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 사회주의 제언 흔히 사회주의라고 하지만 실제로 사람이 모여있지 않다. 모여야 사회인데 모이지 않는다. 중국 공산당은 위구르인이 몇 명만 모여도 탄압한다. 반사회주의라 할 것이다. Social은 사귄다는 뜻이 있다. 가족이나 회사도 하나의 사회인데 사귀긴 뭘 사귀냐? 일해야지. 사내연애 금지다. 한 장소에 모여있다 보면 사귀는 수도 있긴 하지만 어폐가 있다. 나는 공자의 제자로서 정명사상을 계승하여 일체의 거짓말과 싸우고자 한다. 얼렁뚱땅 둘러대기 없기다. 실제로 사람을 모으는 것은 구조론에서 말하는 동원 혹은 소집이다. 예비군 훈련을 연상시킨다는 문제가 있다. 어쩔 수 없다. 싸이가 유튜브에 영상을 올리면 10억이 모인다. 현재 37억. 싸이는 실제로 사람을 모았다. 이게 진짜다. 사람을 모으는 것은 뉴스, 신작, 신상, 신제품, 신발명, 신기술, 신창업이다. 뉴스가 뜨면 TV 앞에 모인다. 신곡이 나오면 사람이 줄을 선다. 새로워야 사람이 온다. 실제로 사람을 모으는 동원을 중심으로 사유해야 진정한 진보가 일어난다. 사람을 모으는 사람은 10퍼센트 정도 되는 엘리트들이다. 그들이 새로 창업하고 혹은 신작을 내고, 신발명을 히트시키고, 신기술을 개발하고 새로 유행시켜서 사람을 끌어모으니 사회를 굴리는 엔진이 된다. 사회주의는 가짜다. 사유재산의 폐지, 생산수단의 공유, 계획경제라는 것은 어떤 아저씨가 아무 근거 없이 툭 던져본 즉흥적 아이디어에 불과하다. 농담인데 먹혔다. 전혀 검증되지 않은 것이다. 막연한 희망사항이다. 과학적이지 않다. 에너지의 결과 무관하다. 에너지는 사건을 따른다. 답은 자연에 있다. 자연은 에너지에 지배된다. 에너지는 사건을 타고 간다. 사건은 기승전결로 가며 이들을 잇는 연결고리는 권력이다. 권력에 의해 동원된다. 페북에 좋아요를 누르는 사람이 동원된 사람이다. 촛불도 동원이고 조국전쟁도 동원력 대결이다. 태극기 세력도 흉내낸다. 사회는 막연히 모이자고 외치거나, 폭력으로 강제동원을 하거나, 미디어로 선전을 한다고 되는게 아니고 동원과 소집에 의해 된다. 자연의 동원하는 권력은 혁신에서 나온다. 선점권, 특허권, 저작권이 권력이다. 보다 많은 숨은 권력이 존재한다. 영화를 먼저 본 사람에게 권력이 있다. 먼저 보고 와서 내가 리얼 봤는데 재미없더라. 자전차왕 엄복동 재미없다고 말하면 사람들이 그 말을 듣고 극장에 가지 않는다. 먼저 본 사람이 뒤에 보려는 사람들을 지배하고 영향력을 행사한 것이다. 김유식은 디지털카메라를 남보다 먼저 사용해보고 후기를 올려서 떴다. 그런 권력들이 모여서 세상을 이끌어간다. 이건 진짜다. 권력은 산업에도 있고, 정치에도 있고, 문화에도 있고, 언론에도 있고, 어디를 가나 있다. 조중동의 비뚤어진 권력도 있고 조폭의 흉악한 권력도 있다. 권력에 의해 사회가 부단히 소집된 결과로 작동한다는 진실을 인정해야 한다. 그러한 소집권력을 생산하는 자가 엘리트다. 엘리트는 10퍼센트 정도다. 그들 중 5퍼센트를 우리편으로 하면 탄탄해진다. 보수는 실질권력 1퍼센트를 장악했지만 그들은 엘리트를 지배하는 엘리트가 되어 엘리트그룹 내부를 분열시킨다. 새로 떠오르는 진짜 엘리트의 저항을 부른다. 그들은 과거에 혁신했으나 지금은 퇴물이 되었다. 혹은 혁신한 자의 권력을 세습하거나 양도받았다. 정의당은 실질권력 1퍼센트에 맞서는 반대편 1퍼센트를 장악하지만 그들 역시 엘리트를 지배하는 엘리트가 되려는 야심을 들키고 있다. 둘 다 엘리트 그룹 내부에 불화를 야기한다. 어떻게든 사회를 이끌어가는 그 10퍼센트의 엘리트 중에서 5퍼센트 과반수를 우리편으로 만들어야 정권이 안정되는데 보수는 그게 불가능하다. 엘리트를 폭력으로 지배하려 들기 때문이다. 그들은 기업의 사장, 교회의 목사, 비리사학의 교장, 검찰총장, 기득권세력이 되어 있다. 그들은 힘으로 엘리트를 억압하기 때문에 진정한 엘리트에 의해 토벌된다. 진정한 엘리트는 싸이처럼 실제로 게시판에 글을 올리거나, 후기를 남기거나, 회사를 창업하거나, 어떻게든 사람을 끌어모아 줄 세우고 있는 사람이다. 그리고 부단히 바톤을 교체한다. 새 엘리트가 등장한다. 보수는 선거에 이기려고 쪽수에 집착한다. 대중을 자기편으로 만드는데 열을 올린다. 그런데 엘리트와 대중은 원래 친하지 않다. 실질권력 1퍼센트가 다수의 대중에게 아부하면 진짜 엘리트가 등 돌린다. 물과 기름의 관계인 엘리트와 대중을 친하게 만든 사람이 바로 노무현이다. 김영삼은 엘리트의 지지로 당선되었으나 엘리트가 등을 돌려서 망했다. 