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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ad 14640 vote 0 2003.12.24 (14:37:25)

『 서프 올해의 인물 선정 중, 올해의 악질상에 부시!, 올해의 멋쟁이상에 노무현, 올해의 오바상에 강준만.. 기타 후보추천 바람 』


고수의 평범한 선수와 하수의 기발한 후수

한 반에 60명의 학생들이 있습니다. 새로 부임한 담임선생님이 이 60명의 학생들을 휘어잡으려면 어떤 방법을 써야할까요?

1) 모범생으로 반장을 뽑아 지시를 내린다.
2) 반에서 제일 말 안듣는 꼴통을 단속해서 그 녀석의 행동반경을 제한해 놓는다.

정답은 2)번입니다. 이것이 제가 강조하는 역설입니다. 바둑으로 치면 ‘수순’이재요. 역설을 오해하는 독자분도 있군요. 독자님의 글을 인용하면 ..

“흔히 프로와 아마추어의 기본실력은 거기서 거기라고 합니다. 그러나 막상 프로와 아마추어가 만나면 승부는 대개 프로 쪽으로 결정납니다. 그 이유를 흔히 프로는 ‘승부를 위한 바둑’을 두고 아마추어는 ‘바둑을 위한 바둑’을 두기 때문이라고 하더군요. 이를 실제 상황에 놓고 보면, 대체로 프로의 수들은 아주 당연하고 평범한 선수(先手)를 두는 경향이 있고, 아마추어들은 매우 기발하고 특이한 후수(後手)를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고 하더군요.”

맞는 말입니다. 그런데 뭐가 평범한 선수(先手)이죠? ‘평범한 선수’야 말로 제가 그동안 누누이 강조해온 바입니다. 지난 번에 인용한 오륜서의 미야모도 무사시만 해도 시종일관 선수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길지도 않은 원문에서 선수(先手)라는 단어가 무려 36번이나 나오더군요.

‘선수(先手)야 말로 병법의 첫째 가는 길이다’.. 하고 밑줄 그어 강조하고 있습니다.

또 지난 번에 말한 오자병법만 해도 손자병법과 달리 선수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오자병법에서 전쟁의 기본은 ‘신속한 공격에 의한 정면돌파’입니다. 손자병법에서는 반대로 ‘전쟁의 기본은 속임수’가 되지요. 선수(先手).. 히딩크 식으로 말하면 ‘지배한다’는 개념입니다. 소위 ‘게임의 지배’지요. 오죽하면 ‘CEO 히딩크, 게임의 지배’라는 책까지 출판되어 나왔겠습니까?

제가 역설을 강조하고 있습니다만 역설을 가만 있다가 ‘상대의 공격을 맞받아치는 것’으로 이해한다면 잘못 아신 것입니다. 상대의 실수를 노리며 허점을 잡아 기습을 감행하는 것은 결코 역설이 아닙니다. 진짜 역설은 ‘정공법’입니다. 선수를 치는 것이고 선점을 하는 것입니다.

무협만화에 흔히 나오는 장면인데, 고수끼리의 싸움은 건조해서.. 두 고수가 서로 상대방이 먼저 공격하기를 기다리며 가만히 노려보고만 있지요. 이는 100프로 허구입니다. 미야모도 무사시가 무려 36회에 걸쳐 강조하고 있듯이, 진짜 고수라면 본인이 먼저 기술을 걸고 들어갑니다.(이는 절대적임)

인터넷만 해도 개혁세력들이 ‘선점’하고 있지 않습니까? 제가 10년전부터 강조한 ‘전략적 선점’입니다. 인터넷은 신대륙이라서 먼저 먹는 사람이 임자라 이거에요. 먼저 가서 말뚝을 박고, 깃발을 꽂아야 합니다. 당연하죠.

근데 문제는 무엇이 ‘선수’이고, 무엇이 ‘선점’이고, 무엇이 ‘지배’인지 정확하게 아는 것입니다.

정답을 말하지요. 그것은 ‘공간의 지배’이고 ‘공간의 선점’이고 ‘공간의 선수’입니다. 쉽게 말하면 ‘선공간 후시간’입니다. 자! 한 반에 60명의 학생이 있습니다. 두가지 조건이 있어요. 하나는 바운더리의 한정, 둘은 명령의 전달입니다. 둘 중 수순은?

바운더리의 제한이 먼저이고, 명령의 전달은 둘째입니다. 바운더리를 한정한다는 것은 상대방의 행동반경을 묶어놓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그 반에서 제일 말 안듣는 꼴통분자를 포섭, 회유, 공갈, 압박, 장악, 지배해야 합니다.

