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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판 노무현이라 할 ‘하워드 딘’이 고어의 지지를 받아내는데 성공하는 등 기세를 올리고 있다. 노사모와 같은 개념으로 만들어졌다는 ‘딘사모’의 활약이 처음으로 주목을 받던 지난 7월만 해도 미국 내 식자들의 반응은 냉소적이었다고 한다.(민경진님의 테크노정치 참조)

『 지식인의 가식이 잇달아 폭로되는 가운데, 결집된 네티즌들이 마치 한 사람의 독립된 인격체인 듯 행동하는 경향이 나타나므로서 지식인과 상식인 사이에 형세의 역전이 일어나고 있다. 』

그런 방식으로 골수 민주당 지지자들의 인기는 얻을 수 있을지 몰라도, 부동표를 잡을 수 없으므로 하워드 딘은 예선용에 불과하다는 논리다. 그러나 지금 그런 말을 하는 사람은 없다. 복기 해 보자. 이 상황에서 우리는 이렇게 판단할 수 있다.

‘하워드 딘은 예선용에 불과하다는 그들의 논리는 틀렸다.’

과연 그럴까? 천만에! 그들의 ‘논리’ 그 자체가 틀린 것은 아니다. 사실이지 역대 미국의 대선은 중간파들의 지지를 받는 쪽이 승리하는 경향이 있어왔다. 본질을 두고 논하자면 이론이 틀린 것이 아니라 환경이 변한 것이다.

문제는 그 환경의 변화가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책상물림 먹물들의 시각으로는 알아챌 수 없다는 점이다. 이거 중요하다. 한나라당에 천억 갖다 바친 재벌들이(그들이야말로 우리나라 최고의 두뇌집단이 아니던가?) 노무현의 당선을 예상 못했듯이, 아무리 지식이 넘치고 가방끈이 길어도 절대로 알 수 없는 것이 있다.

그 본질을 포착할 수 있어야 한다.

결론부터 이야기 하자. ‘하워드 딘’이 돌풍을 일으킨 이유는? 간단하다. 하워드 딘의 포지셔닝이 타 후보들과의 전략적 제휴를 통한 합종연횡에 유리한 고지에 있기 때문이다. 고어가 딘과 제휴하고 있듯이 포지셔닝이 선명할수록 제휴에 있어서의 손익계산서가 신속하게 뽑아지는 것이다.

예컨대 리버맨이나 클라크나 이인제나 한화갑들이라면 그 제휴에 있어서의 대차대조표가 잘 뽑아지지 않는다. 실제로 제휴를 했을 때 누가 이익을 보고 손해를 보는지 알 수 없다. 캐릭터에서 겹치는 부분이 있으므로 시너지효과가 불분명하다.

‘하워드 딘’ - 신인, 선명성, 참신성
‘앨 고어’ - 원로, 외교경험, 안정감

딘과 고어는 서로의 약점을 보완해 주는 위치에 있으므로 제휴가 가능하다. 노무현과 고건이 서로의 약점을 보완해주는 것과 같다. 반면 추미애는 노무현과 이미지가 비슷하므로 노무현의 약점을 보완해주지 않는다. 고로 그는 그를 필요로 하는 집단에다 스스로를 팔아넘긴 것이다.

‘추미애’ - 신인, 선명성, 참신성
‘구주류’ - 원로, 썩은경험, 안정감

환상의 복식조가 탄생하고 있다. 이것이 ‘합종연횡의 법칙’이다. 중간에 있는 이인제나 김중권이나 한화갑들은 어중간 해서 어떤 제휴의 조합을 만들어보더라도 손익계산서가 나오지 않는다. 시너지효과가 0에 가깝다. 늘 하는 이야기지만 ‘나와바리의 법칙’ 상 같은 공간에 비슷한 캐릭터 둘 있으면 100프로 찢어진다.

왜 노무현이 성공했는가?
왜 하워드 딘이 성공하고 있는가?

간단하다. 지금까지 이러한 제휴는 정치인들 상호간에만 성립하였다. 결정적으로 정치인과 유권자 사이의 이심전심에 의한 ‘묵시적 제휴’는 물리적으로 가능하지 않았다. 그걸 가능케 만든 것은 인터넷이다.

