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메커니즘이다 도무지 바람이 움직이는 것인가, 깃발이 움직이는 것인가, 지켜보는 그대의 마음이 흔들리는 것인가? 메커니즘이 움직이는 것이다. 흔들리는 깃발과 부는 바람과 그것을 지켜보는 사람까지 3자 사이의 관계가 흔들리는 것이다. 눈에 보이는 것을 보려고 하므로 홀리는 것이다. 그 이상을 보지 않으면 안 된다. 세상은 연결되어 있다. 깃발도 아니고 바람도 아니고 마음도 아니고 그 연결되어 있음이 움직이는 것이다. 공을 던지는 사람을 보면 안 되고, 날아오는 공을 보면 안 되고, 궤적을 봐야 한다. 정지해 있는 것을 보면 안 되고, 움직이는 것을 보면 안 되고, 움직이는 것 중에서 움직이지 않는 것을 봐야 한다. 더 정확히 말하면 움직이는 것들 사이에서 움직이지 않는 관계의 움직임을 봐야 한다. 정지해 있는 것은 자동차다. 움직이는 것은 속도다. 움직이는 것 중의 움직이지 않는 것은 가속도다. 움직이는 것들에서 움직이지 않는 관계의 변화는 순간변화율이다. 그것이 뉴턴과 라이프니츠의 미분이다. 그것으로 다음에 일어날 변화를 예측할 수 있다. 대상을 통제할 수 있다. 여기까지 봤다면 뭐를 좀 봤다고 말할 수 있다. 여기까지 보지 않았다면 눈 뜨고 아무것도 보지 못한 것이다. 메커니즘 중심의 사유를 얻어야 한다. 바람이 부는 것이 아니라 부는 메커니즘이 바람이다. 물이 흐르는 것이 아니라 흐르는 메커니즘이 물이다. 사람이 사는 것이 아니라 사는 메커니즘이 사람이다. 생명이 호흡하는게 아니라 호흡하는 메커니즘이 생명이다. 메커니즘 중심의 사유는 정지해 있는 것이 아니라 변화하는 것 중심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눈에 보이는 어떤 대상을 지목하면 안 된다. 관측자인 자신과 대칭시키면 안 된다. 보는 주체와 보여지는 객체가 서로 마주보면 안 된다. 그 경우 주어에 동사를 가두는 실패를 저지르게 된다. 정靜에 동動을 가두는 실패를 저지르게 된다. '불다'를 '바람'에 가두면 그 바람은 더 이상 불지 않는 바람이다. 기압골의 이동을 알 수 없게 된다. 바람이 부는 메커니즘은 바람보다 크다. 전체는 부분의 합보다 크다. 전체에는 부분의 합에는 없는 액션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산 것은 죽은 것보다 크다. 흐르는 물은 고인물보다 크다. 동動은 정靜보다 크다. 움직이는 것은 머물러 있는 것보다 크다. 동에는 정에 없는 순서와 방향의 질서라는 플러스알파가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전체는 효율적이고 부분의 합은 비효율적이다. 전체는 연결되어 있고 부분의 합은 떨어져 있다. 연결된 것은 연결비용을 절약하므로 효율적이다. 움직이는 것은 공간을 적게 쓰므로 효율적이고, 머물러 있는 것은 공간을 넓게 쓰므로 비효율적이다. 움직이면 끊어지고, 끊어지지 않으려면 연결해야 하며, 연결하면 서로 접점을 공유하는 만큼 효율적이다. 세상의 모든 것은 연결되어 있다. 연결되지 않는 것은 없다. 자체적으로 연결되느냐 아니면 외부와 연결되느냐다. 머물러 있는 것은 지구와 일대일 관계를 맺고 있다. 지구의 중력에 잡혀 있다. 정을 동으로 바꾸려면 지구와의 관계를 단절해야 한다. 거기에 비용이 든다. 움직이는 것은 지구와 관계를 끊고 무게중심과 자체적인 관계를 맺는다. 내부에 질서를 만든다. 대칭을 이루고 코어를 정한다. 코어 하나가 대칭된 둘을 상대하므로 효율적이다. 머무르는 것은 외부에 잡혀 있고 움직이는 것은 독립해 있다. 독립한 것은 질서가 있다. 동이 정보다 크다. 동은 메커니즘이다. 원인은 의사결정 메커니즘이다. 사건은 의사결정하고, 의사결정은 이기는 것이며, 이기려면 효율을 얻어야 하고, 효율을 얻으려면 공유해야 하고, 공유하려면 붙잡아야 하고, 붙잡으면 구속되고, 구속된 상태에서의 변화는 그것을 끊는 비용의 손실을 일으키며, 변화할수록 손실은 점차 커진다는게 엔트로피다. 