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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read 4072 vote 0 2021.07.13 (18:34:54)

    개인적으로 흥미 있는 주제다. 학자들이 헛발질 하는게 뻔히 보이므로 내가 기록을 좀 남겨둬야겠다. 사이코패스는 그것을 처음 찾아내서 학계에 보고한 교수 본인이 사이코패스였다. 프로이드는 정신에 문제가 있었다. 자신이 실험대상이라야 성과를 기대할 수 있다.


    유아기억상실증을 연구하는 학자 중에 본인의 유아기를 기억하는 사람이 없는 모양이다. 정확히 몇 퍼센트의 사람이 유아기의 일을 필자가 기억하는 정도로 기억하는지 알 수 없는게 유감이다. 열 명에 한 사람이라는 설도 있는데 애매하다. 단편적인 기억은 논외다.


    필자의 경우 생후 6개월 이전은 애매하고 그 이후는 확실하다. 방바닥을 기어다닐 때부터다. 세는 나이로 다섯 살, 만으로 네 살 때 경주로 이사를 왔으므로 산내면 시골에서의 기억은 일단 유아기의 기억이다. 여름방학 때 몇 차례 놀러가기는 했지만 그건 컸을 때이고. 


    나이가 들어서 다수 잊어버렸지만 곰곰이 생각하면 하나씩 떠오른다. 칼라는 조금 퇴색된 느낌이다. 유아기억상실이라는 개념을 처음 알게된 20년 전에는 기억이 생생했는데. 하여간 대부분의 사람이 유아기를 기억하지 못하고 기억해도 단편적인 기억이라고 하더라. 


    엄마 자궁 속에 있을 때의 일도 기억한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다. 태어나서 공기 중의 산소와 접촉하며 온몸이 따가웠다고. 신빙성이 있다. 산소가 맹독인데 아기의 피부와 접촉하면 반응이 있을 것이다. 아기를 포대기로 꽁꽁 싸매서 진정시키는 이유이기도 하고.


    나는 기억이 많아서 정리하기가 버겁다. 일단 우리집 풍경부터 떠올려 보자. 대문간에 개울이 있고 집 뒤로 1미터쯤 되는 축대가 있는데 축대 위로 뽕나무가 심어져 있고 그 아래로 수심 10센티 작은 배수로가 있는데 비 오는 날에는 그곳에서 형과 함께 세수를 했다. 


    대문간에 개울을 건너는 작은 다리가 있는데 어느 비 오는 날에 거기서 형들과 함께 진흙으로 구슬을 만들어 햇볕에 말렸다. 우리집에서 두 집 건너 이모네 집이 있는데 자주 왕래했다. 어느 날은 혼자 대문간을 나서서 모퉁이까지 와봤다. 몇 걸음마다 집 쪽을 돌아봤다.


    너무 멀리 온 것이 아닌가 하고 망설였다. 다음 날은 더 멀리까지 도전했다. 그다음 날은 더 멀리까지 갔는데 거기서 외사촌 형과 만났다. 나중에 가보니 20미터쯤 되는 짧은 거리였다. 사흘 연속 도전에 고작 20미터 간 거였다. 이런 기억 다 모으면 단편소설 한 편 된다. 


    기억은 연결돼 있다. 그 모퉁이를 한두 번 지나간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런 말을 하는 이유는 학자들이 기억을 언어와 관련짓고 있기 때문이다. 기억은 일단 그 전의 같은 기억과 연결된다. 반복되고 축적된다. 언어로 된 스토리와는 상관없다. 예컨대 이런 것이다. 


    어느 날 아침 침대에서 눈을 떴는데 내가 존재하는 것이다. 과연 내가 있는가? 기억은 모두 외부에서 이식된 것이 아닌가? 밤사이에 누가 나의 뇌 속에 컴퓨터 칩을 박아서 다른 사람의 기억을 내게로 이식한게 아닌가? 내가 내라고 단정할 수 있나? 영화에 흔히 나온다.


    기억의 스토리를 이식할 수는 있지만 그런 과거와의 시간적인 연결은 칩에 심어서 이식할 수 없다. 기억이 시간을 따라 흐르는게 아니고 같은 이미지가 겹치는 것이다. 거기에 냄새와 분위기와 느낌들이 첨부파일로 붙어 공감각을 이룬다. 자전거는 잊어먹지 않는다. 


    10년 만에 자전거를 타도 자연스럽다. 처음 자전거를 탈 때의 긴장감이 없다. 기억상실증이 심하면 아내가 낯선 사람으로 느껴진다는데 더 심하면 아폴로 우주선 타고 달을 방문한 암스트롱처럼 발을 한 걸음 내딛기도 조심스러울 것이다. 숨쉬기도 조심스러울 거다.


    공기에 독이 포함되었을지 모르잖아. 편안하고 자연스럽다면 그 자체로 기억이다. 스토리가 있는 언어적인 기억과 다르다. 컴퓨터 자판을 몸이 기억하는 것과 같다. 머리로는 모르는데 손가락은 안다. 언어적 기억을 강조하는 학자들은 뭔가 헛다리 짚고 있는 것이다. 


    기억은 공감각적이다. 전체적으로 마을 풍경이 쫙 펼쳐지고 돌담, 모퉁이, 축대, 개울물, 이웃집, 초가지붕 구석구석에 깊은 인상이 배어있다. 따스함과 으시시함과 괴기함이 있다. 그런 켜켜이 쌓인 느낌들이 추운 날 도어록을 잡았다가 손가락에 전기가 오듯 저릿하다. 

