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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ad 13512 vote 0 2003.10.09 (19:05:28)

얼마전 ‘광해군의 실리외교를 본받자’는 내용의 파병반대 글이 많이 올라왔는데, 필자는 ‘광해군처럼 되지 말자’는 뜻으로 파병반대 의견을 개진한 바 있다. 결론은 같은데 논리전개가 정반대라면 그것도 재미가 있다.

『노무현 하는 방식이 이 황소를 닮았구려! 콧김 빵빵하게 넣고 돌진..!』

고도의삽질님은 학봉 김성일의 ‘전략적 사고’를 파병반대의 논거로 삼고 있지만, 필자는 김성일의 결과적 실패를 들어 파병반대의 논거로 삼고자 한다. 김성일의 독단적 행동은 현실을 모르는 책상물림들이 탁상행정식으로 잔머리 굴리다가 국가대사를 그르친 예로 엄중히 비판되어야 한다.

나는 오래전부터 ‘지식인은 결과에 책임져야 한다’고 말해왔다. 과정도 물론 중요하지만 결과 역시 중요하다. 의도는 좋았는데 결과가 나빴다는 식의 태도는 전략을 모르는 하수의 변명에 불과하다. 결과적으로 실패했을 경우 과정 역시 잘못된 경우가 더 많다.  

생각하라! 집에 불이 났다. 두가지 방법이 있다.

1) 불이 난 사실을 비밀에 붙이고 혼자서 불을 끈다. 왜? 가족들이 놀라서 허둥지둥 하면 오히려 화재를 진압하는데 방해가 되니깐.

2) 더 크게 불을 질러 버린다. 왜? 그 연기를 보고 동네사람들이 모두 달려와서 불을 꺼줄 테니깐.

어느 쪽이 더 정답에 가까울까? 1)번은 현실을 모르는 하수의 잔머리다. 이런 식의 안이한 대응이 화재를 더 크게 만든다. 작은불이 큰불 되어 자기집 뿐 아니라 이웃집까지 홀랑 태운다. 대구 지하철 참사도 이런 식의 ‘내 선에서 막겠다’는 안이한 태도가 불러온 비극일 수 있다.

‘전략적 사고’란 무엇인가? 항상 두가지 이상의 대비책을 가지는 것이다. 최소한 두개의 카드는 손바닥에 숨겨놓고 있어야 게임이 된다. 위 1)번의 경우를 보자. 화재를 비밀에 붙이고 혼자서 독단적으로 해결한다? 그 방법으로 잘 되면 좋지만 실패했을 경우엔 대책이 없다.

승부사라면 어떤 경우에도 둘 이상의 카드를 숨겨놓고 있어야 한다. 대구지하철에 화재가 났다. 승객들에겐 비밀로 하고 기관사 혼자 ‘내 선에서 막겠다’며 소화기 들고 설치다가 더 크게 불을 낸 것이다. 이 경우 무조건하고 비상벨 부터 누르는 것이 공식이다. 승객들이 우르르 쏟아나와 아비규환이 되겠지만 그래도 그렇게 하는 것이 맞다.

군사정보를 독점하며 강홍립에게 비밀지령을 내린 광해군의 비밀주의나 학봉의 독단적 행동은 전형적으로 현실을 모르는 먹물의 잔머리다. 화재가 난 사실을 승객들에게 알리지 않고 기관사 혼자 소화기 들고 설친 거다. 국가대사에서 이런 식의 독단은 치명적이다.

게임은 절대 한번의 배팅으로 끝나지 않는다. 제 1파가 지나가고 난 다음에는 반드시 제 2파가 따라오는 법이다. 임진왜란 다음에 정유재란이 일어나며, 정묘호란 다음에 병자호란이 일어난다. 그러므로 승부사는 제 1파에 대응하면서 동시에 제 2파에 대비해야 하는 것이며, 그 방법은 문제를 축소, 은폐하는 것이 아니라 더욱 확대, 공개하는 것이다.

더 크게 불을 질러버려야(이건 비유임, 말이 그렇다는 거지 실제로 불을 지르면 안되겠죠) 동네 사람들이 모두 다 달려와서 불을 꺼준다. 혼자서 끙끙 앓지 말고 역으로 개인의 문제를 천하의 문제로 만들어버려야 한다.

너죽고 나죽고 다죽는다는 분위기로 비장하게 가야 비로소 인간들이 정신을 차리고 냉정하게 대처하는 법이다. 초기단계에서 우왕좌왕 하는 시행착오를 겁내서 안된다. 혼란은 일시적이다. 곧 사태는 진정되고 국민은 일치단결하여 저항하게 된다.

