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진보를 점진적인 것으로 생각한다. 자신에게 역할을 주려는 소인배의 권력의지다. 창조설을 연상시킨다는 이유로 빅뱅을 부정한 것이 대표적이다. 캄브리아기 대폭발도 마찬가지다. 다윈은 창조설 신봉자들이 이를 악용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지식인은 뭐든 점진적인 변화로 설명하려고 한다. 갑자기 진보한다면 때를 기다려야 하는데 그때까지 지식인의 역할은 없다. 그게 싫은 거다. 국회의원들의 내각제 선호와 같다. 그래야 자기네가 힘을 가지기 때문이다. 아전인수 행동이다. 있는 그대로의 진실을 바라보는 쿨한 지식인은 드물다. 다윈은 점진적인 변화를 주장하는 라마르크설을 부정했다. 교과서에는 인류의 조상이 수백만 년에 걸쳐 서서히 직립했고 잃어버린 고리가 있는 것으로 되어 있었다. 지금은 고쳐졌는지 모르겠다. 다윈이 옳다고 쓰고 바로 뒤에 다윈이 틀렸다고 써놓는데 그게 모순임을 알아채지 못한다. 그림을 보면 누구나 그게 틀렸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딱 봐도 어색하잖아. 신체의 밸런스가 맞지 않다. 반직립은 지상을 달리지도 못하고 나무에 매달리지도 못한다. 멸종하기 딱 좋다. 답은 밸런스다. 진보는 이 밸런스에서 저 밸런스로 건너 뛴다. 중간은 없거나 있어도 약하다. 중간단계 잃어버린 고리가 있을 수 있지만 의미 없다. 진화의 여러 갈래 중 하나로 주류가 아니다. 인류의 조상이 나무에서 내려와 살살 걸어 다니다가 맹수를 만나면 잽싸게 나무 위로 도망치던 시기가 있었겠지만 그 기간은 짧았고 일부 아종에게만 나타나는 일이다. 한국경제는 갑자기 성장했다. 대부분의 아프리카 국가는 성장할 낌새가 없다. 밸런스의 장벽 때문이다. 강력한 저항선이 형성되어 있다. 천장을 순식간에 뚫어야 한다. 페미니즘이든 민주화든 서서히 잘 안 된다. 되려면 산업과 맞물려서 된다. 산업이 진보의 엔진이다. 그게 불쾌한가? 나의 고상한 이념이야말로 진보의 참다운 엔진이라네. 생태주의에 성찰에 진정성에 유기농에 신토불이라면 완벽하잖아. 이렇게 도올식으로 폼잡고 싶은가? 그게 쿨하지 못한 비렁뱅이 자세다. 담배는 단박에 끊어야 한다. 68 학생혁명 한 방에 바뀌었다. 점진적으로 안 되고 단박에 된다. 기성세대는 전쟁에 나가서 다 죽어버렸기 때문에 베이비붐 세대의 쪽수 물량공세를 당해낼 수 없었다. 선진국에서 여성의 지위가 높아진 것은 양차 세계대전과 관계 있다. 남자들이 죄다 죽어서 여성들이 바지 입고 공장에서 일하게 되었다. 결정적인 계기에 의해 한 방에 된다. 20년 전의 일이지만 전쟁과 페미니즘을 연관시키는 것을 여성들이 싫어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페미니즘은 신성하며 남자들의 전쟁과 연결시키면 불쾌하다는 식이다. 모든 진보가 다 그렇다. 될 만한데 잘 안 된다. 안되다가 갑자기 된다. 내부요인만으로 절대 안 되고 외부변수가 도와줘야 한다. 줄탁동기다. 내부가 성숙하고 무르익어도 외부에서 짝을 찾지 못하면 될 일이 안 된다. 외부 경쟁자가 필요한 이유다. 지렛대 역할을 해줄 가상적이 필요하다. 냉전을 했다가 신냉전을 하려는 이유다. 지식은 쿨해야 한다. 감정이 개입하면 안 된다. 권력의지 문제다. 