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jai Jung 3시간 페북· # 아시아서_일본이_작아지는이유 1. 필자가 한반도를 벗어나 해외여행이라는 것을 처음한 1999년 이후 줄곧, 반복해서, 강력하게 느낀 깨달음 한가지는, 일본이 내가 배운것보다 훠얼씬 더 크다는 것이었고, 한국은 생각보다 작고 심지어 둘로 나뉘어져 있다는 현실이었다. 최근 필리핀 NGO 관계자와 문서작업을 하면서 필자가 남한을 Korea로 표기하자, 그가 일일히 그 단어만 빨간펜으로 수정해줬던 기억이 새삼 짜증난다. "노노, 유아 사우쓰 코리언, 낫 코리언..." 싱가폴에서도 유독 일본의 존재감을 크게 느꼈는데, NUS근처에 일본학교들이 큼지막하게 두 개나 있어서도 그랬을테고, 시내중심가에 줄줄이 포진된 일본인 마트, 심지어 동남아 관련 학회가 열려도 거의 매번 한 세션 정도는 동남아와 관련이 없을 것으로 보이는 일본학세션이 포함된 경우가 상당히 빈번해서, 어디에서나 일본의 종합적인 영향력을 체감하게 되더라. 사실 부럽다는 생각보다는, 와우, 일본이 여기까지 와있었네?, 와, 여기서도 전쟁을 했다네, 와, 이거 주인이 일본 자본이라네, 은근히 일본이 바지런 했구나, 하는 감탄을 흘리긴 했다. 2. 한국의 올드세대 옹호론 필자가 그렇게 일본의 막강한 존재감에 대해 무덤덤한(?) 대응이 가능했던 이유는, 한국에서 상당히 큰 언론사에서 적정기간(?) 일했던 경험이 있었기 때문일 수도 있다. 한국에서 보수라는 의미는 상당부분 일본과의 후견인-수혜자 관계를 인정한다는 뜻이 크기 때문이다. 이는 2016년 굴욕적인 위안부 합의 때나 2019년의 충격적인 일본의 반도체 규제가 본격화 되었을 때 보인 한국의 메이저 언론들의 비상식적 태도를 살펴보면 쉽게 짐작할 수 있는 일이기도 하다. 이는 한국의 현 메인스트림 세대가 직장생활을 시작한 1980년대의 상황을 떠올려 보면 이해할 수 있는데, 필자의 오랜 기억에 한국의 1인당 GDP 수준이 2000달러를 돌파한 시점인 1982년 이미 일본은 2만 달러를 향해가고 있었고, 1990년도 초입에 이미 일본경제는 세계정복을 선언하고 아시아를 넘어 초강대국 지위를 달성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한국과의 인구 3배, 경제규모 10배를 고려하면 종합 30배. 한국은 사실 일본과의 비교가 무의미한 나라였으며, 오히려 현실은 중국과 인디아 및 아세안 전부를 포함해야 겨우 일본의 GDP와 견줄만한 시대가 1960년대부터 1990년까지 이어졌기 때문이다. 한 마디로 일본은 위대했고, 그같은 실상을 잘 알고 있던 한국의 선배 지식인과 언론인이 일본에 대해서 "배우자", "가르침을 구하자"라는 태도를 견지했던 모습을, 후배된 도리에서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니다. 분명 그럴 수 있다. 너무도 당연하게 이런 배경에서 한국엔 일본전문가와 일본통이 다수 배출되어왔고, 이를 활용해 일본은 한국에 대해 "우리가 너희의 근대화의 스승" 이라는 입장과 태도를 지속적으로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이다. 필자는 과거 서울서 살면서도 "이토오 히로부미를 죽인 안중근이 더 큰 문제"라는 태도를 가진 지식인을 여러분의 생각보다 훨씬 자주 접하고 살았다. 