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모습은 다양하지만 변화의 길목에서는 언제나 1로 환원된다. 변화 앞에서는 하나가 되어야 한다. 하나되기에 실패하면 기수는 낙마하고, 비행기는 추락하고, 기차는 탈선하고, 배는 침몰한다. 운전대를 잡을 때라도, 공부를 할 때라도, 밥을 먹을 때도, 똥을 쌀 때라도 하던 짓을 멈추고 하나가 되어야 한다. 혼자서는 1을 이루기 쉽다. 둘이면 쉽지 않다. 열심히 손발을 맞춰야 한다. 여러 사람이 각자 제 할 일을 하면서도 하나의 대오를 유지하려면 방향성을 알아야 한다. 시스템의 방향성을 아는 것이 아는 것이다. 시스템은 톱니가 맞물려 돌아가므로 방향성이 있다. 어떤 하나는 방향성이 없다. 어떤 둘이 외력의 작용에 맞서 하나처럼 행세할 때 방향성이 있다. 하나를 이루어야 이긴다. 외력을 이겨야 자신을 유지한다. 둘로 나눠지면 각개객파 된다. 어떻게 하나를 유지할 것인가다. 중요한 것은 톱니가 맞물리는 정도다. 그것이 자연의 조절장치다. 그것을 조절하는 방법으로 우리는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톱니를 느슨하게 풀어주거나 혹은 단단하게 조여주는 방법으로 양의 피드백을 유지하는 것이 기세다. 자연에서는 효율이 기세고, 산업에서는 혁신이 기세고, 시장에서는 이윤이 기세고, 정치에서는 권력이 기세다. 남녀 간에는 사랑이고 인간 사이에서는 의리다. 아기의 귀여움도 되고, 여자의 매력도 되고, 부자의 돈도 되고, 스타의 인기도 된다. 그것이 알아야 할 구조의 숨은 플러스알파다. 집단은 뭔가 플러스 되는 것이 있어야 최소 현상유지가 된다. 그게 없다면 감가상각에 의해 자동멸망이다. 부분의 합은 전체보다 작다. 전체에는 있고 부분의 합에는 없는 그것은 톱니의 맞물린 정도다. 조절장치다. 일방향성에 따른 효율성의 힘이 기세다. 자연은 기세를 따라 결을 이룬다. 정답은 결 따라 가는 것이다. 구슬은 방향이 없고 화살은 방향이 있다. 머리와 꼬리가 있다. 사물은 방향이 없고 사건은 방향이 있다. 원인과 결과가 있다. 일의 시작점과 종결점이 있다. 한 사람은 방향이 없다. 여럿이 모이면 방향이 생긴다. 순방향과 역방향이 있다. 방향이 엉키면 내부충돌이 일어나고, 방향을 역주행 하면 깔려 죽는다. 방향은 머리와 꼬리가 있다. 머리를 차지하여 방향에서 앞선 사람이 이득을 보는 것이 권력이다. 방향에 뒤따라가는 사람도 이득을 보는게 실리다. 먼저 가서 명분의 이득을 보는 자를 진보라고 하고, 뒤에 가서 실리의 이득을 보는 자를 보수라 한다. 그런데 명분의 이익이 더 크다. 다음 게임을 설계하는 권력이 주어지기 때문이다. 나이 든 사람은 어차피 다음 게임이 없기 때문에 보수가 된다. 메뚜기가 평방미터 당 30마리가 넘어가면 서로 충돌하면서 스트레스를 받아 호르몬이 바뀌고 몸이 날씬해지며 날개가 자란다. 그리고 일제히 한 방향으로 날아간다. 거대한 메뚜기떼를 이루는 것이다. 그것은 수학적으로 도출된다. 우연 속에서 필연이 작동한다. 이를테면 홀수와 같다. 짝수는 대칭이고 홀수는 비대칭이다. 하나는 방향이 없고, 둘은 양방향이 충돌하고, 셋이라야 일방향이 만들어진다. 둘 이상이 하나처럼 행세하는데 따른 효율성이 기세다. 기세는 자연의 조절장치다. 과학자들은 걸핏하면 뭐를 위하여 어쩌구 하지만 모든 위하여는 거짓이다. 진화생물학, 심리학, 사회학에 위하여가 많다. 