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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read 3651 vote 0 2020.12.16 (16:11:40)

    굴원의 죽음


    적벽대전이다. 조조가 50만 병력으로 쳐내려오는데 손권은 각지의 도적떼를 진압하느라 겨우 5만병을 동원할 수 있을 뿐이었다. 강하에 주둔한 유비의 2만병이 없었다면 싸워보지도 못했을 것이다. 항복을 권하는 조조의 사자가 와서 손권이 부하들의 의견을 물었다.


    노숙과 주유만 싸우자고 할 뿐 다른 신하들은 모두 항복하자고 한다. 부하들은 손권의 신하에서 조조의 신하로 갈아타면 그만이다. 손해 볼게 없다. 그런데 손권은 조조에게 죽는다. 설사 목숨을 부지한다 해도 감시받으며 비참해진다. 오나라 신하들은 죄다 개새끼인가?


    그런데 초나라 시절부터 그랬다. 초나라, 오나라, 월나라 셋은 중국으로 치지도 않았다. 오랑캐 대접이었다. 주나라 제후도 아니고 스스로 왕을 칭한 이유다. 이런 사정은 당나라 때까지 이어진다. 남방의 묘족과 북방의 화하족이 언어와 얼굴과 문화가 다르다는 말이다.


     "온 세상이 모두 흐린데 나 혼자 맑으며, 뭇 사람이 모두 취했는데 나 홀로 깨어 있어, 이로써 추방당했소." 擧世皆濁我獨淸 衆人皆醉我獨醒 是以見放 [굴원의 어부사]


    굴원은 초야에 묻혀 은거하는 시골 선비의 롤모델이다. 초나라의 훌륭한 정치가였으나 어리석은 임금과 모함하는 귀족들 때문에 추방당했다가 멱라수에 몸을 던져 죽었다. 초나라는 굴원이 죽고 50년 만에 망했다. 많은 선비들이 쓸쓸하게 죽어간 굴원을 추모했다. 


    온 세상이 모두 썩었는데 혼자 깨끗한 척하면서 말이다. 역사는 반복된다. 굴원이 태어나기 50여 년 전에 활약한 오기는 다행히 현명한 임금을 만났다. 개혁정책으로 초나라의 부국강병을 이끌었으나 도왕이 죽자 화살 40대를 맞고 초나라 귀족들에게 살해되었다. 


    로마사도 비슷하다. 민중파 중에 개혁가가 나오면 원로원에서 자객을 보내서 죽이는 패턴이 반복된다. 암살당하지 않으려면 근위대가 필요하다. 근위대를 두면 그게 독재다. 중국사에서도 같은 패턴이 반복된다. 중국에서는 심지어 임금이 먼저 신하를 배신하곤 한다. 


    오자서의 아버지 오사를 죽였다가 오자서에게 부관참시를 당하고 쇠채찍 300대를 맞은 평왕이 대표적이다. 오자서 덕분에 성공한 오왕 부차도 마찬가지로 오자서를 배신했다. 그 부차를 꺾은 월왕 구천의 신하 범려는 토사구팽이라는 말을 남기고 잽싸게 도망쳤다. 


    신하가 공을 세우면 반드시 죽는다. 5대 10국의 혼란기에는 반대로 신하가 선수를 쳐서 임금을 죽였다. 5대를 이어가며 10국이 등장하니 왕조의 이름만 계속 바뀌었다. 로마의 군인황제 시절이나 고려 무신정권과 같다. 송 태조 조광윤이 지긋지긋한 혼란을 끝냈다. 


    신하들에게 술을 먹이고 단번에 무장해제 시킨 것이다. 나는 굴원이 과대평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그의 어부사는 아마 후대의 위작일 것이다. 초나라 회왕이 멍청한 임금인 것은 맞다. 그런데 남쪽 왕조들은 난징의 장개석까지 죄다 멍청하다. 구조적인 이유가 있다. 


