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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22]이상우
read 5502 vote 0 2010.12.09 (00:20:37)

9월에 전학온 은지가 잠시 찐따(왕따와 비슷, 진짜 왕따, 찌질이)취급을 당했다. 전학 온 아이에 대한 텃세라 생각하고 이해하려 했고, 애들 모르는 사이에 중간에 내가 개입해서 잘 마무리 되었다. 그로부터 두달 넘은 지난 주 금요일 은지와 소현이가 자기들이 찐따취급을 당하고 있다는 제보를 받았다. 수진이와 정은이가 자기들끼리 수근대면서 은지는 원래 찐따고 은지랑 노는 소현이와 몇몇 애들도 찐따라는 말을 퍼뜨린단다.
 
사실 확인을 위해 저녁 때 용의선상에 오른 5명의 여자애들 집에 전화를 했다. 몇가지 앞뒤가 맞지 않는  증언들이 있었으나  확실한 것은 우리반 2명이 1반 여자애한테  "은지가 찐따", "은지랑 노는 애도 찐따"라서 우리반에 찐따가 8명~11명 이라는 얘기를 들었다는 것이다.  

다음날 우리반 애들에게 친구를 찐따 취급하는 것이 얼마나 끔찍한 잘못인지 5분간 설교를 한 후 쪽지를 나눠줘서 우리반이나 다른 반에서 자신이 찐따 취급 당한 경험, 자신 외에 다른 아이를 찐따라고 놀리는 아이가 누구인지 써서 내게 했다. 대충 써서 낼 줄 알았는데, 고심하면서 15분 이상 써내려간 아이도 여럿되었다.


결과는 예상대로였다. 각반에 주로 '기쎄고, 말발있고, 공부잘하는 여론주도 여학생집단'으로 구성된   3-4명이 찐따를 판별하는 '규정자'였고, 이 규정자는 각 반에서 약하거나 내성적, 또는 자기들 눈에 비호감인 외모를 가진 애들을 찐따 취급하고, 찐따와 노는 애들도 찐따로 취급한다. 그리고, 각반에 규정자들은 다른 반과 교류하며 다른 반의 찐따가 누구인지 파악한 후 다른 반의 2-3명의 '보급자'에게 비밀을 전제로 '찐따와 노는 애들도 찐따 된다'는 저주 협박주문을 퍼뜨린다. 그러면 순진한 보급자들은 자기도 찐따로 놀림받을까 두려워 찐따로 규정된 친구를 멀리하고, 귀중한(?) 정보를 자신과 친한 친구들에게 알려준다.  그로 인해 찐따로 고통받는 아이들이 늘어난다. 반면에 2-3명의 찐따 규정자들은 자신들이야 말로 오리지널 찐따임을 깨닫지 못하고 자신들의 영향력 행사에 자만심을 느끼고, 찐따들을 보며 재미를 느낀다.   


주말에 집에서 애들이 적은 쪽지를 확인하고 우리반에도 찐따 규정자가 있음을 확인했지만, 따로 불러서 혼내지는 않았다. 문제의 심각성을 깨닫고 스스로 멈추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  길이기에. 일일이 불러서 혼내는 것은 인위적으로 잘못을 인정케 하는 강요하는 것이라 교육효과가 낮다. 한 번 더 기회를 주는 것이 합리적이다. 당장은 응징하고 싶어도 기다려줘야  그 사이에 애들이 자란다.  


월요일에 나는 설명했다. 세상에 나쁜 죄들이 많지만, 사람을 차별하고 소외시켜서 왕따로 만드는 것은 인종차별, 신분차별, 성폭행, 살인죄와 같은 범죄라고...나는 선언했다. 과거는 묻지 않겠다. 그러나 앞으로 '00는 찐따'라고 말하거나 '찐따랑 노는 00도 찐따'라는 말을 퍼뜨리는 친구들은 즉각적인 부모님 면담, '친구를 찐따로 만들지 맙시다' 라는 캠페인을 펼치게 하겠으며, 계속적인 봉사활동을 시키겠다고.