아는가? 이 거대한 판구조의 지각변동을.

고어가 파트너 리버맨을 배신하면서까지 ‘딘’과 제휴하는 이유가 어디에 있겠는가? 간단하다. 네티즌들이 요구했기 때문이다. 과거라면 이러한 유권자들의 요구는 반영되지 않았다. 유권자들이 자신의 의사를 밝힐 수단을 가지고 있지 못했기 때문이다.

지금은 다르다. 미디어 환경이 변했다. 네티즌들이 단결하여 하나의 목소리를 내고 있으므로 손익계산서 뽑기가 수월해진 것이다. 과거와 같은 정치인들 상호간의 제휴가 아니라, 정치인과 유권자간의 제휴라는 ‘초유’의 일이 벌어진 것이다.

예컨대 이런 거다. 지난번 굿데이가 김병현을 방법하려 했을 때의 일이다. 네티즌들은 사건이 터지자 말자 신속하게 김병현 지지를 선택했다. 과거라면 여론의 향배는 적어도 보름이 지나야 윤곽이 드러나곤 했다. 달라진 것이다.

여기서 네티즌들의 신속한 행동은 단순한 의사표명을 넘어서는 즉 ‘모종의 복선을 깔고 있는’ 공격적이고 적극적인 행동이라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 숨겨진 뭔가가 있다. 조직되지 않았음에도 마치 지휘부가 따로 있는 듯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현상 말이다.  

과거처럼 신문보도를 통해 지식인들의 평론을 지켜보고 난 다음 천천히 자신의 의사를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거의 초단위로 이심전심에 의한 묵시적 담합을 성공시키고 있다. 팬으로서 김병현을 방어하자는 차원이 아니라 독자로서 굿데이를 응징하자는 차원의 고의적인 행동이다.

중요한 사실은 대부분의 지식인들이 이러한 사태진전을 눈치채지 못하고 굿데이를 두둔하거나 중립을 표방하는 등 우왕좌왕 했다는 점이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일까? 유권자들의 성향 자체가 변했기 때문이다.

옛날에는 중도파가 이겼다. 중도파의 포지셔닝이 상대적으로 더 쉽게 유권자와의 심리적 제휴를 성립시켰기 때문이다. 예컨대 닉슨은 월남전을 계속할 것인지 혹은 철수할 것인지 시인도 부인도 않는 방법을 사용하였다. 양쪽 진영이 다 ‘닉슨은 우리편’이라는 착각을 하도록 유도하므로서 당선된 것이다.

부시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이른바 ‘온정적 보수주의’라는 것을 들고 나와서 많은 민주당지지자들을 속여넘기는데 성공했던 것이다. 즉 과거엔 유권자들이 중도파들과 심리적 제휴를 했던 것이며, 이는 오판에 의한 위험을 줄이려는 리스크관리의 한 방법으로 볼 수 있다.

문제는 인터넷이 발달된 지금에 와서는 정보의 개방이 가속화됨과 더불어, 여론이 결집하는 속도가 초 단위로 빨라졌기 때문에 그러한 중간적 선택이 불필요하게 되었다는 점이다. 단적인 예가 노무현대통령의 재신임 소동이다.

재신임선언 직후 거의 대부분의 언론사들과 정당들과 지식인들이 오판을 저질렀다. 그들은 한번씩 찬성과 반대의 결정을 바꾼 것이다. 오직 서프라이즈만이 올바른 판단을 했다. 왜? 또한 밑줄 쫙이다. 그 이유를 분명히 알 필요가 있다.

인터넷이 없던 시대에는 정치인들 상호간에 서로의 단점을 보완하는 제휴는 가능하지만 정치인과 유권자들 간에는 의미있는 정도의 묵시적, 혹은 심리적 제휴가 불가능했다. 왜? 신문에는 항상 찬성과 반대가 50 대 50으로 보도되곤 하기 때문이다.

어떤 이슈이건 간에 한겨레가 찬성이면 조중동은 반대하는 식으로 50 대 50으로 여론이 갈리는 성향이 있다. 이 경우 유권자들은 리스크를 줄이는 방향으로의 중간적 선택을 원한다. 유권자 대 정치인의 묵시적 제휴는 불가능하다. 그러나 달라졌다.

