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의 다섯 차원 밀도는 닫힌계 내부에서 자란다. 태아는 자궁 속에서 자란다. 병아리는 알 속에서 자란다. 아기는 엄마 품에서 자란다. 기업은 시장에서 자란다. 선수는 팀 속에서 성장한다. 성장은 닫혀 있는 울타리 안에서 일어난다. 용암 속에 흘러다니던 물이 한 곳에 고인다. 바위가 서서히 식으면 물주머니 속에서 석영이 자란다. 결정이 만들어진다. 옥돌은 화성암이 식으면서 물이 고였던 흔적이다. 조각가는 나무로 뼈대를 만들고 점토를 붙여서 형태를 만든다. 안에서 밖으로 자라는 것이다. 그러나 사람이 있기 때문에 가능하다. 사람이라는 닫힌계 안에서 일어나는 일이다. 게가 속으로 살이 찌는 것과 같다. 그런데 그 부분을 빼고 본다면? 닫힌계의 존재를 무시한다면? 밖으로 자란다. 자연의 모든 성장은 중심에서 멀어지는 안에서 밖의 방향이다. 이러한 진행은 울타리 안에서 일어난다. 외부 관측자에게는 밖에서 안으로 모여드는 것처럼 보인다. 여왕벌이 분봉을 하면? 벌들이 일제히 모여든다. 그 방향은 밖에서 안이다. 젊은이가 지방에서 서울로 모여드는 격이다. 그러나 페로몬으로 보면 안에서 밖이다. 벌의 군집이 먼저 바깥 울타리를 치고 있다. 자연에서 일어나는 모든 의사결정은 닫힌계 안에서 중심에서 멀어지는 <- -> 방향으로 일어난다. 처음 닫힌계 ( )가 성립한다. ( -> <- )에서 (<- ->)의 방향전환이 일어나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장은 ->가 울타리 )를 만나는 한계선에서 중단된다. 성장이 멈춘다. 외부 관측자에게는 -> <-로 모여드는듯이 보여진다. 닫힌계 ( )의 존재를 깨닫지 못하기 때문이다. 부자에게는 재물이 모여든다. 그러나 실제로는 닫힌계 안에 압력이 걸려있고 약한 쪽으로 떨어지는 것이다. 재벌 1층 집에 쌓이는 것은 국가 2층집에서 떨어진다. 재벌집이 부유해졌다는 것은 국가집이 거덜났다는 의미가 된다. 돼지저금통에 돈이 모여드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의 지갑에서 새나간다. 아버지의 마이너스가 돼지의 플러스로 보여지는 것이다. 우리는 차원을 점에서 선으로, 면으로, 입체로 키워가면서 이해한다. <- -> 방향으로 보는 것이다. 실제로는 닫힌계 ( )를 기준으로 -> <-로 시작된다. 밖에서 안으로 범위가 좁혀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 바깥은 없다. 즉 4차원에서 시작하여 3, 2, 1차원을 거쳐 0차원에서 종결된다. 그 이상의 차원은 없다. 5차원 6차원은 없다. 수학자들이 말하는 그 이상의 차원은 다른 것이다. 그것은 하나의 사건이 아니라 여러 사건의 집합이다. 차원은 에너지의 얽힌 정도를 말하는 것이며 에너지는 다섯가지 얽힌 형태가 존재할 뿐이다. 닫힌계 안에서 일어나는 하나의 사건에서 차원은 다섯 뿐이다. 사건은 움직이고 움직이면 에너지 공급이 끊어지므로 마이너스만 가능하다. 비행기가 이륙하면 연료를 조달할 수 없다. 자동차가 고속도로 톨게이트를 통과하면 다음 주유소까지는 마이너스다. 연료는 무조건 줄어든다. 사건은 처음 바깥 테두리에서 시작한다. 그 테두리를 잃는 것이 4차원 말도다. 다음 대칭축을 만들고 다시 그 대칭의 축을 잃는다. 입체는 중앙이 있지만 면은 중앙이 없다. 선은 대칭이 없다. 점은 방향도 없다. 닫힌계를 잃고, 코어를 잃고, 대칭을 잃고, 방향을 잃고, 위치도 잃는다. 거기서 사건은 종결된다. 닫힌계를 잃는 것이 4차원, 코어를 잃는 것이 3차원, 대칭을 잃는 것이 2차원, 방향을 잃는 것이 1차원, 위치를 잃는 것이 0차원이다. 그리고 사건은 끝난다. 사라지는 것이다. 모든 성장하는 것은 자궁이 있다. 아기는 엄마가 있다. 학생은 학교가 있다. 보호자가 있다. 성장은 플러스로 보여진다. 어느날 껍질을 잃고 민달팽이가 되어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질에서 입자로 떨어진 것이다. 자궁을 잃고, 시스템을 잃고, 부모를 잃고, 학교를 잃고 혼자가 되어 있다. 등껍질을 잃어먹은 거북이가 되어 있다. 갑옷을 잃은 병사와 같다. 이난이 보수화 되는 이유다. 더 큰 게임을 발견하지 않으면 안 된다. 더 큰 자궁을 발견하지 않으면 안 된다. 사회라는, 인류라는, 우주라는, 신이라는 더 큰 세계, 더 큰 부모, 더 큰 미션과 만나지 않으면 안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