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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read 3829 vote 0 2021.05.13 (11:36:54)

    언어의 문제


    인간이 진리에 이르지 못하는 이유는 잘못된 언어사용 때문이다. 편지를 보낼 때는 봉투에 주소를 써야 한다. 언어는 주소와 같다. 그런데 언어가 전달하는 것은 의미다. 의미라는 메시지를 주소라는 택배상자에 담아서 전달하는 것이다. 그런데 헷갈린다. 편지를 전달하는게 아니라 주소를 전달하고 있다.


    내로남불 타령 하는 자들이 있다. 메시지를 반박할 수 없을 때는 메신저를 공격하라. 달을 가리키면 손가락을 보라. 검찰개혁을 반박할 수 없으면 조국을 공격하라. 언론개혁을 반박할 수 없으면 김어준을 공격하라. 지구 온난화를 반박할 수 없으면 툰베리를 공격하라. 툰베리가 방귀만 뀌어도 지구 온난화다. 내로남불이다. 남이 온실가스 배출하면 불륜이고 툰베리가 방귀를 뀌어 메테인을 방출하면 로맨스냐? 비열한 바꿔치기 속임수다.


    생텍쥐페리의 소설 어린왕자 한 장면이다. '양 한 마리만 그려줘.' '양은 상자 안에 들어있어.' 양을 그려주지 않고 상자를 그려준다. 어린왕자는 만족한다. 메시지를 그려주지 않고 메신저를 그려준다. 곤란한 질문을 받을 때가 있다. '엄마. 나는 어떻게 태어났어?' '너는 황새가 물어다 줬어.' 황새는 메신저다.


    언어는 동사가 메시지고 주어는 메신저다. 동사에 의미가 있다. 그런데 우리는 착각한다. 주어에 의미가 있다고 믿는다. 왜 그럴까? 대칭원리 때문이다. 인간은 대칭을 통해 사유한다. 일단 주체와 객체의 대칭을 통해 대상을 눈앞에 붙잡아 놓아야 한다. 어디로 도망가지 못하게 말이다. 동사는 움직인다. 움직이면 도망친다. 도망치면 곤란하다. 인간은 대칭을 붙잡고 있는 주어를 의미로 착각한다. 메신저를 메시지로 착각한다. 황새를 아기로 착각한다. 상자를 양으로 착각한다. 메시지를 반박하지 않고 메신저를 공격한다. 달은 보지 않고 손가락을 째려본다.


    사유의 실패는 관측자인 주체와 관측대상인 객체를 대칭시킨 상태에서 그 대칭의 끈을 놓지 않기 때문이다. 불교에서 말하는 무아의 경지를 떠올려도 좋다. 나를 배제해야 사건이 객관화 된다. 나를 잊어버려야 한다. 그래야 동사가 포착된다. 주체와 객체를 대칭시키지 말고 객체 안에서 자체의 대칭을 찾아야 한다.


    생명은 어디에서 왔는가? 진화론이 답을 제시한다. 반대편에 창조설이 있다. 그런데 창조설은 생명의 내막을 설명하지 않는다. 생명의 근간이라 할 DNA와 호흡과 에너지 대사에 대해 말하지 않는다. 창조설은 이론이 아니다. 잘 모르겠으니까 신에게 물어보라는 식의 회피행동이다. 그것은 도망치는 것이다. 창조설은 메시지가 아니라 메신저다. 어린왕자의 상자와 같다. '1+2는 얼마지?' '수학자에게 물어보셔.' 이건 답변이 아니다. 창조설은 신이라는 메신저에게 물어보라고 둘러대는 것이다. 황새가 아기를 물어다 줬다는 식이다. 황새한테 물어봐. 봉투에 써진 주소를 전달하지 말고 봉투 안의 편지를 전달해야 한다.


    세상은 무엇으로 이루어졌는가? 생물은 진화론으로 설명할 수 있다. 무생물은? 그것을 설명하는 이론은 없다. 원자설은 막연히 얼버무리는 주장이다. 원자 역시 양이 들어 있는 어린왕자의 상자다. 원자는 메신저고 구조가 메시지다. 원자는 쪼개지지 않는다. 왜? 편지봉투가 찢어지면 안 되기 때문이다. 원자는 택배상자다. 택배상자가 깨지면 안 된다는 말이다. 우리는 용감하게 어린왕자의 상자를 열어버려야 한다. 원자라고 불리는 '데우스 엑스 마키나'를 깨뜨려야 한다. 메신저를 부정해야 메시지가 포착된다. 손가락을 버려야 달을 볼 수 있다. 메신저에 대한 관심을 끊어야 메시지를 볼 수 있다.


    세상은 구조로 이루어져 있다. 구조가 메시지다. 동사가 메시지다. 바람이 부는 것이 아니라 부는 그것이 바람이다. 부는 것은 동사다. 동사는 움직인다. 움직임을 반영하는 것은 메커니즘이다. 메커니즘을 규명하여 동사를 찾아내는 것이 지식이다. 동사라는 움직임을 주어라는 상자 안에 가두는 것이 언어다. 상자를 꽉 붙들고 놓으려고 하지 않기 때문에 상자 안에 들어있는 진리를 보지 못한다. 


    진실은 동사이며 동사는 움직이는 것이며 움직이는 것은 변화이며 자연에서 최종적인 것은 순간변화율이다. 인간의 언어는 주어와 동사, 전제와 진술로 이루어진다. 동사를 명사에 담고, 술어를 주어에 담고, 진술을 전제에 담아 명제를 이루고 다시 그것을 조건문과 반복문 형태로 담론에 담는다. 담론까지 구조가 갖추어져 완성된 것을 이론이라고 하고 거기까지 가지 못하고 어중간한 것을 설이라고 한다.


    창조설은 설이지 이론이 아니다. 담아서 운반하는 상자는 있는데 그 속이 비었기 때문이다. 봉투는 있는데 편지가 없다. 황새는 있는데 아기가 없다. 손가락은 있는데 달이 없다. 메신저는 있는데 메시지가 없다. 


    인간은 대상을 자신과 대칭시키는 데만 관심이 있다. 고양이처럼 잽싸게 상자를 차지하고 상자 안의 내용물은 신경쓰지 않는다. 전달된 의미를 받으려는 것이 아니라 그저 자신과 연결시키려는 것이다. 편지에는 관심이 없고 집배원과 인사를 텄다는 사실에 만족한다. 


[레벨:4]고향은

2021.05.13 (20:28:50)

메시지의 몸통과 메신저의 몸통을 공유하면서,
우리는 연결된다
그런데 우리가 일상으로 쓰는 언어가
주로 시간의 몸통에 맞춰져 있다
즉 심리적 몸통을 공유하는 것에
최적화 되어 있다

새로운 관심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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