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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read 3495 vote 0 2021.09.20 (20:47:15)

    진리는 없다거나, 진리가 있지만 상대적이라거나, 진리가 있다 해도 알 수 없다거나 이런 말을 하는 사람은 지능이 떨어지는 사람이다. 어른들의 대화에 끼워주면 안 된다. 이들은 진지하지 않다. 이들은 남이 무슨 말을 하면 받아칠 요량으로 어깃장을 놓는 것이다.


    선수 경력도 없는 주제에 심판이 되겠다는 자들이다. 스스로 감투를 쓰고 에헴 하며 군림하려 든다. 이건 진리의 문제가 아니라 언어의 문제다. 과연 우주의 진리를 인간의 작은 언어에 담아낼 수 있는가? 이런 물음이다. 그러니까 말을 조리 있게 잘해야지. 바보야. 


    언어는 체언과 용언이 있다. 바람도 있고 물도 있다. 그런데 바람을 ‘부는 그것’,이라 하고 물을 ‘흐르는 그것’이라며 용언으로 말하면? 체언은 절대성이고 용언은 상대성이다. 어원을 연구해보면 모든 언어가 동사나 형용사 곧 용언으로 시작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동사로 표현하면 상대적이다. 그런데 왜 동사로 표현하지? 불은 활활 탄다. 활활 -> 화火. 바람은 붕붕 분다. 붕붕 >붕風. 이런 식이다. 용언은 외부 관측자가 있으며 관측자에 대해 상대적이다. 내부 관측자로 바꿔야 한다. 상대적인 것은 절대화 시켜서 말하기다. 


    말하기 방법의 문제다. 인간이 언어를 잘못 사용하면서 진리 탓을 한다. 말을 똑바로 하면 진리는 스스로 명백하다. 우주가 존재하면 진리도 존재한다. 진리는 우주와 인간의 관계다. 관계를 맺으면 진리가 있고 관계 맺지 않으면 진리가 없다. 개나 소는 진리가 없다.


    관계를 맺지 않기 때문이다. 게임과 같다. 바둑을 두면 정석이 있고 바둑을 두지 않으면 정석이 없다. 한 번도 바둑을 두지 않은 사람이 정석은 없어. 이러면 반칙이다. 자신이 바둑을 두지 않았다는 자기소개다. 


    우주는 관측자 인간의 반대편이다. 인간에 대상화 되면 곧 우주다. 척도는 인간이다. 우주가 반대쪽 인간 편으로 넘어올 수 있나? 인간과 우주 사이에 넘어갈 수 없는 장벽이 있다면 진리가 있다 해도 인간이 그것을 알 수는 없다. 인간 따로 우주 따로면 상대적이다.


    진리가 없다거나, 상대적이라거나, 알 수 없다거나 하는 자는 관측자와 관측대상을 떼어 놓는다. 그런데 누가 그렇게 하라고 시켰지? 자기 눈이 비뚤어졌는데 세상이 비뚤어졌다고 외치거나 색맹이 자연은 흑백이라고 주장한다거나 하는건 불필요한 자기소개다. 


    장님은 세상을 볼 수 없다. 진리를 볼 수 없다고 말한다면 자신이 장님이라는 말이다. 진리를 알 수 없다고 말하면 자신이 바보라는 자기소개다. 용언으로 말하는 습관을 버리고 체언으로 말해야 한다. 외부에 관측자를 두지 말고 객관적 대상 자체의 질서로 말하라. 


    바람이 분다. 내가 느꼈다고 말하지 말고 저기압과 고기압 사이의 밸런스인 기압골을 중심으로 말해야 한다. 내가 느꼈기 때문에 바람이 부는게 아니고 기압차에 따른 밸런스가 복원되므로 바람이 부는 것이다. 밸런스 중심의 객관적 말하기 방법을 배워야만 한다. 


    거기서 용언이 체언으로 바뀌고 상대성이 절대성으로 바뀐다. 비로소 진리를 말할 자격이 있다. 밸런스 중심으로 가는 객관적 말하기 훈련을 마스터 해야 발언권을 얻는다. 자기소개 하는 초딩들은 가라. 


    사유는 나로부터 시작된다. 나는 존재한다. 내가 없다면 이런 말을 할 수도 없으니까. 내가 존재한다는 것은 내가 빌붙은 우주가 존재한다는 말이다. 차가 있다면 차가 달릴 길도 있다는 의미다. 길이 없으면 어떻게 현다이가 차를 소비자에게 배달해 주었겠느냐고. 


    차가 있으면 길이 있듯이 우주는 존재할 수 있으므로 존재한다. 그것을 그것이게 하는 그것이 있다는 전제가 깔린다. 그것이 진리다. 전건과 후건, 전제와 진술, 원인과 결과, 시작과 종결이 세트로 간다. 진리가 부정되면 우주도 부정되고 당신의 존재도 부정된다.


    우주는 긍정하면서 혹은 나의 존재를 긍정하면서 진리를 부정하거나 혹은 진보를 부정할 수는 없다. 진리가 없다면 너도 없고 우주도 없다. 없다고 말하는 사람도 없다. 진보 아니면 퇴보다. 퇴보하면 우주는 한 점으로 수축되어 멸망한다. 근데 아직 멸망 안 했잖아. 


    그러므로 자연은 진보다. 자연이 진보면 역사도 진보다. 정확히는 밸런스다. 더 정확히는 밸런스의 기세다. 팽이는 너무 세게 쳐도 죽고 치지 않아도 죽고 정확히 밸런스를 유지할 만큼 쳐야 한다. 양의 피드백이라는 조건이 충족될 때 밸런스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한 마리의 코끼리가 있다면 몸통을 우주라 하고, 팔다리가 연결됨을 진리라 하고, 코끼리가 성장함을 진보라 하고, 코끼리의 호흡을 자연이라 하고, 코끼리의 서식지를 문명이라 하고, 코끼리의 주인을 신이라고 하며, 지켜보는 인간까지 이 중에 하나도 뗄 수 없다.


