Ⅲ. 구조론의 마음이론
우리가 마음이 존재한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외부의 자극에 대해 내부, 즉 신체에서 무언가 감정반응이 올라오고, 이 감정반응에 대응하기 위해 생각이 일어나며, 생각과 생각이 충돌할 때 이를 교통정리하려는 의도가 자각되고, 의도와 의도가 부딪힐 때, 이를 조정하는 자아, 즉 의식의 존재를 깨닫게 되고, 의식이 계속 외부환경과 맞서는 과정에서 외부환경을 조금씩 자아의 바운더리 안으로 들여와 마침내 신, 세계, 우주, 인류, 문명, 역사라는 더 큰 단위의 존재와 마주하게 되기 때문이다. 마음이란 외부에서의 자극을 처리하는 하나의 메커니즘이며, 외부자극으로 인한 밸런스의 흐트러짐을 다섯 단계의 일처리를 통해 바로잡는 일종의 저울이다(김동렬, 2010a).
구조론은 모든 사건을 다섯 단위로 설명한다. 마음 역시 정신-의식-의도-생각-감정이라는 다섯 단위로 설명한다. 이러한 마음의 다섯 단위는 정적인 구조가 아니라 일을 하는 구조다. 외부환경을 끌어들여 마음이라는 내부에서 처리해 감정이라는 신체반응으로 출력한다. 구조론은 마음이 수억 년 전 원시생물의 아주 기초적인 반사로부터 출발했다고 가정하고 있다. 외부의 자극에 반사하는 것 자체가 원시적인 마음이고 이러한 마음이 지금처럼 고도로 진화한 것은 외부 환경의 자극을 내부로 끌어들이고 복제하여 뇌에 머무르게 하는 과정을 통해 이뤄진 것이다(김동렬, 2010a).
마음의 구조에서 가장 말단에 위치한 감정은 기본적으로 하등동물의 반사와 같은 자극에 대한 직접 반응이며, 생각은 언어를 통해 외부의 자극을 내부에 머물게 하는 것이고, 의도, 의식, 정신으로 갈수록 고도로 추상화되어 외부환경을 보다 폭넓고 깊게 자기 안으로 끌어들일 수 있게 된다. 이렇게 감정-생각-의도-의식-정신 순으로 이뤄지는 마음의 진화는 점점 마음이 머금는 대상의 범위가 커진다는 명백한 방향성을 지니고 있으며 언어를 사용하는 인간의 경우엔 감정 수준만 알아차릴 수 있는 동물들과는 달리 언어를 통해 생각-의도-의식-정신을 알아차리는 것이 가능하다. 단순히 대상에 대한 반응(감정)에서 대상의 수용(생각)에서 대상의 통제(의도)에서 자기 전체를 통제(의식)에서 외부환경에 대한 통제(정신) 수준에 이를 때까지 인간의 마음은 진보해왔다. 인간은 이 중 정신 단계에서 외부환경에 대응할 수 있으며 인간을 가장 크게 지배하는 환경인 죽음마저 정신 단계에서 극복할 수 있다(김동렬, 2010a).
