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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ad 14630 vote 0 2003.08.17 (17:57:48)

상단에 링크하고 있는 ‘노무현의 전략’에서 발췌하면..

나는 내무총장 안창호에게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문지기가 되기를 청원하였다. 도산은 흔쾌히 받아들였다. 그러나 다음날 도산은 나에게 홀연히 경무국장 사령서를 교부하여 취임하기를 힘써 권한다. [백범일지]

『노무현의 캐릭터는 수호지의 송강과 유사하다고 생각되오.. 사진은 해운대 해수욕장에서?』

빈말이 아니고 그때 백범은 정말로 임정청사의 문지기가 되려고 했다. 왜?

반상의 차별이 엄존하던 때다. 임시정부의 주요인사들은 거개가 양반출신에, 해외에서 활동한 명망가들이 중심이 되었고, 상놈출신에 국내파로는 백범 김구를 제외하고는 거의 없다시피 했다.

그 시점의 백범은 임정의 각료에 들기는 위상이 한 단계 처지는 인물이었던 것이다. 그는 상놈출신의 자격지심에 스스로 몸을 낮추어 임정의 문지기가 되려 한 것이다. 겸손인가 아니면 열등감의 발로인가?

백범이라고 해서 야심이 없을리 없다. 문지기는 그 건물에 출입하는 모든 인물과 안면을 튼다. 백범은 그 건물에 출입하는 인물 전체와 상대하려 했던 것이다.

임시정부의 돌아가는 판세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자리로 문지기를 꼽고 그 자리를 얻으려 했다. 거기서 백범의 무서운 야심을 읽을 수 있어야 한다.

한고조 유방이 한번 들어가면 빠져나오기 어렵다는 서촉을 영지로 선택하므로서, 항우를 속이는데 성공했듯이, 백범 또한 스스로를 낮추므로서 그의 야심을 은폐하는데 성공한 것이다.

엘리트지도자라면 야심을 은폐할 이유가 없다. 오히려 공공연하게 야심을 드러내어야 세를 불릴 수 있다. 백범은 상놈출신이었기 때문에 그렇게 할 수 없었다. 야심이 노출되는 순간 만인의 표적이 되고 마는 것이다.

백범이 임정의 주석자리에 오른 것은, 좌파와 우파가 치열한 암투를 벌이면서 서로 상처를 주고받은 결과 좀 괜찮다 싶은 인물은 상대측의 견제를 받아 떨어져나가고, 인물의 씨가 말라서 어중간한 위치에 있던 백범이 어부지리를 얻은 측면이 있다.

두 유형의 야심가가 있다. 한사코 남의 위에 기어오르려고만 드는 자기과시형이 있고, 가만이 엎드려서 돌아가는 판 전체를 조망하며 맥을 짚는 대기만성형의 야심가가 있다. 전자는 엘리트 출신 지도자에 많고, 후자는 백범이나 노무현 같은 서민 출신 지도자에 많다.

노무현의 통치스타일을 두고 대통령이 될 준비를 안한사람의 방식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 또한 오판이다. 백범이 엉뚱하게 임정의 문지기를 하려한 것이나, 노무현이 엉뚱하게 조중동을 고소한 거나 그 노림수는 본질에서 같다.

수호지의 포지셔닝 게임을 참고하라

『선수는 포지션을 잘 선택해야 하오. 헛발질 안하려면 말이오』

인간성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곳 중에 하나가 군대라는 곳이다. 병영에서 작업할 일이 있으면 맨 먼저 ‘삽’ 들고 설치는 인간이 있다. 낫도 있고, 호미도 있고, 빗자루도 있지만 폼을 재는데는 삽 만한 것이 없다. 뭔가 중요한 일을 하는 것처럼 보여지는 것이다.

호미나 들고 얼쩡거리다가 괜히 소대장 눈에라도 띄면 피곤해진다.

“야 거기 호미! 이리 와서 돌이나 날라.”

이렇게 안되려면 일단 묵직해 보이는 삽을 차지해야 한다. 무엇인가? 포지셔닝에 관한 거다. 다르게 보면 캐릭터이기도 하다.

수호지의 주인공은 급시우(及時雨) 송강이다. 70만 금군 교두 표자두 임충이라든가, 청면수 양지라든가, 탁탑천왕 조개라든가, 지다성 오용이라든가 엘리트 출신의 쟁쟁한 인물이 많은데 별 볼 일 없는 흑송강이 수호지의 주인공이 되는 이유는?

급시우(及時雨)는 ‘때맞추어 내리는 비’다. 평소에는 보이지 않는 듯 하다가, 모두가 그를 필요로 할 때 짠~ 하고 나타나는 인물이 송강이다. 군부대에서 작업시간에 삽들고 설치는 인간이라면 그 반대이다. 필요하지도 않는데 커다란 삽을 휘두르며 폼만 재는 것이다.  

