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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조금 악질이다. 해묵은 원한도 잊지 않고 있다가 반드시 앙갚음을 한다.(곧이 곧대로 믿지 마시길.. 말하자면 그렇다는 말이지요. ^^;) 예컨데 이런 식이다.
 

『본심번역기를 작동해 봤더니 .. 본문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포토만평!』

“그러나 만델라가 남아공 대통령직에 오를 가능성은 아직 요원하다. ANC의 일부 소장파는 만델라가 너무 온건하다고 불평이다. 증가일로에 있는 흑인 중산층은 공산주의를 옹호하는 ANC를 외면하고 있다. 또다른 흑인은 ANC와 경쟁관계인 PAC나 인카타자유당을 지지하고 있다. - 리더스 90년 9월호”

‘리더스 다이제스트’라면 1922년에 창간되어 세계 곳곳에서 19개 언어로 매월 2500만부가 팔린다는 유명한 잡지다. 중학교 2학년 때로 기억된다. 하루는 국어선생님이 수업 중에 이 잡지를 소개했다. 여행자가 숲 속에서 곰과 사투를 벌인 이야기, 등반가가 절벽에 떨어졌다가 구조된 이야기 따위를 싣고 있는 중학생이 봐도 좋을 내용의 건전한(?) 잡지란다.

1979년이었던가.. 형의 돈 300원에 내 돈 200원 가량을 보태어 처음으로 이 잡지를 샀던 기억이 있다. 큰형이 보던 권투잡지 ‘월간 펀치라인’과 함께 거의 매달 구독하던 이 잡지를 3년 쯤 보다가 끊은 데는 이유가 있다.

이 잡지는 교묘한 방법으로 미국인들의 가치관을 강요하고 있다. 아프리카민족회의가 공산주의를 옹호하고 있다며 허위사실을 날조하고 있는, 90년 9월의 이 기사도 정치적 색채가 없는 듯이 보이는 이 잡지가 교묘하게 끼워팔기 하고 있는 정치기사 중 하나다.

세계인의 사랑을 받고 있는(?) 리더스 다이제스트가 도무지 무엇이 아쉬워서 치사하게 만델라대통령을 비방하고 있는 것일까? 한가지 분명한 것은 만델라가 대통령에 당선되고 노벨평화상을 수상할 것이라는 사실을 사전에 알았다면 그 건전한(?) 잡지가 이런 식으로 만델라를 비방하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예측력이 없는 리더스 다이제스트 편집진의 우연한 실수일까?

그렇지는 않다. 이 기사가 나간 바로 다음 해에 만델라는 노벨평화상을 수상했고, 4년후 대통령에 당선되고 있기 때문이다. 즉 리더스는 남아공의 민주화를 여렷품히 눈치채고 나름대로 치열하게 저항한 것이다. 2500만 판매부수의 힘으로 인류와 세계의 진보를 바람직하지 않은 방향으로 돌려놓기 위하여.

어쨌든 리더스 다이제스트는 지금도 서점가에 불티나게 팔리고 있다. 악(惡)에 있어서 그들은 유능한 편이다. 조선일보가 그 악의를 잘도 들키고 있는데 비한다면 말이다. 적어도 그들은 교묘하게 속여넘기는데 성공하고 있는 것이다.

엊그제 있었던 한 모임에서 ‘조선일보’의 해로움을 언제부터 눈치챘는지, 또 어떻게 알 수 있었는지에 관한 질문을 받고 생각해 보았다. 20여년전 그 빌어먹을 선우휘칼럼이 하나의 계기가 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이 이야기는 전에도 몇 번 써먹은 일이 있는데 업그레이드버전이 되겠다.)

먼저 임어당의 글귀 하나를 인용하면..

“나는 손문박사를 존경하면서도 유지를 받들 수 없었거니와 정신적 방랑을 억제할 수도 없었지. 나는 육체적인 노력을 싫어했고 정세를 관망한 적도 없었지. 나는 바람이 어느 쪽으로 부는지 조차 분간할수 없었어, 나는 모든 사람들을 즐겁게 할 무슨 말을 한 적도 없고 그렇게 하려고 노력한 적도 없지. 나는 냉정하게 초연하게 외교적으로 정치를 논한 적도 없었거든."