위하여 들어가면 일단 개소리다. 자연에 작위적인 의도나 목적은 없다. 자연은 백 퍼센트 우연에 의해 돌아간다. 우연이면 다양한 가능성이 있는데 왜 자연은 일제히 한 방향으로 전진할까? 우연 속의 필연 때문이다. 하나이면 우연인데 둘을 넘어가면 필연이다. 두 마리가 좁은 관문을 통과하는데 한 번에 한 마리만 통과할 수 있다. 이에 순서가 만들어진다. 어미가 먼저 가고 새끼는 나중 간다. 큰 놈이 앞장서고 작은 놈이 따라간다. 그 반대가 되면? 죽는다. 새끼가 앞장서다가는 생존확률이 줄어든다. 게임의 원리가 우연 속에서 필연을 만든다. 게임은 이기는 자와 지는 자를 가린다. 좁은 관문에서 누가 앞장서고 누가 뒤따를지를 게임이 결정한다. 보다 효율적인 집단이 게임에 이긴다. 어떤 둘이 충돌하면 에너지의 방향이 바뀐다. 에너지의 방향을 결정하는 것은 게임의 승패다. 이때 이기는 자가 지는 자를 흡수하여 2가 1로 행세하는 것이 방향성이다. 이길 수 있도록 몰아주기가 일어나는 것이다. 중력과 관성력이 동시에 작용할 때 어느 쪽을 따르는가? 이기는 쪽을 따른다. 지는 쪽은 이기는 쪽에 흡수된다. 부동산 업자와 정부가 충돌할 때 시장은 어느 쪽을 따르는가? 이기는 쪽을 따른다. 정부가 이기지 못하면 정부의 세금이 부동산 가격에 합산된다. 정부가 세금을 때릴수록 집값은 올라간다. 지면 뭐든 반대로 된다. 이겨야 정책이 먹힌다. 연애를 해도 그렇다. 이기지 못하면 들이댈수록 미움을 산다. 자연에는 조절장치가 있다. 진화생물학, 심리학, 사회학에서 위하여로 설명되는 것은 모두 기세라는 조절장치에 의하여 밸런스가 조절된 결과로 바꾸어 설명해야 한다. 성 선택설이 대표적인 오류다. 건강한 유전자를 획득하기 위하여 혹은 자신의 유전자를 남기기 위해서라고 설명한다면 비과학적인 언술이다. 그런거 없다. 우연에 지배되는 자연에 무슨 목적이 있겠는가? 자연선택 개념도 무책임한 언술이다. 의식이 없는 자연이 뭘 선택해? 유전자에 숨은 조절장치가 작동한 것이다. 암컷이나 수컷이 어떤 파트너를 선택하는 것은 조절장치가 작동한 것이다. 건강한 유전자를 찾아서 후손을 남기려는게 아니라 말이 당나귀와 교미해서 노새를 낳는 실패를 피하고 교미에 성공하도록 성적 표지로 조절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자연에는 후손을 남기지 않는 성소수자도 많고 남의 아기를 키우는 입양도 흔하다. 문제는 성적 표지와 호르몬이 상호작용하여 교미에 성공해야 한다는 점이다. 시력이 나쁜 암컷 코뿔소는 의심한다. 저것이 과연 수컷이 맞아? 혹시 하마가 아닌가? 수컷의 커다란 뿔에 반응하도록 조절장치가 작동한다. 모르고 하마를 쫓아갔다가는 낭패다. 남자가 미녀를 원하는 것은 머리가 나쁜 후손을 남기려는 의도 때문이 아니라 자칫 오랑우탄이나 침팬지와 교미하는 실패를 막아주는 조절장치 때문이다. 종의 진화는 환경변화와 상호작용하는 유전자 내부의 조절장치가 일정한 조건에서 격발하도록 되어 있기 때문이다.