그것이 곧 히딩크가 말하는 공간의 지배, 게임의 지배에요. 두 번째는 ‘명령의 전달’인데 이것은 모범생 반장을 통해서 하는 것입니다. 왜 공간의 지배가 먼저인가? 명령이 전달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가만 놔두면 60명의 한 반은 모범생파와 꼴통생파로 나눠지고, 반장에게 내린 지시는 모범생들에게만 전달되고 뒷줄에서 건들거리며, 수업시간에 짤짤이 하는 녀석들에게는 전달이 안됩니다. 정보가 중간에서 차단되는 거에요.

이는 바둑에만 해당되는 사항이 아니라 세상 모든 일에 공통적으로 두루 적용되는 이치입니다. 축구를 하든, 낚시를 하든, 병사들을 통제하든, 항상 공간의 지배, 바운더리의 확정이 먼저이고 명령의 전달은 나중입니다. 그게 역설입니다.

boundary.. 정치로 말하면 속칭 ‘나와바리’죠. ‘나와바리의 법칙’을 이해했다면 99프로 이해한 겁니다. 바둑도 마찬가지에요. 나와바리 싸움입니다. 여야간에 치고받는 것도.. 서프가 당파성 운운하는 것도 나와바리의 전략적 선점, 바운더리의 구획, 유리한 포지셔닝의 획득을 목적으로 하는 겁니다.  

예컨대 논객들이.. ‘넌 보수야’, ‘넌 수구야’, ‘넌 좌파야’ 하고 열심히 금을 긋고 칸을 가르고 장벽을 세우는 이유는? 상대방의 행동반경을 그 바운더리 안에 한정시켜 놓겠다는 속셈입니다. 예컨대 우리가 정형근이 더러 ‘넌 수구꼴통이야’하고 제 분수를 알려주는 것은.. 또 민주당 더러 ‘딴잔련’하며 제 위치를 알려주는 것은.. ‘너희는 그 바운더리 안에서 밖으로 기어나오지 마!’ 하는 명령이지요.

이러한 ‘바운더리의 구획’이야 말로 동서고금의 모든 전략전술 중에, 첫 번째의 첫 번째의 첫번째입니다. 자신의 행동반경은 되도록 넓히는 것이 옳고 상대방의 행동반경은 되도록 축소시키는 것이 좋죠. 바둑의 포석도 마찬가지입니다. 가장 넓은 반경을 가지는 위치에 두면 그것이 곧 정석입니다.

왜 역설인가? 우리는 귀납적 사고에 젖어있어서 ‘명령의 전달’이 먼저라고 착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바둑이라면 화점이 아니라 천원에 두어야 한다고 착각한다 말입니다. 천만에요. 천원이 모범생 반장이면, 화점이나 3.3은 교실 뒷줄에 말 안듣고 딴전피우는 꼴통학생입니다. 변을 먼저 먹고 중앙으로 진출하는 거죠. 바둑은 처음부터 끝까지 역설입니다.

그러므로 ‘고수의 평범한 선수’야 말로 지극히 역설이지요. ‘하수들의 기발한 후수’야 말로 ‘바운더리의 구획’이 아니라 ‘명령의 전달’에 치중하는 것습니다. 그래봤자 상대방이 구획해 놓은 바운더리 안에서 깔짝거리는 셈이 되는 거지요. 손오공이 부처님이 구획해 준 손바닥 바운더리 안에서 놀구요.

조금 더 난이도를 올려봅시다. 하여간 이건 중요한 지식이므로 배워야 합니다. 문제를 하나 내지요.

중국집에서 혹은 다방에서, 짜장면 혹은 커피를 배달합니다. 이때 주방장이 볶아낸 짜장면은 딱 한그릇 뿐인데 홀 손님 한 분과, 배달 한그릇으로 두 곳에서 주문이 동시에 들어왔다면 어디에 우선권을 주어야 할까요? 뻔할 뻔자죠. 정답은 ‘배달’입니다.

중국음식점에서 식사할 때, 홀에 온 손님 30분씩 기다리게 해놓고, 배달부터 먼저 하는거 목격한 적 없습니까?

공간이 우선이라니까요. 홀은 공간의 지배 혹은 확대가 아닙니다. 홀 손님은 70프로의 확률로 우연히 지나가는 뜨내기손님입니다. 배달은 단골이 될 확률이 높죠. 만약 거기서 아줌마들이 계모임이라도 하고 있다면, 그 한그릇의 배달이 새끼를 쳐서 10그릇 20그릇으로 늘어날 확률이 높습니다.