내부의 질서를 잃어먹는다. 여기에 방향성이 있다. 작은 그릇에 큰 그릇을 담을 수 없다. 큰 것을 먼저 하고 작은 것을 나중 하라. 그것이 순리다. 마이너스 원리다. 우주에는 오직 에너지의 확산을 수렴으로 바꿔서 공간을 좁히는 만큼 효율을 얻고 그 효율로 이겨서 의사결정하는 메커니즘의 원리 하나가 원인으로 있을 뿐이다. 그것이 세상 모든 문제의 모든 원인이다. 에너지의 확산과 수렴 등잔 밑이 어둡다는 말이 있다. 우리는 인과를 시간으로 이해한다. 시간은 흐른다. 흐르면 멀어진다. 떠나버린다. 알 수 없게 된다. 우리는 알 수 없는 것에서 답을 찾으려고 하며 답을 찾기에 실패해도 알 수 없으니까 하고 포기한다. 공간은 그곳에 있다. 공간은 어디 가지 않는다. 등잔은 여전히 그 자리에 있다. 알 수 있다. 답을 찾을 수 있다. 그러므로 포기하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인과를 시간의 사정으로 이해하므로 멀리서 답을 찾으려고 한다. 시간이 흐르기 때문에 원인이 어디로 멀리 흘러가 버렸다고 여기는 것이다. 인과를 공간의 사정으로 이해해야 바르다. 공간은 안과 밖이 있다. 원인은 안에 있다. 가운데 코어에 있다. 그러므로 알 수 있다. 단, 겉에서는 알 수 없고 내부구조를 뜯어봐야 한다. 공간적 대칭의 추적으로 가능하다. 원인이 원인이다. 원인 그 자체가 원인이라는 말이다. 외부의 어떤 알 수 없는 원인 말고 주어진 사건 안에서 메커니즘을 찾아야 한다. 닫힌계를 지정하고 그 안에서 답을 찾는 것이다. 메커니즘은 에너지의 확산을 수렴으로 바꾸는 것이다. 닫힌계 안에서 에너지의 방향이 확산에서 수렴으로 바뀌는게 진짜 원인이다. 중국은 왜 그랬을까? 에너지가 수렴되었기 때문이지. 일본은 왜 그랬을까? 역시 에너지가 수렴되었기 때문이야. 국힘당은 왜 그랬을까? 역시 에너지가 그리로 수렴되었기 때문이다. 우주 안의 모든 사건에 적용되는 공통된 원인은 에너지의 수렴에 의한 사건의 격발이다. 활시위가 풀어져 있는 것은 에너지의 확산이다. 활시위가 팽팽하게 당겨지는 것은 에너지의 수렴이다. 에너지는 활에서 활시위를 거쳐 화살로 수렴된다. 바람의 방향이 바뀌듯이 일순간에 에너지의 방향이 바뀌는게 사건의 원인이다. 상부구조가 개입할 때 자석의 극이 바뀌듯이 에너지의 방향이 바뀐다. 부인과 살갑게 대화하다가도 친구가 방문하면 갑자기 어깨에 힘이 들어가서 남편이 고압적인 태도로 변한다. 친구들 앞에서 가부장의 체면을 세우려고 하는 것이다. 그럴 때 에너지의 방향이 바뀐다. 무의식적으로 외력의 작용에 대항하려고 에너지를 가장 중심으로 결집한 것이다. 자연의 어떤 상태는 에너지의 확산상태다. 그 상태에서 외력이 작용하면 깨지거나 아니면 대항한다. 깨지면 존재가 부정되므로 논외다. 그것은 무다. 무는 없으므로 논할 이유가 없다. 대항하면 에너지의 방향이 수렴으로 바뀌고 내부에 코어를 형성한다. 그것이 모든 사건의 모든 원인이다. 총이 격발되듯이 사건은 일어난다. 조절의 스위치가 켜지는 것이다. 자연의 어떤 상태는 환경에 붙잡힌 상태다. 상태를 변환하는 데는 비용이 든다. 그러므로 세상은 마이너스다. 사건은 상태의 변환이다. 상태의 변환에 드는 비용을 외부의 도움 없이 자체적으로 지불해야 하므로 마이너스다. 만약 외부의 도움이 있다면 사건은 그 외부에서 일어난 것이므로 논외가 된다. 부모가 자식의 등록금을 대줬다면 그것은 부모의 사건이다. 에너지의 공급자가 사건의 주체다. 자연의 어떤 상태는 연결이 단절된 상태이며 사건이 일어나면 연결비용이 청구된다. 연결비용을 조달할 수 있는 한 방향으로 진행한다는 것이 엔트로피다. 외부의 환경에 붙잡힌 상태 혹은 내부적으로 단절된 상태를 에너지의 확산이라고 하고 반대로 외부환경으로부터 독립하여 내부적으로 연결된 상태를 에너지의 수렴이라고 한다. 모든 사건은 에너지의 확산을 수렴으로 바꾸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