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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read 3620 vote 0 2020.10.29 (13:2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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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는 수렁에 빠진 현대미술의 마지막 희망일까? 아니면 미술계를 해체하는 테러리스트일까? 어쨌든 미술계의 테러리스트라고 하면 관객의 주목도가 올라간다. 대중은 누구를 지지할까? 뻔하다. 그는 대중이 원하는 배역을 맡아 연기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왜 그림을 찢은 것일까? 찢을 수 있으니까 찢은 것이다. 장치는 미리 액자에 숨겨져 있었다. 이상하게 액자가 무거운 사실을 발견하고 누가 액자 내부를 뜯어봤으면 뱅크시는 실패했을 것이다. 작품이 뱅크시의 손을 떠난 순간 찢을 수 없게 된다.


    즉 권력게임이다. 자기 작품은 찢을 수 있다. 남의 그림은 찢을 수 없다. 작품이 자기 손을 떠나는 순간은 언제인가? 그는 리모컨을 손에 쥐고 있었다. 그렇다면 아직 작품은 그려지고 있는 중이다. 뱅크시가 버튼을 누른 시점이 그림이 완성된 시점이다. 


    그것을 결정하는 권력은 작가에게 있다. 천경자는 이미 자기 손을 떠난 그림을 뒤늦게 해체하려고 했다. 실패했다. 천경자가 실패한 것을 뱅크시는 성공한 것이다. 왜? 그것을 할 수 있었기 때문에. 천경자는 실패했다. 왜? 그것을 할 수 없었기 때문에. 


    천경자는 미리 장치를 숨겨두었어야 했다. 그러지 않았다. 뱅크시는 사회의 현실을 비판하는 그림을 그렸지만 그게 먹힌다는 사실을 알고 그린 것이다. 대중이 반응하는 급소를 알았다. 얼굴을 숨기면 명성을 얻기에 유리하다는 사실도 알고 있었다.


    왜? 얼굴을 공개하면 그에게 권력이 생기고 권력에는 반드시 대항권력이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얼굴을 공개하지 않으므로 그에게 줄을 설 사람은 없다. 그러므로 권력이 누구에겐가 독점될 가능성이 없다. 보통은 돈을 대는 전주가 실질권력을 쥔다. 


    귀족들이 후견인 등의 이름으로 권력을 휘두르는 것이다. 어쨌든 그는 성공적인 마케팅을 했다. 마케팅의 성공비결은 그가 얻는 것이 없었다는 점이다. 마케팅으로 돈을 벌려고 하면 마케팅 효과는 감소된다. 본인이 손해를 봐야 효과는 극대화된다. 


    구조론의 마이너스 원리다. 손해 보는 사람이 있어야 사건은 진행된다. 그래서 의리가 필요한 것이다. 현대예술의 허례허식을 비판하기 위한 퍼포먼스라는 것은 정말 유치한 언술이다. 이건 방송작가 문장력이 이 정도밖에 안 된다는 거다. 얼어 죽을!


    '이런 쓰레기를 사는 당신을 이해할 수 없다'라는 메시지 좋아하네. 뱅크시는 현대예술을 잘 이해하고 있다. 그렇다. 그는 지갑을 주운 것이다. 아무도 주워가지 않길래 뱅크시가 주웠다. 아무도 가지 않는 길을 그냥 걸어갔다. 그리고 지갑을 주웠다.


    역시 권력게임이다. 미술시장과 작가가 치고받고 싸우면 작품의 가치가 올라간다. 왜? 작가에게 권력이 있기 때문이다. 작가는 미술시장과 싸워 승리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방법으로 대중의 지지를 받는다. 뱅크시는 자기가 이기는 게임을 설계했다. 


    그것은 미술계에 대한 풍자도 아니고 상업적인 마케팅도 아니다. 작품에 풍자 요소가 있지만 풍자가 먹히니까 풍자하는 것이다. 마케팅 요소도 있지만 승리하기 위해 기술을 쓰는 것이다. 돈벌이 마케팅이 아니다. 본질은 권력게임에서 이기는 것이다. 


    권력을 행사하는 것이다. 농부가 중간상인과 싸우면 대중은 농부편을 든다. 작가가 중개상과 싸우면 대중은 작가편을 든다. 뱅크시는 이기는 방법을 알았다. 그리고 지갑을 주웠다. 새로운 시장을 개척한 것이다. 원래 예술은 귀족에 아부하는 것이다.


    귀족의 초상화를 그려주고 밥을 먹었다. 이제 작가는 무엇으로 사는가? 뱅크시가 하나의 가능성을 제시했다. 문제는 미래파의 딜레마다. 작가는 미래를 제시해야 한다. 그 미래를 반복하면 구태가 된다. 새로운 그림을 그리면 낡은 그림이 되는 것이다.


    새로운 그림은 잠시 동안 새로울 뿐이다. 마티스는 색을 해체하고, 피카소는 형태를 해체하고, 뱅크시는 사건을 해체했다. 뱅크시는 순식간에 많은 작가들을 진부한 작가로 만들어 버렸다. 대중은 통쾌해하고 작가들은 곤란해졌다. 허들을 너무 높였다.


    색도 없고, 형태도 없고, 사건도 없고, 이제는 해체할 그 무엇도 없다. 어떻게 밥 먹지? 어쨌든 대결은 계속된다. 이제 작가들은 자기네들끼리 치고받고 싸우는 방법으로 밥 먹는 지경까지 몰려버린 것이다. 풍자라는 것은 본질이 아니다. 먹히니까 풍자한다.


    풍자는 소재에 불과하다. 본질은 투쟁이다. 권투선수는 상대선수를 때려서 밥 먹는다. 작가는 고루한 관습과 싸워서 밥 먹는다. 마지막에는 자기를 때린다. 예술을 때려서 마지막 밥을 챙긴다. 어쨌든 손님을 초대할 거실이 있는 이상 작가는 존재한다.


    어떻게든 대칭을 끌어내면 다수의 이목이 쏠리고 이목이 쏠리면 포커스가 맞춰지고 그곳에는 눈먼 지갑이 임자를 기다리고 있다. 예술은 너와 나의 시선이 마주치는 지점에서 일어나는 팽팽한 긴장을 연주한다. 그것은 만남이다. 만남이 곧 예술이다.


    어떻게 만날 것인가? 어떤 주제로 대화를 하지? 소설이다. 어떤 내용으로 편지를 쓰지? 시인이다. 어떤 거실에서 차를 마시지? 그림이다. 어떤 배경음악을 틀어놓고 고백을 하지? 음악이다. 만나면 어디에 가서 시간을 때우지? 영화다. 예술은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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