커피 배달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배달은 공간의 확대지요. 만약 거기가 아저씨들 고스톱치는 복덕방이라면, 한잔이 열잔 되고 열잔이 스무잔 될 확률이 매우 높습니다. 그러므로 곧 죽어도 배달을 해야 합니다. 홀 손님은 음식 떨어졌으니 다른 식당 가보라 그래요.

문제 하나 더 .. 손님이 둘 왔는데 한 사람은 입맛이 까다로와서 이런저런 불평을 늘어놓고 다른 한 사람은 아무 말 없이 잘 먹는다면 누구 비위를 맞춰야 할까요. 백화점에서 옷을 파는데 한 사람은 자잘한 것을 가지고 시비를 거는데 비해 다른 한 사람은 그냥 달라는대로 돈을 지불한다면 누구 비위를 맞추어야 할까요?

역설입니다. 가장 까다롭게 구는 손님, 종업원을 귀찮게 하고, 한푼이라도 깎으려 하고, 제품에 트집을 잡는 손님을 잘 대접해야 합니다. 거기가 맥이고 화점이에요. 군말 없이 사가는 손님은 돌아볼 필요도 없어요. 그 사람 다시는 안옵니다.

까다로운 입맛을 가진 사람의 입맛에 맞춰주면 그 사람이 동료 20명을 데리고 옵니다. 아무 말없는 사람은 아무리 맛있게 대접해줘도 두 번은 안와요. 그 사람은 음식 맛을 모르기 때문에 동료들을 지배하지 않습니다.

역설을 알아야 합니다. 역설은 먼저 '공간을 구획'하는 것입니다. 역설이 정석입니다. 상대방의 대마를 잡으려 하면 자기의 대마가 잡힙니다. 잡으려고 따라다니며 덤비는 것이 하수의 기발한 후수입니다. 공간에서 바운더리를 구획해놓으면 상대방이 저절로 그 안에 갖혀버립니다.  

여의도 발언 그렇게 모르겠는가?
결론적으로 대통령의 여의도발언은 ‘바운더리의 구획’입니다. ‘평범한 선수’를 둔 겁니다. 그걸 비범한 꽁수로 본다면 착각이에요. 역설이죠. 이회창과 한나라당을 치기 위해 민주당과 한시적인 제휴를 한다는 암시입니다.

최근 교육부총리 인사와 사패산 관통도로 강행에서 보듯이 명백한 ‘전술적 후퇴’입니다. 명령의 전달이 아니라 바운더리의 구획인데 한나라당이나 민주당은 그걸 ‘명령의 전달’로 착각하고 있으니 그런 하수들은 줄창 깨지는 거죠.

이름쟁이님도 노무현의 발언을 정반대로 해석해서 뒷북을 치고 있는데, 여의도발언은 모범생 반장을 통하여 명령을 전달한 것이 아니라, 교실 뒤쪽에서 거들먹거리며 말 안듣는 노사모 모아놓고 바운더리를 구획해서 노사모의 행동반경을 제한해 놓은 것입니다. 그거 모르겠어요?

덧붙인다면 ‘포용과 연대’는 대통령이 할 일이며 서프라이즈는 자위라도 좋으니 계속 전진해야 합니다. 서프는 아직 어른이 아니라 어린이에요. 어린이는 많이 먹고 쑥쑥 커야 합니다. 노무현의 벌언은 ‘정치는 내게 맡기고 여러분들은 어린이처럼 순수하게 행동하라. 내가 민주당을 포용하더라도 헛갈리지 말고 여러분은 계속 전진해달라’는 뜻입니다.

이름쟁이님이 걱정 안해도 노무현은 이미 '대포용정책'으로 돌아섰습니다. 당분간 민주당과 휴전하고 한나라당 박멸에 주력할 것입니다. 척 보면 아셔야죠. 그걸 아직도 감 잡지 못했다면 문제있는 거죠.

덧글..
참 어제 쓴 글에서.. '초딩은 KIN~!' 이렇게 써놓고 혹시 이 말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하는 독자분들이 있지 않을까 염려가 되었는데.. ‘즐~!’ 이 말의 원래 의미는 채팅방에서 채팅을 마칠 때 ‘~님 즐챗하세요’ 하는 인사말입니다.

이 말이 채팅방의 방장이 특정인을 강퇴시킬 때 하는 말로 발전한거죠. ‘KIN~!'은 ’이 방에서 나가주세요‘라는 뜻입니다. 채팅 중에 ’~님 즐’ 하는 말이 본인에게 왔다면 3초 안에 그 방에서 짤립니다. 그리고 ’방법‘에도 꽤 복잡한 사연이 있는데 다 설명하려면 이야기가 길어지므로 생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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