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념의 진실
각자 살고 싶으면 각자 살면 된다. 그 생각을 다른 사람에게 권할 이유는 없다. 다른 사람에게 권한다는 것은 그 사람과 행동을 통일하자는 건데 행동통일을 반대할 목적으로 행동을 통일하자는 건 앞뒤가 안 맞잖아. 그런데 이념이 많다. 너무 많다. 공화주의, 자유주의, 민주주의, 자본주의, 사회주의가 있다. 더 많은 주의주장이 있다. 구조론은 일원론이다. 하나의 사건이 기승전결로 진행하면서 단계적으로 여러 가지 모습을 나타낸다. 구조론으로 보면 진보와 보수가 서로 모순 대립하지 않는다. 씨앗을 뿌리는 것이 진보이면 수확을 하는 것은 보수다. 씨앗은 뿌리지 않고 수확만 챙기겠다는 얌체 보수들 때문에 문제가 일어나는 것이다. 계절에 따라 달라져야 한다. 집권 전과 집권 후는 당연히 다르다. 민주당이 집권하기 전에는 열 가지 정책의 씨앗을 뿌리고 집권한 다음에는 그중에서 우선과제 하나에 집중한다. 집권 후에는 상대적으로 보수화되는 것이 당연하다. 많은 경우 정책의 아이디어는 정의당이 내고, 실제로 집행은 민주당이 실현하고, 그 이득은 미통당이 가져간다. 그 또한 당연한 거다. 많은 좋은 정책은 정의당이 주장한 것이다. 행정수도 이전은 노무현이 하고 그 이득은 이명박근혜가 가져갔다. 상대적으로 그 시기에 집값이 안정되었다. 원래 그렇게 된다. 이는 자연법칙이다. 정의당이 최초 아이디어를 내곤 하지만 원래 아이디어는 이것저것 마구 투척해보는 것이다. 그중에서 현장에 먹히는 것을 실현할 뿐이다. 하나의 스펙트럼으로 봐야 한다는 말이다. 정의당이 아이디어 냈다고 정의당이 옳은게 아니고 그게 정의당 역할이다.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고 수순의 문제다. 항상 진보가 먼저고 보수는 따른다. 문제는 사건의 규모다. 작은 사건이면 이미 수확철이 되었는데 큰 사건이면 아직 수확하기 이르다. 전면전이냐 국지전이냐가 중요하다. 국지전이면 지금 예비대를 투입해서 싹쓸이를 해야 하지만 전면전이면 이번 전투를 져주고 적을 더 깊이 후방으로 유인해야 한다. 젊은 사람은 큰 전투를 원하고 노인은 작은 전투를 원한다. 젊은이는 아직 준비되지 않았으므로 일을 더 크게 벌인 다음에 먹으려는 것이고 노인은 남은 인생이 없으므로 당장 해먹자는 보수로 가는 것이다. 이는 옳고 그름의 판단 문제가 아니고 그냥 물리적 현실이다.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은 노인에게 미투는 관심사가 아니다. 환경문제도 관심사가 아니다. 내 죽고 없는데 무슨. 배운 사람은 진보의 파종에 힘쓰고 못 배운 사람은 보수의 수확에 힘쓴다. 당연하다. 파종하고 수확까지 긴 시간을 견디려면 그만한 역량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계획이 있어야 하고 지식이 받쳐줘야 하고 세력이 도와줘야 하는데 못 배운 사람은 일단 아는 게 없고 아는 게 없으므로 계획이 없고 또 세력도 없다. 장기전을 못 한다. 구조론은 세상을 사건의 전개로 본다. 사건은 도처에서 일어나고 있다. 사건 속에 사건이 중첩된다. 새로 발생한 사건과 과거에 발생한 사건에 같은 룰이 적용될 수 없다. 질 입자 힘 운동 량에 따라 공화주의, 자유주의, 민주주의, 자본주의, 사회주의가 있다. 이는 필자가 그렇게 정한 것이다. 언어는 원래 고무줄이라서 맥락에 따라 의미가 결정된다. 즉 사회주의라는 단어를 공화주의 칸에 넣어도 문제가 없다. 필자가 명확히 설명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개념규정을 좁히거나 혹은 늘려거 때려 맞춘 것이다. 사회주의를 주장하는 사람은 사회주의 안에 공화단계, 자유단계, 민주단계를 두겠지만 필자는 사회주의 개념을 좁게 해석해서 맨 끝에 둔 것이다. 그러므로 사전을 찾지 말고 구조론의 질 입자 힘 운동 량으로 해석해야 한다. 공화주의는 결합하고, 자유주의는 독립하고, 민주주의는 교섭하고, 자본주의은 변화하고, 사회주의는 침투한다. 인, 질의 결합 - 공화주의가 기본적인 룰을 정한다 지, 입자의 독립 - 자유주의가 게임을 선택한다. 의, 힘의 교섭 - 민주주의가 공정하게 경쟁한다. 신, 운동의 변화 - 자본주의가 승부를 결정한다. 예, 량의 침투 – 사회주의가 몫을 챙긴다.