진화의 방향성은 감정-생각-의도-의식-정신 순이지만 외부환경에서 촉발된 사건을 마음이 처리하는 과정은 반대로 진행된다. 구조론에선 인간의 마음에 기본적으로 정신-의식-의도-생각-감정이라는 마음의 다섯 단위가 사전에 세팅이 되어있고 이 세팅에 따라 마음이 일을 한다고 가정한다. 마음은 외부환경에 맞서 내부에서 다섯 층위를 거쳐 이뤄지는 하나의 사건이며 마음이라는 사건의 마지막 단계인 감정에 이르러선 외부환경을 향한 행동으로 나아간다. 인간의 행동은 외부환경에 영향을 끼치고 행동에 의해 변화한 외부환경이 다시 인간의 마음에 영향을 끼쳐 마음의 일처리가 다시 정신-의식-의도-생각-감정 순으로 이뤄진다. 외부환경의 자극을 마음이라는 메커니즘으로 처리해 감정을 출력하고, 이 감정을 가지고 행동을 촉발하여 외부환경에 대응하는 데 성공함으로써 마음의 일싸이클이 완성되는 것이다. 구조론에서 마음의 존재 의의는 일하는 데에 있다. 마음은 외부의 자극을 받아들여 이를 행동으로 처리하기 위해 존재하며, 마음의 출력물은 감정을 가지고 외부환경에 행동으로 대응할 때 마음이 편해지고, 그렇지 못할 땐 불편해진다. 따라서 구조론에선 마음의 문제를 마음 내부의 욕망에 귀인 시키지 않고, 외부자극과의 관계에서 인간이 이를 마음의 일처리과정을 거쳐 행동으로 대응하지 못할 때, 한 마디로 외부환경과의 관계에서 우위에 서지 못할 때 마음에 문제가 있는 것으로, 불행한 것으로 간주한다. 마음의 행불행의 절반은 근본적으로 바깥환경의 영향 하에 있기 때문에 마음 내부를 제어하는 것만으로는 결코 마음의 문제를 온전히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이다(김동렬, 2010a).
여기에서 유념할 것은, 마음의 일처리를 맡은 다섯 단위, 층위, 혹은 수준이라 표현할 수 있는 정신-의식-의도-생각-감정이 각 단어의 사전적 의미와는 다른 맥락 안에서 다른 의미로 쓰인다는 점이다. 구조론에서 사용하는 어휘는 모두 “구조어”로써 단어의 의미가 기존의 사전적 의미로 정의되는 것이 아니라 구조 내에서의 포지션에 따라 정해진다. 정신-의식-의도-생각-감정이라는 어휘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각 어휘들이 차지하고 있는 포지션이 마음의 일처리 과정에서 실제로 나타난다는 점이 중요하다. 각 단어의 사전적 의미로 이해하면 안 되고 각 포지션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 가를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Ⅳ. 마음이 일하는 구조, 정신-의식-의도-생각-감정
정신
마음은 정신-의식-의도-생각-감정의 일방향으로 전개한다. 외부환경의 자극에 대해 가장 최초로 반응하는 마음의 일처리 단계는 바로 정신이다. 정신은 구조론에서 마음의 가장 높은 포지션을 차지하고 있으며 환경과 지금 자신이 처해있는 상태의 모순을 읽어내는 상태를 의미한다. “정신을 차리다”라는 우리말 표현은 바로 이 정신의 단계를 묘사하는 말이며, “호랑이에게 물려가도 정신만 차리면 산다”라는 표현은 마음에서 정신의 포지션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시사하고 있다. 인간의 마음은 환경에 대응하여 인간 자신을 환경에 대해 우위에 두려고 하는 목적을 지니고 있으며 이 환경은 비단 신체 바깥에서 벌어지는 일 뿐만 아니라 자신의 신체 내부에서 벌어지는 일 역시 마음이 대응하는 환경에 포함된다. 예를 들어 잠이 덜 깨거나, 술에 취한 상태 역시 마음이 대응해야 하는 환경이며 이에 대해 마음은 정신을 차리는 것으로부터 일처리를 시작하는 것이다. 정신의 일은 바로 정신 차리는 것이다. 정신 차린다는 말은 외부환경에서 벌어지는 일 혹은 자신의 신체에서 벌어지는 일을 감각기관에서 뇌를 거쳐 몸 전체로 통보하는 것을 뜻한다. 이때 인간의 마음은 깨어나 왠지 들뜨고 긴장하게 된다(김동렬, 2010a).
의식
일단 정신을 차리고 나면 마음은 다음 단계의 의식을 작동시킨다. 의식은 뇌가 몸 전체를 장악하고 통제하는 것을 의미한다. 정신에 의해 대상을 정확히 포착하면, 의식은 그에 맞서 몸 전체의 반응을 불러일으켜 대상에 맞설 준비를 한다. 정신의 일이 호랑이라는 대상의 전모를 온전히 파악하는 것이라면 의식의 일은 그에 맞서 극도의 긴장이라는 준비태세를 갖추는 것이다. 이때 외부 환경에 맞서는 축의 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자아다(김동렬, 2010a).
