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읽기
read 19869 vote 0 2003.08.05 (11:43:33)

삼가 애도의 뜻을 표합니다. 무엇보다 선친 정주영회장의 원대한 꿈이 난관을 당했다는 점에서 안타까움이 큽니다. 큰 일을 당하고 경황이 없는 지금 할 소리는 아니지만,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냉정하게 보아야 한다는 점에서 욕먹을 소리는 제가 도맡아 하겠습니다.

『남북한과 그 정부는 왜 약속을 지키지 못하였나? 우리가 마땅히 해야할 일을 하지 않으면, 필연적으로 누군가가 대신 희생되는 법이다.』

1년에 1만2천명이 생계곤란 등의 이유로 자살합니다. 기업가가 수익을 내지 못하면 3년 동안 1만명의 노동자가 자살하고 그 다음에 한 명의 오너가 자살합니다. 누가 그 1만명의 노동자를 자살로 몰아세웠습니까?

기업가는 곧 죽어도 수익을 내야 합니다. 현대아산은 수익을 내지 못했다는 점에서 국민 앞에 할 말이 없습니다. 그 결과가 정몽헌의 죽음입니다.

현대의 대북사업은 당연히 정부가 해야할 일입니다. 정몽헌회장은 죽음으로서 그 모든 것을 대한민국과 그 정부에 떠넘긴 것입니다. 지금 우리가 정몽헌의 죽음을 두고 한가지 합의해야 할 사실은 정몽헌이 목숨을 던지며 대한민국에 떠넘긴 것을 대한민국과 그 정부가 흔쾌히 받아들일 것인지의 여부입니다.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실패가 한 기업인을 죽였다
민주주의란 무엇인가? 만장일치입니다. 그런데 만장일치가 안된다면? 만장일치가 될 때 까지 토론하고 투쟁하는 것입니다.

민간기업은 무엇이 다른가? 오너가 독단으로 결정합니다. 그 결과가 나쁘면? 책임지는 것입니다. 때로는 죽음으로 책임져야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 사태의 본질은 국가가 해야할 일을, 단지 국민이 만장일치로 합의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민간기업에 떠넘겼으며, 국가가 정치적 이유로 한 민간기업을 희생시킨 것입니다. 정몽헌을 죽인 것은 대한민국입니다.

금강산사업, 개성공단개발 전부 국가가 해야할 일입니다. 다만 국가가 하는 일에는 절대 다수의 합의가 필요합니다. 우리의 민주주의는 그 합의에 실패했으며, 그 합의에 실패에 대한 책임은 여당과 야당, 재야와 학계, 언론계 모두에 있습니다. 누구도 그 책임 앞에서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정몽헌은 대한민국의 미숙한 민주주의가 죽였습니다. 우리는 겸허하게 이 진실을 인정해야 합니다. 아니라고 말하며 나서는 자 있다면 그 자의 목을 비틀어버리고 싶습니다.

이제 우리가 결정해야 할 일은 대한민국과 그 정부가 그들의 민주주의의 실패를 이유로 한 민간기업에 떠넘겼던 것을, 정몽헌이 목숨을 담보로 하여 다시 대한민국과 그 정부에 되돌려주었다면, 그것을 국가적 차원에서 받아들여 지속적으로 수행할 것인가의 여부입니다.

저는 정주영이 못다 이룬 꿈을, 정몽헌이 실패한 사업을, 대한민국과 그 정부가 인수하여 계속 추진해야 한다는 의견입니다. 여당과 야당, 학계와 언론계와 재야가 여기에 만장일치의 합의를 해주어야 한다는 의견입니다. 만약 이에 반대하는 자가 있다면 그 자가 정주영과 정몽헌을 두 번 죽이는 것입니다.

정주영은 무엇을 꿈꾸었나?
대북사업은 원래부터 실패가 예정되어 있었습니다. 정주영은 왜 이 무모한 사업을 벌였을까요? 수익을 내지 못하는 기업가는 자격이 없습니다. 이는 어떤 변명으로도 정당화될 수 없습니다. 그런데 그는 왜 수익을 기대할 수 없는 벤처에 착수했을까요?

답은 간단합니다. 남이 안하기 때문에 정주영이 한 것입니다. 마땅히 대한민국이 해야할 일을 대한민국이 착수하지 않으므로, 어쩔 수 없이 정주영이 대신 착수한 것이며, 대한민국의 그 누구도 나서지 않으므로 어쩔 수 없이 기업인 정주영이 나선 것입니다.

그 실패의 책임은 전적으로 대한민국과 그 정부에 있습니다. 왜? 대북문제는 원래부터 대한민국의 문제였기 때문입니다.

때로는 실패가 뻔히 보이는 일에 뛰어들어야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정주영이 용기있게 그 일에 뛰어들었으며 그 아들을 희생시킨 것입니다.

저는 기업가 정주영, 정몽헌 부자에게 기업경영에 실패한 책임을 물을 것입니다. 기업가의 실패는 어떤 이유로도 용서되지 않습니다. 왜? 기업가가 실패하면 오너가 자살하기 전에 1만명의 노동자가 먼저 자살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저는 그가 대한민국을 대신하여 십자가를 진, 누구보다 위대한 대한민국인이었다는 사실 자체는 존중할 참입니다.

결론..대한민국이 스스로의 민주주의의 실패를 이유로 부당하게 한 민간기업에 토스한 것을, 그 민간기업이 다시 대한민국과 그 정부에 죽음으로 토스한 것입니다. 저는 미숙하기 짝이 없는 대한민국의 민주주의에 그 책임을 물을 것입니다.

List of Articles
No.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1127 518이 공휴일로 지정되는 그날까지 image 김동렬 2004-05-18 14007
1126 한국인 그들은 누구인가? 김동렬 2004-05-16 13346
1125 조선의 입이 문제다 김동렬 2004-05-16 14344
1124 헌재의 '나 이쁘지' 김동렬 2004-05-16 14499
1123 조선, '헌재는 죽었다!' 김동렬 2004-05-16 14290
1122 소수의견은 공개가 옳다. 김동렬 2004-05-13 14212
1121 조광조가 그립다 김동렬 2004-05-11 13459
1120 천정배의원 대표당선 좋다 김동렬 2004-05-11 14861
1119 정동영 4개월 중간점검 image 김동렬 2004-05-10 13498
1118 김혁규는 아니다 김동렬 2004-05-09 15567
1117 실용주의는 처세술이다 김동렬 2004-05-09 14661
1116 정동영과 박근혜의 하수회담 김동렬 2004-05-09 14016
1115 우리당 위기 인식해야 한다 image 김동렬 2004-05-04 12518
1114 유시민, 천정배가 있었다 김동렬 2004-05-03 13867
1113 서둘러 잔치판을 벌이지 말라 김동렬 2004-05-01 13405
1112 정동영의장 참모를 잘못 골랐다 김동렬 2004-04-30 16799
1111 이념을 버리면 지역주의로 간다 김동렬 2004-04-30 13092
1110 조기숙님 어이가 없수! 김동렬 2004-04-29 17844
1109 17대 대선의 의의는 국민참여 김동렬 2004-04-29 14796
1108 가능성을 모색하는 입장에서 김동렬 2004-04-29 148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