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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read 2669 vote 0 2023.02.02 (15:42:45)

    보아하니 인간들이 도무지 생각을 안 한다. 만약 생각을 했다면 '나는 이러한 공식에 넣고 풀었다.'고 자신이 찾아낸 생각의 빌드업 기술을 자랑할 것이다. 왜냐하면 결과보다 과정이 중요하니까. 그렇게 하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다.


    구조론의 빌드업 과정에 대해서는 낱낱이 말한 바 있다. 최초의 문제의식과 단서의 수집, 메커니즘의 발견, 분류이론과 의사결정원리, 존재론과 인식론의 구분을 거쳐 이론의 틀이 완성된 것이며 이후 살을 채워서 보강한 것이다.


    생각하지 않는 이유는 생각하는 방법을 모르기 때문이다. 생각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말해주는 사람도 없고 그것을 질문하는 사람도 없다. 답답한 일이다. 이 문명은 뭔가 근본적으로 결함 있는 문명이다. 핵심을 빼놓고 시작한다.


    사람들은 나름대로 소박한 생각법을 하나씩 가지고 있다. 그것을 자랑하지 않는 이유는 창피하기 때문이다. 주먹구구로 큰소리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반대로 1만 번을 반복했다거나 혹은 남들 놀 때 노력했다거나 하면서 생각을 하지 않고 몸으로 때웠다고 강조하는 사람이 많다. 바보경쟁을 하고 있다. 그게 자랑인가? 답을 몰라서 헤매느라 개고생했다고 말하기보다 나는 이렇게 지름길을 찾았노라고 말하는게 정답이 아닐까? 좋은 것은 나눠가지고 칭찬을 듣는게 나은데 말이다.


    머리가 좋은 사람은 가만있어도 아이디어가 떠오르는 모양이다. 그들은 흘러넘치는 아이디어를 주워 담기 바쁘다. 그들은 머리를 쓰기는 하지만 조리 있는 생각은 못한다. 그들은 왜 좋은 머리를 남들과 공유하지 않을까? 자신의 머리에서 생각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모르기 때문이다. 비범한 사람이 많지만 단순 문제풀이 노가다는 잘하는데 세상을 뒤집어놓는 창의적인 생각은 못한다. 날고 기는 박사들은 많은데 다들 자기 전문 분야에 갇혀 있다. 모두에게 민폐를 끼치는 정치판 쓰레기들의 뻔히 보이는 헛소리를 지적하는 사람이 없다. 진짜 천재라면 사회적 발언을 해야 한다. 모르기 때문에 침묵하는 것이다.


    명상한다는 수도자처럼 그냥 머리에 힘주고 앉아있는 것은 생각하는 것이 아니다. 우연히 아이디어가 떠오를 확률을 높이려고 상대방을 자극하다가는 싸움이 난다. 확실한 단서를 잡고 공식에 맞추어 하나씩 풀어가야 한다.


    생각의 공식은 자연의 원리에서 빌어온다. 생각은 자연을 복제한다. 자연은 사건을 격발하고 전달한다. 인간이 눈으로 보는 것은 대개 전달자다. 인간은 사건의 격발자를 보지 못한다. 격발은 계 내부 밸런스에서 일어난다. 그곳에 우리가 찾아야 할 의사결정의 메커니즘이 있다. 조절장치가 있다. 기능이 숨어 있다. 그 기능을 알면 다 아는 것이다.


    1. 자유연상법.. 우연히 생각이 날 수도 있지만 창의적인 생각은 못한다.
    2. 넘겨짚기법.. 귀납적 사고다. 누구를 모함하면 상대의 해명과정에서 진실이 드러날 수 있다.
    3. 자극반응법.. 관종이 쓰는 방식이다. 남을 험담하고 대결하는 중에 자극받아 아이디어가 떠오른다.
    4. 배회괴짜법.. 막연히 엉뚱하고 괴상한 생각을 한다. 초딩들에게 장려되지만 실질적인 효과는 거의 없다.
    5. 상호작용법.. 대화를 통해 피드백을 받거나 집단이 성과를 공유하면 긍정적인 시너지효과가 있다.
    6. 쥐어짜기법.. 마감에 쫓기는 웹툰 작가처럼 자신을 궁지에 몰아넣으면 집중력이 높아진다.