구조론에서 의식이 있다는 것은 곧 자아가 있다는 말이고, 자아의 역할은 외부환경에 맞서 내부에서 일을 처리할 구심점 노릇을 한다. 구조론에서의 의식, 즉 자아는 정신이 포착한 외부환경에 내부에서부터 대응하기 위해 성립되는 것이며 이는 마치 어떤 물체에 가해지는 중력에 대한 물체의 대응으로 물체 내부에 무게중심이 성립하는 것과 같다. 자아는 고정되어있는 어떤 실체가 아니라 외부환경에 대한 대응과정에서 성립하는 것이며 외부환경에 어떤 수준에서 맞서느냐에 따라 자아의 수준도 달라진다. 우리가 역사의식, 환경의식, 시민의식, 공동체의식 등을 언급할 때 말하는 의식이 바로 구조론에서 말하는 의식에 해당하며, 역사, 환경, 공동체 등의 외부환경에 대한 의식이 없이는 그에 대한 자아의 대응 또한 불가능하다. 자아의 수준은 가족-사회-국가-세계-우주에 대응하는 순으로 점점 더 높아지며 마침내 대응하는 외부환경이 세계에 이르는 시점에서 자아는 신, 진리, 완전성과 대면하게 된다(김동렬, 2010a).
의도
의식의 단계에서 뇌가 몸 전체를 완전히 장악하고 통제할 수 있게 된 다음엔 마음의 공간적인 진행방향이 정해진다. 즉 마음은 정신에 의해 포착되고 의식에 의해 준비된 대상에 대해 적극적인 대응을 시작하는 것이다. 이 단계를 구조론은 의도라 표현한다. 방향은 잡았지만 아직 구체적인 진행은 하지 않은 상태가 바로 의도의 단계이다. 의도와 관련하여 한 가지 유념할 것은 의도가 평소엔 잘 의식되지 않는 다는 점이다. 구조론에서 말하는 의도는 우리가 평소에 자주 사용하는 의미의 ‘의도’ 즉 ‘의식적으로 마음 먹기‘보다 더 심오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구조론에서 의도는 기본적으로 정신-의식의 마음의 일처리 과정을 거치면서 파악된 외부환경과 나와의 관계, 지위, 포지션에서 유도되는 것이다. 외부환경이 또래관계일 경우 의도는 자신의 캐릭터를 일관되게 구축하여 친구들로부터 신뢰를 얻고자 하는 의도를 품는 것을 뜻하며 이는 보통 고정된 역할을 고수함으로써 상대가 예측 가능한 행동을 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가족 내에서 어린아이의 경우엔 보통 부모로부터 성장하는 데 필요한 도움과 지지를 얻기 위해 어리광을 부리는 포지션에 위치하면서 떼를 쓰거나, 울거나 하는 식의 행동을 보이며, 이 역시 다분히 의도적인 것이다. 남녀의 역할을 나눠놓고 이에 집착하는 것 역시 의도이며, 이는 자신의 역할을 한정하여 상대로 하여금 나를 신뢰하고 의존하게 만들려는 의도를 지니고 있다. 의도는 관계 내에서 자신의 포지션을 정하고 이를 지키고자 하는 의지를 뜻하며, 외부환경과의 관계에서 자신을 주도적으로 놓느냐, 아니면 종속적으로 놓느냐에 따라 의도 단계에서의 포지션이 달라진다. 만약 마음의 상부구조인 정신-의식 단계에서 자아를 대인 관계에서 주도적인 것으로 설정하면 리더의 포지션을 지키려는 의도를 품게 되고 종속적으로 설정하면 추종자의 포지션을 지키려는 의도를 품게 되는 것이다(김동렬, 2010a).
