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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read 2852 vote 0 2023.01.19 (11:15:24)

    인간이 거짓을 말하는 이유는 거짓이 더 쉽기 때문이다. 인간이 나쁜 짓을 하는 이유는 나쁜 짓이 더 비용이 싸게 먹히기 때문이다. 이어진 줄을 자르기는 쉽고 잘린 줄을 잇기는 어렵다. 무엇이든 연결은 어렵고 단절은 쉽다. 모이기는 어렵고 흩어지기는 쉽다.


    진실은 연결이고 거짓은 단절이다. 사람은 움직이기 쉬운 쪽으로 움직인다. 어떤 사람이 어떤 짓을 하는 이유는 그게 더 쉬웠기 때문이다. 그 사람이 할 수 있는게 그것뿐이었기 때문이다. 이건 심리학 이전에 물리학이다.


    비트코인은 모든 정보를 공개하여 거짓이 지는 게임의 구조를 만들었다. 모두 연결해 놓으면 거짓이 진다. 시스템을 유지하는 데는 비용이 들지만 적어도 거짓이 진실을 이길 수는 없다는 사실 만큼은 확실하다.


    진실은 심리적 비용이 든다. 하나도 틀리지 말아야 하므로 꼼꼼하게 검토해야 한다. 반대로 거짓은 포장지만 그럴듯하면 된다. 만화를 그려도 사실주의 그림체는 진입장벽이 높다. 소설을 써도 리얼리즘은 사전조사를 많이 해야 한다.


    문제는 사건의 방향성이다. 첫 단추를 잘못 꿰면 계속 잘못된 방향으로 가게 된다. 에너지의 꼬리에 꼬리를 물고 한 방향으로 움직이는 성질 때문이다. 진입장벽 때문에 인간은 첫걸음을 잘못 뗀다. 첫 번째 갈림길에서 가기 쉬운 방향을 선택한다. 이후 그 방향으로 계속 미끄러진다. 수렁에 빠져 악순환을 벗어나지 못한다.


    초원에 사는 몽골인은 나무가 시야를 가리면 불안해한다. 몽골인은 뛰어난 시력으로 사방을 감시하고 있는데 주변에 나무가 시야를 가리면 말도둑이 숨어들 수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나무를 닥치는 대로 뽑아버린다. 반대로 숲에 사는 부족은 나무가 없으면 불안해진다. 몽골인이 침략해오면 숨을 데가 없기 때문이다. 


    진시황은 수천 개의 방을 만들고 자신이 어느 방에서 자는지 모르게 했다. 루이 14세는 많은 귀족을 베르사이유로 불러 모아 자신의 사생활을 모두 공개했다. 진시황의 수천 개 방은 숨기에 좋지만 자객이 숨어들기에도 좋은 것이다. 진시황의 폐쇄지향과 루이 14세의 개방지향은 사유의 방향이 다르다.


    로마인은 도로가 없으면 불안해지고 게르만족은 도로가 있으면 불안해진다. 공격이냐 수비냐로 포지션이 다르다. 로마인은 도로가 있어야 군단병을 불러와서 공격할 수 있고, 게르만족은 도로가 없어야 지리적인 이점을 살려 방어할 수 있다.


    중국인은 뭉쳐야 산다고 믿고 독재자를 중심으로 단결하고, 유태인은 흩어져야 산다고 믿고 디아스포라를 실천한다. 장단점이 있다. 뭉치면 리스크도 같이 커진다. 떨어지면 각개격파 된다. 적당히 간격을 두고 떨어져 있으면서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뭉치기와 헤어지기를 자유자재로 하는 것이 가장 좋다.


    연결지향이냐 단절지향이냐다. 진리는 모두 연결하여 거짓이 끼어들 빌미를 주지 않는 것이다. 나는 모두 연결되어야 편안해지는데 거짓말하는 사람은 단절되어야 편안해진다. 