역설적으로 들어야 할 것이다. 그렇게 하지 못했다는 반성이면서 동시에 당연히 그렇게 해야한다는 가르침이 되겠다. 선비라면 정세를 관망해야 하고, 전망을 내놓아야 하고, 바람이 부는 방향 정도는 분간하고 살아야 한다.

선비라면 냉정하고 초연하게, 외교적으로(?) 정치를 비평할 수 있어야 한다. 마땅히 그래야 한다. 그렇게 살아야 한다. 선비라면 그런 일로 밤잠을 설쳐야 한다.

이문열대인과 대담하므로서 새롭게 대인 반열에 오른 황대인(황석영작가)에게도, 또 이 분이 과연 우리가 존경하던 그 분이 맞는지 의심조차 드는 강준만선생께도.. 바람이 부는 방향 정도는 분간하고 사는지 여쭤보고 싶다.

광풍이 지나간 다음에 ‘일이 그렇게 될줄 난들 알았나’하고 변명해봤자 소용없는 것이다. 선비라면 말이다. 선비가 아니라면 몰라도 말이다.

이런 언어를 얻었기에 인용한다.(출처는 까먹었음)

"산에서 사는 사람은 심정적으로는 언제나 산골소년이며 그것은 결코 변하지 않을 것이다. 산에서 사는 사람은 모든 것을 산과 비교하지 않을 수 없다. 산과 비교할 때 돈, 명예, 정치같은 것은 하찮은 걸로 보이기 마련이다. 고향의 산은 내게 내면의 힘, 그리고 아무도 내게서 뺏을 수 없는 독립심을 주었다."

산골소년의 마음으로 남아있기 위해서는 더 고독해져야 한다. 대인이 되면 끝장이다. 거느리는 식솔이 많아지니 어깨가 무거워지고, 행보가 조심스러워지고 급기야는 자신도 모르게 수구가 된 스스로를 발견하게 된다.

다시 조선일보로 돌아가서.. 83년은 한 해는 이산가족찾기로 온 나라가 눈물바다를 이뤘다. 또한 본질을 봐야 한다.(빠짐없이 등장하는 본질타령 ^^;) 전화기의 등장이다. 전화가 없었다면 결코 연출될 수 없는 광경이었다. 70년대만 해도 백색전화니 흑색전화니 해서 사치품에 속하던 전화가 80년대 초에 대량보급 되었던 것이다.

문제는 전화가 대량보급된 사실을 실감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83년의 이산가족 찾기로 실감할 수 있었다는 사실이다. 그때 가장 많이 빈번하게 말해졌던 이야기 하나..

“언니 찾으려고 전화도 내 이름으로 신청하고 전국 전화번호부 다 뒤져봤는데..”

그리고 어떤 일이 일어났는가? 하루는 빌어먹을 선우휘주필이 수요일마다 연재되는 선우휘칼럼에서 이렇게 이야기했던 것이다.

“내 칼럼을 읽고 수요일 아침마다 오장육부가 뒤틀리고 소화가 안되어 밥을 삼키지 못하겠다는 분은 조선일보 안보면 될 것 아닌가.. 내 칼럼 안읽으면 될테니까.. 제발 신문사에 항의전화 좀 하지마라! 항의전화 때문에 수요일 아침만 되면 신문사 업무가 마비되고 있다.”

기억이 불분명 하지만 대략 이런 내용의 칼럼이었다. 요는 그 시점에 전화기가 대량 보급되었으며 그 전화가 하나의 무기(!)가 되었다는 사실이다. 조선일보에 항의하기 위해 독자투고를 열심히 쓰고 있었던 나는 그 기사를 읽고 무릎을 쳤다.

“그렇구나. 신문사에 항의전화 하는 간단한 방법이 있었구나. 이런 엽서 따위야 보내봐야 아무 소용이 없겠지.”

내가 생각한 것을 남도 생각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발견했을 때.. 기쁨이다. 보이지 않는 무수한 독자들과 마음이 하나로 통하여 동지가 된 느낌..

