엊그제 미리 써둔 주말용 심심풀이 글입니다. 감사원장 임명동의안 부결로 격앙된 서프민심에 생뚱맞은 글이 되지 않을까 싶어 글등록을 망설이다가, 걍 올립니다. 좋은 주말 되시기 바랍니다.
『꿩은 매가 잡고, 도둑고양이는 독수리가 잡고, '한/민/자'연대는 성난 민심이 잡는다!』 |
곽봉효(郭奉孝)의 십승십패(十勝十敗)
당시만 해도 원소는 강하고 조조는 약했다. 결전을 앞두고 의기소침해진 조조를 위로한답시고 모사 '곽가'가 열번 싸워서 열번 모두 조조가 승리한다는 십승십패론을 내놓았다.
"항우는 자신의 강함만 믿고 힘을 과시하다가 패하였고 유방은 지략을 써서 이길 수 있었습니다. 원소 또한 강함에만 의지하고 있으므로 열 번 싸워 모두 패하게 될 것입니다.
첫째 원소는 번거로운 예절과 복잡한 의식을 좋아합니다. 이에 비해 공(조조)은 실속만 차리고 나머지는 자연스러움에 맡기니 이는 도(道)에서 이기는 것입니다. - 노무현에게 예절과 권위를 요구하는 김민웅식 발상은 노무현더러 원소가 되라는 말이나 진배없다.
둘째 원소는 역(逆)으로 움직이는데, 공은 순리를 따르니 이는 의(義)로써 이기는 것입니다. - 구주류는 노무현을 선출한 민의를 거슬러 역(逆)으로 움직이고 있고, 신주류는 순리를 따르고 있다.
세째 원소는 관대함 만으로 다스리려 하지만, 공은 엄함으로 임하고 있으니 이는 치(治)에서 이기는 것입니다. - 관대함으로 구주류를 포용하면 단기적으로 지지율을 올릴 수 있으나, 이는 치(治)를 그르치는 일이 되므로 나중에는 아무도 복종하지 않게 된다.
네째 원소는 겉으로 관대한 듯하나, 속으로는 시기하는 마음이 있어 사람을 부리는데 친인척만 쓰고 있습니다. 공은 오직 재능을 살필 뿐이니 이는 도(度)에서 이기는 것입니다. - 추미애들 관점에서 보면 노무현은 냉정하고 야박한 사람이다.
다섯째 원소는 도모하는 일은 많으나 끝맺는 일이 적습니다. 그러나 공은 계책을 얻으면 쉽게 행하니 이는 모(謀)에서 이기는 것입니다." - 지지율은 떨어졌지만 향후 발목잡을 일이 없어져서 운신이 편해졌다. 이렇게 하나씩 깨나가는 것이다.
여섯째 원소는 명예만을 얻으려 하는데 반해, 공은 지성으로 사람을 대하니 이는 덕(德)에서 이기는 것입니다. - 명예를 탐하는 사람은 김수환추기경 같은 자칭 국가원로, 혹은 외국의 저명인사나 만나서 사진이나 찍고 다닌다.
일곱째 원소는 가까이 있는 있는 사람은 구하려 하지만, 멀리 있는 사람은 소홀히 여깁니다. 이에 비해 공은 모든 사람을 두루 생각하니 이는 인(仁)에서 이기는 것입니다. - 노무현이 열심히 토론하는 것은 그러한 대화과정에서 사람을 얻자는 것이다. 길게 보고 씨를 뿌리는 것이다.
여덟째 원소는 참소하는 말을 들으면 의심하고 혼란스러워 하지만, 공은 깊이 헤아려 행하시니 이는 명(明)에서 이기는 것입니다. - 어떤 고언도 참고만 할 뿐 자기 판단을 특정인에게 위임하거나 대리하게 하지 않는다.
아홉째 원소는 시비(是非)를 혼동하는데, 공은 법도를 엄하고 밝게 하니 이는 문(文)에서 이기는 것입니다. - 노무현이 얻으려 하는 시스템정치가 곧 법도이고 문(文)이다.
열번째 원소는 허세만을 좋아하여 병법의 요체를 알지 못하는데, 공은 적은 군사로 많은 군사를 이기며 군대를 부리는 것이 마치 귀신 같으니 이는 무(武)에서 이기는 것입니다. - 정치의 병법은 전쟁의 그것과 다르다. 정치는 적을 깨부수는 시합이 아니라 유권자를 자기편으로 끌어들이는 즉 겸손의 경쟁이다.
DJ와 노무현 무엇이 다른가?
DJ의 경우 상대방을 끝까지 설득하여 논리로 제압해버린다. 이때 상대방은 면전에서는 논리가 궁하므로 일단 DJ의 말에 수긍하지만 내심으로는 잘 승복하지 않는다.
DJ : “내 말이 옳고 네 말은 틀렸다. 나를 따르라.”
노무현은 상대를 설득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의 주장을 존중은 하되 이를 수용하지 않고 일단 기각해 버린다.
