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조론에 흥미를 느끼려면 뇌가 반응해야 한다. 호르몬이 나오고 쾌감을 느끼고 그 때문에 밤잠을 설쳐야 한다. 구조론을 배운 사람의 공통점은 말이 많아지고 자신감을 얻는 것이다. 세상이 만만하게 보인다. 호연지기를 얻는다. 이 바닥은 내가 주름잡고 있다는 통쾌한 느낌이 있다. 단점은 구조론을 모르는 일반인과 대화가 안 되고 그들을 얕잡아보게 된다는 것이다. 내 눈에 보이는 것이 그 사람들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하니 그 사람들이 멍청해 보이는 것이다. 개별적인 사실을 아는 것은 의미가 없고 원리를 알아야 한다. 원리를 알면 구조를 보는 눈을 얻는다. 그냥 척 봐도 구조가 훤히 보인다. 척 하면 삼천리로 다음 수가 보이고 그다음 수가 보인다. 중요한 것은 사람들이 애초에 구조를 보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왜냐하면 그것을 표현하는 언어가 없기 때문이다. 원인도 이름이 있고 결과도 이름이 있는데 그 둘을 합친 전체는 이름이 없다. 주체도 있고 객체도 있는데 둘을 합친 전체는 이름이 없다. 공격도 있고 수비도 있는데 둘을 합친 전체는 축구라는 이름이 없다면? 우리 축구하자! 이러면 되는데 공 가지고 공격이나 수비 할래? 이러고 있으니. 머리도 있고 꼬리도 있는데 몸통은 이름이 없는게 인류 문명의 약점이다. 이름이 없으면 그것을 보지 않게 된다. 축구를 봐도 즐길 줄 아는 사람은 감독의 전술구사와 작전지시를 본다. 그냥 눈으로 공만 쫒는 것보다 훨씬 찰지게 경기를 보게 된다. 축구경기를 중계하는데 해설자가 감독이 무슨 포메이션 전술을 쓰고 있다고 말해주지 않으면 답답할 것이다. 아는 사람은 다른 사람이 두는 바둑을 어깨너머로 봐도 어떤 전술을 쓰는지 보이는 법이다. 스타크래프트를 봐도 어떤 전술을 쓰는지 알 수 있다. 다음에 어떻게 전개될지 예상된다. 색맹이 특수안경을 쓰면 컬러를 볼 수 있다. 흑백TV만 보다가 칼라TV로 바뀌면 느낌이 다른 것이다. 구조론을 배웠는데도 구조가 보이지 않고 답답증이 해소되지 않고 여전히 세상이 흑백으로 보인다면 구조론을 배우지 않은 것이다. 필자가 구조론을 적용하여 해설해준 결론 부분을 단순히 학습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윤석열이 망한다고 하면 그냥 망하는구나 하는건 의미가 없다. 다른 분야에 응용할 수 있어야 한다. 영화를 봐도 보통사람은 재미와 감동과 교훈과 주제의식과 배우의 연기에 매달리지만 나는 감독의 의도, 미학, 스타일, 컨셉, 연출력에 중점을 두고 본다. 서로 다른 지점을 보고 있다는 거. 같은 것을 봐도 더 많은 것을 보고 더 많이 떠들 수 있다. 구조론을 알면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된다. 인격이 바뀌고 호르몬이 바뀌고 뇌구조가 바뀐다. 운동선수가 나중에 감독이 되면 생각이 바뀐다. 자신이 감독이 되고 난 다음에도 여전히 감독을 잔소리나 늘어놓는 꼰대라고 생각하겠는가? 선수 시절에 놓친 부분을 감독이 되어 깨닫는다. 원시 부족민이 세상을 바라보는 두려움 가득 찬 시선과 과학자가 세상을 바라보는 자신만만한 시선은 다른 것이다. 왠지 복종하고 싶고 의존하고 싶고 숭배하고 싶은 부족민의 동물적 본능은 호르몬 때문이다. 세상 앞에서 갑이냐, 을이냐의 포지션에 따라서 호르몬이 바뀌는 것이다. 엘리트와 소인배는 세상을 대하는 자세가 다르다. 선교사가 부족민에게 세례를 베풀면 하루 만에 눈빛이 바뀐다. 우리 어렸을 때만 해도 사진을 찍으면 다들 띨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할아버지 세대는 더했다. 구한말이나 일제강점기나 625 때의 피난민 사진을 보라. 주눅 들어 있다. 요즘 꼬맹이들은 당당한 표정을 짓고 있다. 특이하게 호랑이 잡는 포수들은 여러 사진에서 공통적으로 당당한 표정을 짓고 있다. 같은 조선시대나 일제강점기 사진들인데 말이다. 영화 대호에서 최민식의 썩은 표정과는 다르다. 그런 표정으로는 기싸움에서 호랑이를 이길 수 없다. 어렸을 때 눈칫밥만 먹고 자란 사람과 대접받고 자란 사람의 세상을 보는 시선이 같을 수는 없다. 한무제 시절 노예로 태어나 누나 덕에 장군이 된 위청과 황족으로 태어난 곽거병의 차이다. 같은 황족 출신 장군이지만 소년기를 어떻게 보냈느냐에 따라 뿜어내는 아우라가 다르다. 소인배는 보이지 않는 어떤 힘에 짓눌려 기가 죽어 있다. 백만 명의 적군이 일제히 함성을 지르며 파도처럼 밀려와도 미동도 하지 않는 장수의 눈빛을 얻어야 한다. 영화 한산을 본 사람은 감독이 그런 부분을 어떻게 묘사했는지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주눅이 드는 데는 이유가 있다. 나는 하나인데 상대는 여럿이기 때문이다. 여럿이 보이지 않는 사슬로 연결되어 세력을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그 고리를 끊으면 된다. 반대로 내가 세력을 이루고 맞서면 된다. 천지인이라 하지만 인지천이다. 사람 사이에 의리를 두텁게 하면 인화다. 지형지물을 잘 이용하면 지리다. 타이밍을 잘 잡으면 천시다. 우리는 먼저 의리를 두텁게 하고, 다음 미일중러 사이에서 적절히 균형을 유지하며, 타이밍을 기다리면 된다. 구조론으로 보면 질, 입자, 힘, 운동, 량이다. 생산력이 질, 인화가 입자, 지리가 힘, 천시가 운동이다. 사실이지 생산력이 없으면 만사휴의다. 아프리카 나라는 생산력이 없어서 원래 안 된다. 생산력이 된다는 전제하에 인화로 사람을 기르고 지리로 주변과의 역학관계를 이용하며 천시로 치고 빠질 타이밍을 노리는 것이다. 국힘당은 사람이 없어서 안 된다. 윤석열은 안되니까 외주를 준 것이다. 그런 꼼수가 오래 못 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