그러므로 사즉생이다. 탈출구를 다 막아놓아야 한다. 노무현이 신당을 만든 것도 어떻게 적당히 피신하고 도망가 보려는 탈출구를 모조리 막아버린 것이다. 그렇다. 노무현의 얼치기 신당놀음 때문에 개혁세력, 진보세력, 평화세력, 민노당까지 다죽게 생겼다.

이건 재앙이다. 절망적이다. 천만에! 이 정도로는 부족하다. 민주당이고 신당이고 민노당이고 싸그리로 다죽게 만들어놓아야 한다. 그냥 다죽는 것이 아니고 아주 빤쓰까지 홀딱 벗겨놔야 한다. 그래야지만 하늘이 감동하는 것이며 그제서야 인간들이 그나마 약간 움직여준다.

정치는 배짱싸움이다. 니죽고 나죽고 다죽게 만들지 않으면 이길 수 없다. 승부사는 적군과 아군이 동시에 극도로 스트레스를 받게끔 상황을 몰아간다. 이 경우 조금이라도 더 젊은 쪽이, 조금이라도 더 냉정한 쪽이, 조금이라도 더 이성적으로 움직이는 쪽이 승리하게 되어 있다.

지금 구주류들이 감정적 언사로 나오고 있다는 것은 그들이 극도의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는 증거다. 물론 스트레스는 노빠들도 같이 받고 있다. 둘 다 스트레스를 받는다면 누가 이길까? 감정적으로 행동하는 쪽이 백전백패한다.

구주류들이 욕으로 도배하는거, 딴나라 알바들이 개구리니 쭈그리니 하며 욕으로 도배하는거 알고보면 그게 다 비명소리다. 스트레스 받고, 쫄고, 겁먹어서 울부짖는 거다. 그러니 욕 밖에 나오는 것이 없다. 우리라고 스트레스 안받는건 아니다. 그러나 우리는 호랑이에 물려가도 정신을 차리고 있다. 그러니 한글날 앞에 언어가 순하다.

파병문제 역시 배짱싸움이다. 재선에 쫓기는 부시와 파병압력에 쫓기는 노무현 중 누가 더 스트레스를 받느냐로 승부가 결정된다. 언뜻보면 노무현이 쫓기는 거 같지만 실제로는 그 반대다. 지금 안달나서 방방 뜨는 사람은 조중동울 위시한 친미파들 뿐이다.

노무현대통령의 본심은 파병반대이며 지금 파병 안하고 넘어갈 방법을 찾고 있다고 박주현수석이 다 폭로해버렸다. 그래서 우리는 여전히 느긋하다.

다시 조선시대로 돌아가서.. 광해군은 실리외교를 할 것이 아니라 명분외교를 했어야 했다. 백성을 전쟁의 불바다로 끌여들여야 했다. 재앙이라는 말 나오게 만들어야 했다. 군주라면 배짱이 그 정도는 되어야 한다. 그래야만 백성들이 죽기살기로 분발해준다.

막말로 우리에겐 조총이 있었는데 겁날게 뭐야? 물론 청나라 기마군단에 한번은 깨지겠지만 두 번째와 세 번째의 배팅 기회가 반드시 오는 법이다. 냉정하게 기다렸다가 기회를 엿보아 조총부대로 반격하면 역전승을 얻을 수 있었다.

정치의 세계는 냉엄하다. 어차피 한번은 져야 하는 경우가 있다. 병자호란이나 임진왜란이나 잠시 유예할 수는 있을지 몰라도, 본질에서 전쟁 그 자체는 결코 피할 수 없다. 어차피 한번은 겪어야 할 전쟁이라면, 매도 먼저 맞는 것이 낫다.

김성일의 실패 또한 현실을 모르는 선비가 거짓말에, 비밀주의에, 독단으로 재앙을 부른 경우다. 그게 다 임기응변으로 순간만 모면하려는 송두율이 닭짓이다. 학봉이 진실을 털어놓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물론 민심이 뒤숭숭해져 내란이 일어나고 선조임금이 쫓겨났을 수도 있다. 조선왕조는 거기서 막을 내리고 새로운 왕조가 탄생되었을지도 모른다.

김성일의 돌출행동이 정권안보나, 당파안보 차원의 책략은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역사와 민족의 앞날을 내다보고, 천명을 따르는 차원에서의 진짜 전략은 그게 아니다. 광해군의 책략 역시 정권안보 차원의 저급한 술책이었다.

