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읽기

저는 날씨를 타는 체질인가 봅니다. 올 여름은 주말마다 비가 와서 주말마다 우울했지요. 이 가을에.. 하늘은 높고 단풍은 곱습니다. 정치판 따위는 잊어버리고, 너럭바위에 누워 여울에 발담그고 떨어지는 낙엽이나 세었으면 싶습니다.  

『박마담이 회춘을 하는구만. 균환이도 10년은 젊어졌어. 뿔뿔이 흩어진 형제가 고향에서 다시 만난 듯 화기애애하오!』

점쟁이가 아닌 이상 앞일이 어떻게 될지는 알 수 없습니다. 한가지 분명한 것은 UN결의로 파병할 확률이 높아진 것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내부적으로 파병여부가 결정되어 있다면 UN결의로 달라진 분위기에 편승하여 발표를 할지도 모르죠. 그러나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면 UN결의가 파병 쪽으로 압력을 넣지는 않습니다.

 가장 큰 오판은 파병의 목적에 있습니다. 전에도 말했지만 이라크는 절대로 제 2의 베트남이 아닙니다. 베트남이 지옥이라면 이라크는 천국입니다. 상대적으로 안정되어 있습니다. 국군이 가지 않아도 아무 탈이 없습니다. 또한 본질을 봐야 합니다.

본질은 이라크가 아니라 부시의 재선여부입니다. 외교등신으로 재선에 암운이 드리워진 부시가 국군이 파병할 것처럼 연출해서, UN의 항복을 받아낸 것입니다. 부시는 체면을 세웠으니 목적을 달성한거죠. 노무현은 립서비스로 성의를 보여줬으니 그만하면 거래조건이 지켜진 셈입니다.

여기에 몸으로 때우는 파병까지 더한다면 명백한 우리측의 손실이죠. 밑지는 장사를 왜합니까? 결론적으로 윤영관, 한승주 등의 파병분위기조성은 부시의 대UN 압박카드에 협조하기였다는 말입니다. UN이 항복해버린 지금 부시 입장에서 과연 국군의 파병이 절실할까요?

이라크의 치안은 이라크인의 손으로 지키는 것이 좋습니다. 절도범이 설치고 후세인잔당이 날뛰는 것이 문제의 본질은 아닙니다. 본질은 수니파와 시아파의 대결, 또 시아파 내부에서 친미파와 친이란파의 알력 이 두가지입니다.

지금 이라크는 해방직후의 한국과 유사합니다. 자기네들끼리 한바탕 붙어서 이라크 내부의 전쟁에네르기를 어느 정도의 소진시켜 줘야 새질서의 가닥을 잡을 수 있습니다. 이러한 근본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오히려 외국군이 뒤로 빠져주는 것이 좋습니다.

결론적으로 UN결의 덕분에 오히려 국군은 파병을 안하거나, 파병해도 전투병은 안보내도 되는 분위기로 가고 있습니다. 정치를 반드시 전략으로 하는 것은 물론 아니지만, 전략만 가지고 논한다면 내년 선거때 까지 파병카드를 손바닥에 감추고 가야 합니다.  

또 삼국지 나오는군요. 16로 제후군이 다 동탁을 치러간 것이 아닙니다. 물론 동탁을 치는 일도 중요하지만, 한편으로는 동탁을 치고 한(漢)을 삼키려는 넘을 감시하고 견제하러 간 것입니다. 예컨대 조조가 동탁을 제거하고 한을 몽땅 삼키려 든다면 개평이라도 뜯어보겠다 이거지요.

명분과 실리 둘 중 하나만으로는 결코 움직이지 않습니다. UN결의의 만장일치 통과는 미국이 UN을 따돌리고 국군과 터키군을 끌여들여 이라크를 독식하지 못하도록 감시하고 견제하겠다는 거죠. 이건 역으로 국군이 UN의 견제 및 감시대상이라는 이야기입니다.

그렇다면 이제부터는 체력전입니다. 고수라면 이 상황에서는 패를 까지 않고 끝까지 인내하고 기다립니다. 상대가 먼저 지쳐서 나가떨어질 때 까지. 기다리면 반드시 수가 납니다.

지금은 정국을 좀 크게 봐야 합니다. 중국이 유인우주선 발사에 성공했는데 강택민이 그 현장에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물론 후진타오측의 견제 때문이죠. 양리웨이와의 첫 교신을 누가 하느냐가 관심사였는데 극심한 눈치보기 끝에 후진타오도 강택민도 아닌 제 3자가 했습니다.

이걸로 확인된 것은 김정일은 강력한 후원자를 잃었다는 사실입니다. 그렇다면 신의주에서 양빈이 쫓겨난 것도 후진타오 작품으로 볼 수 있습니다. 이 사실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인가? 김정일이 앞을 내다보는 안목이 눈꼽만큼이라도 있다면 지금 움직여서 뭔가를 보여줘야 한다는 거죠.

하긴 김정일 저 등신에게 뭘 기대하겠느냐마는 타이밍으로 본다면 뭔가 움직임을 보여줄 때가 되었습니다. 어떻게 알 수 있느냐? 게임의 법칙 상 누구나 자신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움직입니다. 김정일이 움직이려면 지금 움직여야 본인에게 유리하다는 거죠. 후진타오에게 찍혀서 완전히 개털되기 전에 말입니다.

가만 앉아서 노무현의 몸값이 올라가는 겁니다. 부시에게도, 후진타오에게도, 김정일에게도 필요한 인물이 된거죠. 이런 때는 클린턴도 부르고, 만델라도 부르고, 코피 아난도 부르고, 카터도 부르고, DJ도 무대 앞으로 모셔오고 해서 뭔가 국제적으로 크게 판을 벌여야 하는 타이밍입니다.

파병이든 뭐든 간에 어떤 결정을 할 타이밍은 절대로 아닙니다. 이것도 체력전입니다. 지지도에 쫓기고, 조중동 공갈에 쫓기고, 정치일정에 쫓기고, 스트레스를 감당하지 못하여 조급하게 결정을 내리다간 실패합니다. 물론 노무현은 그럴 하수가 아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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