생각
대상에 대한 의도가 정해지면 마음은 대상을 향해 구체적인 일을 진행한다. 생각은 의도에 따라 결정된 길을 가는 것이다. 의도에 따라 내려진 판단을 어떻게 실천할 것인지를 구체적으로 풀어내는 것이 생각이다. 예를 들어 의도 단계에서 어떤 사람과 사귀겠다는 마음을 먹으면 그에 따른 구체적인 고백 방법과 데이트 계획을 고민하는 것이 생각의 단계인 것이다(김동렬, 2010a).
감정
감정은 마음이 위와 같은 정신-의식-의도-생각의 일처리 과정을 거치면서 생각 단계에서 세운 구체적인 계획들을 실천하게끔 행동을 촉발할 에너지를 끌어올리는 것을 의미한다. 감정이 올라오면 호르몬의 작용으로 호흡이 교란되고 근육이 긴장되고 감정을 처리하기 전엔 다른 일로 넘어가기가 어려워진다. 감정의 목적은 어디까지나 행동을 촉발하는 데 있으며. 감정에 의한 에너지 분출로 같은 행동을 반복할 경우, 감정에 의해 촉발된 호르몬 과다분비로 인해 도박중독처럼 의미없는 행동을 반복하는 경우, 즉 욕망에 휘둘릴 경우엔, 이를 멈추고 다시 정신단계로 돌아가 다시금 새로운 외부상황을 포착하고 이에 대응할 수 있어야 한다(김동렬, 2010a).
구조론에서 말하는 바깥, 즉 외부환경은 인간의 피부를 경계선으로 한 신체의 바깥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 구조론은 작용 측이 되는 쪽이면 일단 구조의 원리상 바깥으로 친다. 과학에선 뇌의 범위를 두개골 내에 위치한 것으로 한정 짓지만, 구조론에선 작용반작용이 성립하는 범위 전체를 하나의 사건으로 보기 때문에, 인간의 오감과 의식이 닿는 범위 전체를 뇌로 친다. 몇 억 광년 떨어진 별빛을 본다는 하나의 사건에서 작용 측인 별빛과 이에 대한 반작용으로 별빛을 시각으로 수용해 ‘별빛’으로 표상하는 망막과 두뇌 둘 다 뇌인 것이다. 구조론은 기본적으로 사건을 중심으로 한 일원론적 관점을 견지하고 있다. 작용(원인)에 의한 반작용(결과)을 한 덩어리의 사건으로 보며, 마음 역시 외부환경의 자극(작용)에 대한 마음의 일처리라는 반작용으로 이루어진 하나의 사건이기 때문에 구조론에선 심신이원론도 유물론도, 유신론도 성립될 수가 없다(김동렬, 2010a, 2010b).
이상이 구조론에서 말하는 정신-의식-의도-생각-감정이다. 이것이 바로 구조론이 말하는 마음의 구조, 마음의 일처리 경로이다. 마음이 다섯 단계를 거치며 일함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경로를 우리가 쉽사리 포착하지 못하는 이유는 첫째, 이 다섯이 거의 동시에 나타나기 때문이고, 둘째, 보통 정신-의식-의도-생각이 사전에 미리 세팅되어 있어 정신에서 감정으로 곧바로 반응이 나타나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인간의 행동은 반복적인 조건화를 통해 형성되어 기계적으로 진행되며 정신-의식-의도-생각-감정의 단계를 차례대로 밟는 일은 극히 드물다. 예를 들어 누군가가 하는 욕을 들은 경우엔 ‘내가 지금 들은 것이 욕이 맞는지(정신)’, ‘그 욕이 나에 대한 욕인지(의식)’, ‘욕에 맞서 대응할 것인지 여부(의도)’. ‘욕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생각)’에 대한 점검 없이 그냥 바로 기분 나쁨(감정)으로 전개해 이에 대한 맞대응(행동)에 나서는 경우를 보자. 이는 사전에 이미 ‘욕을 들으면 욕으로 갚겠다’라는 생각과 ‘욕을 들으면 참지 않겠다’라는 의도와 ‘나는 욕을 들으면 참지 않는 사람’이라는 의식이 사전에 세팅되어있었기 때문에 자동적인 반응이 나오는 것이다. 이처럼 인간의 마음은 비슷한 상황에서 반복적으로 일처리를 함에 따라 정신-의식-의도-생각을 미리 세팅해 놓고 만약 비슷한 상황이 또 발생할 경우 똑같은 행동을 반복함으로써 의사결정의 수고를 더는 방식으로 작동하며 이는 의사결정의 수고는 덜지만 정작 새로운 상황이 펼쳐져도 사전에 미리 세팅된 방식대로, 마음의 관성대로 일하려 한다는 위험성을 안고 있다. 뒤에서 좀 더 자세히 살펴 볼 마음의 병리는 바로 인간의 마음이 의사결정의 정확성보다 효율성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과거의 성공적인 일처리 방식을 현재의 새로운 상황에서도 반복하는 데에서 비롯된다.
