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북 9성의 위치를 두고 아직도 논란이 있다. 선춘령과 공험진의 위치가 불확실한데 근래 블라디보스톡 주변에서 광범위하게 고려와 조선의 유물이 발굴되고 있으므로 교과서를 수정해야 할 판이다. 함경도 여진은 고려의 신하로 주변의 야인과 무역을 독점하고 있었다. 윤관이 동북을 토벌하자 중간 완충지대가 사라지고 두만강 북쪽의 완안부와 격돌하게 된게 오히려 여진을 키워준 셈으로 된다. 고려가 군대를 보내자 여진은 호소했다. 우리는 신라에서 넘어온 사람으로 완안부를 막으며 번장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데 왜 괴롭히느냐? 이들을 잘 회유하여 길잡이로 쓰는게 정석이다. 윤관은 속임수로 400명의 추장을 한꺼번에 독살했다. 징기스칸도 타타르족이 아버지 예수게이를 독살한 사건을 계기로 일어났다. 유목민에게 독살은 부족들이 결집하는 계기가 된다. 윤관이 초원의 불문율을 깬 것이다. 척준경의 활약으로 윤관이 손쉽게 함경도를 털었지만 완안부와 대결하게 되자 사정이 달라졌다. 결국 1년만에 9성을 돌려주었다. 여진족 입장에서 영토를 돌려받은 사건이 되어 초원지역에 완안부의 명성이 높아졌고 이후 강성해져 완안부 주도로 금나라를 건국한다. 금은 약속을 지켜 고려를 침략하지 않았다. 고려에게 철저하게 당한 집단적 기억이 무서웠던 거다. 청도 조선을 합병하지 않았다. 조선을 조상의 나라로 생각했기 때문이라는데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대규모 동맹으로 제국을 만드는 유목민에게 민족개념은 다른 거다. 적이 아니면 아군이고 아군이면 곧 형제다. 티벳도, 몽골도 형제의 의리를 찾아 청에 복속되었는데 원래 중세 유목민은 민족이라는게 뭔지 잘 모른다. 청나라가 신라의 후손을 칭하는 것은 당연하다. 중원을 털어먹으려면 주변과 친해놔야 한다. 뒷치기를 우려했던 것이다. 병자호란 때 청이 명나라를 치기 앞서 예방전쟁으로 조선을 털었지만 금방 물러갔다. 청이 고려 때의 약속을 기억했기 때문이다. 형과 아우의 서열을 바꿀 수는 있어도 조상과의 약속을 부정할 수는 없다. 고려는 정복한 땅을 돌려주는 대신 상호불가침 약속을 내걸었다. 유목민은 비겁한 독살은 용서하지 않지만 조상의 약속은 지킨다는게 자존심이다. 세종이 함경도를 쉽게 먹은 것은 고려때 털어먹은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동북구성의 위치는 이걸로 명백해졌다. 일제강점기 시절 일본인이 9성을 함흥 일대로 좁혀서 왜곡한 거다. 고려 때 두만강까지 간 적이 없다면 조선 때도 가지 못했다고 봐야 한다. 윤관의 여진정벌은 무위로 돌아갔지만 그 덕에 고려는 금에 털리지 않았고, 세종은 함경도를 쉬게 먹었다. 윤관의 후손은 그 일로 대귀족이 되어 해남 일대를 다 차지하고 남인의 영수노릇을 했다. 윤석열도 그 부류가 아니겠는가? 속임수를 쓰는 기술도 같고. |
동렬님 유머가 느시는것같습니다. 이건 경상도가 아닌 충청도 유머아닐까요.
윤석열도 조상 윤관처럼 개같은 짓을 하고도 후일 역사에 선한 결과를 남기게 될지 궁금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