    인간의 생각은 대부분 이런 식의 주먹구구다. 기억력을 사용하는 것은 생각하는 것이 아니다. 많은 독서와 폭넓은 대화가 생각에 도움이 되지만 그것으로 남들 이상 할 수는 없다. 무에서 유를 창조해야 진짜다. 그것은 특별한 기술을 써야 한다.


    타란티노는 게임 안에 또다른 게임을 집어넣는 방법을 쓴다. 90년대에 활약했던 박정우 작가도 스킬이 있다. 그것은 끝내기에 대한 것이다. 홍상수도 규칙을 깨는 트릭이 있다. 스킬을 배우면 당신도 작가가 될 수 있다. 이야기? 이야기는 줏어오면 된다. 인터넷에 널려 있다. 문제는 끝내기다. 타란티노는 70퍼센트를 오마쥬 핑계로 줏어오고..라고 쓰고 해먹고로 읽고, 20퍼센트를 특유의 장광설 애드립으로 때운 다음 나머지 10퍼센트를 임팩트 있는 아이러니로 완성한다. 그것은 시간적인 진행을 공간적으로 비트는 것이다. 영화를 보면서 '저 장면에서 저게 가능해? 그때 누가 불쑥 들어와서 방해하면 어쩌지?' 하고 수다를 떨다가 그 수다를 영화 안에 집어넣으면 그게 펄프픽션이다. 이쯤 되면 평론가와 관객들도 내러티브의 허술한 부분을 눈감아준다. 관객은 임팩트 있는 아이러니에 매료된다. 중요한건 나름대로 기술이 있다는 거다. 나이트 샤말란은 평범한 이미지에서 긴장을 뽑아낸다. 제임스 카메론은 자기 기술을 다른 감독들에게 나눠주지 못해서 메가폰을 놓고 제작을 하면 망한다. 내 눈에 뻔히 보이는 제임스 카메론의 특별한 감각이 다른 감독 눈에는 보이지 않거나 그걸 모방하기가 쉽지 않은 거다. 스타워즈의 드로이드 중에 먹히는 것과 먹히지 않는 것은 감각적으로 구분할 수 있다. 이거 먹혀! 그거 먹힌다. 대부분 묵직한 것이다. 혹은 얼굴을 감춘 것이다.


    내가 사용한 생각법은 아래와 같다.


    1. 자문자답법.. 처음 본 영화를 자신에게 몇십 번쯤 반복해서 들려주다 보면 보이지 않던 것이 보이기 시작한다.
    2. 조절장치법.. 객체 내부에서 작동하는 핵심적인 조절장치를 찾는다. 반드시 방아쇠를 격발하는 메커니즘이 숨어 있다.
    3. 자기제거법.. 관측자의 입장을 제거하면 객체 내부의 굴러가는 사정이 보인다. 선악과 도덕과 신파를 넘어 쿨해져야 한다.
    4. 패턴발견법.. 뭔가 어색하고 위화감이 느껴지거나 혹은 반대로 전율하게 하는 인상적인 장면에는 공통요소가 있다.
    5, 방향판단법.. 한 방향으로 계속 가면 완전성이 그 안에 있다. 방향이 발산되면 안 되고 수렴되어야 한다.
    6. 공식분류법.. 나름대로 분류기준을 찾아서 분류만 잘해도 아이디어가 늘어난다. 모르면 분류하자.
    7. 단순화하기.. 중복과 혼잡을 제거하면 핵심이 추려져서 단순해진다. 단순하면 명백해진다.
    8. 이미지기술.. 머리 속에 그림을 띄우면 직관적으로 이해가 된다.


    구조론은 생각하는 방법이다. 이 외에도 많은 기술이 있다. 중요한 것은 의식적으로 생각을 해야 한다는 거다. 내버려두면 저절도 된다는 식의 망상은 좋지 않다. 막연히 개구쟁이 짓을 하고 엉뚱한 짓을 하고 괴짜 행동을 하면 발명왕이 된다는 식의 비과학적인 사고를 버려야 한다. 에디슨이 이상한 짓을 많이 했지만 이상한 짓 덕분에 발명왕이 된 것은 아니다. 워낙 에너지가 넘쳐서 이상한 짓을 한 것이다. 그는 인상적인 장면을 봤을 때 남보다 더 많은 호르몬이 나오고 더 강하게 흥분하고 고도로 집중하는 특이체질이었던 것이다. 그건 타고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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