져줄 게임은 져주고 이길 게임을 잡는 것이 전략이다. 무조건 이기는 전략은 없다. 작년이라면 지자체선거에서 져야지만 대선에서 이기는 구조였다. 경제학에 잠재성장률이 있듯이 정치에는 잠재지지율이 있다. 그걸 까먹으면 거위 황금알 꺼내기가 되어 오픈게임에 이기고 본게임에 진다.

그러므로 슈워제네거의 주지사 당선은 부시의 재선에 암초가 될 수 있다. 정치판에는 비슷한 캐릭터 가진 사람이 둘이면 한쪽이 손해보게 된다. 그래서 러닝메이트를 정할 때는 자신과 반대되는 캐릭터를 가진 사람으로 결정하는 것이 공식이다.

대통령이 젊으면 부통령은 연륜있는 사람으로, 대통령이 동부 출신이면 부통령은 서부 출신으로 정하는 것이 맞다. 클린턴이 고어를 선택한 것은 이 공식에 어긋난다. 고어가 물 먹은 것이 그 때문이다. 근육맨 당선은 부시의 감표요인이다. 민주당 아성에 공화당을 당선시켜 놓았으니 민주당 지지자들 전의에 불을 붙인 셈이다. 오기로라도 공화당 안찍는다.

정치는 배짱이다. 학봉의 허위보고는 왜의 침공을 사실대로 보고했을 경우 일어날 혼란을 겁낸 겁쟁이 먹물의 닭짓이다. 광해군의 소극적 대응 역시 조선군 조총부대로 하여금 전투경험을 쌓게 할 기회를 날려버린 비겁자의 궁여지책이다.

알아야 한다. 어떤 경우라도 진실이 최고의 무기다. 곧 죽어도 백성을 믿고 과감하게 큰 길로 가야 한다. 이참에 부시와 한판 뜨는 것이 100년 앞을 내다보고 민족사의 등불을 켜는 일이다.  


천하삼분? NO
기어이 천하가 삼분되었다. 착각해서 안된다. 천하삼분은 판갈이를 목적으로 한 잠정적 조치에 불과하다. 절대 이대로 판이 굳어지지 않는다. 천하를 셋으로 쪼개서 솥발같이 균형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실은 판을 갈아서 카이사르처럼 천하를 다먹자는 거다.

제갈량의 계책으로 천하가 삼분된 것이 아니라 유비는 서쪽으로, 손권은 남쪽으로, 조조는 북쪽으로 각각 전진하여 천하의 파이를 세배로 키운 것이다.  

세발솥이 자빠질 때는 완전히 자빠진다. 즉 3에서 한쪽 축이 붕괴되면 2로 가는 것이 아니라 곧바로 1로 가는 것이다. 카이사르의 3두정치는 천하를 3분한 것이 아니라 천하를 세배로 늘려놓은 것이다. 비유하자면 판돈을 세배로 올린 것이다. 이건 다먹자는 거다.

요즘 패러다임의 변화를 강조하는 의견이 많다. 패러다임이 뭔가? 노무현정권의 의미는 좌우를 넘는 민중세력의 대두를 의미한다. 민중의 속성은 한쪽으로 쏠리기 잘한다는 거다. 돌아가는 판에 민중이 끼어들면 다먹어버리는 수가 있다. 판갈이가 패러다임이다.

80년대라면 좌는 지식인 모임이요 우는 기득권들 모임이다. 재벌이든 군인이든 관료든 출세한 자는 우가 되었고 지식인들은 좌가 되었다. 거기에 민중의 설 자리는 없었다. 땅 사놓은 자는 우가 되었고 먹물든 자는 좌가 되었다. 거기에 민중이 끼어들 여지는 없었다.

개혁! 카이사르에게 있어서 개혁은 로마인을 위한 로마에서, 세계의 로마로 ‘로마의 개념'을 바꿔놓은 것이다. 이는 일정부분 로마의 희생을 필요로 한다. 무식하기 짝이 없는 게르만족이 시민권 얻어서 로마시내에 활개치고 돌아다닌다. 이런 사태를 기득권 가진 로마시민이 용납할 수 있나?

원로원파고 민회파고 양쪽 다 기득권이다. 기득권의 저항을 유도한 다음 그걸 빌미로 삼아 반격하여 천하를 다먹자는 거다.

천하가 2분되어 있다면 어느 한쪽이 몰락해도 다른 세력이 끼어들어 빈자리를 메꾸기 마련이다. 그러나 천하가 3분될 경우, 그 돌아가는 판에 민중이 끼어들어 천하가 세배로 커지게 되며, 이 민중들은 원래 서로 코드가 안맞기 때문에 우왕좌왕 하다가 그 혼란에 염증이 느껴지는 시점에 어느 한쪽으로 왕창 쏠려버린다. 천하를 다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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