지난해 국민경선 때 광주시민은 위대한 선택을 했다. 그때 광주시민이 노무현을 지지해주는 댓가로 요구한 반대급부는 무엇이었을까? 광주시민은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았다. 특정한 조건을 내거는 것 보다 ‘우리의 단결한 힘으로 당신을 떨어뜨릴 수도 있고 당선시킬 수 있다'는 사실을 국민 모두에게 인식시키는 일이 더 중요했기 때문이다.

한가지 분명한 것은 광주가 노무현을 선택하지 않았더라면 ‘우리의 단결한 힘으로 정치인을 떨어뜨릴 수도 있고 당선시킬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아무도 알아채지 못한다는 점이다. 이 점 중요하다.

네티즌들이 하워드 딘이 아닌 다른 후보와 제휴할 경우 ‘정치인을 당선시킬 수도 떨어뜨릴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리는데 성공할 수 없다. 그러므로 유권자들은 절대적으로 하워드 딘을 선택한다. 딘을 선택해야만 그러한 사실 그 자체를 알릴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정치인들이 서로 상대방의 단점을 보완해주는 방향으로 짝을 짓는 것과 같다. 노무현은 고건과 짝을 짓고 추미애는 구주류에 자신의 명성을 팔아넘긴다. 자신이 가진 것을 제공하고, 없는 것을 받아내는 것이다.

유권자들도 마찬가지다. ‘유권자의 집단’이 마치 한 명의 정치인인 양 사고하고 행동한다. 유권자집단은 자신이 가진 것을 특정 후보에게 제공하고 후보 또한 가진 것을 유권자에게 제공한다. (이때 제휴가 깨지면 양쪽 다 절름발이가 되므로 팀은 견고하게 유지된다.)

생각하자. 작년 국민경선 때 노무현은 광주시민들에게 무엇을 제공하였던가? 노무현은 광주시민에게 “우리 단결한 광주시민이 마음만 먹으면 특정 정치인들을 살릴 수도 죽일 수도 있다”는 사실을 공표할 기회를 제공한 것이다.

하워드 딘을 지지하는 유권자집단도 마찬가지다. 그들은 ‘정치인의 목숨은 이 손안에 있소이다’를 과시하고 싶어한다. 이를 실현시켜줄 후보와 제휴를 시도하는 것이며 이는 과거 대통령후보와 부통령후보가 서로의 단점을 보완하는 형태로 러닝메이트를 결성하는 것과 본질에서 같다.

그러므로 앞으로의 선거에서는 유권자와 정치인 간에 서로의 단점을 보완하는 형태로 포지셔닝을 설정한 후보에게 절대 유리하다. 정치인과 유권자집단이 공생관계로서 서로를 이용한다. (이는 명백히 의도를 감춘 것으로서 맹목적 지지와는 다르다.)

그것은 무엇인가? 이념이다. 인터넷 때문에 새로운 이념의 시대가 열리고 있다. 중도파의 겨울이 시작된 것이다. 이념적 양극화 현상은 갈수록 심해질 것이다. 이념정당으로 가지 않으면 다죽는 시대가 오고 있다. 어쩔 것인가?

정리하자.
딘이 승리하고 있는 이유는?

1) 결집된 네티즌들이 마치 한 사람의 독립된 인격체인 양 움직하는 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2) 딘은 장단점이 분명하다는 점에서 타 정치인 및 정치세력과의 제휴에 유리한 포지션을 점하고 있다.

3) 인터넷이 정치인들 상호간 뿐 아니라 정치인과 유권자들 사이에 있어서도 그러한 제휴를 가능하게 한다.

4) 그러한 환경의 변화를 평소 인터넷에 관심이 많은 고어가 눈치 채 버렸다.

혼자서 다먹는 ‘제왕적 보스’의 시대는 지났다. 서로의 단점을 보완하는 제휴의 시대이다. 이때 제휴의 양 당사자는 서로 상대방의 약점을 틀어쥐고 있으려고 한다. 단점이 없는 두루 무난한 후보 보다는 눈에 띄는 결점이 있더라도 한가지 장점을 가진 후보가 유리한 시대이다.

그렇다면.. 이회창들의 시대는 끝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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