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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read 3147 vote 0 2021.12.12 (15:54:49)

    산 토끼와 죽은 토끼가 들어있는 상자가 하나씩 있다. 두 상자를 연결하고 가운데를 터주면 산 토끼 중의 몇 마리가 죽은 토끼가 들어있는 상자로 이동하는 수는 있어도, 반대로 죽은 토끼 중에 일부가 산 토끼가 들어있는 상자 쪽으로 이동하지는 않는다는게 엔트로피다. 쉽잖아.


    그럼 산 토끼가 이동하지 죽은 토끼가 이동하겠는가? 몇 마리의 토끼가 이동하는지는 확률에 달려 있지만 토끼의 숫자를 충분히 늘려주면 어떨까? 토끼는 상자 내부의 압력이 균일해질 때까지 이동한다. 토끼 대신 사람으로 실험을 하면 어떨까? 각자 쾌적하게 살 수 있는 평수를 차지할 수 있을 때까지 이동한다.


    다들 엔트로피를 너무 어렵게 설명한다. '이용할 수 있는 에너지'라는 표현은 해괴한 레토릭이다. 말을 이따위로밖에 못하나? 꼴째비잖아. 이용한다는 표현은 사람에게 해당되는 말이다. 이건 과학의 언어가 아니다. 자연은 자연으로 설명해야 한다. 볼츠만은 엔트로피를 확률로 설명한다. 실패다. 산 토끼가 죽은 토끼가 있는 칸으로 옮겨가는 것은 확률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다. 토끼는 백 퍼센트 이동한다. 살아있기 때문이다.

    막대기를 손으로 밀면 어떨까? 손이 막대기로 이동하지 막대기가 손으로 이동하지 않는다. 손은 살아있고 막대기는 죽어 있기 때문이다. 막대기는 단단하다. 강체는 힘을 확실히 전달한다. 스펀지라면? 액체라면? 기체라면? 어느 쪽이든 미는 쪽이 밀리는 쪽으로 밀어붙이는 것이다. 힘은 주체에서 객체로의 일방향으로 작용한다. 에너지의 전달은 언제나 일방향이며 그 반대는 없다. 확률은 백 퍼센트다.

    여기서 막대기의 단단한 정도나 스펀지의 무른 정도, 액체의 수압, 기체의 기압이 문제로 된다. 부러진 막대기라면 곤란하다. 어느 쪽이든 압력이 0은 아니어야 한다. 압력이 높을수록 힘을 잘 전달한다. 온도라고 다를까? 열역학은 온도를 다루는데 온도는 압력의 일종이다. 온도는 분자의 진동이고 압력은 전자기력의 척력이다.


    압력은 고압에서 저압으로 가고, 온도는 고온에서 저온으로 가고, 힘은 강에서 약으로 간다. 분자가 진동하면 공기가 뜨거워진다. 공기가 가열되어 뜨거워지면 가마솥의 압력이 팽창한다. 주사기를 누르면 주사액은 바늘로 간다. 확률은? 백 퍼센트다. 타이어에 바람을 넣는다. 공기압축기를 타이어에 연결하면? 타이어 속의 공기가 콤프레샤로 가는가 아니면 콤프레샤의 공기가 타이어로 가는가? 당연히 공기압축기의 공기가 타이어로 들어간다. 이건 힘이지 확률이 아니다. 힘은 강이 약을 이긴다. 공기압축기의 공기와 타이어의 공기가 싸워서 이기는 쪽이 방향을 결정한다.

    문제는 애매한 부분이 있다는 거다. 한낮의 태양이 초등학교 운동장에 내려쪼이면 공기가 팽창한다. 뜨거운 공기가 위로 솟구쳐서 아래쪽에 진공을 만들면 운동장 주변의 나무 밑에 있는 찬 공기가 중앙으로 이동한다. 회오리가 만들어진다. 그때 구름이 나타나서 햇볕을 가리면? 회오리가 만들어지려다가 만다. 확률은 그런 애매한 부분에 적용된다. 일정한 조건이 맞으면 백 퍼센트 압이 걸리고 회오리가 일어나고 소용돌이를 일으킨다.

    엔트로피는 일반화 된다. 시장에는 이윤이 되고, 정치에는 권력이 되고, 물질에는 관성력이 되고, 행동에는 기세가 된다. 왜 이윤이 존재하지? 그건 유태인 고리대금업자의 탐욕 때문이지. 왜 정치에는 권력이 존재하지? 그건 정치가들의 탐욕 때문이지. 이런 식의 개소리는 곤란하다. 엔트로피는 의사결정비용이다. 그 비용은 유체의 압력차에서 조달된다. 의사결정은 그 압력차를 소비한다. 더운 공기가 찬 공기로 이동하여 닫힌계 내부의 압력이 균일해진다. 압력차가 사라진다. 더이상 의사결정비용을 조달하지 못하므로 사건은 종결된다.

    쓸 수 있는 에너지라는 말은 너무 어려운 레토릭이다. 압력차가 위치에너지다. 사실이지 엔트로피는 쉬운 것이다. 쉽게 설명하지 못하는 이유는 모르기 때문이다. 열역학은 알면서 시장의 이윤이나 정치의 권력은 모른다면 그것은 열역학을 모르는 것이다. 구조론은 확실하게 결론을 내린다. 기면 기고 아니면 아니다. 왜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가? 엔트로피는 확실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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