김근태의 포지셔닝은 확실히 과시적인 데가 있다. 그는 ‘평화주의’라는 커다란 삽을 들고 나선다. 반면 노무현은 ‘30억 고소’라는 작은 송곳을 사용하고 있다. 뭔가 이상하다. 대통령이라면 못해도 DJ처럼 ‘햇볕정책 리어카’라도 앞장서서 끌어조야 체면이 서는거 아닌가? 명색이 대통령인데 송곳 하나 들고 설치다니 너무 째째하다.

모르고 하는 이야기다. 대기만성형의 인물은 원래 그렇게 한다. 표자두 임충이라면 조기에 두각을 나타내어 돌아가는 판 전체를 휘어잡고 보는 실력자이다. 귀족출신인 이승만이나 안창호라면 그렇게 한다. 급시우 송강은 다르다. 그는 대단한 무술실력의 소유자도 아니고, 귀신을 부리는 마법사도 아니다. 시골 현청에서 서열 3위의 낮은 인물이다. 생긴 것도 꾀죄죄하고 말이다.  

그런데 왜?

수호지의 인물들은 크게 두 부류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양지, 진명, 황신, 오용, 임충과 같은 엘리트출신 그룹이고, 하나는 노지심, 이규, 무송, 주귀, 유당, 완소이형제 등 서민출신 내지 변방의 도둑떼들이다. 이 두 그룹의 중간지점에서 양자를 조율하고 있는 기묘한 인물이 바로 흑송강이다.

108명의 두령들 중에 누가 가장 폭넓은 외연을 틀어쥐고 있는가? 무술로는 임충이 뛰어나지만 그는 엘리트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한다. 백범은 문지기가 되어 그 건물을 출입하는 모두와 교분을 트고자 한다. 송강은 벼슬아치든 도둑놈이든 안가리고 교분을 튼다. 이것이 서민출신 지도자의 방법이다.

백범의 은인자중과 노무현의 처세술
요즘 무술 종목을 안가리고 마구잡이로 치고받는 격투기가 인기다. 왕년의 챔피언 박종팔이 권투실력 믿고 뛰어들었다가, 무에타이를 하는 이효필에게 깨졌다. 격투기에서 무에타이가 두각을 나타내는 이유가 있다.

무에타이는 얍삽한 것이, 일단 상대방의 하체를 집중 공격해서 다리가 풀어지게 만든다. 허벅지 옆쪽을 타격하면 겉으로는 멀쩡해 보이지만 거기가 급소다. 박종팔은 다리가 풀려서 보폭이 좁아진다. 행동반경이 좁아지면 그걸로 끝이다.

작년에 이회창이 깨진 것도 행동반경이 좁아졌기 때문이다. 노무현팀에는 몽새가 날고, 안동선이 뜨고, 몽준이 뛰고 희망돼지가 춤을 추는 등 뭔가 뻑적지근 했는데, 이회창팀은 특별히 하는 거 없이 절집처럼 조용했다. 싸움에선 무조건 많이 움직이는 쪽이 이긴다.  

노무현의 30억 고소는 참으로 작은 거다. 그렇지만 급소를 찌른 거다. 적을 공격하되 단칼에 적의 심장을 꿰뚫는 것이 아니라, 무릎이나 손목 등 적의 관절부분을 공격하여 일단 적의 외연을 자르고 행동반경을 좁혀놓는 것이다.

펀치가 있는 박종팔은 한방을 노리고 주먹만 휘둘러 대지만, 꽤가 있는 이효필은 일단 하체를 공격해서 적의 보폭을 좁혀놓는다. 박종팔은 일격필살의 단기전을 원하고, 이효필은 가랑비에 옷젖는다는 식의 장기전으로 끌고가려 한다. 누가 이겼는가?

노무현은 장기전을 하는 사람이다. 임기 5년이 문제가 아니고 30년 앞이 문제다. 송강도 그렇고, 유방도 그렇고, 백범도 그렇고 대기만성형의 인물은 보통 이렇게 한다.

『초딩방학은 사회적 문제, 부시당선은 세계적 골치...대략 본문과는 상관없는 그림인데.. 글이 넘 길어졌으니 쉬어가자는 의미로 끼워넣은듯 하오.』

진짜라면 경계면에 선다.
상해임정은 양반출신에 해외에서 활동한 명망가로 이루어진 이승만, 안창호 등 1세대 독립운동가와 만주에서 총들고 싸운 2세대 독립운동가로 구분된다. 1세대 독립운동가들은 대개 나이든 우파들이고, 2세대 독립운동가는 젊은 좌파들이다.