명나라와 청나라의 역대 황제를 비교해보면 뒤로 갈수록 멍청한 황제가 등장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왜 남자는 머리가 나쁜 여자를 선택하여 후손의 생존확률을 낮추려고 할까? 다윈이 틀린 것이다. 모든 존재에는 그것을 그것이게 하는 그것이 있다. 그것은 내부의 조절장치다. 조절장치가 없으면 존재가 부정된다. 존재는 사건이고 사건은 변화하며 변화는 따라잡기 어렵고, 따라잡으려면 나란해야 하며, 나란하게 하는 것은 균형이고, 균형은 조절된다. 보통은 전자기력이 그 역할을 한다. 물질에 크기를 부여하는 것이 전자기력이다. 물질의 근본은 에너지고, 에너지는 끝없이 출렁이는데, 그것을 붙잡아 제 위치에 두는 것은 전자기력의 공유결합이다. 전자기력이 변화를 가지런하게 하여 만물의 형태를 만든다. 자연발효된 술은 알코올 도수가 16도를 넘을 수 없다. 알콜을 만드는 효모가 자기가 만든 알코올의 독성에 의해 죽기 때문이다. 그것이 자연의 조절장치다. 돌은 어느 정도의 굳기를 가지고, 흙은 어느 정도의 점성을 가진다. 변화가 진행되다가 어느 지점에서 멈춘다. 몽돌은 몽돌끼리 모여서 가지런하니 몽돌해변이고, 조약돌은 조약돌끼리 모여서 가지런하니 자갈마당이고, 모래는 모래끼리 백사장을 이루고, 점토는 점토끼리 모여서 진흙을 이룬다. 스스로를 조절하여 존재를 달성한다. 조절장치가 없으면 그게 무한동력이다. 무한동력이 실제로 있다면 우주의 어느 지점에서 우연히 에너지가 무한히 생성되어 우주는 파괴된다. 우주가 멀쩡하게 존재하여 있다는 사실은 무한동력이 없다는 확실한 증거다. 생태계의 역사에 많은 대멸종이 있었다. 대멸종은 생물이 무한번식하여 너무 많은 산소를 생산하거나 혹은 너무 많은 이산화탄소를 생산하기 때문이다. 조절이 안 된다. 효모가 알콜에 죽듯이 자신이 생산한 부산물에 빠져 죽는다. 과거에는 곰팡이와 같은 분해자가 없어서 죽은 나무가 썩지 않고 계속 쌓였다. 갈수록 태산이다. 땅속에서 많은 석탄과 석유, 많은 석회암과 철이 존재하는 이유는 고대의 생명체가 조절장치 없이 무한폭주했기 때문이다. 종의 무한폭주는 생태계를 파괴하여 대멸종을 일으킨다. 지금은 인류가 폭주하는 중이다. 밤하늘에 별이 많지만 이는 빛이 멀리까지 가기 때문이고 별들은 띄엄띄엄 있다. 조절이 쉽지 않다. 우주에 터무니 없이 공간이 낭비되는 이유는 조절에 충분한 여유 공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신도 애를 먹었던 것이다. 뭐 하나 만만치 않다. 수학을 이길 수는 없기 때문이다. 지구를 방문하는 외계인이 없는 이유 역시 조절의 문제 때문이다. 피드백이 양이냐 음이냐에 따라 확률은 무한이 많거나 무한히 적다. 무한히 많은 외계인이 떼로 몰려오거나 전혀 오지 않거나다. 외계인들이 왕래할 수 없는 조건에서만 우주가 만들어지는 확률이 있다. 우주의 근원힘은 미는 힘이기 때문이다. 근원힘이 당기는 힘이라면 우주는 붙어서 떡이 된다. 당기는 힘은 미는 힘이 꼬여서 2차적으로 생성된 것이다. 당기는 힘이 미는 힘을 추월할 수 없다는 전제조건 하에서만 우주의 조절장치는 기능한다. 지구를 찾아오는 외계인이 없는 이유는 다른 어떤 이유에 의해서가 아니라 애초에 우주의 탄생조건에 의해 걸러졌기 때문이다. 수학적인 이유로 그 조건이 아니면 우주는 탄생활 수 없다. 빛보다 빠른게 있으면 우주는 떡이 된다. 2차적인 변화의 힘이 1차적인 탄생의 힘을 넘는 순간 우주는 망한다. 식구가 늘어나는 속도가 흥부가 집의 평수를 늘리는 속도를 추월하면 망한다. 조절은 한 방향으로만 가능하다. 양방향이면 음의 피드백을 이루어 조절비용을 감당할 수 없다. 양방향 조절은 외부의 개입에 의한 인위적인 조절로만 가능하다. 