노무현 : “당신 말도 일리가 있지만 나는 이 길로 간다”
고언하는 사람은 대개 요구조건을 들고 온다. 그 요구는 일단 거부되지만, 노무현은 이를 기억했다가 훗날 유사한 사건의 해결에서 그 고언하는 사람의 발언취지를 충분히 반영한다.
김용옥식의 ‘당장 새만금 중단하라’는 윽박지르기 요구사항은 일단 거부되지만, 장기적으로 노무현은 그 고언들을 기억하고 있다가 이를 충분히 반영하고 있다.
DJ는 상대방을 설득하여 논리로 항복을 받아내는 대신 요구조건을 상당부분 들어준다. 국민의 정부 5년간 청와대를 방문한 사람은 다들 뭔가 하나씩은 얻어서 돌아갔다. 밥만 먹고 빈손으로 돌아간 사람은 없었다.
군자와 소인배의 차이
사람의 그릇 크기를 한 눈에 알아보는 방법이 있다. 자기 보다 밑에 있는 사람을 발굴해서 키워주려는 사람은 그릇이 큰 사람이고, 자기 보다 위에 있는 사람을 찾아다니며 광을 내는 사람은 소인배다.
김용옥이 소인배인 이유는 항상 자기보다 유명한 사람만 찾아다니기 때문이다. 최병열들이 미국가서 하는 짓도 마찬가지다. 노무현은 반대이다. 노무현 덕에 유명해진 사람 많다.
큰 인물이 자기보다 밑에 사람을 키워주려는 이유는 첫째 자신의 뜻을 계승하게 하기 위함이고, 둘째 사람 보는 안목을 기르기 위해서이다. 사람을 키워봐야 될 사람과 안될사람을 가려내는 눈을 얻을 수 있다.
노무현의 토론공화국
상대방을 설득하려는 목적으로 토론한다면 하수다. 인터넷에서 수도 없이 많은 토론이 있어왔지만 토론으로 설득된 사람 아직 한 명도 없다.
자신의 생각을 알리기 위한 목적으로 토론한다면 중수다. 노무현이 검사들과 토론하였듯이 자신의 의중을 알리고 다중의 이해를 구할 목적으로 토론할 수도 있지만, 실제로는 이런 식으로 재미본 경우는 많지 않다. 대부분의 경우 토론을 할수록 50 대 50으로 팽팽해져 버린다.
고수는 따로 있다. 진짜라면 토론을 통하여 인재를 발탁하고, 그러한 접촉을 통하여 타인으로 하여금 자신에게 다가올 기회를 주는 것이다. 노무현이 지방을 순회하며 토론하는 이유 또한 거기에 있다. 눈앞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토론하는 것은 아니라, 최소 5년 앞을 바라보고 포석을 둔다는 의미에서 토론하는 것이다.
문제는 시스템이다.
곽가의 십승십패 중 아홉째 ‘원소는 시비를 혼동하는데 조조는 법도를 밝힌다’는 대목은 시스템 정치를 강조하고 있다. 노무현은 ‘어느 쪽이 옳으냐’를 판단하기 이전에 ‘문제해결의 바른 선례’를 만들고자 하는 것이다.
팽팽히 맞선 두 의견 중 ‘어느 한쪽이 옳고 다른쪽이 그르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절대로 시비의 혼동에서 벗어날 수 없다. 그렇다면 어느 쪽이 옳은가?
답은 나와 있다. A와 B 둘 중 하나가 옳은 것이 아니라, 유사사건이 재발할 경우 동일한 방식으로 그 유사사건도 해결이 되느냐에 따라 A와 B 중 하나가 선택되는 것이다. 즉 어떠한 경우에도 주어진 문제의 답은 그 문제가 된 A와 B 안에는 없고, 항상 그 바깥에 있다.
정치는 겸손의 경연장이다
유도이든 씨름이든 자신의 무게중심을 상대방의 무게중심보다 낮추지 않고, 상대를 메치는 방법은 없다. 요는 이 규칙의 ‘절대성’이다. 예외는 없다. 엎어치든, 메치든, 들어치든, 배지기든, 뒤집기든 간에 자신의 무게중심이 상대보다 낮아야지만 기술이 걸린다.
정치도 마찬가지다. 지난해 대선이 그랬다. 6월에 지자체 선거 있었고 12월에 대선이 있었다. 6월에 웃은 자 12월에 울었다. 총선? 6개월 남았다. 당나라와 구주류들 감사원장 임명동의안 부결시켜놓고 웃고 있다. 기술이 걸린 거다. 6개월 후에 운다.
박상천 잘하고 있다
박상천이 백번 옳다. 한번 배신한 넘은 두 번 배신한다. 사실이지 노무현이 전화 한통화만 주면 쪼르르 달려갈 김경재, 추미애, 조순형 저 배신자들을 어떻게 믿나? 이미 노무현을 배신했는데 이왕 버린 몸, 박상천을 배신못할 이유라도 있나?
박상천은 권력의 생리를 아는 사람이다. 김중권, 최명헌을 모셔오기로 한 것은 백번 잘한 일이다. 김민새와 이인개도 서둘러 복당시켜야 한다. 맞고는 재미가 없다. 고스톱 멤버 맞추려면 JP 할배도 모셔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