Ⅴ. 마음의 인식 구조, 존엄-자유-의도-생각-감정
정신-의식-의도-생각-감정은 인간의 마음이 일하는 경로이지, 인간의 인식 경로는 다르다. 즉 인간이 자신의 마음을 마치 외부에서 관찰자가 바라보듯이 바라볼 때 관찰 가능한 구조이지, 인간이 마음을 주관적으로 경험하는 것은 또 다른 구조로 설명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정신-의식-의도-생각-감정은 마음의 존재론적 경로이며, 마음의 인식론적 경로는 이에 상응하는 존엄(정신)-자유(의식)-의도(사랑)-생각(성취)-감정(행복)으로 전개된다. 마음이라는 자동차의 일 처리 경로는 정신-의식-의도-생각-감정이지만, 운전자가 바라보는 계기판에는 존엄-자유-의도-생각-감정이 뜨는 것이다(김동렬, 2010a).
정신의 상태는 존엄 또는 비참으로 표현되고 의식은 자유 또는 억압, 의도는 사랑 또는 소외, 생각은 성취 또는 실패, 마지막으로 감정은 행복 또는 불행으로 나타난다. 구조론에선 인간이 정신-의식-의도-생각-감정의 각 일처리 단계에서 일이 원활히 처리되면 존엄-자유-사랑-성취-행복을 느끼고 마음의 구조와 작동방향에 무지한 채 마음이 하는 일들 사이의 모순과 충돌이 일어나면 비참-억압-소외-실패-불행을 인식하게 된다고 보고 있다(김동렬, 2010a).
인간의 모든 문제는 감정 단계의 불행에서 출발한다. 감정을 어떻게 처리하는가가 인간의 행불행을 결정하며 인간중심 접근과 정신분석 역시 내담자가 가지고 오는 문제를 본질적으로 감정의 문제로 보고 있다(노안영, 2005). 많은 심리치료 접근들이 바로 이 감정 단계의 불행문제를 다루기 위해 출발하였으며 보통 불행의 감정보다 행복의 감정이 더 많아지는 지점에서, 불행이라는 감정에 대한 대처할 방법을 익히고 행복을 늘릴 수 있는 방법을 습득한 단계에서, 자신의 감정을 수용하고 이를 생각과 의도를 통해 어느 정도 조절이 가능해지는 시점에서 치료를 종결한다. 가장 최초의 문제 인식도 감정의 수준이고 가장 최종적인 문제의 해결도 감정의 수준에서 이뤄지는 것이다. 하지만 구조론에서의 문제 해결이 항상 마음의 일처리 과정에서의 상부구조에 대한 개입을 통해 이루어지며, 감정의 문제는 생각, 생각의 문제는 의도, 의도의 문제는 의식, 의식의 문제는 정신으로 개입해야 한다고 보고 있다. 궁극적으론 정신의 문제, 즉 존엄의 문제를 해결해야 비로소 행복에 도달할 수 있다고 가정한다(김동렬, 2010a).
