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읽기
프로필 이미지
[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read 3237 vote 2 2022.12.21 (10:44:54)

    세계 곳곳에는 500명 이상의 신데렐라가 살고 있다고 한다. 나라마다 다양한 버전의 신데렐라 서사가 있다. 한국도 콩쥐팥쥐는 당연하고 살펴보면 심청전도 신데렐라 서사의 변종임을 알 수 있다.


    어렸을 때는 신데렐라 이야기가 맘에 들지 않았다. 흥! 여자애들이란. 이런 시시한 이야기를 좋아하다니. 신데렐라는 그렇다치고 왕자는 왜 하는 것도 없이 날로 먹냐 하고 분통을 터뜨렸다. 그러나 신데렐라는 여자의 이야기다. 평등하지 않다는 생각은 다른 남자의 질투에 불과하다. 우리가 계몽주의 관점을 극복해야 한다.


    신데렐라는 여자가 왕국을 차지하는 이야기다. 왕자는 전용차에 딸려오는 운전수 같은 개념이다. 선물에 흠집이 있으면 안 된다. 왕국과 왕자는 신데렐라에게 주어지는 선물이다. 왕자의 마음에 상처가 있으면 안 된다. 똑똑한 왕자는 피곤하다. 왕자는 셔터맨이다. 가방들이 역할만 잘하면 된다. 영화 무사가 그렇듯이 여자가 주인공일 때 남자는 호위무사 역할만 하면 된다. 


    무슨 말인가? 신데렐라는 인간의 본성이 반영된 대중의 집체창작이라는 말이다. 우리가 탐구해야 할 것은 설화에 반영된 인간의 본성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좀 아는 사람들이니까. 다들 똥오줌은 가리고 살잖아.


    디즈니 동화는 자본과 결탁한 것이며 출판사의 판본은 계몽주의 사상의 검열을 거치며 왜곡된 것이다. 우리는 설화에 숨은 인간의 본성을 엿봐야 한다. 인간의 본성이 그렇다면 그런 거다. 모순이 있어도 받아들여야 한다. 


    어린이는 산타 할아버지를 기다린다. 인간은 운명을 기다린다. 여성은 왕자를 기다린다. 왜 적극적으로 현실에 도전하지 않고 수동적으로 운명을 기다리는가 하고 따질 수 없다. 그것은 이야기의 본질에서 벗어난 것이다.


    운명을 개척하라고? 계모를 토벌하라고? 교육부를 폭파하라고? 현실의 계모와 두 언니는 교육부와 입시제도다. 학교에 불을 질러버리라고?


    우리는 왜 이 이야기가 세계에 가장 많은 버전으로 존재하며 많은 사람의 심금을 울렸느냐를 짚어봐야 하는 것이다. 


    왕자도 고생을 해야 신데렐라와 결혼할 자격이 있다거나 왕자의 도움을 기다리지 말고 체력을 단련하여 능동적으로 언니들을 격파해야 한다는 논리는 계몽주의 관점의 어린이 교육용이다.


    모든 사람은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미인이고 공주다. 이게 중요하다. 예전에 아프리카 미인대회는 로컬 스탠다드가 정답이라며 흑인보다 더 흑인같이 생긴 사람을 선발하는 이상한 미인대회를 주장하다가 망한 일이 있다. 제대로 진행했다면 무르시족과 힘바족의 대결로 좁혀져서 볼만했을 텐데 말이다.


    미의 기준은 세계 공통이다. 지방마다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본질이 같다. 평균에서 멀수록 미인의 기준에서 벗어난다. 실험할 수도 있다. 여성호르몬을 많이 주입할수록 미인과 가까워진다. 


    형체를 쉽게 알아볼 수 있을 것.

    영양상태가 좋아 보일 것.

    평균에 가까울 것.

    여성호르몬의 영향이 강할 것.

    인체의 비례가 맞을 것.


    이런 것은 세계 공통이고 그다음은 캐릭터에 따른 밸런스가 있다. 지적으로 보인다거나, 건강해 보인다거나, 귀여워 보인다거나 하는 식의 다양한 변주가 있을 수 있지만 그것은 이러한 기본 위에서 성립하는 것이다.


    신데렐라는 복수극이기도 하고 신분상승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것은 본질과 거리가 있다. 계모와 두 언니는 신데렐라를 고생시키는 장치에 불과하다. 현대사회라면 교육부와 학교와 학원이다. 학생을 고생시키는 장치다.


    종교적인 접근이 진실이다. 신데렐라는 구원에 관한 서사이며 왕자는 구원을 설명하는 장치다. 구원 개념은 인간은 누구나 미인이고 왕자이고 공주라는 것이다. 하녀가 공주로 상승하는 이야기가 아니라 공주가 공주로 확인되는 이야기다.


    예컨대 이런 거다. 머리가 나쁜 사람은 천국에 가서도 머리가 나쁜가? 못생긴 사람은 천국에 가서도 못생겼는가? 다운증후군은 천국에서도 다운증후군인가? 치료가 된다고? 미인이 된다고? 색맹이 천국에 가면 정상이 된다고? 난쟁이는? 그럼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나 대신 대타로 천국에 간 거잖아. 난감하다. 


    이 점을 이해하려면 나를 배제해야 한다. 내가 구원되어 천국에 가는 것이 아니다. 천국이 천국으로 확정되는 것이다. 신데렐라는 어떤 사람이 아니라 인류 그 자체다. 권선징악 고진감래 와신상담 계몽사상이 아니라 인간은 어떻게 구원되는가 하는 종교적 접근이 왜 이 스토리에 힘이 있는지 이해하는 열쇠다. 


