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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ad 14630 vote 0 2004.01.07 (15:33:31)

이 글은 월간 피플(http://www.zuri.co.kr/) 최근호에 실린 글을 보충한 것으로 원문은 오래 전에 쓴 것이어서 지금 상황에 맞지 않는 부분이 있을 수 있습니다. 사전에 주제가 정해진 맞춤글이므로 필자의 뜻을 100프로 반영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응석은 심리이면서 동시에 전략이다
아기가 밥투정을 하면 어머니는 회초리를 든다. 이때 어머니의 매질은 할머니의 개입에 의해 종종 저지되곤 한다. 아기의 응석은 건넌방에 있는 할머니의 개입을 염두에 두고 있다는 점에서 타산적인 행동일 수 있다.

응석은 자신을 ‘보호받아야 할 존재’로 규정하고 자신에 비해 우월적 지위에 있는 타인의 동정심을 유발하기다. 가족공동체 내의 위계질서를 존중하며 그 질서를 흔들지 않는 범위 안에서 자신의 지위를 낮추는 대신 보상을 요구하기다.

응석문화는 한국과 일본에서 특히 발달해 있다고 한다. 가족 간에도 존대어를 쓰는 등 비교적 엄격한 가족 내의 서열관계가 응석문화의 온상인 것이다.  

사랑하는 연인들 사이에서의 ‘삐치기’ 혹은 ‘토라지기’도 응석과 마찬가지로 심리이면서 동시에 전략이다. 모르는 사람과의 관계에서는 삐칠 수 없다. 낯선 사람 앞에서 토라지는 여인은 없다. 연인사이 또는 가족과 같은 밀접한 친구 사이에 한정해서 삐치기 혹은 토라지기가 성립된다.

삐침의 전략은 굳이 내 입으로 말하지 않아도, 상대방이 내 속마음을 읽고 배려해주도록 우회적으로 요청하기다. 그러므로 상대방 남성이 여성의 속마음을 헤아리지 못하는 ‘목석같은 남자’라면 삐짐은 성공할 수 없다.

강자는 삐칠 수 없다. 우월적 지위에 있는 사람은 삐칠 수 없다. 윗사람은 토라질 수 없다. 응석은 능동적으로 상황을 주도할 수 없는 ‘약자의 전략’이다. 가족공동체 내에서 서열이 낮다는 이유로, 혹은 자신의 요구사항을 직접적으로 공표할 수 없는 상황에 처해 있을때, 자학적이고 우회적인 방법으로 자신의 의사를 전달하자는 것이다.

추미애의원이 삐쳤다는데   
정대철의원이 연결해준 전화를 노무현대통령이 받아주지 않았기 때문에, 혹은 내심으로 기대한 법무부장관 자리가 라이벌이라 할 강금실장관에게 돌아갔기 때문에 추미애의원이 삐졌다는 말이 있다. 개연성의 측면에서 사실일 수도 있다.

‘삐짐’은 의도적으로 자신을 곤경에 빠뜨리거나 혹은 곤경에 빠진 척 연출해 놓고 상대가 자신의 곤란한 상태를 해제해 주기를 우회적으로 요구하기다. ‘삐짐’이 성공하려면 요구조건이 수용될 경우 삐진 상태를 해제한다는 의사를 상대방이 눈치 챌 수 있을 정도의 신뢰관계가 전제되어야만 한다.

성공조건은 다음과 같다. 첫째 삐짐의 대상이 되는 상대방과 대립각을 분명히 할 것, 둘째 상대방이 이쪽의 행동을 예측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움직일 것, 셋째 삐친 상황에서도 상대방과의 대화채널은 단절하지 않을 것, 넷째 상대방의 반격을 초래하지 않을 것이다.

즉 이쪽이 삐쳐있는 상태임을 상대방이 분명히 알고 있으며 또 적절한 시점에 상대방이 자신의 삐진상태를 해제해 줄 수 있는 범위 안에서만 삐짐의 전략이 유효한 것이다.

