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탓하기는 쉽다. 이게 다 정치를 모르는 코미디언 젤렌스키 때문이라고 하면 된다. 김어준처럼 역사 공부를 안 한 사람은 보통 이렇게 한다. 윤석열이나 젤렌스키나 정치 모르고 나대다가 망하는건 같다. 그러나 김어준이 뭘 알겠는가? 보통 사람의 보통 생각은 보통 틀린다. 우리는 조금 더 깊이 들어가야 한다. 일어날 전쟁은 일어난다. 2차대전을 막는 방법은 없었다. 젤렌스키처럼 망하지 않으면 체임벌린처럼 망한다. 결과는 같다. 체임벌린을 비난할 필요도 없다.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는데 원래 그렇게 된다. 세상일이 입맛대로 되던가? 반대하는 사람이 99라도 1명이 찬성하면 전쟁은 일어난다. 대부분 지정학적인 이유가 있다. 625가 일어난 이유는 이승만, 김일성, 모택동 세 사람 중에 정통성을 가진 사람이 한 명도 없었기 때문이다. 지갑을 주웠는데 자기 명의로 등록하려니 푸닥거리 한판은 필수다. 김구가 38선을 베고 누워도 4.3이 터지고 여순이 터지면 못 막는다. 전쟁을 하려고 마음을 먹으면 뭐든 구실이 되기 때문이다. 가장 현란한 외교술을 보여준 나라는 가야다. 신라와 결혼동맹을 하고, 왜를 끌어들이고, 고구려에 호응하는가 하면 백제와는 사비회의를 하고.
중국에 사신도 보냈다. 전방위로 노력한 결과는 멸망의 재촉이다. 뭐든 움직이기만 하면 망하는 구조다. 가야사를 보면 슬프다. 낙동강 루트가 막히자 섬진강 루트를 뚫었는데 험난하다. 고령 출발 거창, 합천, 함양, 장수, 진안, 남원, 곡성, 구례, 순천, 하동 찍고 여수 연결. 수십 개의 산성을 쌓고 남원 일대에만 봉수대를 40개나 만들었는데 백제가 날로 먹었다. 가야가 개고생해서 개척한 루트를 백제는 웬 떡이냐 하고 한입에 삼킨다. 이런 패턴은 꾸준히 반복된다. 나제동맹은 잘못 알려졌다. 백제가 맹주이고 신라, 왜, 가야 사국동맹이다. 그런데 이게 발목을 잡았다. 백제는 신라를 꼬셔서 평양을 치려고 했다. 신라는 백제 주도의 전쟁에 말려들기 싫어서 한강에서 멈춘다. 돌궐에 뒷다리 잡힌 고구려는 한강 하류를 신라에 주고 백제에 집중했다. 신라는 한강 상류를 먹은 이상 하류는 가만있어도 먹는다. 백제는 외교에 집중한게 약점이다. 외교는 균형이다. 균형은 기세를 잃어서 위태롭다. 한강 하류보다 동맹의 유지가 중요하다. 고구려와 전선을 맞대면 피곤하므로 하류는 신라에 줘서 신라와 고구려를 싸움 붙이고 사국동맹 맹주 자리를 유지하면 신라도 개기지 못한다. 고구려가 백제의 속셈을 알고 신라와 딜을 쳤다. 백제는 신라와 고구려가 싸우게 하고 어부지리를 노렸는데 안 싸운다. 나제동맹이 깨질 판이 되자 선수 쳐서 가야와 왜로 신라를 친다. 그러다가 성왕이 죽었다. 신라로 고구려를 치고 왜와 가야로 신라를 친다고? 이게 되냐? 여기서 중요한 것은 힘을 기르지 않고 외교술을 구사하여 날로 먹으려 하다가 보폭이 좁아져서 망하는 공식이다. 이런 일은 비일비재하게 일어난다. 백제는 동맹을 유지하려고 신라에 양보하다가 뒤통수 맞은 것이다. 젤렌스키가 외교 잘하면 체임벌린 되는건 공식이다. 비스마르크는 외교를 중시했지만 싸울 때는 지독하게 싸웠다. 보불전쟁이 그러하다. 외교만 믿고 군대 아끼면 망한다. 힘들어도 자력으로 일어서야지 남의 군대로 공짜 먹는 일은 세상에 없다. 보불전쟁 역시 크게 보면 상류에서 하류를 친 것이다. 독일이 절대 유리하다. 역사는 지정학이다. 알박기 잘한 나라가 이긴다. 우리는 역사를 인물 중심으로 배운다. 위진남북조에 5대 10국 혼란기에 고구려는 텅 빈 만주땅을 먹었다. 유목민이 죄다 중원으로 몰려가서 만주가 텅 비었기 때문에 광개토대왕이 빈 땅을 날로 먹은 것이다. 지갑 주웠다. 5세기 신라는 멸망 직전이었다. 장수왕에게 쫓겨 신라 영토는 가야와 비슷해졌다. 그런데 말이다. 경주에 거대고분이 있다. 거대한 황금고분은 신라가 가장 약하던 시기에 만들어다. 왜 신라는 강성해졌을까? 보통은 사람 탓을 한다. 김유신, 김춘추 덕분에? 과연 그럴까? 백제는 왕이 멍청하고 신라는 왕이 똑똑했을까? 천만에. 신라는 선덕여왕의 거듭된 삽질로 나라가 멸망 직전까지 갔다. 선덕여왕은 반란이 거듭되자 화병으로 죽었다. 우리는 결과적으로 신라가 흥했으니 선덕은 아마 훌륭한 군주겠지 하는 식으로 상상하여 왜곡한다. 사실은 성골이 무너지고 나라를 귀족 김춘추에게 뺏겼다. 신라는 경주 주변의 작은 나라였는데 알박기를 잘했다. 말갈이 침략하자 북쪽 소국들이 도움을 청했다. 군대를 보낼 수 있는 나라는 신라밖에 없다. 가야는 너무 멀고 산과 강으로 막혀 있어서 지원군이 못 온다. 말 타고 강을 건너기가 어렵잖아. 경주와 대구 사이는 평탄하다. 말 타고 하루면 대구 가고 이틀이면 안동 간다. 만약 안동에 항구가 있다면 안동정권이 경주를 먹었을 것이다. 항구가 없는 안동은 경주에 의지할 수밖에. 알박기 잘해야 한다. 바다와 강을 끼고 앉아야 한다.
