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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22]chow
read 2222 vote 0 2022.06.06 (03:21:06)

인간: 인지(99), 판단(1)

까마귀: 인지(99), 판단(1)

알파고: 인지(1), 판단(99)


인간이 대상을 인지하고 판단할 때, 두뇌의 연산력은 99%로 인지에 집중되어 있다. 반대로 판단에는 1%도 사용하지 않는다. 가령 인간이 알 수 없는 뭔가를 본다면, 그것이 뭔지 알아채는 순간 판단도 끝난다. 대신 그게 뭔지 알아채는데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 어둠속에서 뭔가가 보이지만 그게 뭔지 헷갈릴 때, 길을 걷다가 누군가를 봤는데 긴가민가할 때, 우리는 그게 뭔지 알아채려면 추가 정보를 요구한다. 


반면 알파고는 대상 인지에 시간이 거의 걸리지 않는다. 알파고가 바둑만 두기 때문이다. 개 눈에 보이는 것은 똥뿐이다. 반면 인간은 볼게 너무나 많다. 밥도 먹어야 하고, 똥도 싸고, 애인도 만나고 하는 등, 뭐가 많다. 알파고와 달리 인간은 맥락이 다양하다는 말이다. 반전영화가 맥락인지의 오류를 사용하는 이유다. 범인이 사람인 맥락을 사용하므로 인간은 눈뜬 장님이 된다. 식스센스나 곡성말이다.


알파고가 푸는 문제는 쉽다. 이세돌은 바둑도 두지만 다른 일도 해야 한다. 물론 바둑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므로 일반인 보다는 바둑에 더 특화되어 있다. 이는 인디언이 낙엽을 100가지로 구분하는 것과 같다. 인디언이 낙엽을 다양하게 인지하는 것은 인디언의 환경이 그만큼 단순하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백인의 침략에 속수무책. 알파고는 무조건 바둑알이다. 


인간은 마시는 게 콜라인지 간장인지, 똥인지 된장인지를 구분해야 한다. 인간은 콜라인지만 확인되면 판단은 바로 마신다가 된다. 왜냐하면 콜라를 마신다의 하위 클래스에 미리 저장을 해두었기 때문이다. 물론 가끔은 콜라를 다른 분류에 넣기도 한다. 콜라병 말이다. 콜라병을 보고 어떤 놈은 그걸 무기로 보고, 다른 놈은 몸매로 본다. 유리공장에 있는 놈은 병 색깔을 고민하기도 할 것이다. 각자의 맥락에 따라 하나를 두고도 다른 것을 보는 것이다. 


인간이 대상의 정보를 인식하고 판단하는 것은 따로 구분되어 있지 않다. 인간은 대상에 대한 정보를 주소 체계 그 자체로 저장한다. 주소가 곧 아이덴티티가 된다. 컴퓨터에 저장된 정보는 폴더 따로 정보 따로인 것과 다르다. 그래서 인간의 정보인식과 저장은 "인상" 그자체다. 인간의 대상 인상은 자신이 포함된 대상에 대한 정보주소다. 


컴퓨터는 주소를 대충 쓰고 내용을 복잡하게 하지만 인간은 주소에 집중하고 내용은 없다. 인간의 인지와 기억은 형식주의다. 형식 그 자체에 모든 내용이 있다. 우체국의 주소체계는 서울특별시 하면서 이어지지만, 인간의 기억은 지난 여름에 내가 가서 월 했었던 어떤 곳이다. 그러므로 인간의 기억은 반드시 연상을 동반한다. 비슷한 갈래를 거치는 다른 기억들과 위치가 겹치기 때문이다.

 

인지에 에너지를 거의 쓰지 않는 알파고는 시뮬레이션에 대부분의 연산력을 투입한다. (물론 알파고도 인지에 조금은 에너지를 사용한다.) 인간은 인지즉시판단행위하지만, 알파고는 인지한 그것을 매우 깊게 시뮬레이션 하고 나서야 액션한다. 


한편 까마귀가 작은 두뇌로도 꽤 훌륭한 지능을 보이는 이유는, 인간에 비해 단순한 환경에 노출되어 있기 때문이다. 일단 눈깔이 작다. 인간 눈알의 해상력이 100이라면 까마귀는 10정도도 안 될듯하다. 입력되는 정보의 절대량이 적다. 겹눈을 사용하는 곤충은 더욱 단순한 인지만 할 것이다. 우리가 보기에 까마귀가 꽤 똑똑하지만, 실제로 까마귀는 많이 보질 못한다. 적은 정보만 처리하므로 작은 두뇌로도 많은 활동이 가능하다. 까마귀가 반짝이는 것에 집착한다는데, 아마 그게 잘 보여서 그럴 것이다. 


새는 날아다니므로 더 다양한 환경에 노출될 것 같지만, 이동성이 보장되므로 오히려 더 단순한 환경에 노출된다. 왜냐하면 자신과 맞는 딱 그 환경만 따라다니니깐. 반면 정주동물은 주어진 환경을 스스로 통제해야 한다. 그래서 내면이 복잡해진다. 인간의 경우 북극이나 남극까지 진출하므로 옷이나 집을 사용하므로 더욱 다양한 환경에 노출된다. 


인간이나 까마귀가 복잡한 문제에 직면한다면, 먼저 대상이 속한 정보체계가 뭔지를 검색하는데 골몰할 것이다. 인간이 어떤 문제에 직면하여 어려움을 겪는 것은 연산이 복잡해서가 아니라, 그게 뭔지를 몰라서 어려워하는 것이다. 정보의 체계를 찾기가 어렵다. 비트코인과 같이 새로운 것이 등장하면 인간은 그것의 정체를 밝히는데 집중한다.


인간의 목적은 다른 인간이지만, 알파고의 목적은 보상이다. 인간의 인지가 어렵다는 것은 곧 인간이 인지에 다른 인간을 사용한다는 말이 된다. 인간은 할 수 있는 것을 하는 동물이다. 할 수 있는 것은 남이 하는 것이다. 친구따라 강남 가는 이유다. 친구가 하므로 나도 할 수 있다. 친구 하는 걸 보고 따라하면 쉽다. 인지가 된다. 하지만 연예인이 한다고 하여 내가 할 수는 없을 것 같다. 그와 나는 성장 환경이 다르기 때문이다.


바둑을 두는 상황에서 인간은 판세의 의미를 매칭하는데 집중하지만, 알파고는 바둑알의 변화를 시뮬레이션 하는데 집중한다. 다만 까마귀는 인간보다 판세가 단순하다는 것이 다르다. 철학하는 인간이 더 우수한 인지력을 보이는 이유는 그가 더 깊은 정보의 분류를 추적하기 때문이다. 대부분 인간이 주변인만 쳐다보는데 말이다. 일단 어떤 문제를 인지하고 나면 세상이 달라보인다. 어떤 인간이 같은 영화를 10번씩 보는 것은 볼 때마다 다른 것을 보기 때문이다. 그것은 단순히 더 다양하게 보는 것이 아니다. 더 깊이 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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