우울한 감정이 들 때 우울한 감정에 대한 대응책을 사전에 생각해놓음으로써 대응할 수 있다. 인간의 모든 감정은 행동을 촉발하기 위해 존재하며 어떤 행동을 할 것인지 생각할 수 있으면 감정을 다스릴 수 있다. 인지행동적 접근은 내담자가 우울한 감정을 느낄 때 이에 대응할 수 있는 일련의 계획과 행동들을 연습시키며 이는 우울한 감정을 다스리는데 도움이 된다. 생각으로 감정을 다스릴 수 있으며 마음의 일처리 단계에서 가장 말단인 감정의 문제에 대한 접근은 그보다 상위단계인 생각의 수준에서 접근해야 한다. 이 생각에 상응하는 인식의 단계가 바로 성취다. 행복은 행복하기 때문에 행복한 것이 아니라 생각을 행동으로 옮겨 성취할 수 있기 때문에 행복한 것이다(김동렬, 2010a).
하지만, 생각만으로는 감정의 문제를 해결하는데 한계가 있다. 아무리 생각을 하고 계획을 세우고 그에 따른 행동을 실천해도 감정이 폭발하는 상황이 있을 수 있다. 예를 들어 싫어하는 사람과 한 공간에 있으면서 끊임없는 스트레스를 받을 땐, 의도를 통해 같은 공간에 머물면서 상황을 계속 감내할 것인지, 아니면 자리를 박차고 나올 것인지를 결정해야 한다. 의도는 생각-감정의 상위단계로 의도에 따라 생각과 감정이 연동된다. 만약 특정인과 더 이상 인간관계를 맺지 않겠다는 결정을 내리는 것만으로도 특정인과 연관된 감정적 스트레스와 번뇌로부터 상당히 자유로워질 수 있다. 의도에 상응하는 인식의 단계는 바로 사랑이다. 사랑은 관계를 맺으려는 의도이며 정신 단계에서 외부환경을 포착하고 의식 단계에서 이에 주도적으로 맞설 준비를 하고, 의도단계에서 외부환경과 적극적으로 얽히겠다는 마음을 먹는다. 상대적인 포지션 관계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이 단계에서 인간이 인식하는 것을 구조론은 사랑이라 표현하고 있다(김동렬, 2010a).
그러나 의도의 사랑만으로도 부족하다. 의도 단계에서 의사결정을 하기 위해선 기본적으로 결정을 할 수 있는 자유와 권리가 있어야 한다. 직장에서 자신을 괴롭히는 사람과 더 이상 관계하지 않겠다는 마음을 먹는다 해도 정작 직장을 떠날 혹은 다른 부서로 옮길 자유가 없다고 하면 마음먹은 것이 소용이 없다. 같은 공간에서 계속 부딪히는데 어떻게 상대를 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의식단계의 접근이 필요하다. 의식 단계에서 마음이 주도권을 행사할 수 있어야 한다. 구조론에선 마음이 의식단계에서 외부환경의 작용에 대해 자아의 주인의식으로 대응하며, 이 때 자아의 주도권을 어느 범위로 설정하느냐에 따라 대응수준이 달라진다고 본다. 자의식이 가정을 포함할 만큼 커야 비로소 가정 내부에서 발생하는 문제에 대해 의사결정을 통해 대응할 수 있고, 자의식이 국가를 포함할 만큼 커야 국가 차원의 일을 해결할 수 있고, 자의식이 세계를 포함할 만큼 커야 역사와 문명 단위의 일에 개입할 수 있는 것이다(김동렬, 2010a).
