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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read 14672 vote 0 2009.01.30 (22:3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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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는 네트워크다

우리는 존재가 ‘항상 존재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지만, 그것은 존재가 반복적으로 일하여 특정한 형태를 만들었기 때문에 그렇게 보여질 뿐이다. 많은 경우 존재는 그 순간에 성립한다.

추상적 존재라면 더 말할 나위가 없다. 사랑이나 자유나 행복은 항상 ‘존재’하지 않는다. 그 순간에 도출된다. 전구에 불이 들어오듯 번쩍하고 탄생한다. 그 존재의 탄생과정을 관찰하지 않으면 안 된다.

우리는 딱딱한 고체 중심으로 사고하지만 사랑은 형태가 없다. 물질세계 역시 많은 경우 고체가 아니다. 특히 가족이나 국가와 같은 집합적 존재가 그러하다. 어디서 어디까지가 그것인지 특정되어 있지 않다.

군대는 외형적으로 조직되어 있지만, 그 조직이란 것은 실상 서류쪼가리에 불과하다. 어리석은 병사들은 그 서류의 의미를 모른다. 존재의 세계에는 그런거 없다. 사랑이나 자유가 서류로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다.  

진정한 것은 마음에 있다. 적이 나타나면 사이렌이 울리고 병정들이 광장에 모인다. 사이렌 소리를 듣고 도망간 사람은 병사라도 병사가 아니다. 반면 그 소리를 듣고 광장에 나온 사람은 누구라도 병사다.

서부의 개척마을에 무법자가 나타나면 종소리가 울리고 총을 맨 장정들이 거리로 나온다. 즉석에서 보안관이 선출되고 추적대가 결성된다. 군대는 사전에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순간에 만들어진다.

이것이 존재의 방식이다. 물론 같은 일이 반복되면 외형적인 조직이 생겨나겠지만 우리는 그 외형에 속는다. 존재의 본질은 다르다. 구조론의 존재는 서류쪼가리로 된 형식적인 군대가 아니라 본질에서의 군대이다.

조선시대처럼 서류로만 존재해서, 외적이 쳐들어오면 머습을 대신 보내거나, 혹은 일곱살 꼬마가 대신 나오거나(가엾게 여긴 무관이 돌려보내 주기를 기대하고) 병력이 증발해 버리는 그런 군대는 가짜다.

● 질은 원소들을 결합하여 존재 자체를 확정한다. 원소들을 결합하는 것이 밀도다. 외부의 힘이 밀도를 타고 내부에 전달된다. 내 어깨에 비둘기 한 마리가 앉아있다면 그 비둘기는 나인가?

외부에서 힘이 작용하면, 밀도가 힘을 전달하므로 나는 그 힘에 떠밀려 넘어지지 않으려고 대항하겠지만 비둘기는 날아가버린다. 외부의 힘이 그 비둘기에는 전달되지 않는다. 비둘기는 나의 존재에 속하지 않는다.

질의 의미는 존재의 영역을 확정하는데 있다. 어디서 어디까지가 그 존재인지다. 밀도에 의해 결합되어 힘이 전달되는 부분이 존재에 속한다. 존재는 원소들의 네트워크다. 거미줄로 비유하여 설명할 수 있다.

거미줄 한 귀퉁이를 살짝 건드려도 전체가 반응한다. 존재는 밀도에 의해 결합되어 있으므로 외부의 작용이 전체에 전달된다. 외부의 힘이 전달되지 않는 부분이 있다면 그 부분은 존재에 속하지 않는다.

● 입자는 코어를 중심으로 정렬한다. 존재가 존재인 것은 자기를 보존하고 외력에 대응하기 때문이다. 그 대응은 한 점에서부터 시작된다. 그 점이 코어다. 그 점이 나머지 전부를 거느리고 줄세운다.

누가 거미줄을 건드리면 코어인 거미가 대응한다. 나머지 전원은 그 코어에 종속되어 코어의 결정을 기다린다. 외부에서 무법자가 나타나면 추적대가 편성되어 보안관을 선출하고 그 보안관의 결정을 기다린다.

● 힘은 반작용 여부를 판정한다. 대응방향과 대응의 크기를 결정한다. 갈림길 앞에서 어느 길로 갈지를 결정한다. 보안관이 추적대를 거느리고 어느 방향으로 무법자를 쫓아갈지를 결정하는 것이다.

존재는 네트워크다. 네트워크는 결합이 있고 코어가 있으며 또 갈림길이 있다. 가족도 국가도 민족도 그것이 있다. 그러므로 존재는 여당과 야당, 공격과 수비, 여자와 남자로 항상 둘 이상이어야 한다.

어떤 존재에 여당은 있는데 야당이 없고, 남자는 있는데 여자가 없고, 공격은 있는데 수비가 없다면, 그러므로 판정할 필요가 없다면 그 존재는 죽는다. 외력에 대응하지 못하므로 자기 존재를 실현할 수 없다.  

선택지 2에서 실행 1로 줄이는데서 힘이 발동한다. 모든 존재는 횡의 2로 늘어서 있다가 종의 1로 전환하며 힘을 얻는다. 평등한 횡 2를 성립시키지 못하면 청와대에 깔려죽은 딴나라당처럼 존재가 관찰되지 않는다.

● 운동은 진행한다. 보안관이 추적대를 거느리고 달려간다. 이때 진행은 일직선으로 일어난다. 운동은 항상 선이다. 그것이 횡의 2를 종의 1로 전환하여 힘의 잉여를 이용할 수 있는 형태이기 때문이다.

그 반대로 되면 존재가 깨져서 사라져버린다. 달걀을 벽에 던지면 깨져버린다. 질의 결합이 약해서 입자가 코어의 독립을 이루지 못했고 따라서 힘이 횡2를 종 1로 전환하지 못하므로 존재가 부정된 것이다.

● 양은 아닌 것을 배제한다. 양은 나와 나 아닌 부분 사이에 경계를 긋는다. 사건을 완전히 종결시키는 것이다. 추적대가 무법자를 추적하여 떠나면 추적대 아닌 것이 남는다. 그것들은 존재에서 배제된다.

조깅을 하면 군살이 빠져나가고 전쟁이 나면 딴나라들이 빠져나간다. 빠져나간 것은 내가 아니다. 빠져나간 배설물이 내가 아니듯이. 어떤 것이 그것으로 된 것은 그것 아닌 것이 배제되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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