낙동강 하류는 상류에서 쳐내려오면 방법이 없다. 고립된 곳이다. 가야는 신라에 먹히게 되어 있다. 후삼국 시대에 안동세력이 신라에 붙은 것도 그렇다. 고구려가 북쪽에서 소백산 넘어오면 안동은 도망칠 곳이 없다. 견훤이 상주에 연고가 있으니 안동은 원래 견훤 편이다. 지도를 딱 보면 어디에 붙어야 사는지 답을 안다. 촉은 형주를 잃고 망했고 견훤은 안동을 잃고 상주를 잃어 망했다. 의자왕은 대야성을 잃고 망했고 신라는 보은에 삼년산성을 쌓아서 흥했다. 합천은 신라의 숨통을 겨누고 있고 보은과 옥천은 백제의 숨통을 겨누고 있다. 아일랜드는 잉글랜드에 막혀서 망했고, 메세니아는 스파르타에 막혀서 망했고, 경북은 신라에 막혀서 먹혔고, 시칠리아는 이탈리아에 막혀서 먹혔다. 낙동강 상류의 신라가 하류의 가야를 이기고, 한강 상류를 차지한 신라가 하류를 차지한 백제에 유리한 것은 당연하다. 신라는 사실 궁벽한 곳이다. 잡아먹히기 딱 좋은 구석진 자리다. 백제, 가야, 왜에 세 방향으로 포위당했지만 광개토대왕이 구해주자 갑자기 도약했다. 외국인을 한 번 구경하면 사람이 달라진다. 부족국가에서 고대국가로 수직도약. 이후 왜는 신라를 침략하지 못한다. 신라의 덩치가 커졌다. 오로지 알박기다. 백제는 고구려 신라에 협공당했다. 여제동맹으로 잠시 숨을 돌렸지만 나당동맹에 깨졌다. 망한 나라의 공통점은 양면전선에 깨진 것이다. 신라가 당을 물리친건 아니고 토번이 당나라 뒷다리를 잡아준 덕에 지갑을 주운 것이다. 재미있는 점은 양면전선이 형성되면 배후에서 불과 수천의 군세로 움직여줘도 꼼짝 못 한다는 점이다. 고구려가 신라를 먹으려고 포항까지 왔을 때 백제 동성왕이 병사 3천을 보냈는데 고구려군이 물러난 것이 그렇다. 개로왕이 죽었을 때 신라는 일만을 백제에 보냈다. 장수왕 4만 대군이 신라군 1만을 못 당해서 백제정복을 포기했다. 원래 그렇다. 숫자는 중요한게 아니다. 후삼국도 후백제는 양면전선을 당해서 졌다. 견훤은 안동에서 한 번 졌을 뿐인데 나라가 망했다. 그때 왕건을 도왔던 안동권씨와 안동김씨들이 아직까지 먹고 있다. 중국의 역대 왕조는 북쪽에서 일어났다. 남쪽에서는 안 되는게 양면전선을 당하기 때문이다. 백제는 하류에 있고 송나라 역시 하류에 있다. 오나라가 망할 때도 상류에서 배 타고 하류까지 그대로 밀어버린다. 주원장도 상류를 차지하고 쉽게 하류의 장사성을 밀어냈다. 고구려 국내성은 상류에 있어서 천혜의 요지인데 평야가 없어 대지가 무덤으로 꽉 찼다. 너무 궁벽하다. 중국 장안은 상류에 있어서 하류의 중원으로 진출하기 쉽다. 상류의 러시아가 하류의 우크라이나 치기 쉽다. 그러나 지금 러시아가 먹은 땅은 상대적으로 하류다. 로마는 알프스가 북쪽을 막아준다. 신라는 소백산맥이 북쪽을 막아준다. 한니발은 로마 북쪽에서 괜히 남쪽으로 갔다가 망했다. 카르타고와 연결하려고 하류로 간 것이 패인. 백제도 왜와 연결하고 중국과 연결하려고 외교하다가 망했다. 외교는 균형이고 균형은 망한다. 균형은 멈춤이고 멈추면 망한다. 움직여야 기세가 살아나고 기세를 살려야 흥한다. 움직여야 찬스가 생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