추의원이 보여준 일련의 정치행보는 이러한 ‘삐짐의 조건’을 충족시키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첫째 추의원과 노무현대통령은 서로 잘 아는 사이다. 둘째 노무현은 추의원보다 우월적 지위에 있다. 셋째 추의원은 공격의 타켓을 대통령 1인으로 좁혀놓고 있다. 넷째 추의원은 상대방이 용인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최대한의 도발을 감행하고 있다.

즉 추미애는 아직 ‘넘어서 안되는 선’을 넘지는 않고 있는 것이다.

‘전략적 도발’은 때로 과장되기도 한다. 자신에게 불리한 결과가 돌아올 무모한 행동을 하므로서 ‘삐짐의 순수성’을 증명하는 것이다. 추미애의원이 의도적으로 지나치다 싶을 정도의 감정적인 언사를 사용하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추의원 자신이 대통령의 정적이 된 것이 아니라 노무현의 우월적 지위를 인정하는 대신, 약자 혹은 피해자 입장에서 삐져있을 뿐이라는 사실을 알리기 위해 애쓰는 모습이 역력하다.(감정적인 언사를 사용하여 스스로 망가짐을 자초하고 있다는 점에서)

감정적 태도를 버리고 이성적인 방법으로 공격을 감행한다면 노무현은 추의원의 삐진 상태를 해제해 줄 수 없다. 즉 추의원이 감적적 오버액션은 언젠가 노무현에게로 되돌아갈 퇴로를 확보하려는 의도를 감춘 의식적인 행동일 수 있는 것이다.

아기가 응석이 통하지 않을 때 건넌방에 있는 할머니의 귀에 들리도록 크게 울어버리는 마지막 수단을 숨겨둔 것과 같다. 그러므로 추의원의 행동은 명백히 응석으로 판단된다. 자신이 여성인 점을 활용하여 약자인 척, 피해자인 척, 고통받고 있는 척 하므로서 대통령 측의 반격을 피해가고 있다.

만약 남성이라면 ‘감정적 반발’이 아닌 계산된 행동임이 쉽게 노출되어 반격을 당하게 될 것임을 알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응석이면서 동시에 고도의 계산된 정치술이다.

추미애의원만 특별히 응석의 정치술을 구사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최병렬 한나라당 대표의 단식투쟁도 ‘응석 정치’의 일종이라 볼 수 있다. 노무현대통령의 재신임제안도 유권자의 동정심에 호소한다는 점에서 응석일 수 있다. 점점 더 많은 정치인들이 응석의 정치술을 구사하고 있다.

한국의 정치문화는 권위주의에서 탈권위주의로 이행하고 있다. 어차피 권위와 명령과 강압이 먹히지 않는 시대가 되었으므로 지켜보는 유권자의 동정심을 유발하여 우회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하는 응석이 정치술이 자리잡아 가는 것이다.

응석은 소극적 전략이다. 최종적으로 그 응석상태를 해제시켜줄 사람은 자신이 아니라 상대방이기 때문이다. 상대방에게 주도권을 넘겨주는 어리석은 결정이 될 위험이 있다. 그러나 약자에게 동정적인 한국인들에게 상당히 어필할 수 있는 전략임은 분명하다.

추의원이 삐짐의 정치로 대통령은 될 수 없겠지만 유력한 정치인 중 한명으로 성장하는 계기는 마련할 수 있다. 어쩌면 이미 그러한 목적을 달성했는지도 모른다.

추의원이 구사하는 ‘엄마의 정치’
응석의 정치술은 가족공동체와 같은 충분한 신뢰관계가 전제되어야 성공할 수 있다. 아기가 할머니의 개입을 예상하고 울 정도의 신뢰가 담보되어야 한다. 응석의 정치술에도 가족공동체 내에서 남편이나 아내의 역할과 같은 일종의 역할분담이 있다.

추의원은 호남정서를 강조하므로서 영남사람들의 호남에 대한 이해를 촉구한다. 즉 호남은 약자이며 피해자이므로 동정받아야 한다는 인식을 심어주는 데 성공하고 있는 것이다.