“그래! 나만이 아니구나. 수요칼럼 읽고 오장육부가 뒤집어져서 아침밥을 못먹겠다는 사람이 이 나라에 나 하나뿐인 것은 아니었구나.”

무엇인가? 바람이다. 20년 전에는 전화기였다. 20년 후엔 인터넷이다. 새로운 무기가 우리의 손에 쥐어졌던 것이다. 그렇다면 기쁨이겠다. 빌어먹을 선우휘의 칼럼을 기억하는 것은 그 분노 때문이 아니라 그 기쁨 때문이었다. 나 혼자는 아니었다는 거. 바람의 방향이 바뀌고 있었다는 거.

전열에 서 있어야 한다. 대열의 선두에 선 자 만이 바람이 부는 방향을 알아챌 수 있다. 드물지만 바람의 방향을 분간하는 자가 있다. 빌어먹을 리더스 다이제스트도 바람의 방향이 바뀌고 있다는 사실을 먼저 알아채고 만델라를 깎아내리는 기사를 썼던 것이다.

바람의 방향.. 그것은 구체적인 것이어야 한다. 전화기는 실제로 존재한다. 인터넷 또한 실제로 존재한다. 그 새롭고 구체적인 무언가의 등장이 한 시대의 바람의 방향을 바꿔놓는 것이다.

왜 조선일보냐고? 조선일보.. 바람의 방향이 바뀔 때 마다 그들은 저항해 왔다. 위대한 역사의 진보를 바람직하지 않은 방향으로 돌려놓기 위하여.. 평소에는 진보를 양념으로 끼워넣기도 하고, 합리성을 가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바람의 방향이 바뀌는 시점만 되면 어김없이 드러나는 그 사악한 진면목.

중앙일보나 동아일보의 죄질이 강도나 절도에 비유될 수 있다면 조선일보는 유괴범이다. 어린 아이를 해치기 때문이다. 일이 아직 성사되기도 전에.. 바람이 부는 방향을 바꿔놓으려 하기 때문이다. 어린 싹부터 밟아버리려 하기 때문이다.

이나라의 개혁도 그러하다. 바람의 방향만 제대로 찾아간다면.. 보수신문 한둘 쯤 있어도 상관없다. 그 중 하나가 악질적인 수구라도 큰 문제는 아니다. 문제는 그들이 바람의 방향을 바꿔놓으려 한다는데 있다. 조선일보가 말이다.

반대로.. 조선일보 하나만 깨뜨리는데 성공한다면.. 부는 바람이 방향만 옳게 잡아준다면 그 변화의 속도가 조금 늦어지더라도 무방하다. 아니 조선일보가 바람의 방향을 바꿔놓으려 하고 있다는 사실을 폭로하는데 성공하기만 해도 어쩌면 성공이겠다.

20년전 선우휘 칼럼을 읽고 내가 느낀 것은 조선일보가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의 맨 전열에 서서, 누구 보다 예리한 감각으로 바람의 방향을 감지하면서..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의 상투꼭지를 틀어쥐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쉽다. 어차피 역사는 민중의 몫이다. 잘되던 잘못되던 한국의 운명은 4800만 모두의 책임이다. 내가 나설 일은 아닐 수 있다. 잘못되었다 해서 내게 책임이 돌아오는 일도 아니다. 그런데 왜? 우연인지도 모르지만 그 바람의 방향을 먼저 알아버렸기 때문이다.

인터넷의 역할, 우리 네티즌의 역할이 또한 그러하다. 우리들의 힘이 비록 미약하지만 대열의 선두에 서 있기만 하다면, 부는 바람의 방향 정도는 바꿔놓을 수 있다.

끝으로 방금 메신저로 입수한 유머 하나..예전에 기자들이 김종필씨에게 독서관련해서 DJ와 YS는 어떤 사람인 것 같냐는 식의 질문을 했다 한다. 그에 대한 김종필씨의 견해는 이랬다.

"아마.. 내가 알기에.. YS가 읽은 책의 권수는, DJ가 쓴 책의 권수보다 적으면 적었지, 많지는 않았을거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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