진짜다. 2. 일본의 몰락을 감지한 대중 동남아시아에서 과거 친일국가가 아니었던 나라를 찾는 건 불가능하다. 미얀마도 대표적인 친일 국가 가운데 하나다. 지난번에도 설명드렸듯이, 아시아의 군부체제는 전부 메이지 유신의 성공신화를 그 기본 바탕에 깔고 있다고 보면 틀리지 않다. 게다가 일본정부의 막대한 ODA, 저리차관, 전쟁배상금 등은 그 군부체제의 정통성과 경제적 능력을 보장하는 막대한 바팀목이기도 했다. 그것이 1990년대까지 줄곧 이어져왔다는 건, 그리 신기한 현상은 아니다. 그런데, 일본의 영향력과 야심, 배포와 비전이 어째서 1990년대 후반부터 급속하게 시들기 시작했냐는 질문은 아주 중요한 시사점이자, 아시아 시대를 살아가는 현시기 사람들에게 중대한 숙제라고 생각한다. 물론 표면적 이유야 간단할 수도 있다. 중국이 급성장을 하면서 일본을 이미 2010년 무렵게 역전했으며, 한국역시 빠르게 경제성장을 이루며 30배에 이르던 경제력 차이가 어느새 1/3 이하로 좁혀졌기 때문이다. 사실 현상이 중요한게 아니라 그 원인이 우리에겐 필요하다. 게다가 놀랍게도 이러한 시대의 변화를 대중들은 이미 간파하고, 일본에 대한 태도를 확연히 바꾸기 시작했지만, 의리와 실리로 뭉친 지식인 그룹이 그 속도가 너무 지체된다는 것은 흥미로운 현상이다. 3. 아시아를 발명한 일본의 배신 미얀마와 일본의 관계를 살짝 돌이켜 보면, 사실 일본은 미얀마의 경제를 좌지우지할만한 기회가 1988년 이후에 100여차례는 있었다고 봐야할 것이다. 그런데 사실 다 실패했다. 군부독재로 피폐해진 미얀마를 후원할 외부세력은 사실 일본이 유일했고, 실제 일본정부와 기업도 1990년대 막대한 자금을 쏟아부었다. 하지만 1990년대 중후반 일본은 미국의 군사적인 영향력 아래 완전하게 종속되면서 독자적 아시아전략을 펼치지 못하게 된다. 미얀마에 대한 미국의 경제제재, 즉 생션sanction 요구에 일본은 너무 맥없이 물러나야 했던 것이다. 미얀마 군부 역시 크게 실망한건 당연한 일이다. 거기에 1997-1998년 외환위기가 터지자, 동남아국가들은 아시아의 작은 국가들의 경제권하나 보호해주지 못하는 일본의 분명한 한계를 드디어 간파하게 된다. 사실, 한국의 IMF 외환위기 당시 일본이 보인 쫌팽이 스러운 행동이 한일관계의 진정한 갈림길이었던 것과 마찬가지라도 보면 크게 틀리지 않다. 당연히 미국 1극 체제 아래, 일본이 빠진 빈자리를 차지한게 곧바로 중국이었으며, 한국 역시도 일본의 빈자리를 한구석 차지하게 된다. 정치권력은 미국에 빼앗기고, 경제권력은 중국에 빼앗긴 일본에 남은 건 사실 아무것도 없게 되었다. 그러니까, 일본의 재무장, 평화헌법 폐기를 일본국 주류가 화두로 들고 나온 건 일정부분 논리적인 해결책임에는 분명해 보인다. 4. 일본 기자에 대한 실망 앞서 2018년 싱가포르 북미회담 당시 일본 기자들의 행태를 보고 필자는 상당한 충격을 금치 못했다고 했는데,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기자나 지식인들은 마땅히 이슈와 담론을 먹고 사는 직업이다. 당연히 대화와 토론을 통해 정보를 주고 받는다. 토론에는 그 어떠한 한계가 존재해서는 의미가 성립하지 않는다. 