그러나 의식단계만으론 부족하다. 최종적으로 정신 차원의 개입이 필요하다. 구조론에서 정신의 존엄성은 자아의 눈높이가 어느 수준인지에 따라 결정되며, 존엄성이 확보되지 않으면 의식의 자유도, 의도의 사랑도, 생각의 성취도, 감정의 행복도 불가능하다. 정신-의식-의도-생각-감정이라는 마음의 일처리는 정신에 의해 확보된 존엄성의 바운더리 내에서 이루어지며, 존엄이라는 첫 단추를 잘 꿰어야 행복이라는 열매를 즐길 수 있다. 천상천하유아독존이나 호연지기 같은 표현은 모두 이 존엄성을 가리키는 말이며, 자아를 “나는 남자야”, “나는 여자야”, “나는 학생이야”, “나는 한국인이야”하는 식으로 한정시키는 만큼 존엄성도 그에 따라 한정된다. 구조론에선 세상 전부, 신, 우주 전체와 마주하는 눈높이를 가질 것을, 즉 최상의 존엄성을 확보할 것을 주문하고 있으며 이를 통한 마음의 문제의 일괄타결을 주문하고 있다. 이는 깨달음을 통해 마음의 번뇌를 일거에 해소라라는 선가의 입장, 신과의 관계 맺기를 통해 죄의 문제를 일거에 해결하는 기독교의 입장과 동일한 차원의 접근이다.
“존엄이 가장 중요하고 다른 것은 존엄에 연동되어 상대적으로 결정된다. 존엄이 크면 그만큼 자유가 넓혀지고, 그만큼 사랑이 긴밀해지고, 더불어 성취가 이루어지고, 진정한 행복을 맛보게 된다. 존엄에 실패하면 곧 비교하게 되고, 친구와 다투게 되고, 가족과 싸우게 되고, 타인을 시기하게 되고, 열패감을 느끼게 되고, 자존감을 잃어 마음의 모든 병리가 한꺼번에 일어난다.
존엄은 마음의 에너지를 얻는 것이고, 마음에 동기를 부여하는 것이고, 눈높이를 상승시키는 것이고, 세상의 변화와 트렌드를 끌어가는 고급정보가 유통되는 높은 시장으로 소통의 레벨을 끌어올리는 것이고, 마음의 신분을 상승시키는 것이고, 세상 앞에서 당당해지는 것이다. 거기서 비로소 사건은 시작된다. 자유는 존엄으로 얻은 동기를 실현하기 위하여 먼저 자기의 운신할 영역을 넓히는 것이고, 사랑은 그 확보된 영역 안에서 상대와 대결하며 상대적인 자기 포지션을 정하는 것이고, 성취는 마침내 실천하여 원하는 바를 이루는 것이며, 행복은 거기에 따라오는 최종적인 결과다."(김동렬, 2010a)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존엄이야말로 가장 중요하고 마음의 모든 병리의 뿌리이다. 구조론은 마음의 문제를 존엄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으로 일괄 타결할 것을 주장하고 있다. 이는 마음의 구조상 존엄이 가장 마음의 일처리 단계의 가장 최초의 단계이자 평소엔 의식되지 않는 무의식의 영역에서 작용하는 제 1원인으로 간주되기 때문이다. 이 존엄의 문제는 심리치료에서 강조하는 자아 존중감의 문제와 동일하다. 자아존중감의 문제를 해결하면 마음의 모든 문제가 일거에 해소된다. 이는 구조의 원리상 존엄이 인간이 인식하는 마음의 가장 최 상위 수준의 가장 첫 번째 대상이기 때문이다.
논문 잘 읽었습니다.
구조론은 명확하게 일어나는 일과 가야할 길을 비춰주기에 앞으로 많은 발전이 있을거라고 생각됩니다.
구조론이 학문의 영역으로 들어가 인류에게 가닥잡히는 진보를 할 수 있도록 도움을 줄거라고 생각됩니다.
학문의 자궁이 학문의 영역으로 받아들여져야 하는 것도 조금은 아이러니이지만,
어쨌든 시간의 비가역성에 의하여 최근에 그 원리가 밝혀지게 되었으니 어쩔 수 없는 현상이기도 하다고 생각됩니다.
홧팅하세요^^()
성취/실패를 성취/좌절로 바꾸었소.
좌절이 조금 더 실감나는 단어여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