유교의 오상인 인지의신예를 적용하여 보는 것도 이해를 돕는다. 공화주의는 인이다. 그래서 노예해방에 앞장선다. 자유주의는 지다. 똑똑한 사람들이 리버럴한 자유주의자다. 대마초면 어때? 이런 말 하는 사람은 아이큐가 높다. 민주주의는 의다. 그래서 민주당은 의리가 있다. 의리 없는 이수정을 미통당이 빼간 거 보면 알 수 있다. 자본주의는 신이다. 신용이 없으면 돈을 못 번다. 사회주의는 예다. 사회주의자들이 주장하는 것은 인간에 대한 예의다. 사회주의가 약자를 돌보고 성소수자를 보호하는 것은 그게 예이기 때문이다. 자본주의냐 사회주의냐 양자택일하라는 식은 무리다. 무슨 일을 하든 단계에 따라 경쟁해야 할 때가 있고 보호해야 할 때가 있는 것이다. 북한이 괴상한 제도를 하고 있지만 억지에 불과하다. 그들은 봉건주의로 퇴행한 것이다. 이렇게 되는 이유는 권력시스템을 인정하기 때문이다. 어떤 사건을 처음 일으킨 자에게 권력이 있다. 발명가에게 권력이 있고 발견자에게 권력이 있다. 그들은 적절한 시점에 빠져줘야 한다. 누가 발견한 것을 가공하여 새로운 제품을 발명한다. 그렇게 발명된 제품에 투자하여 상품을 생산한다. 생산한 것을 넘겨받아 판매한다. 판매한 것을 구매하여 사용한다. 각 단계에 부가가치가 얻어진다. 발견, 발명, 제조, 판매, 사용의 각 단계에 효율성이 있고 그것을 인정해야 한다. 문제는 뒤로 빠져주지 않고 너무 많은 로열티를 요구하는 것이다. 발견자가 발명자를 억압하는 수가 있다. 발명자가 생산자에게, 생산자가 판매자에게, 판매자가 소비자에게 너무 많은 삥을 뜯는다. 또 아버지가 아들에게 권력을 세습한다. 구조론으로 보면 진보는 새로 사건을 일으키고 라인을 연결하며 각 단계에서 빠져주고 로열티를 챙기며 그 과정에 선을 넘지 말아야 한다. 너무 많은 로열티를 요구하지 못 하도록 정치가 중재해야 한다. 그것이 민주주의다. 처음 자동차가 발명되면 마차세력이 견제 들어간다. 마부들이 도로를 차단하고 동맹파업을 한다. 이렇게 되면 공화주의가 초대된다. 큰 싸움판이 벌어진다. 자동차 속도는 시속 4킬로 이하로 묶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자동차 앞에 한 명이 붉은 깃발을 들고 뛰어가며 행인들에게 알려야 한다는 법도 나온다. 공화주의는 물리적 충돌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등장하는 것이다. 기본 규칙이 정해지면 자동차 회사가 우후죽순으로 쏟아진다. 자유주의 단계다. 독과점 횡포 나온다. 어떤 철도회사는 다른 철도회사의 선로에 폐차를 끌고 와서 막아버린다. 아주 전쟁이 벌어질 태세가 되는 것이다. 이 단계에 민주주의가 개입하여 자유주의를 제한한다. 