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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read 3023 vote 1 2022.10.11 (14:02:34)

    구조


    세종의 한글 창제야말로 인간이 도달할 수 있는 최고 수준의 지적 유희라는 말이 있다. 한글은 가장 단순한 구조에 무한한 확장성을 담아내고 있다.


    자연 역시 단순한 것의 무한 복제가 아닐까? 누구나 할 수 있는 생각이다. 번잡한 것은 서로 충돌하므로 반발력이 작용하여 안으로 쪼그라든다. 너무 단순한 것도 외부와의 연결고리가 없어서 고립된다. 그사이에 어떤 균형점이 있다. 우리가 찾아야 하는 완전성은 거기에 있다.


    한글이 여기서 더 단순해지면 확장성을 잃어 많은 것을 표기할 수 없게 된다. 여기서 더 복잡해지면 배우기가 어렵다. 한글은 극한의 균형점에 도달해 있다. 세종은 자음과 모음을 대칭시켜 음절을 조합하고 초성, 중성, 종성의 결합으로 음절을 독립시켜 잇고 끊는 연결의 단위를 만들었다. 확장성을 반영하는 구조를 만들어낸 것이다. 여기에 하나를 더할 수 없고 여기서 하나를 뺄 수도 없는 극한의 경지까지 밀어붙였다.


    더 단순해질 수 없으면서 그 어떤 복잡한 것도 커버한다면 그것은 우주의 탄생원리와 같은 것이다. 가장 단순하면서 무한히 확장되는 것은 자연의 대칭성과 비대칭성을 동시에 반영하는 구조다. 대칭은 연결하고 비대칭은 독립한다. 대칭은 안정하고 비대칭은 변화한다.


    자연의 근본은 더 쪼개질 수 없으면서도 널리 연결할 수 있는 대칭과 비대칭의 구조라야 한다. 안정되는 성질과 변화하는 성질을 동시에 갖추어야 한다. 그것은 구조다.


    우리는 자연의 객체들에서 중복과 혼잡을 제거하여 구조를 추출할 수 있다. 컴퓨터의 0과 1처럼 가장 단순하면서도 무한한 확장성을 갖는 구조가 있다. 우주는 구조로 만들어져 있다.



    자연


    진리는 자연에서 가져오는 것이다. 금을 캐듯이 캐는 것이다. 인간 역시 자연의 일부다. 자연과 인간이 통하는 지점이 있다. 그 지점에서 몸이 반응한다. 자극에는 반응이 있다. 그 반응에 민감한 사람이 금을 발견한다. 진리와의 감응에 성공한다.


    그것은 가장 단순하면서도 넓은 확장성을 가진 것이다. 자연의 대칭성에 의한 안정성과 비대칭성에 의한 변화가능성을 동시에 가진다. 그것은 구조다.


    서양의 원자설과 이데아설, 동양의 음양설과 오행설도 같은 아이디어에서 출발한다. 그런데 확장성이 없다. 대칭과 비대칭, 안정과 변화라는 얼핏 모순되어 보이는 두 가지 국면을 동시에 감당하지 못한다.


    진리는 자연과 인간의 만남이다. 인간은 세 가지 국면으로 자연과 만난다. 첫째, 자연에서 완전성을 가져올 것, 둘째, 그 완전성으로 인간이 자연의 깊은 곳까지 도달할 것, 셋째, 자연과 인간의 활발한 상호작용으로 많은 접점을 만들어낼 것.


    첫째, 완전성을 얻고, 둘째, 그것을 확장하고, 셋째, 그것을 응용한다. 첫째, 자연의 소통하는 완전성을 얻는 것이 구조론이라면, 둘째, 그것을 확장하여 자연의 극한까지 도달하는 것이 수학이고, 셋째, 자연과 상호작용하여 많은 접점을 만들어내는 것이 과학이다.


    첫째, 구조론이 완전한 한 채의 집을 짓고, 둘째, 수학이 집의 크기를 필요한 만큼 늘리고, 셋째, 과학이 많은 방에 필요한 것을 채운다. 그 방법으로 인간은 자연과 긴밀해진다.