여성은 남성 위에 군림하고 싶은데 전쟁과 같은 물리적 상황과 연결시키면 뽀대가 안 난다. 남자들의 부도덕한 마음 때문에 차별이 일어났고 여성들의 고결한 마음이 비뚤어진 남성을 제압하고 지배하는 것이 페미니즘이라면 모양 난다. 이런 것이 이념적 우상화다. 건물이 무너지는 데는 이유가 있다. 첫째는 설계오류, 둘째는 시공오류, 셋째는 돌발변수다. 쌍둥이빌딩에, 삼풍백화점에, 성수대교가 무너지는 데는 이유가 있다. 건물은 설사 시공이 잘못된다 해도 무너지지 않게 설계되어야 한다. 건축법은 필요 이상으로 강화돼 있다. 자재를 10개 사용해야 버틴다면 넉넉하게 20개로 규정한다. 혹시 모를 사태를 방지하자는 것이다. 시공오류, 설계변경, 천재지변이 일어나도 무너지지 말아야 한다. 필로티구조나 무량판구조는 애초에 잘못된 설계다. 설계가 무리해도 시공을 꼼꼼하게 잘하면 건물은 버틴다. 그래서 착시가 일어난다. 성수대교는 튼튼하다고 소문나서 과적차량들이 성수대교로 몰렸다. 그리고 무너졌다. 강변 테크노마트는 동호인들이 춤을 췄다는 이유로 무려 2센티나 흔들렸다. 작은 진동이 증폭되어 큰 건물이 흔들렸다면 잘못된 설계다. 변화가 일어날 요인이 있어도 충격을 흡수하고 밸런스가 유지되는게 보통이다. 밸런스는 잘 안 바뀐다. 천칭은 팔이 두 개라서 한쪽 팔이 기울어도 다른쪽이 받쳐주므로 잘 안 바뀐다. 배는 무게중심이 안 맞아도 보통은 복원된다. 파도에 기울었다가도 원위치 된다. 반대로 재수가 없으면 삼각파도를 맞고 갑자기 침몰한다. 세 가지 원인이 동시에 맞아떨어져야 변화가 일어난다. 3연타석 홈런을 맞을 확률은 낮다. 점진적인 변화는 없다. 그러다가 갑자기 변한다. 20세기 이후 후진국에서 선진국으로 올라선 나라는 한국뿐이다. 아프리카의 많은 국가 중에 없다. 답은 밸런스의 교체다. 인체 내부의 밸런스와 환경과의 밸런스가 있다. 내적인 밸런스와 외적인 밸런스가 있다. 완강한 내부질서를 깨려면 외부질서를 흔들어야 한다. 답은 상호작용이다. 반은 인간의 몫이요 반은 환경의 몫이다. 인간의 고상한 이념을 떠들 것이 아니라 환경변화와 유착해야 한다. 페미가 전쟁과 연관된다고 말하면 화를 내고 진보가 산업의 생산력 발전과 연관된다고 말하면 화를 낸다면 곤란하다. 북유럽이 양성평등의 호사를 누리는 것은 북해의 석유 때문이다. 인간들은 궁하면 내전을 벌인다. 성차별은 내전이다. 배가 고프면 인간들이 서로 차별하고 물어뜯는다. 월급을 올려주면 군대의 사병 간에 폭력이 감소한다. 러시아군은 여전히 사병 간 폭력이 난무한다. 월급을 너무 적게 주니까 그렇지. 필자의 졸병 시절 첫 월급은 8,700원이다. 폭력의 원인이다. 이념은 힘이 없다. 계몽은 힘이 없다. 지식은 힘이 없다. 구조와 함께 가야 한다. 환경과 맞물려야 한다. 자연의 에너지 흐름에 편승해야 한다. 진보주의는 밸런스의 판을 교체하는 판 구조론이다. 천칭저울을 통째로 갈아치우는 것이어야 한다. 지식인이 기울어진 저울을 바로잡아봤자 복원력에 의해 원위치 된다. 외부 환경의 방해 때문이다. 안과 밖을 동시에 타격해야 한다. 밖의 일본과 안의 토왜를 때려야 한다. 물론 쉽지 않다. 되려면 한 방에 된다. 안된다고 포기할 이유는 없다. 가만있으면 영영 안되고 열심히 때리면 때가 되어서야 된다. 기울어진 저울을 바로잡지 말고 다른 저울로 갈아타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