    진리를 부정하는 사람은 그냥 거짓말을 하고 싶은 것이다. 신, 진리, 우주, 자연, 문명, 역사, 인간, 진보는 세트다. 존재는 사건, 사건은 상호작용, 사건은 혼자 일어날 수 없다. 주체와 대상 사이의 긴밀한 상호작용의 밸런스에 따른 기세의 방향성이 다. 여럿이 더 있다.


    주체, 관측자 – 인간, 문명, 역사, 진보

    대상, 관측대상 – 신, 우주, 자연, 진리

    사건 - 상호작용, 밸런스, 기세, 방향성


    사건은 주체와 대상이 있다. 인간과 신의 상호작용에, 문명과 우주의 밸런스가, 역사와 자연의 기세로 나타남이 진보와 진리의 방향성이다. 이들은 하나의 사건을 구성하는 다양한 측면이다. 인간의 드러남이 진보라면 신의 드러남이 진리다. 왜 진리는 드러나는가? 


    들여다보므로 드러난다. 개나 소는 들여다보지 않으므로 진리가 없다. 오직 인간에게 진리가 있는 것이다. 눈을 감고 있으면 드러나지 않는다. 자신이 눈을 감고 있다는 생각을 못하고 진리가 드러나지 않는다고 개소리를 시전하는 것이다. 이제 그 감은 눈을 떠라. 


    눈 감고 못 본 척하기 없다. 진리가 있다는 것의 의미는 내가 무엇을 해야 할지 명백해진다는 점이다. 상대가 있는 게임이다. 농구선수는 그물에 넣으면 된다. 배구선수는 네트 너머로 보내면 되고, 야구선수는 공을 외야로 보내면 된다. 진리가 없다면 연결도 없다. 


    허공에 붕 뜬다. 개울에서 물장구를 치며 노는데 발이 땅에 닿지 않으면 불안하다. 사차원의 문에 끼면 골치가 아프다. 여우가 둔갑하고, 귀신이 환생하고, 텔레파시에 음모론에 웜홀에 힘들다. 손톱 속에 또 다른 우주가 있을지도 모른다. 외계인이 달려들지 모른다. 


    국정원이 내 귀에 도청장치를 설치했다. 엉뚱한 생각을 하는 것이다. 진리가 있으면 모두 연결되어 있으므로 바로 반응이 온다. 동떨어진 얄궂은 공간은 없다. 텔레파시도 사차원도 외계인도 둔갑술도 타임머신도 없다. 걱정할 이유가 없다. 눈앞의 적만 해치워라. 


    내 할 일만 하면 된다. 왜? 인간과 신이 핑퐁을 하고, 문명과 우주가 게임을 벌이고, 역사와 자연이 기세를 올리고, 진보와 진리의 방향성이 있기 때문이다. 톱니가 빈틈없이 맞물려 돌아간다는 말이다. 무슨 일이 일어날 수도 있지만 사전에 꼬리가 밟혀서 걸러진다. 


    상호작용에는 상대가 있으므로 꼬리가 길어서 밟힌다. 혼자라면 무슨 일이 일어날 수 있는데 무대에는 청중이 지켜보고 감독과 코치가 뒤를 받쳐주고 손에는 대본이 있고 연기에는 파트너가 있으니 흐름에 맡기면 해결된다. 그 받쳐주는 상대에 의해 전부 걸러진다. 


    자동차가 있으면 바퀴도 있고 엔진도 있고 도로도 있고 주유소도 있고 자동차 회사도 있다. 그 긴 꼬리들에 의해 걸러진다. 전기가 있으면 전봇대도 있어야 하고 변전소도 있어야 하고 전구도 있어야 한다. 도로도 없는데 자동차가 몰래 숨어서 오거나 하는거 없다.


    전봇대도 없는데 전기가 몰래 숨어서 기어들어 오는 일은 절대로 없다. 구조론으로 보면 하나가 있으면 다섯이 있고 하나가 움직이면 다섯이 다섯 번 움직여 25개가 변한다. 25개나 되는 거미줄의 그물코에 걸려서 들통이 난다. 최대 3125개까지 그물코가 더 늘어난다.


    텔레파시든 사차원이든 음모론이든 외계인이든 괴력난신이든 혼자 조용하게 숨어들어오지 못하고 패거리를 몰고 시끄럽게 몰려오므로 다 들통이 나는 것이다. 팽팽하게 진행되는 게임에서 선수는 잠시도 한눈을 팔 수 없다. 우주는 절대로 한눈을 파는 일이 없다. 


    자연은 한눈을 팔지 않는다. 진리는 전혀 빈틈이 없다. 동떨어진 뭔가는 없다. 바늘 꽂을 틈이 없다. 왜? 핑퐁의 랠리가 이어지기 때문이다. 상호작용이기 때문이다. 톱니가 맞물려 돌기 때문이다. 우주는 아름답다. 하나를 보면 천리 앞을 내다본다. 멋지잖아.


[레벨:11]큰바위

2021.09.21 (10:16:20)

문제는 보지 못하면서 본다고 말하는 것이 첫째요
보면서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는 것이 둘째다. 

이 두가지가 안되면 그냥 침묵이 말을 걸어오게 한다. 

자기 안에서 들려오는 소리없는 아우성을 들을 수 있어야 한다. 


진리가 소리친다. 

그 소리에 반응할 사람이 필요하겠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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