백범은 어중간한 위치다. 나이로 따지면 1세대에 속하는데, 상놈출신에 국내파라는 점에서 젊은 좌파들과도 통하는 데가 있었다. 이동휘 등 좌파가 김구를 포섭하려 했던 사실에서 보듯이, 실제로 백범은 중일전쟁의 와중에서도 김원봉 등 좌파들과의 합작을 포기하지 않았다.

하급관리 출신인 흑송강이 엘리트그룹과 도둑놈그룹의 중간지점에 포지션을 두었듯이, 백범은 좌우 두 진영의 중간지점에 위치하며 그들의 급소를 틀어쥐고 있었던 것이다. 노무현도 그러하다. 그는 엘리트이면서도 서민이다. 정치인이면서도 가장 비정치적인 인물이다.

그는 어디를 가나 경계면에 선다. 민주당 안에서 가장 비민주당이다. 영남인데도 호남에 있었다. 지금도 그렇다. 여당도 아니고 야당도 아닌 기묘한 위치에 서 있다. 백범이 항상 그러했듯이..

삽들고 설치는 군상들이 있다.
인터넷 게시판에서도 그렇고 어디를 가도 그렇다. 남들 앞에 나서서 삽들고 폼만 잡으려는 인간이 있다. 그들이 이념이라는 이름의 삽을 휘두른다. 겸하여 좌파라는 이름의 나팔도 불어댄다. 그들은 너무 일찍 좋은 역할을 맡아버리는 것이다.

그들은 민주당도 비난하고, 신주류도 비난하고, 한나라당도 비난하고, 대통령도 비난한다. 보직 치고는 땡보직이다. 세상에 그들 만큼 편한 보직이 없다. 그러나 실제로 그들은 움직이지 않는다. 외연은 끊어지고 역할은 소멸한다.

무슨 토론을 한다든가 하는 식의 단기전으로 가면 삽들고 설치는 부류가 승리하게 되어 있다. 장기전으로 가면 항상 그들이 진다. 스스로 이전에 내뱉은 발언이 족쇄가 되어 그들의 행동반경을 좁혀놓고 있기 때문이다.

진중권들에서 보듯이 그들은 스스로 자기 역할과 입지를 줄여버린다. 그들은 너무 일찍 삽을 잡아버렸기 때문에, 작업 끝날 때 까지 삽이라는 보직이 아까워 역할을 바꾸지 못하는 것이다. 그들은 리어카를 끌 수도 없고 포크레인을 몰 수도 없다.

진짜라면 경계면에 서야 한다. 양자를 조율할 수 있어야 한다. 이 싸움이 하루 이틀 사이에 끝나지 않기 때문이다. 장기전이라면 한방을 노릴 것이 아니라 일단 적의 관절을 공격하여 행동반경을 좁혀놓고 은인자중 때를 기다려야 한다.

이야기가 길어졌으므로 정리하면..
리더십은 두가지 유형이 있다. 하나는 일격필살을 노리는 엘리트 지도자의 리더십이고, 하나는 서민 출신의 지도자의 유연한 리더십이다. 항우가 전자라면 유방은 후자이다. 원소가 전자라면 유비는 후자이다. 전자가 오다노부나가라면 후자는 도쿠가와 이에야스다. 수호지의 송강캐릭터나, 백범이나, 노무현의 대기만성 역시 후자에 속한다.

대기만성형 지도자의 몇가지 처세원칙을 논하면..

1) 삽들고 설치지 말라. - 돌아가는 판 전체를 조망하는 위치에 서려면 일단 아웃사이더가 되어야 한다. 특히 게임의 초반에는 항상 자신의 포지션을 외곽에 두어야 한다.

2) 적의 관절 부분을 공격하라. - 적은 숫자의 병사로 강한 적을 상대하려면 한방을 노릴 일이 아니라, 적의 관절부분을 공격하여 외연을 차단하는 방법으로 적의 행동반경을 좁혀놓고 장기전으로 끌고가서 은인자중 때를 기다려야 한다.

3) 경계면에 서라. - 주류와 비주류, 인사이더와 아웃사이더, 중심과 변방을 동시에 아우르는 경계면에 위치하며, 적절하게 치고 빠지는 식으로 포지션변경을 할 수 있어야 한다.

결론인 즉 아웃사이더로 출발하되 거기서 머무르지 말고 끊임없이 인사이더로 침투하여 주류에 대한 전복을 시도하여야 한다는 말이다.

진중권류가 이념의 삽을 휘두르는 것이 폼은 참 좋다. 그는 보직이 아까워 한번 잡은 삽을 놓치 못하니 삽으로 시작해 삽질로 끝난다. 강준만 역시 경직되어 있다. 스스로 자신의 행동반경을 좁혀놓고 있다. 지금이라면 좀 더 폭넓게 움직여주어야 한다.

우리는 30년 앞을 내다보고 장기전으로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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