독과점의 횡포를 막고 과당경쟁과 난립을 막고 산업을 보호한다. 그다음은 자본주의가 알아서 끌고 가게 되어 있다. 그 성과는 사회주의 형태로 국민에게 되돌려져야 한다. 왜냐하면 그것이 공화주의 단계에서 정한 룰이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으면? 신자유주의로 가서 자본주의 성과를 강자가 독식하겠다면? 다시 공화가 소집된다. 한바탕 붙는다. 심하면 내전이 일어날 수도 있다. 사건은 계속 일어난다. 어떤 사건은 자본주의나 사회주의 단계로 가 있고 어떤 사건은 공화주의나 자유주의 단계에 머물러 있다. 산업은 소재 기능 성능 효능 양식의 혁신을 일으킨다. 소재혁신은 표준이 중요하다. 그러므로 공화주의다. 기능혁신은 자유주의다. 기능은 기업 맘대로다. 삼성전자가 냉장고 문짝에 생뚱맞게 태블릿을 붙이건 말건 그들의 자유다. 다음 성능은 소비자가 판단하므로 민주주의다. 효능은 당연히 자본주의다. 이런 단계로 굴러가는 것이다. 모든 사건에는 공화단계, 자유단계, 민주단계, 자본단계, 사회단계가 있다. 신자유주의가 불쑥 난입하는 이유는 그때 새로운 사건이 벌어졌기 때문이다. 구소련이 망한 것이다. 소련과 경쟁할 때는 공화했는데 소련이 없어지자 룰이 깨진 것이다. 일부 세력의 폭주가 시작되었다. 처음에는 공유가 사유보다 이익이지만 트래픽이 늘어나면 사유가 이익이다. 부부가 두 사람이 결혼하는게 보통이지만 세 사람이 결혼하면? 네 사람이 결혼하면? 매우 피곤해진다. 작은 일도 회의를 해야 한다. 공유의 이익은 일의 초기 단계에만 나타나는 것이다. 포드시스템은 라인을 공유한다. 대신 한 사람이 각자 자기 역할만 한다. 룰은 공유하되 시합은 각자가 뛰는 것이다. 다들 같은 시간에 점심을 먹는다. 그러나 메뉴는 각자가 알아서 정한다. 다들 12시에 점심을 먹는 것이 이익이다. 메뉴도 똑같다면? 그건 최악의 상황이 되는 것이다. 질은 결합하지만 입자는 독립한다. 질은 공유가 이익이고 입자는 사유가 더 이익이다. 무슨 일을 하든 진행단계에 따라 다양화된다. 처음에는 획일적이라야 일이 진행되고 진행될수록 다양화되어야 성과가 늘어난다. 어린이는 모두 학교에 다녀야 한다. 획일적이어야 한다. 다양성을 존중해서 내 자식은 공부를 가르치지 않겠다고? |
그런건 사건에 따라 다르지만
그런 원리가 있다는 사실을 이해하는게 중요합니다.
일본이든 한국이든 상황에 맞게 대응하면 되는 것.
과거에는 조기독립 조기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분위기고
근래에는 그 반대로 가는 추세입니다.
결혼은 너무 늦게 하면 자녀의 키가 작아진다는 설이 있습니다.
일본과 한국에 근래에 도리어 학생들의 키가 작아지는
현상이 관찰되고 있는데 만혼 때문이라는 설.