    17세기 갈릴레이 시절로 돌아가 보자. 당신이 일체의 편견이 없이 중립적인 위치에서 심판을 맡았다면 어떻게 하겠는가? 갈릴레이가 틀렸을 수도 있지만 인류가 모두 한 방향만 바라보고 있다면 어찌 위태롭지 않겠는가? 그것은 계란을 한 바구니에 담는 것과 같다. 이성적인 사람이라면 헤지펀드가 위험을 회피하듯이 인류의 위험을 헤지하기 위해서라도 갈릴레이의 의견을 진지하게 검토할 것이다.


    지식은 연결 아니면 단절이다. 연결모드와 단절모드가 있다. 나는 인류가 모두 한 방향을 바라보고 있는 사실을 폭로한다. 벌거숭이 임금뿐 아니라 인류 모두가 벌거숭이다. 인류 모두가 단절모드를 선택하여 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첫 단추를 그렇게 꿰었고 이후 그 방향으로 쭉 미끄러지고 있다.


    인간은 그렇게 만들어진 동물이다. 원래 한 방향을 보게 되어 있다. 그게 심리적 비용이 싸게 먹힌다. 모르면 일단 잇고 보자가 아니라 모르면 일단 끊고 보자다. 눈이 둘 있는데 그중 하나만 사용한다. 두 눈을 다 쓰면 스트레스를 받는다.


    경찰은 되도록 넓고 평평한 곳에서 조목조목 따져보자고 하고, 도둑은 되도록 좁고 복잡한 지형에 숨어서 지나가는 행인 중에 아무나 하나만 걸려라고 한다. 경찰은 잘 드러내는 사람이 승진하고 도둑은 잘 숨는 사람이 성공한다.


    드러내는 사람도 있고 숨는 사람도 있어야 하는데 어쩌다가 숨는 쪽으로 방향이 정해져서 숨는 사람이 이기는 구조가 만들어졌다. 도둑이 경찰을 이기는 나라가 되었다. 중남미와 아프리카의 실패한 국가들이 그러하다.


    일본 망가는 이세계물이 판을 치고 미국 코믹스는 히어로물만 남아 있다. 리얼리즘이 지는 구조다. 현실의 세계와 상상의 세계가 있는데 그중에서 하나를 없앤다면 인간의 사유는 협량해지고 사회는 왜소해져서 본래의 풍성함을 잃어버린다.


    리얼리즘은 쉽지 않다. 심리묘사를 해야 한다. 사건만 나열하는 외부 관찰자의 시선을 버리고 주인공의 마음속으로 들어가서 꼼꼼하게 빌드업을 해야 한다. 마지막 반전의 효과를 극대화하려면 사전에 복선을 스무 가지는 깔아야 한다.


    전통적인 소설은 천일야화처럼 독자와 작가 사이에 밀고 당기고 조이고 풀고 흔들고 하는 것이 있다. 이야기가 느슨해지면 작가는 죽는다. 리얼리즘은 자재를 촘촘하게 배치해서 빌드업을 하므로 건축 자체의 긴장을 따라간다. 작가와 독자 사이의 긴장이 없고 1층과 2층 사이에 긴장이 있다. 애초에 관객을 작품에 집중하게 하는 긴장의 조달방식이 다른 것이다.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이 다르다.


    각종 음모론부터 괴력난신과 사이비는 그게 일종의 천일야화다. 매일 새로운 거짓말을 투척해야 한다. 한 번이라도 긴장이 풀리면 죽는다. 빌드업이 있는 문학은 초반에 느슨하게 시작되지만 한 방향으로 계속 조여가는 맛이 있다.


    옛부터 소수의 강철심장들이 고전의 벽을 허물고 리얼리즘의 신세계로 나아가서 세상을 풍성하게 만들었다. 사유에 있어서도 리얼리즘이 필요하다. 빌드업이 있는 사유를 해야 한다. 인류는 첫걸음마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 빈틈없이 모두 연결하여 거짓이 숨을 곳이 없는 세계로 가야 한다. 구조의 눈을 떠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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