호남인이 직접 영남인을 향하여 ‘호남을 배려해 달라’고 요구할 수 없으므로, 영남지역출신 대통령을 공격하는 방법으로, 의식있는 영남인이라면 심리적인 측면에서 호남을 배려하지 않을 수 없게끔 유도하고 있다.

사실이지 다수의 호남인들은 노무현대통령이 당선되기 전 까지는 의도적으로 속마음을 감추어야만 했다. 그것이 영남인을 자극하는 결과로 나타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추의원이 호남인을 약자로 규정하므로서 호남인들이 속마음을 공공연히 말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된 것은 사실이다. 여기까지는 추의원의 정치행보를 긍정적으로 볼 수 있다.

문제는 이러한 암묵적 역할분담이 유지되기 위해서는 충분한 신뢰관계가 유지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응석의 정치가 도리어 신뢰관계를 파괴할 위험이 있다. 대통령이고 남자이며 강자인 상대방이, 여성이고 약자에 피해자인 나를 언제까지고 배려해줄 것이라는 믿음이 도리어 오판을 유발할 수 있다.

추의원의 일련의 정치행보는 ‘여성의 심리’ 측면에서도 예상된 것이다. 특히 여성의 경우 가족의 해체에 상대적으로 더 민감할 수 있다. 가족 공동체 내의 역할분담 측면에서 볼 때 여성은 자녀들의 보호자이기 때문이다.

가족공동체 내의 ‘힘의 균형’에서 ‘남편 대 아내’가 50 대 50으로 평형이 되지 않는다. 자녀들이 힘을 보태어 남편 대 ‘아내와 아이들’로 되었을 때 비로소 대등해지는 경우가 많다. 그러므로 가족의 해체는 상대적으로 여성에게 더 큰 손실을 안겨준다.

여성인 추의원이 분당으로 인한 가족의 해체에 더 강한 심리적 타격을 받았을 수 있다. 그만큼 ‘가족의 복원’에 대한 열정 역시 강하다고 볼 수 있다. 그러므로 추미애의원의 의도된 오버액션이 선거를 전후로 예상되는 정계개편에 있어 하나의 복선으로 작용할 수 있다.

그러나 추의원의 여성적, 감성적 정치술은 능동적이지 못하다는 면에서 정치지도자로의 성공에는 핸디캡이 될 수 있다. 추미애의원은 명백히 DJ에게 심리적으로 의존하고 있다. 이런 식으로는 스스로 자신의 갈 길을 개척하지 못한다.

정동영과의 경쟁에서 이길 자신이 없다는 절망감이 너무 이르게 표출되어 버린 것이다. 우회적인 방법으로 DJ의 지지를 끌어내므로서 열린우리당을 주도하는 정동영의원과 대등한 위치에 올라서기를 그는 열망한 것이다.

문제는 환경의 변화다. 지금과 같은 대립구도가 앞으로도 유지된다는 보장이 없다. 상황은 부단히 변화한다. 능동적으로 움직이지 않으면 결코 정국을 주도할 수 없다. 노무현대통령이 삐진 상태를 해제해주기를 기다리고만 있어서는 결정적 찬스가 왔을 때 역할하지 못할 가능성이 있다.

결론적으로 추미애의원의 정치술은 일개 재선의원으로서는 자기 자신의 출세를 위하여 성공적인 책략이 될 수 있으나 거물정치인으로 성장하기에는 치명적인 결함이 된다.  


덧글.. 추미애와 조순형, 김경재들.. 이념이 아닌, 이성적 판단이 아닌, 감정적 반발로는 오래가지 못한다. 거기에는 분명한 동기가 있고 그 동기와 목적이 너무 쉽게 달성되어 버리기 때문이다.

어쩌면 그들은 이미 목적을 달성했다. 각자 챙길 것을 챙겼다. 여전히 화난 표정을 짓고 있지만 작위적인 표정연출에 불과하다. 가짜다. 가짜로는 오래가지 못한다. 언젠가는 웃어야 한다.

진실한 자기표정을 잃어버리고 매우 어색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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