    바리데기 설화도 그렇지만 반드시 고생을 해야 한다. 조선시대 군담소설도 패턴이 같다. 여자가 남장을 하고 수련을 하며 10년은 고생을 해야 한다. 왜 고생을 하는가? 그것은 버려짐이다. 구원된다는 것은 역으로 자신이 현재 버려져 있다는 의미다. 인간은 자신을 버려진 존재로 인식하고 구원되기를 갈망한다. 신데렐라의 본질은 집단과의 관계설정 문제다.


    슈렉의 결말부분에서 어린아이는 울음을 터뜨린다. 피오나 공주가 오우거가 되었다는 설정은 어린이 관객에게 저주를 걸어버리는 것이다. 우리는 인간의 보편적인 정서에서 벗어나 무리하게 계몽주의 관점으로 접근하고 있는 것이며 이는 이야기의 본질을 해치는 것이다.


    어린이나 약자는 집단으로부터 버려지는데 따른 공포가 있다. 집단의 중심으로 쳐들어가기를 원하는 것이다. 신데렐라는 원래 집단의 중심에 있었고 지금은 변방에 나와 있지만 다시 집단의 중심으로 돌아간다는 이야기다.


    틀린 해석


    – 신데렐라는 권선징악이다.

    - 신데렐라는 고진감래다.

    - 신데렐라는 복수극이다.

    - 신데렐라는 신분상승이다.

    바른 해석


    신데렐라는 집단의 중심에서 변방으로 밀려난 인간이 다시 집단의 중심과 연결되는 이야기다. 


    미모와 신분과 왕국의 재산은 집단을 상징하는 기표다. 인간은 원래 신이며 신에서 떨어져 나온 한 조각이며 다시 신으로 돌아간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다. 아기는 엄마한테서 떨어졌을 때 공포를 느끼며 다시 엄마를 찾았을 때 기쁨을 느낀다.


    왜 그것을 믿느냐고? 거꾸로 생각하라. 그것이 믿음이다. 인간은 어떤 사실을 믿는 것이 아니라 그냥 믿음이 마음에 들어차 있는 것이며 믿음은 자신의 주변을 둘러싼 환경에 대한 신뢰다. 환경을 적대할 것이냐 반대로 환경을 장악할 것이냐다. 믿음은 환경을 장악하는 것이다. 고생을 한다는 것은 환경을 장악한다는 것이다.


    못생긴 남자가 못생긴 여자를 만나 서로 못생겼으니 서로 불만 없지 않느냐고 청혼하지만 여자는 가뜩이나 못생겨서 속상한데 매일 못생긴 사람을 보고 살아야 하다니 고통이 두 배라며 거절한다.


    미인도 누더기를 입으면 추해 보인다. 인간은 어쩌다 나쁜 얼굴을 걸쳤을 뿐 본 바탕은 누구나 왕자이고 공주이고 신의 1/N 조각이다. 신이 가진 80억 개의 스토리 중의 하나를 내가 지금 담당할 뿐이라는 말이다. 신이 인상을 쓰면 이런 모습도 될 수 있지만 인간의 바탕은 신이다.


    우리 때만 해도 흥부씨는 한자녀 정책을 위반했다고 욕을 태배기로 먹었지만 요즘이라면 다산왕이라고 상을 줘야 한다. 대통령 면담은 당연하다. 이렇듯 시대를 타는 것을 빼고 근본을 논하자는 말이다. 근본은 종교적 구원이며 집단과의 관계설정이다. 본심으로 보면 인류가 곧 나다. 인류의 얼굴이 내 얼굴이다. 


[레벨:3]금란초

2022.12.22 (08:54:30)

이야 쉬지않고 세번 읽었다   김동렬선생 대단해요  이런 이야기 밤새도록 듣고 싶다

List of Articles
No.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6142 선비가 본 기독교 image 1 김동렬 2022-12-25 4973
6141 예수의 초대 김동렬 2022-12-24 3083
6140 뒤집어 생각하기 김동렬 2022-12-23 3046
6139 찰리 멍거의 방법 1 김동렬 2022-12-23 2995
6138 아바타 볼만하냐? 1 김동렬 2022-12-22 3069
6137 아프리카의 주술사들 김동렬 2022-12-22 3058
6136 존재의 족보 김동렬 2022-12-21 3012
» 신데렐라 이야기 1 김동렬 2022-12-21 3237
6134 연역과 귀납 1 김동렬 2022-12-20 2903
6133 구조론의 출발점 2 김동렬 2022-12-19 3143
6132 스티브 잡스와 일론 머스크의 기행 김동렬 2022-12-18 3126
6131 벌거숭이 인간들 김동렬 2022-12-18 3024
6130 공감빌런을 퇴치하라 김동렬 2022-12-17 2942
6129 공감은 폭력이다 1 김동렬 2022-12-16 3158
6128 잡스, 게이츠, 머스크 김동렬 2022-12-15 3024
6127 원리와 프레임 김동렬 2022-12-14 2933
6126 원리의 힘 김동렬 2022-12-13 3010
6125 김어준과 윤석열의 전쟁 김동렬 2022-12-13 3081
6124 연역과 인공지능 2 김동렬 2022-12-12 3038
6123 UFO 소동 image 김동렬 2022-12-11 30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