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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read 3510 vote 0 2023.03.24 (12:14:40)

    어제 방송과 관련한 보충입니다.


    서양의 고전명화는 부담스럽다. 사람을 제압하려고 하니까. 인상주의를 배웠을 때 일초 만에 알아봤다. 부담감이 없어졌기 때문이다. 동양화도 편안한 그림이다. 이런 것은 몸으로 직접 느끼는 것이다. 설명이 필요 없다. 인상주의를 설명해 달라고 하면 황당한 거다.


    역사적 배경은 설명할 수 있지만 그림의 본질은 그냥 아는 거다. 고추가 매운 것은 먹어보면 안다. 신파가 역겨운 것도 그냥 안다. 부담을 주잖아. 울어. 감동해. 관객의 목을 조른다. 너 안 울었지? 울어야 한다니까. 봐봐. 남들은 다 울잖아. 거기가 우는 대목이라구.


    이러고 압박한다. 짜증나는 것은 당연하다. 고전주의 그림을 보고 답답하다고 느낀 사람이 인상주의를 만들었다. 창의한다는 것은 느낀다는 것이다. 뭔가 기분이 나쁘다. 이집트 부조는 죄다 고개를 옆으로 돌리고 있다. 불편하지 않는가? 내 목이 비틀어진 느낌이다.


    인간은 무의식적으로 흉내를 낸다. 웃는 얼굴을 보면 자기도 웃는다. 옆으로 돌아간 얼굴을 보면 내 얼굴도 돌아간다. 그걸 못 느낀다구? 나는 사회적 기술이 떨어지는 사람이다. 다른 사람에게 맞춰줄 줄 모르고 그런 것에 스트레스받는다. 사람들은 너무 맞춰준다.


    불편한 것을 보고 불편하다고 말하지 않는다. 수석을 하는 사람은 검은 돌 위주로 수집한다. 왜? 처음에는 모양이 괴상한 것에 끌리지만 계속 보고 있으면 괴롭다. 검은색은 부담이 덜 하다. 어린이는 알록달록한 색동옷에 끌리지만 나이가 들면 검은색 옷을 입는다.


    왜 양복은 죄다 검은색인가? 왜 회장님 차는 검은색인가? 왜 옛날 교복은 검은색인가? 검은색이 부담이 덜하기 때문이다. 눈길을 끈다는 것은 잡아당긴다는 말이다. 계속 잡아당기면 아프다. 미녀가 아름답다고 해도 하루 종일 그것만 보고 있어야 한다면 고통이다.


    구조론을 연구한 것은 불편했기 때문이다. 뭔가 크게 잘못되어 있다. 자연스럽지 않다. 충돌이 일어난다. 모든 연결부위에서 마찰이 일어난다. 구조는 연결부위를 내부에 감춰두는 것이다. 괴짜는 창의할 수 없다. 괴상한 행동을 하는 이유는 불편하지 않기 때문이다.


    괴짜가 창의하는 게 아니라 창의에 몰입해 있으면 괴짜로 오해되는 것이다. 나는 내 시간을 뺏기는 것을 싫어했다. 생각하는데 방해가 되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에게 맞춰주다가 시간을 소비한다. 다른 사람이 보면 뭐 저런 인간이 다 있어 하고 괴짜라고 여길 법하다.


    맛집이 좋지만 줄 서서 먹지 않는다. 왜? 내 시간을 뺏기기 싫으니까. 나는 공산주의를 반대한다. 왜? 줄 서 있다가 내 시간을 뺏기니깐. 5분 외출하려고 30분씩 공들여 화장하는 사람도 있다. 솔직히 이해가 안 된다. 시간 손해가 막심하잖아. 명품이 좋아도 안 산다.


    돌아다닐 시간이 아깝잖아. 뉴턴이 시계를 삶았다는 둥 하며 괴짜가 아닌가 하지만 시간을 아끼면 그렇게 된다. 그거 확인할 1초를 아끼게 된다. 다른 사람을 의식하여 맞춰주려고 내 시간을 양보해야 한다면 끔찍한 거다. 사회생활을 하려면 어쩔 수 없다고는 하지만.


    육하원칙을 처음 배웠을 때 이상하다고 느끼지 않았나? 뭔가 아니잖아. 6하원칙은 영어 문법에 맞춰놓은 것이다. 한국어와 맞지 않다. 왜 여섯 개냐? 살펴보면 이게 주체와 객체, 능동과 수동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구조론으로 보면 열 개인데 다 필요하지는 않다.


    서로 연동되기 때문이다. 언제, 어디서, 누가, 무엇이 주체와 객체로 양분된다. 왜가 양쪽을 연결한다. 어떻게는 액션이다. 능동과 수동을 적용하면 어떻게는 얼마나와 어떤으로 나눌 수 있고 왜와 웬으로 나눠진다. 하였나 되었나로 명확히 능동과 수동을 구분한다.


    이게 더 사유를 풍부하게 하여 놓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육하원칙은 신문기사 작성요령이기 때문에 사건의 가해자 쪽에 더 주목한다. 왜는 있고 웬은 없다. 우연히 지갑을 주웠다면 왜 주운게 아니고 웬 주운 것이다. 우연성의 확률을 설명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얼마나와 어떤은 어떻게에 포함된다. 사건은 작용과 수용이 연동되므로 어떻게만 말해도 되지만 작용 쪽의 얼마나와 수용 쪽의 어떤으로 나누면 사유가 더 풍부해진다. 머릿속에 가해자와 피해자 양쪽의 그림을 그려놓고 살펴보자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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