댐의 물이 떨어지는 낙하의 힘으로 수력발전을 하면서 동시에 그 반대인 상승의 힘으로도 양방향 발전을 하는 식은 될 수 없다. 그 경우는 중력과 반대의 경력을 통제하는 또 다른 힘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존재는 사건이다. 사건은 변화하며 변화는 외력에 취약하여 위태롭다. 변화의 순간 1을 유지해야 하는 점이 급소가 된다. 누가 슬그머니 개입하여 1의 연결을 방해하는 방법으로 변화를 차단할 수 있다. 전선를 끊어 전구를 끄는 것과 같다. 조절자는 조절대상보다 커야 하므로 변화는 잉여를 남긴다. 사건은 단계적으로 진행되며 조금이라도 모자라면 시스템 전체가 붕괴한다. 질, 입자, 힘, 운동, 량 중에서 하나가 멈추어도 사건 전체가 무너진다. 포드시스템의 라인스톱과 같다. 변화는 잉여를 남기며 그 잉여를 빼먹는 방법으로 존재는 유지된다. 자연의 효율과 시장의 이윤과 사회의 권력과 생태계의 번식과 산업의 혁신이 그것이다. 조절에는 한계가 있다. 결국 죽는다. 조절이 안 되면 상위단계의 조절장치를 호출한다. 개인이 망하면 가족으로 조절하고, 가족이 망하면 부족으로 조절하고, 부족으로 안 되면 국가로 조절하고, 마지막은 인류로 조절한다. 그래도 안 되면 망한다. 어떤 것의 고유한 성질은 고유한 조절장치의 밸런스다. 소금은 원래 짜고 설탕은 원래 달고 황금은 원래 반짝인다. 쟤는 원래 그렇다고 하면 그 사람의 조절장치가 그런 것이다. 성격이 다르다면 마음의 조절방법이 다른 것이다. 의사결정의 균형점이 다른 것이다. 밸런스의 축이 상대적으로 이동해 있다. 조절장치는 시스템으로 성립한다. 시스템은 표면에 에너지의 입력부와 출력부를 갖추고 외부 에너지를 내부로 들여와서 의사결정과정을 통해 제어하고 배출한다. 시스템 내부에 메커니즘이 있고, 메커니즘 내부에 스트럭쳐가 있고, 스트럭쳐 내부에 액션이 있고, 액션은 코드로 나타난다. 메커니즘은 움직이는 둘이 대칭된 채 하나의 축에 꿰어 연동된 형태다. 메커니즘은 내부의 의사결정구조가 스트럭쳐, 스트럭쳐 내부의 움직임이 액션이다. 자연의 모든 존재는 내부에서 부단히 움직이고 있으며 완전히 멈춘 것은 절대로 없다. 멈추면 외력에 반응하지 않기 때문에 존재가 없다. 움직임이 나란한 것이 멀리서 보면 멈춘 것처럼 보일 뿐이다. 우리는 진보와 보수 중에 하나를 선택하지만 문명은 언제나 앞으로 간다. 진보는 자력으로 가고 보수는 타력으로 가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내부에 자체동력이 있으면 이끌어 가고 자체엔진이 없으면 남의 뒤에서 묻어간다. 진보는 엔진이 있고 보수는 없다. 진보는 엔진이 있으므로 엔진을 돌리는 비용이 들고, 보수는 비용을 절감하지만 글라이더와 같이 관성력에 의지하므로 지속가능하지 않다. 카지노는 언제나 이긴다. 그래야 시스템이 작동하기 때문이다. 카지노가 지면 카지노의 존재 자체가 부정된다. 은행이 파산하면 금융제도가 부정된다. 조절장치는 절대로 질 수 없다. 진보와 보수는 대립하지만 국민은 언제나 승리한다. 그 국민이 환경변화에 맞게 변화하는 것이 기세다. 진보와 보수는 상대의 전략에 맞서 상대적으로 움직이지만 국민은 외부 환경변화에 맞서 절대적으로 움직여야 한다. 진보나 보수가 지면 정권이 넘어가지만 국민이 지면 나라가 망하기 때문이다. 우주 안에 방향은 둘뿐이다. 에너지의 확산과 수렴이다. 실제로는 수렴뿐이다. 확산은 원래 상태다. 