그건 제가 가질 수 밖에 없는 필터의 한계 때문입니다.
구조론과 맞지 않는 답글이라면 생략하셔도 괜찮을 거 같
습니다
>
이념이라는 것.
모든 여러 이념들은 결국, 엔트로피(죽음?)에 역행하는
긍정의 에너지를 만드는 일이 아니겠는가-
그 이념에 있어서 만큼은 우리는 통일된 하나이다
질을 통해서 다양한 입자들은
合을 찾고
合으로 엔트로피에 역행하는
아름다움을 창조한다
그 아름다움은 우리가,
삶을 좇는 기쁜 에너지를 만든다
축배를 들게 한다
구조론은 과학적 태도로 세상을 바라봅니다.
이념은 인간이 작위적으로 지어낸 상상의 결과물이 아니라
인간이 사회적 동물로 탄생하는 순간 결정된 것입니다.
여러 이념은 없고 하나의 이념에 대한 여러가지 태도가 있는 것입니다.
플라톤의 이데아든, 노자의 도든, 석가의 법이든, 예수의 하느님이든 같은 것입니다.
종교든 무신론이든 이념은 오직 하나입니다.
나와 세상을 연결하는 라인은 하나입니다.
각자의 입장이 다르지만 이념이 다른게 아니고 입장이 다른 것입니다.
무리의 숫자가 늘어나면 방향성이 생기는건 자연법칙입니다.
전체의 엔트로피에는 순응할 수 밖에 없습니다. 다만 하부구조의 단서를 가지고서 상부구조를 친다는 발상에서 하신 말씀이 아닌지 읽힙니다.
우리는 이미 앞서 벌어진 사건을 되돌릴 수는 없지만 후에 비슷한 사건이 벌어질 때는 앞선 경험을 피드백 삼아 선제대응할 수 있습니다. 이는 별개의 사건이죠.
고향은 님의 표현을 빌리자면 죽음에 역행할 수는 없으나 어떻게 죽을지 정도는 조절할 수 있을 겁니다. 죽음은 하나의 사건의 종결일 뿐입니다.
다만 어떻게 죽느냐에 따라 이전 사건의 종결은 이어지는 이후 사건을 달리 결정합니다. 어제의 나는 죽지만 그 죽음은 오늘의 내 시작으로 연결됩니다.
조금씩 인생을 소모하는 건 막을 수 없지만 어제 어떻게 살다가 잠들었느냐가 오늘 하루를 어떻게 시작할지에 영향을 줍니다. 혹은 어제의 마침을 어떻게 단서 삼을지에 따라 오늘의 질을 결정할 수 있습니다.
모든 사건은 연결되어 있으나 매 연결점 마다 해당 단위의 질은 확률적으로 결정됩니다. 질은 외력과 우리들의 균일함의 상호관계에 의하여 성립됩니다.
이미 엎질러진 물은 어쩔 수 없으나 그걸 받아들이는 우리의 입장은 우리가 결정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바톤 자체의 전달을 거부할 수는 없으나 어떤 바톤을 받을지는 그 순간에 결정할 수 있습니다.
어차피 바톤을 받은 우리는 또다시 누군가에게 바톤을 넘길 수 밖에 없습니다. 바톤 결정에 능동적으로 참여한 우리가 내일에 넘겨줄 바톤의 선택지는 그렇지 않은 자들에 비하여 훌륭합니다.
오타는 이것이고 질문이 있습니다
어린이는 첫 단계므로 획일적으로 전부 학교이 가고 어느 단계부터 다양하게 가는것이 좋을까요
앞선 글인 일본의 몰락에 따르면 조기 독립은 좋지 않다.
한국은 독립이 일본보다 늦다. 고되어있는데
획일의 단계를 오래 끌고 가서 뽕을 뽑고 그 다음부터 다양성을 추구하여 성과를 늘려 가야한다는 의미로 이하하고 있습니다.
독립과 동시에 다양성을 찾는 단계라고 보면 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