김대중은 호남 엘리트의 지속적인 지지로 유지했고 노무현도 엘리트의 배신으로 망했지만 대신 노빠군단이라는 새로운 엘리트 그룹을 발굴했다. 그들은 진짜였다. 이문열과 김훈도 과거에는 나름 엘리트였다. 지금은 똥이 되었다. 새로운 의견을 내고 새로 사람을 모으고 그들에게 영향력을 행사하는 자가 진정한 엘리트이며 그들이 사회의 엔진이고 그 엔진을 장악하는 자가 정권을 잡는다. 본질은 권력과 혁신과 동원과 소집과 참여다. 사회는 바로 이 다섯에 의해 굴러가는 메커니즘이다. 동원주의는 이상하고 참여주의라고 하자는 의견도 있지만 어색해도 언어는 적확하게 써야 한다. 열린민주당이 열린이라는 표현을 쓴 이유는 동원을 나타내려고 했던 것이다. 자발적인 동원은 새로워야 하고 새로운 것은 바깥과의 교류에 있고 바깥으로 나가려면 문을 열어야 한다. 그래서 당명이 열린우리당이다. 열린다는 것은 문호를 개방하여 사람을 자발적으로 동원한다는 것이며 우리라는 것은 그렇게 소집되어 모인 사람들이다. 열린우리당은 자발적 동원으로 모인 사람들의 정당이다. 그렇게 모이는 것이 참여다. 그래서 참여정부라는 이름이 탄생했다. 에너지는 일원론이다. 사건은 기승전결로 가며 하나의 권력라인을 만든다. 그 라인을 표현하는 말이 동원이다. 사회주의는 그냥 듣기 좋은 말로 치장한 것이다. 화장도 하고 성형도 했다. 핵심은 생산수단 공유, 사유재산 부정, 계획경제인데 그냥 어떤 또라이의 즉흥적 아이디어였다. 사람을 어떻게 동원하는지가 핵심이다. 뉴스, 발명, 발견, 모험, 승부, 아이디어, 계획, 제안은 집단의 룰을 바꾼다. 룰의 변화에는 모든 사람의 관심이 집중한다. 그것이 동원이며 소집이고 참여이며 참여하지 않으면 동미참 훈련을 뛰어야 한다. 결국 참여도 예비군 용어였단 말인가? 기술적 혁신에 의한 자발적 동원이 진짜다. 혁신은 사회의 룰을 바꾸고 룰은 사회 구성원 모두에게 영향을 미치므로 그 룰의 영향권 안에 있는 사람은 소집하지 않아도 자연히 동원된다. 구조론은 혁신주의 동원주의 소집주의 참여주의다. 이를 달성하면 자연히 사회주의가 달성된다. 그러므로 구조론은 사회주의이기도 하다. 단 진짜다. 그냥 모였다고 선언하고 도장 콱 박아버리면 사회주의가 되는게 아니다. 진정으로 공유하는 것은 사유재산이 아니라 룰이다. 룰의 변화는 권력원리에 따라 질 입자 힘 운동 량의 순서로 가면서 단계적으로 집행되므로 계획이 선다. 사회주의가 주장하는 핵심인 공유와 계획이 동원구조 안에 모두 포함된다. 현실 사회주의는 이러한 본질을 외면하고 말로 때우려고 적당히 거짓말로 둘러대는 것이며 진실은 혁신이 권력을 탄생시키는 원리다. 혁신이 룰을 바꾸면 모두가 룰을 지키게 되는 것이 바로 권력인 것이다. 스마트폰의 룰은 어떤 것인가? 그건 스티브 잡스가 그냥 정한다. 그리고 만인에 의해 공유된다. 스마트폰은 펜이 아닌 손가락으로 조작한다는 룰을 잡스 아저씨가 그냥 정했다. 만인의 동의는? 필요 없다. 민주적인 결정은? 필요 없다. 좋은 것은 가만 놔둬도 만인이 추종하여 따른다. 소집하지 않았는데 소집되었고 동원되지 않았는데 동원되었으며 참여를 독촉하지 않아도 이미 70억이 참여한다. 그게 진짜다. 사회주의는 혁신의 에너지 효율성에 따른 집단의 룰을 변경함에 있어서의 자발적인 동원에 의해 달성되지 그냥 사랑과 행복을 주장한다고 되는게 아니다. 사회주의는 사랑입니다. 사회주의는 행복이에요. 이런다고 사랑하고 행복되고 그런가? 천만에. 권력으로 강제하고 미디어로 선전한다고 동원되랴? 물리학이 진짜다. 효율성이 높으면 가만있어도 다들 숭배한다. 다투어 절하고 감사하고 가져가며 거기서 제안된 규칙은 공유된다. 혁신에 따라 변화된 룰의 공유가 진정한 사회주의다. 물리학적 효율성이라는 근거에 기반을 두지 않은 관념적 호소는 쳐부수자. 탈사회주의에서 '탈'은 접두어 Post-인데 어원으로는 '앞'이다. 우리말 앞은 코앞이지만 영어는 간격을 띄우고 상당히 떨어진 앞이므로 탈로 번역한다. 다음 단계의, 전진한, 앞서가는, 벗어난의 뜻이다. 그래서 서구인들은 우체통을 저 멀리 앞쪽의 대문간에 두는 것이다. 탈사회주의라는 표현은 현실 사회주의와 상당한 간격을 두고 떨어져서 앞서가는 사회주의라는 말이다. |
"실제로 사람을 모으는 동원을 중심으로 사유해야 진정한 진보가 일어난다. 사람을 모으는 사람은 10퍼센트 정도 되는 엘리트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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