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상호작용한다. 자극하여 상대의 반응을 끌어낸다. 인식론은 인간이 세상을 이해하는 방식이다. 틀렸다. 인간은 자신이 어떻게 인식하는지 메커니즘을 모른다. 의도적으로 인식하는게 아니라 어쩌다가 저절로 인식되는 것이다. 의식적으로 생각하는게 아니라 저절로 생각나는 것이다. 꿈은 수면 중에 저절로 꾸어진다. 많은 경우 생각은 저절로 난다. 충격적인 장면을 보면 그 장면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는다. 의식적으로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저절로 각인된다. 도장이 콱 찍혀버린다. 인간은 생각할줄 모른다. 대신 서로 도장을 찍어준다. 정치판이 그렇다. 여당은 삽질해서 야당을 밀어주고, 야당은 삽질해서 여당을 밀어준다. 삽질 품앗이다. 더 많이 삽질한 쪽이 정권을 뺏긴다. 더 많은 일을 하는 여당이 삽질할 확률이 높다. 인식론은 지식을 전달할 때 쓰는 방법이다. 그걸로 창의는 못한다. 자연의 사실과 맞지 않기 때문이다. 책상물림 지식인이 현장에서 판판이 깨지는 이유다. 존재론으로 갈아타야 한다. 존재론의 방식은 스스로 도장을 찍는 것이다. 남의 머리에 도장 찍지 말고 자기 머리에 찍어야 한다. 뇌 안에서 우연히 일어나는 방식을 의식적으로 사용하는 것이다. 그것은 밖에서 안으로 좁히는 것이다. 존재는 연역하고 인식은 귀납한다. 연역은 범위를 좁히고 귀납은 범위를 넓힌다. 학습은 귀납이다. 스승과 제자가 만나면 이미 넓어져 있다. 타인에게 지식을 배우면 이미 넓어져 있다. 인간이 지식을 획득하는 방법은 두 가지다. 하나는 자기도 모르게 뇌에 도장이 찍혀서 인식되는 것이다. 둘은 다른 사람에게 배우는 것이다. 세 번째 방법을 추가해야 한다. 진정한 창의는 의식적으로 자신의 뇌에 도장을 찍는 것이다. 왠지 불편하고 어색하게 느껴져서 참을 수 없다면 뇌가 무언가를 감지한 것이다. 뇌에 도장이 찍힌 것이다. 거기에 감지해야 할 패턴이 있다. 거기서 패턴을 추출하고 다른 것에 적용하는 것이 창의다. 아기가 예쁜 것을 보고 웃고 흉칙한 것을 보고 우는 것은 뇌의 자동반응이다. 뇌가 원래 그렇게 프로그래밍 되어 있다. 뇌에 도장이 찍히는 것이다. 그것을 의식적으로 하는 것이 존재론의 연역이다. 열려 있는냐 닫혀 있느냐의 차이다. 닫힌계를 닫아거는 훈련을 해야 같은 상황을 재현할 수 있다. 그때 그때 달라요는 진정한 지식이 아니다. 닫아걸면 좁혀진다. 좁혀가는 것이 존재론의 연역이다. 귀납.. 타인에게 지식을 전달한다. 창의가 아니다. 오염을 제거하는 검증과정을 거쳐야 한다. 각인.. 타인과 상호작용 중에 다른 사람을 통해서 혹은 경험에 의해 우연히 깨닫는다. 낮은 수준의 창의가 가능하다. 연역.. 각인이 일어나는 지점을 검토하여 패턴을 찾아낸다. 높은 수준의 의식적인 창의가 가능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