한국사회를 논할 때, 재벌은 빼고 논한다던지, 미얀마 사회에 로힝쟈 이슈를 빼거나, 태국에서 왕실이슈를 금지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생각의 한계를 긋고 토론하면, 빙빙돌다가 뻔한 제자리로 돌아오기를 반복할 뿐이다. 미국이 그나마 글로벌 경쟁력을 유지하는 이유도 언론가 열려있고, 자유로운 토론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상호 왜곡 금지도 중요한 상식에 속한다. 일본의 그나마 양식있는, 심지어 해외특파원을 한다는 3040 기자들과 대화를 하면서, 아, 이자식들과 토론이 불가능하겠구나 싶은 그런, 벽 같은 느낌을 받았다. 논의가 앞으로 나가지 못했다. 서로서로 윗사람들 핑계만 대었기 때문이다. 부장, 국장이 어쩌고, 사장이 어쩌고, 사회가 어쩌고, 아베가 어쩌고, 결국 자신의 의견은 하나도 내놓지 않고 남의 이야기로만 대화를 지속하는 것을 느꼈던 것이다. 비겁함을 느꼈다. 꿈도 없고 기개도 없었다. 더 큰 문제는 즐거운 술자리 방담이 끝나고 벌어졌다. 이 친구들이야 곧바로 부임지로 돌아갈 친구들 아닌가. 4명의 특파원들이 필자와 개별인사를 하면서 한결같이 똑같은 주문을 쏟아내는 것이었다. "정~상, 오늘 정말 반가왔고 유쾌했습니다. 그런데, 혹시나 기사나 글을 쓰실 때, 제 이름은 꼭 빼고 쓰셨으면 합니다. 혹시나 쓰고 싶으실 때는 이메일로 해당내용을 꼭 미리 보여주세요. 물론 그러지 않기를 바랍니다. 제가 당신 명함도 이렇게 잘 챙겨놨습니다." 일종의 반협박성 발언을 4명에게 개별적으로 듣고나니, 필자의 멘탈이 나가버리고 말았다. 아니, 먼가 기개넘치는 웅변이라도 했으면, 필자가 이해를 해주겠지만, 아무런 내용도 없는 얘기를 2시간 동안 쏟아내고, 끝맺음에 저런 부탁을 하다니. 이건 문화차이가 아니라, 일본의 지성이라는 게 사실 붕괴한 것이나 다름 없는 게 아닌가 하는 절망적인 느낌까지 들었던 것이다. 심지어 이들은 타인, 아시아에 대한 기본적인 신뢰가 결여되어 있었다. 5. 군사력과 경제력 모델을 뛰어넘기 일본의 모델이 아시아와 아세안에서 한계를 맞이한 배경엔 1940년대의 일본의 군사력, 1980년대의 일본의 경제력이 한계를 맞고 쇠퇴해서가 아니라는 게, 필자의 최근 아시아 경험에서의 중대한 결론에 해당한다. 그러니까, 이미 일본은 "메이지 유신"의 정신을 150년간 팔아먹고, 이미 다 고갈이 되었는데, 본인들은 그 사실을 모른채, 여전히 낡아빠진 낡은 체제와 시스템으로 무장하고 아시아에 접근하고 있는 것이다. 분명히, 일본의 영향력이란 건 조만간 바닥을 드러낼 것이고, 그 대안을 사실 한국이나 중국이 제시해야 하고, 그렇게 될 것으로 믿는다. 일본에는 지사들이 다 사라졌다. 아시아를 해방시키겠다는 웅장한 꿈을 가진 지성인을 못 본지 오래 되었다. 대신 한국에서는 꽤 여럿 그 후보자들이 나타나고 있다. 중국도 마찬가지다. 싱가폴도 물론이다. 한류 역시 그런 흐름의 주요한 물적 증거가 될 것이다. Ps. 1. 무라카미 하루키, 미야자키 하야오, 마쯔다 세이코, 케야키쟈카48을 좋아하는 1인. 2. 물론 지금은 케이팝이 짱임. 트와이스 화이팅! 니쥬는 케이팝. |
일본 (엘리트)의 몰락...
어떤 단체, 사회, 국가를 볼 때, 해당 조직의 엘리트(의 상태)를 먼저 보면 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