 

    전율함과 아련함이 있다. 기저귀를 갈 때마다 노란 고무줄이 피부를 찰싹 때릴 때의 공포라는 것은. 섬찟하잖아. 무섭지 않나? 그걸 어떻게 잊어? 한두 번이 아니고 무수하잖아. 그 느낌들이 되살아나면 오싹한 것이다. 그것은 물리적이고 기계적인 반응에 조건반사다.


    예전에는 학자들이 유아기억상실을 두고 정신분석학적 이유를 대곤 했는데 요즘은 바뀌었다고. 해마가 어떻고, 소뇌가 어떻고, 변연계가 어떻고, 뉴런이 어떻고 하며 물리적인 이유에서 답을 찾고 있다고. 이게 방향이 맞다. 진화과정에 획득한 형질이기도 할 것이다.


    포유류는 입양을 잘하는데 아기 때의 기억이 입양을 방해할 수 있다. 부족민 사회에서 엄마가 버린 아기를 이모들이 키우는 일은 흔하다. 기억은 왜곡될 수 있다. 동생의 일을 내가 했던 일로 착각할 수도 있다. 어른들의 이야기를 듣고 상상한 것이 착각을 유발한다.


    그런 것은 스토리가 있다. 식구들이 모여앉아서 밥을 먹을 때는 밥상 위로 기어오르려고 애를 썼는데 어른들이 손바닥으로 밀어낸다. 가족들의 식사가 끝날 때까지 혼자 놀아야 한다. 벽에 등을 기대고 식사하는 아버지와 형의 등을 차례로 타고 기어오르는게 놀이다.


    벽과 등의 틈새에 끼어있는 느낌이 좋았다. 이런 기억은 다른 사람이 이야기해 줄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어떤 사건이 아니라 목과 벽 사이의 틈에 끼어있는 공감각적인 느낌이 기억되기 때문이다. 처음 물속에 들어갔을 때 물이 무서웠던 느낌을 잊을 수가 없다. 


    큰형에게 목말을 타고 깊은 물로 들어갔는데 내가 형의 목을 졸라서 형이 놓아라고 다그친 장면, 방죽의 돌을 쌓은 축대와 검은 바위들, 단편적인 기억도 있다. 곤지곤지, 잼잼, 도리도리, 투레질, 음 소리를 내며 코끝을 간지럽게 만드는 기술, 입술을 떠는 정통 투레질. 


    소프라노 소리로 괴성을 지르는 기술, 혼자 개발한 다양한 놀이가 있었다. 똥 싸고, 기저귀 갈고, 노란 고무줄을 채우고, 엉덩이가 뚫린 바지를 조심스럽게 입고, 매번 발을 잘못 끼워 야단을 맞고, 고무신 좌우를 헷갈릴까 봐 신경쓰고, 마루에서 축대로 떨어질까 봐 걱정하고.


    그런 기억은 단편적이다. 엄마 등에 업히면 포대기로 싸매고 다시 얇은 천을 덮는다. 그 천 속에서의 아늑한 느낌을 어찌 잊을 수가 있다는 말인가? 남들은 그 기억을 다 잊어먹었다는 말인가? 기억은 공감각적이다. 익숙함과 편안함, 자연스러움 그 자체가 기억이다. 


    이미 본 영화를 모르고 다시 보다가 아, 이거 저번에 봤잖아. 하고 기억을 떠올리곤 한다. 의외로 많은 것이 뇌에 저장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고 깜짝 놀란다. 다시 불러내지 못할 뿐이다. 나는 기억력이 뛰어난 편이 아니다. 요즘은 어제 본 영화도 다 잊어먹고 다시 본다. 


    항상 하는 말이지만 닫힌계 안에서 답을 내야 한다. 잃어버린 동전은 등잔 밑에 있다. 그 자리를 조사해야 한다. 외계인, 초능력, 사차원, 음모론 하고 이야기가 밖으로 나가면 안 된다. 답은 현장에 있다. 그 자리에 물리적 이유가 있다. 정신분석학적 이유는 음모론이다.


    억지로 말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외부로 나간 것이다. 이유는 바로 그 자리에 있다. 현 위치를 사수하라. 해마와 변연계와 소뇌와 그 주변에서 무언가 일어나고 있다. 변연계가 감정을 처리한다. 감정은 기억을 저장하고 불러내는 신호다. 기억은 공감각적인 것이다. 


    섬찟함, 어색함, 기이함, 그런 느낌들이 기억을 호출하는 장치다. 방문에서 마당을 내다보면 무섭다. 마루가 없어서 조심스럽게 축대로 내려와야 했을 때는 신경이 곤두서곤 했다. 초가집 방문에서 축대를 딛고 마당까지 내려오기가 내게는 대단한 도전이고 모험이다. 


    어제도 여기서 애먹었는데 오늘도 여기서 애를 먹네. 등을 돌리고 발부터 내려와야 하나? 어떤 자세로 내려가지? 오늘과 어제와 그제로 연결되어 커다란 덩어리를 이룬다. 이런 기억은 스토리가 없다. 매번 쫄았다. 쫄고 또 쫄아서 커다란 느낌의 덩어리를 이룬 것이다.


    그때마다 이전의 기억이 호출된다. 그리고 중첩된다. 켜켜이 쌓인다. 기억은 그런 것이다.


[레벨:15]떡갈나무

2021.07.13 (22:24:15)

우는 아기를 업어주면 울음도 그치고 조금 지나 곤히 잠이 듭니다.

엄마 등에 업혀 잠이 든 아기를 보면서 '아가야 너는 참 좋겠다'라고 느껴지는건 그 자체로 엄마의 유아기적 기억이라는 것이지요? ㅎㅎ



기억의 습작 속에 한 꼬마가 정겹고 익숙하게 느껴집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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