존재의 디폴트 값이다. 에너지의 고유한 모습이 확산이다. 에너지가 수렴하면 우주는 수축되어 한 점 속으로 말려들어 간다. 블랙홀이 그것이다. 그것을 조절하여 존재가 있다. 자연의 항상된 모습은 확산이며 확산은 무방향이니 방향의 실패다. 방향이 만들어지면서 에너지가 수렴되면서 존재의 게임은 시작된다. 방향은 없거나 있거나 둘 중에 하나이며 없는게 확산이고 있는게 수렴이며 자연은 언제나 에너지의 확산을 수렴으로 바꾼다. 엔트로피는 사건이 에너지를 수렴하지만 사건이 종결되면 다시 확산된다는 말이다. 모순처럼 보이다. 원래의 확산에서 존재의 메커니즘에 의해 단계적으로 수렴되는데 결국 다시 확산된다. 메커니즘은 한시적이다. 우주 전체로는 확산만 존재하며 수렴은 부분적으로 성립한다. 우주의 확산속도를 국지적으로 늦추는 조절방법이 있을 뿐 그 반대는 없다. 우리가 눈으로 보는 것은 에너지를 수렴하는 조절장치다. 우주는 언젠가 망하게 되어 있고, 전체의 확산에 따른 반작용의 힘으로 국소적인 수렴을 만들며 잠시 시간을 벌어서 아슬아슬하게 지금의 모습을 유지하는 것이다. 확산하는 힘이 충돌하여 국소적으로 수렴되지만 결국 확산된다. 95퍼센트의 확산을 암흑 에너지라고 하고 5퍼센트의 수렴을 물질이라고 한다. 인간에게 삶의 방향은 타자성과 주체성이 있다. 타자성은 확산이고 주체성은 수렴이다. 민주주의는 타자성을 전제조건으로 만들어진 시스템이다. 우주의 원래 모습이 확산이므로 타자성이 인간의 원래 상태다. 성악설이 원래 상태고 성선설은 우리가 가야 하는 방향이며 문명사회의 이념이다. 자연은 성악이고 인간이 성선이다. 문명은 주체성이 이기도록 되어 있다. 에너지는 수렴할 때만 효율이 생긴다. 성선설에만 이익이 발생한다. 무조건 선이 이긴다. 이는 수학이다. 타자성은 방어하며 시간을 버는 속도조절 역할이다. 문명이 너무 빨리 진보하면 왜소해져서 조로하기 때문이다. 생쥐가 너무 빨리 번식하는 전략을 선택하였다가 어둠에 머무를 뿐 밝은 곳으로 기어나오지 못하는 것과 같다. 가족은 신뢰한다. 동료는 신뢰한다. 신뢰는 수렴이다. 신뢰하는 사람끼리 모이면 배타적으로 된다. 작아진다. 못 믿는 사람과도 거래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게 민주주의다. 못 믿는 사람과 상호작용하면서 조금씩 믿음을 넓혀가는게 민주주의다. 중국은 꽌시만 믿고 일본은 같은 동네 출신만 믿는다. 같이 마쓰리를 뛰어야 동료로 끼워준다. 그래서 망한다. 수렴은 궁지로 몰린다. 문명의 본질이 수렴인데 수렴하면 편협해지므로 애초에 판을 크게 시작해야 한다. 판이 크면 수렴해도 더 수렴할 수 있으므로 이득이 있다. 땅이 넓은 미국이 이득을 보는 이치다. 우주는 원래 타자성이고 민주주의는 원래 확산인데 정답은 언제나 주체성이고 정답은 언제나 수렴이다. 그래서 전략이 필요하다. 전략은 크게 판을 벌여서 시간을 버는 것이다. 개인 위에 가족, 가족 위에 부족, 부족 위에 국가, 국가 위에 인류로 판을 키워야 한다. 답은 어차피 혁신이 낸다. 지구의 면적과 인구의 숫자와 기술의 혁신 사이에 게임이 벌어진다. 인구가 이기면 죽고 혁신이 이기면 산다. 양차 세계대전은 인구가 이겨서 인류가 궁지에 몰린 결과로 일어난 것이다. 프리츠 하버에 의한 비료의 발명으로 맬서스 트랩을 깨면서 해결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