   사유


    인간은 생각하는 동물이라는 말이 있지만 실제로는 거의 대부분 생각하지 않는다. 생각은 그냥 되는 것이다. 저절로 생각이 난다. 문득 아이디어가 떠오른다.


    자유연상으로 우연히 아이디어를 떠오를 확률을 약간 높여주는 것이 인간이 할 수 있는 최선이다. 그 외에는 과거의 기억을 반추하여 비슷한 기억을 찾아내는 것이 고작이다. 수학문제 풀 때는 확실히 생각을 한다. 그것도 공식이 있어야 가능하다. 일기를 쓰거나 창작을 할 때는 생각을 하지만, 그것도 제대로 해내는 사람이 없다. 대부분 기존에 있는 것을 복제한다. 초딩이 일기를 써도 대부분 자기표절이다.


    생각은 공식에 대입하여 풀어내는 것이다. 공식이 없으면 생각할 수 없다. 다행히 인간의 뇌 속에는 공식이 하나 장착되어 있다. 우연히 그 공식 속으로 소스가 들어가면 아이디어가 불쑥 튀어나온다. 그것은 기계적인 자극과 반응이다. 그것을 의식적으로 재현하는 것은 수학이다.


    자연은 구조로 이루어져 있고 인간의 뇌 속에도 구조가 있다. 뇌 속의 구조를 자극하면 아이디어가 창발한다. 그 외에는 대부분 모방과 재활용과 복제와 집적이다.


    첫째, 자연에서 인간에게로 가져오는 것은 지식의 창발이다. 둘째는 인간에게서 자연으로 다가가는 것은 지식의 복제다. 셋째는 자연과 인간이 상호작용하는 것은 지식의 응용이다. 먼저 자연의 구조를 완성하고, 둘째, 인간이 지식을 확장하고, 셋째, 자연과의 상호작용을 통해 응용한다. 구조론과 수학과 과학이다. 이 순서를 어길 수 없다.



    지식


    지식을 세 가지로 분류한다면 구조론과 수학과 과학이 있다. 여기에 전도될 수 없는 본과 말의 차이가 있다. 구조의 완전성이 근본이며, 수학은 확장성이고, 과학은 응용성이다.


    어떤 사람이 99는 모르지만 100은 안다고 주장한다면? 틀렸다. 99를 모르면서 100을 알 수는 없다. 수학은 연결이고 중간에 연결이 끊어지면 안 되기 때문이다. 수학은 빈틈없이 메워져 있다. 미적분을 하려면 그전에 배운 것을 모두 알아야 한다.


    사과는 알아도 복숭아는 모를 수는 있다. 사과 먹는 방법을 아는 사람은 복숭아 먹는 방법을 자연히 알게 된다. 하나만 알아도 많은 것을 알 수 있다. 그 하나는 구조론이다. 여기서 구조론과 수학의 서로 상반되는 특징이 있다.


    학문은 하나만 알아도 되는 것. 모두 알아야만 하는 것. 적당히 알면 알고 모르면 모르는 것으로 나눠진다. 구조론은 하나만 알면 되는 것이고, 수학은 모두 알아야 하는 것이고, 과학은 적당히 필요한 것만 알면 된다. 비유하면 아래와 같다.


    구조 - 사과를 알면 복숭아도 알게 된다.
    수학 - 사과를 모르면 복숭아를 알 수 없다.
    과학 - 사과는 알아야 되지만 복숭아는 몰라도 된다.


    구조론과 수학은 밀접한 관계가 있다. 그런데 방향이 다르다. 구조론은 사유의 출발점 1을 찍는 것이다. 수학은 1에서 출발하여 2와 3으로 계속 나아가는 것이다. 구조론은 내부에서 한 점을 찾고, 수학은 외부에서 두 점을 연결한다. 안이냐 밖이냐다. 구조론은 불필요한 것을 배제하여 내부를 압축하고, 수학은 필요한 것을 연결하여 외부로 확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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