나는 선언했다. 과거는 묻지 않겠다. 그러나 앞으로 '00는 찐따'라고 말하거나 '찐따랑 노는 00도 찐따'라는 말을 퍼뜨리는 친구들은 즉각적인 부모님 면담, '친구를 찐따로 만들지 맙시다' 라는 캠페인을 펼치게 하겠으며, 계속적인 봉사활동을 시키겠다고.


다음날 화요일 아이들에게 EBS 프라임 다큐 초등생활 보고서 '차별'을 보여주었다. 내용이 재밌기도 했고, 아이들과 바로 직결되는 부분이 많아서인지 43분이란 짧지 않은 시간동안 놀라운 집중력으로 TV를 시청했다. 아이들은 차별은 편견에서 시작되고, 근거없는 편견이 차별을 낳고, 차별로 인해 왕따가 생기고, 왕따당하면서 받는 고통이 얼마나 끔찍하고 괴로운 것인지 역지사지로 조금씩 깨달아갔다.


아이들은 반카페에 소감문을 올렸다. 근거없는 편견에서 왕따가 시작되고, 왕따 시키는 행위가 얼마나 잔인하고 끔찍한 것인지, 그동안 자기가 범했던 잘못을 반성하고 안하기로 다짐하는 글들이 대부분이었다.      


김동렬의 구조론에 따르면 마음의 계기판은 존엄-자유-사랑-성취-행복의 순서로 나타난다. 흔히 말하는 자신감, 다른 사람 눈치안보기는 스스로를 존엄하다고 깨닫는데서 시작된다. 왕따가 공부잘하기는 참 힘들다. 인간관계의 고립과 자존감의 부재 속에서 제대로 공부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공부 뿐만 아니라 운동이나 다른 교육활동에서도 계속적인 소외로 이어진다. 자신의 존엄을 깨달은 사람이 자유로울 수 있으며, 자유로운 사람이 사랑하고, 자신의 잠재력을 쏟아부어 성취를 이루어 행복에 이를 수 있다.


왕따문제는 인간 삶의 전제인 존엄 자체를 무너뜨리기 때문에 살인죄와 다름 없다. 주로 초등학교 4학년때 부터 서서히 나타나서 6학년이면 거의 고착화 되는 왕따문제는 교사와 학부모, 학생들의 노력으로 충분히 극복 가능하다.


그럼에도 대부분 현장에서 왕따 문제는 원래 있던 것, 처리하기 어려운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일면 맞는 부분도 있지만, 상당 부분은 패배주의적인 시각에 불과하다. 그동안 개인적으로 여러 왕따 아이들의 변화를 시도했고, 학년이 바뀌어도 나아진 모습들을 쉽게 발견할 수 있었다. 올해 맞은 6학년 왕따 여자아이도 많이 달라지고 있다.


문제는 현장에서 왕따 아이가 변하여도 애가 때가되서  변화했으려니 하고, 안변하는는 애는 원래 그러려니 한다는 점이다. 초등교육의 가장 중요한 부분이 아이가 스스로 자신감을 갖고 자기 일을 해나가고, 함께 어울려서 일을 해나가면서 즐거움을 찾는 것이다. 그럼에도 왕따 문제에 대한 현장 선생님들의 고민과 노하우는 너무 빈약한 듯 싶다.


왕따 문제는 교사가 가장 강조하고, 지혜롭게 애써야 할 부분이다. 올해 이 부분이 해결되지 않으면 내년에 아이는 더 심해진다. 내후년에는 거의 회복 불가이다. 왕따문제 개선을 위한 교사의 관심, 기술적인 노하우, 협력작업 등이 마련되야 한다. 왜냐하면 이 문제는 아이와 부모, 학생과 학생 사이에 있는 교사가 아니면 해결할 사람이 아무도 없기에...     

 

-EBS프라임 다큐 초등 생활 보고서 1부 '차별'-

http://tvpot.daum.net/clip/ClipView.do?clipid=25463795&q=%C2%F7%BA%B0%20%C3%CA%B5%EE


프로필 이미지 [레벨:6]지여

2010.12.09 (11:06:01)

상우님의 아이들에 대한 사랑이 -  멀리멀리 - 넓게 넓게 - 오래오래     떨림이 되어 번져 나갈겁니다.
뜰앞(학교)의 잣나무(아이)  한그루는  지구전체가 화분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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