.. 안심하고 정치를 잊어도 된다.

그래서 인간들이 지역주의를 하는 것이다.

본질을 봐야 한다. 영남의 지역주의가 특히 그러하다. 그들은 현실을 직시하기를 두려워 한다. 왜? 50년간 해먹어서 여유가 있기 때문이다. 반면 노무현을 지지한 호남의 전략적 투표는 정치회피가 아니라 적극적인 참여이다. 왜? 여유가 없기 때문이다.

● 영남.. 50년 해먹고 배가 불러서 지역주의의 방법으로 정치를 회피하고 있다.
● 호남.. 절박한 상황에서 노무현을 지지하는 고도의 전략적 투표를 통해 정치에 참여한다.

민주당을 중심으로 한, 일부 호남의 지역주의는 한마디로 ‘배가 불렀다’는 소리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이 그것이다. ‘고작 5년 해먹고 배가 불렀나?’ 히딩크는 말했다. ‘나는 여전히 배가 고프다.’ 내 말은 그렇다. ‘여전히 배가 고프다면 정동영을 발견해야 한다.’  

영남도 마찬가지다. 당신들이 이회창을 미는 것은.. 한마디로 ‘배가 불렀다’는 소리다. 당신들의 심보는 정확히 이렇다. ‘선거에 져도 좋다. 도덕적 굴욕감을 안겨준 DJ에게 복수할 수만 있다면.’ 비열한 영남의 그들은.. 80년 광주 이후, ‘DJ와 호남의 도덕적 우위에 따른 굴욕감’에 복수하려 한 것이다.

저급하게 말이다. 어린애 같은 치기로 말이다. 배가 불러서 말이다. 그렇다. 영남의 당신들은 진지하지 않았다. 당신들이 정말로 굶주렸다면 ‘부산에서 노무현이라 하면 웃는다’ 이런 말 안나온다.

‘웃는다’.. 이 한마디에 모든 것이 담겨져 있다. 그들은 여전히 노무현을 웃는다. 아직은 여유가 있다는 것이다. 절박하지 않다는 것이다. 배가 불렀다는 것이다. 져도 좋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당신네들은 기어이 패배하고 말 것이다.

당신네는 여전히 ‘정치’를 정면으로 직시하기를 두려워 한다. 당신들은 정치를 회피한다. 당신들은 편하게 지역주의의 방패 뒤로 숨는다. 당신들은 그런 식으로 문제를 회피하고 자신의 문제를 타인에게 해결해 달라고 위탁한 것이다.

영호남을 막론하고 지역주의자들의 말을 수집하여 양심번역기를 통과시켜보면 이렇게 나온다.

“노무현, 너 우리를 배신할거지? 배신할거지? 배신할거지? 다 알고 있어. 이미 배신한거 아냐? 아니라구? 증거 있어? 증거 있음 대봐! 확인도장 찍어줄 수 있어? 각서라도 쓸래? 보증인은 안혔구? 담보물은 준비돼 있어?”

그들은 이런 식으로 엉기는 것이다. 자기네의 문제를 자기 스스로의 힘으로 해결하지 않고 대신 노무현이 해결해주기를 요구하면서.. 애들이 떼를 쓰듯이 “안해줄거지? 안해줄거잖아. 난 알아. 엄마가 용돈 안준다는 사실을. 용돈 안줄거면서” 이렇게 반어법으로 말하는 것이다.

용돈 달라고 대놓고 말은 못하고 .. “엄마 나 사랑해줘!” .. 이렇게 정면으로는 말 못하고.. “엄마는 나만 미워해!” 하는 역설적인 표현으로, 엄마의 사랑을 확인하려 하는 .. 이 얼마나 유치하고 졸렬한 태도인가?

나는 말한다.

“바보야! 그건 바로 네 문제야. 네가 해결해야만 해.”

끝내자. 바보짓은 이 쯤에서 끝내자. 영남은 ‘광주 이후 DJ와 호남의 도덕적 우위’를 인정해야 한다. 있는 그대로의 현실로 받아들여야 한다. 호남은 ‘날 배신할거지! 배신할거잖아. 배신할거면서..’ 하는 반어법과 떼쓰기를 버리고.. 노무현에게 엉기는 네거티브를 버리고, 더 많은 정동영들을 발굴하는 포지티브로 나서야 한다.

하면 된다. 우리는 할 수 있고, 할 구체적인 수단을 가지고 있다. 우리는 인터넷을 가졌다. 우리는 월드컵의 승리로부터 얻은 ‘체험의 공유’를 통한 이심전심 소통의 코드를 익혔다. 그 배운 코드를 지금 써먹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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