    초나라와 오나라와 월나라는 강성해서 춘추오패에 한 번씩 이름을 올렸다. 곧장 망했다. 왜 임금들은 한결같이 멍청할까? 장강 때문이다. 초와 오와 월은 지정학적 구도가 귀족들에게 힘이 실리는 형태다. 로마사도 비슷하다. 알프스로 막히고 지중해로 고립되었다. 


    일본도 비슷하다. 세토 내해로 두 동강 나 있다. 칠레는 국토가 길어서 도로 하나만 막으면 나라 전체가 올스톱된다. 칠레는 민주주의가 구조적으로 불가능하다. 삼성 재벌 하나가 대한민국을 좌지우지하면? 아찔하다. 그렇게 되면 임금이 바보 되는건 한순간이다. 


    합스부르크 왕가는 외교만 하다가 망했다. 왜 힘을 기르지 않고 장가들고 시집보낼 궁리만 할까? 오스트리아는 민족이 18개니 알 만하다. 반면 프랑스는 가운데가 뻥 뚫려서 잔 다르크가 선동하면 사방에서 '라 마르세예즈'를 부르며 촌놈들이 파리로 마구 몰려든다. 


    파리지앵들은 치사해서 안 되고 남쪽과 동쪽의 촌동네 애들이 강하다. 독일은 프랑스보다 더 촌동네라서 에너지가 있다. 러시아는 짜르가 선동하면 1,500만 명이 자진입대 한다. 그러므로 역사에는 패턴이 있다. 카이사르는 게르만으로 쳐들어가서 지리적 고립을 깬다.


    원로원은 알프스를 막고 로마를 반도에 고립시킨다. 팽창주의와 고립주의 균형이다. 반면 북서쪽에 자리 잡은 진나라는 옛날부터 배신자가 없었다. 마초나 강유가 의리의 사나이인 이유가 있다. 그쪽 동네 애들은 원래 배신을 안 한다. 북방 유목민은 배신하지 않는다. 


    이동하며 사는 자들이라 배신자는 지구 끝까지 추적하기 때문이다. 법가의 이사는 초나라 출신인데 진나라로 도망쳐서 출세했다. 진시황을 성공시킨 것이다. 귀족이 지배하는 초나라는 원래 개혁이 안 되는 나라다. 장강이 국토를 반으로 가르고 남쪽에 산악이 있다.


    굴원 할배가 와도 안 된다. 물론 일시적인 성공은 가능하다. 도왕을 도운 오자병법의 오기처럼 말이다. 끝은 좋지 않다. 모택동이 중국을 접수한 것도 그가 북쪽에서 기반을 다졌기 때문이다. 중국사는 언제나 북쪽의 황제가 남면하고 앉아 남쪽을 호령하는 형세였다.


    한국도 어느 면에서 지리적으로 고립되어 그리스, 이탈리아, 일본과 비슷하다. 강력한 권력이 등장하기 어렵다. 서로 반목하고 견제하는게 일이다. 그렇지 않다. 강력한 중국에 맞서려면 힘을 합쳐야 한다. 일본은 세토 내해가 장강처럼 국토를 정확히 반으로 나누었다.


    강력한 지도자가 나올 수 없는 구조다. 그리스 역시 지형이 복잡해서 페르시아의 침략이 있을 때만 힘을 합친다. 놔두면 끝없이 분열한다. 북쪽에서 온 알렉산더가 손쉽게 집어삼켰다. 이탈리아는 무솔리니의 파시즘에 데인 후 리더가 나올 수 없도록 법을 고쳐버렸다.


    일본도 전쟁에서 지고 강력한 리더가 나올 수 없는 평화헌법을 신주단지로 모시고 있다. 여기에 어떤 균형이 있다. 한반도에서 일본으로 쳐들어갈 일이 없는 이상 일본에 강력한 지도자는 필요가 없다. 게르만족이 알프스를 넘어오지 않는다면 카이사르는 필요 없다.


