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에서 얻는 것은 사람뿐이고 잃는 것도 사람뿐이다. 할 수 있는 것은 사랑뿐이고 하지 못하는 것도 사랑뿐이다. 나머지는 무대의 사정이거나 대본의 사정이다. 무대가 나쁘면 할 수 있는게 없다. 대본이 나빠도 마찬가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은 만날 수 있다. 지금 나쁜 무대가 펼쳐져 있고 나쁜 대본이 주어져 있다. 도처에서 비명소리가 들린다. 사람 사는 세상은 희망이고 사람 잡는 세상은 현실이다. 옛사람들은 더 나쁜 환경에서도 의리를 지켰다. 의리를 지키면 져도 다음 게임에 초대되고 의리를 잃으면 이겨도 비참하다. 사람이 귀하다. 사람이 없다. 생각하면 나는 사람 하나를 만나고 싶었던 게다. 직접 대면하지 못한다 해도 그런 사람이 지구 어딘가에 존재하여 있다는 사실이 확인되면 그걸로 충분하다. 좋은 사람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좋은 사람에게는 내가 좋은 사람이 아닐 수 있다. 말을 똑바로 하는 사람, 진리를 정면으로 바라보는 사람, 벌거숭이 임금님을 보고 벌거숭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진짜다. 그런 사람이라면 대화가 통할 텐데 말이다. 밤새 떠들 수 있을 텐데 말이다. 훌륭한 사람을 찾으려고 한 것은 아니다. 거짓말만 하지 않으면 된다. 개소리만 하지 않으면 된다. 냉소하지 않고, 야유하지 않고, 빈정거리지 않는 사람이 진짜다. 신토불이, 유기농, 성찰, 진정성, 생태주의, 음모론, 환빠짓, 종교놀음 같은 개소리만 하지 않으면 된다. 올바른 길은 우주 안에 없다. 틀린 길로 가지 않으면 그것이 옳은 길이다. 쿨한 척하는 사람은 많지만 들여다보면 그게 비겁한 자기방어다. 분노할 때는 분노해야 사람인 거다. 신파 찍는 사람이 더 짜증난다. 사소한 걸로 흥분해서 치졸한 감상을 무기로 삼아 다른 사람에게 영향력을 행사하려고 한다. 어떤 사람은 폭력으로 영향력을 행사한다. 어떤 사람은 지식으로, 어떤 사람은 인격으로, 어떤 사람은 눈물로 사람을 휘어잡으려고 한다. 그것은 같은 것이다. 눈물로 엉기는 사람이나 진정성 팔이 하며 인품으로 엉기는 자나 같다. 수학자는 계산만 잘하면 존경할 만하고, 운동선수는 공만 잘 차면 존경할 일이다. 연주자는 악기만 잘 다루면 존경받는다. 이것저것 다 잘하라는 압박은 아스퍼거인을 곤경에 빠뜨리는 짓이다. 죽으라는 말인가? 틀린 것은 틀린 것이며 남는 것은 모두 확률 속에 있다. 우리는 똑바로 갈 수 없으며 단지 틀린 길을 제거하여 바로잡을 확률을 높일 뿐이다. 떠먹여 주는 정답은 없다. 피해야 할 위험이 있을 뿐이다. 만날 사람은 만나야 하는 것이며 나머지는 확률 속에 있다. 만나서 잘되면 좋고 잘 안되면 큰수의 법칙에 확률을 저축한 셈이니 나중 찾아먹으면 되고 끝내 찾아먹지 못하면 동료와 후배에게 기회를 넘겨야 한다. 품성이다, 진정성이다, 유기농이다, 성찰이다, 생태주의다 하는 말들은 사람을 사슬로 옭아매려고 수작 부리는 것이다. 음모론이다, 유에프오다, 초능력이다, 초고대 문명이다 하는 것들과 무엇이 다른가? 그런 소리를 하는 이유는 그게 먹히기 때문이다. 어 되네? 해보자. 요즘은 정치적 올바름이라는 관심법으로 사람을 족치는게 유행이다. 인간 사냥꾼의 그물을 빠져나갈 수 있는 도사는 아직 없다. 누구든 한 방에 죽일 수 있는 만능 치트키. 갈수록 사람 잡는 기술이 고도화된다. 만인이 만인을 저주한다. 궁예가 다시 돌아왔다가 내뺀다. 경상도 아저씨처럼 사랑하지만 표현하지 않는다는 말은 거짓말이다. 그건 사랑하는게 아니고 익숙한 것이다. 드라마에 잘 나오는 장면 있다. ‘떠나고 보니 옆구리가 허전하네. 내가 그 사람을 사랑했던가봐.’ 개소리다. 사랑하지 않는다고 생각했으면 사랑하지 않은 거다. 허전한 것은 무의식의 반응이다. 마음으로 사랑하는 것은 사랑하는 것이 아니다. 몸으로 사랑하는 것은 사랑하는 것이 아니다. 몸으로 사랑한다는 것은 다른 사람의 신체를 빌리는 자위행위나 마찬가지다. 가슴으로 사랑한다는 것은 미디어의 발달한 기술에 불과한 것이다. 진짜는 피할 수 없는 운명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왜냐하면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기 때문에. 볼 수 없는 장님과 걷지 못하는 불구자가 힘을 합치는 것은 운명이다. 사랑은 선택의 여지가 없는 수렁에 빠지는 것이다. 잘난 사람들은 다른 나라로 튀어버리면 그만이다. 못난 사람은 별수 없이 사랑해야 한다. 다른 길은 모두 막혀 있다. 재주 있는 자들은 진작에 떠났다. 못난 자들이 남아서 서로를 부둥켜안았다. 그렇게까지 몰린 것이다. 의리와 사랑은 같다. 사랑은 의리의 보급형 버전이고 의리는 사랑의 플래그십 제품이다. 기함이다. 아랍인의 명예살인이 떠오른다. 돈이 있는 사람은 돈으로 살고, 힘이 있는 사람은 힘으로 살고, 빽이 있는 사람은 빽으로 사는데 아무것도 없는 사람은 명예로나마 살아야 한다는 처절한 항변이다. 기술도 없고, 힘도 없고, 돈도 없고, 의리밖에 할 말이 없었던 것이다. 의리타령 하는 공자든 사랑타령 하는 예수든 마찬가지다. 조그만 빈틈만 있어도 옆길로 새는게 인간이다. 몰릴 때까지 몰려서야 최후의 진짜를 토해내는 것이다. 물이 들어올 때는 노를 저어야 하고 물을 기다릴 때는 의리를 지켜야 한다. 받아들일 운명밖에 사랑은 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