    페르시아인들이 침략한다면 몰라도 그리스는 단결할 필요가 없다. 그런데 결국 침략한다. 오스만제국이 쳐들어온 것이다. 그리스는 400년간 오스만제국에 씹혔다가 아직도 기운을 못 차리고 빌빌대고 있다. 로마는 게르만족에게 멸망한 후 천 년 동안 줄기차게 씹혔다.


    이후 이탈리아를 지배한 민족은 바이킹을 비롯해서 열다섯 개쯤 된다. 동네북 신세다. 양자강 주변의 묘족은 5천 년 동안 북방민족에게 털리다가 한화 되었거나 일부가 베트남으로 도망쳤다. 베트남에도 털려서 미군에 협력하다 망한 이야기가 그랜토리노에 나온다.


    '온 세상이 모두 흐린데 나 혼자 맑으며, 뭇 사람이 모두 취했는데 나만 홀로 깨어 있어, 이로써 추방당했소.' 굴원의 푸념과 기득권들에게 밉보여 거덜 난 조국의 입지를 생각해보자. 노무현이 왜 고향에서 추방당했는지 생각해보자. 지사의 비분강개함이 거기에 있다. 


    가짜 선비가 흉내내기 좋아하는 롤모델이기도 하다. 굴원이 기용되었어도 오기처럼 오래가지 못했다. 이사처럼 진나라로 튀어야 산다. 아니면 귀족들의 알력에 오자서처럼 당한다. 토사구팽의 범려가 도망친 것은 현명한 선택이었다. 역사는 흐른다. 역사는 반복된다. 


    굴원은 회왕에게 진나라 논객 장의를 죽이라고 했다. 회왕은 논객을 죽여야 했다. 죽이지 못했다. 왜? 춘추오패의 명성 때문이다. 언론을 틀어쥔 중권들에게 밉보이면 죽는다. 범증은 항우에게 유방을 죽이라고 했다. 항우 역시 여론이 두려웠다. 보기 좋게 멸망했다. 


    회왕은 논객 장의를 섬기다가 진나라에 잡혀가서 굴욕을 당했다. 임금이 굴욕을 당하면 신하는 죽어야 한다. 기득권을 지키려는 개새끼들과 개혁가의 원한은 계속된다. 멱라수 가에서 울분의 노래는 계속된다. 안 되는 동네는 구조적으로 안 된다. 에너지 법칙이다.


    정리하자. 지정학적 구도에 따라 권력분산 모델이 흥하는 나라가 있다. 변방에서 지방분권으로 가다가 환경이 변하면 남북전쟁의 미국 남부처럼 망한다. 개혁을 거부하며 기득권 위주 고립주의로 가다가 일본처럼 고립되고, 이탈리아처럼 털리고, 그리스처럼 씹힌다. 


    칠레처럼 답답해지고, 오스트리아처럼 거덜 난다. 비열한 논객들은 이런 교착된 구도를 좋아한다. 팽팽해지면 한 개인이 국가를 마음대로 주무를 수 있기 때문이다. 종횡가 소진과 장의가 활약한 시대다. 모든 귀족들이 손해를 안 보려고 하므로 국가는 날로 약해진다.


    귀족정치로 가면 다들 명성을 탐해서 언플로 뜨려고 한다. 외교만 잘하면 되고 미디어만 장악하면 된다. 실력은 기르지 않는다. 그러므로 왕이 논객에게 아부하고 충신을 죽인다. 흥하는 방법은 간단하다. 누군가 조국처럼 희생하여 고양이 윤석열 목에 방울을 달면 된다.


    그럴 때 강력해진다. 강력해지면 균형이 깨지고, 균형이 깨지면 논객은 쓸모가 없다. 그래서 중권한다. 그러나 환경은 변하고 새로운 미션이 떠오른다. 거침없이 전진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의리만 있으면 두려울 것이 없다.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 선수가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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