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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read 5100 vote 1 2020.07.24 (11:01:46)

      

    구조론의 기본 전제와 기본 자세


    무엇보다 언어를 통찰해야 한다. 언어를 모르는 사람과는 대화가 불통이다. 말이 통해야 어떻게든 해볼 수 있다. 진리를 논하더라도 진리를 타자화하고 대상화하는 사람과는 대화를 이어갈 수 없다. 이미 어긋난 것이다. 무슨 말을 해도 오해할 것이 뻔하다. 다른 것도 마찬가지다.


    대상화, 타자화하는 사람은 일단 자세가 안 되어 있다. 사석에서 농담으로는 할 수 있는데 진지한 대화가 아니다. 예컨대 여성을 타자화한다면 여성과 대결하여 이겨볼 생각을 감춘 것이며 여성에 대한 콤플렉스를 숨긴 것이다. 그럴 수도 있지만 진지한 장소에서 그러면 안 된다.


    강의실에서는 언어가 달라야 한다. 자연을 논하더라도 자연과 나를 분리하면 이미 틀어졌다. 인간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다른 사람은 나의 다른 버전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그런 전제를 깔아야 대화할 준비가 된 것이다. 너와 나가 있는 것이 아니고 나와 더 많은 내가 있다. 


    어린이는 세상을 배워야 하므로 타자화하고 대상화하며 낯선 사람을 경계해야 한다. 놀이터에서 모르는 아저씨 손 잡고 따라가면 안 되니까. 그런데 우리는 어른이잖아. 이런 점에서 기본적인 자세가 되어 있는가? 어른이 맞나? 구조론의 기본 전제를 이해했는지가 중요하다. 


    너와 나를 구분하고 우리편과 나쁜편, 선과 악으로 구분하는 사람은 자세가 틀렸다. 일원론이라야 한다. 선이니 악이니 하는건 애들을 어르는 말에 불과하다. 진지한 대화를 하는 사람 사이에서는 쓸 수 없는 말이다. 절대평가를 하기 때문이다. 선악은 동료와 비교하는 상대평가다. 


    철학을 논하려면 어른스러워야 한다. 현실은 암담하다. 대개 대화가 되지 않는다. 전제를 말하는데 진술에 주목하고 명사를 던지면 동사를 받는다. 지목되는 대상을 쳐다보지 말고 너와 나를 연결하는 라인을 주목하라. 언어는 전제와 진술로 조직된다. 전제가 게임의 룰을 정한다. 


    전제가 한정하는 범위 안에서 진술이 작동해야 한다. 대개 전제를 한쪽 귀로 흘려듣고 게임의 룰을 잘못 판단하는 오류를 저지른다. 인간의 권력은 궁극적으로 자연법칙에 근거하지만 인간이 권력을 남용하는 것은 자연법칙이 아니다. 물이 아래로 흐르는 것은 자연의 법칙이다.


    인간이 댐을 막아 물을 가두는 것은 인공의 작업이다. 자연의 권력과 거기에 묻어가는 잡다한 것을 구분해야 한다. 천부인권이라는 말이 있듯이 인간의 권리, 권한, 권력은 일의 매커니즘에서 자연스럽게 유도된다. 개가 새끼를 낳는다 해도 어미에게 새끼를 기를 권력이 주어져 있다. 


    어미가 죽으면 다른 개가 입양하지만 어미가 새끼에게 젖을 물리는 것이 보다 합리적이고 자연스럽다. 일의 기승전결이 순조롭게 연결된다. 엄마 잃은 개를 사람이 키우기도 하지만 그 경우는 비용이 든다. 상부구조가 필요하므로 자연스럽지가 않다. 여러 문제가 생기는 것이다.


    자연스러운 것은 그냥 두어도 작동하는 것이고 인위적인 것은 무언가 비용을 들여 조치를 해야 되는 것이다. 권력이 자연법칙이라는 말은 권력원리를 거스르면 추가비용이 들고 실패할 확률이 높으며 일이 번거롭게 된다는 말이다. 자본주의가 이기는 이유도 결국 비용 때문이다.


    자본주의가 자연스럽게 하는 것을 공산주의가 하려면 비용이 따따블로 드는 것이며 한때 소련이 잘나간 것은 영국에서 기술을 공짜로 줬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고 중국도 미국의 기술을 훔쳐서 이만큼 되었다. 북한은 자연의 권력원리를 어긴 결과 의사결정비용 때문에 망한다.


    인간이 추구하는 재물, 아름다움, 신분, 주거지 따위는 권력의 이차생성물이다. 권력이 없으면 미추를 구분하지 않는다. 부족민들은 미추에 관심 없다. 권력이 생기자 서로 비교하고 차별하기 시작했다. 권력서열에 따라 움직이는데 익숙해서 권력서열 파악용으로 부를 과시한다.


    고급차가 좋은 이유는 그것으로 권력서열의 표지를 삼기 때문이다. 무의식 깊은 곳의 콤플렉스를 들키고 있다. 남들이 나의 권력서열을 낮춰볼까 신경쓰고 있다. 물론 좋은 제품이 좋지만 프리미엄이 붙는 것은 다른 이유다. 프라다 가방에 브랜드 텍을 지우고 게시판에 올려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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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할머니 가방이 3만 원도 비싸다고 아우성이다. 뽀샵을 제거하고 원래 사진을 올려놓으니 180도로 달라진다. 다들 남의 시선을 신경 쓰고 있었던 거다. 권력서열 때문이다. 그것은 자연법칙이 아니고 인간이 행위한 결과다. 인간이 추구하는 것은 권력에 끼워 파는 파생상품들이다. 


    자연의 권력이 기본 뼈대가 되고 거기에 개인의 기호에 따라 여러 가지를 덧붙인다. 구조론의 법칙은 절대적인 것이며 무조건 맞는 말이며 그것을 인간이 현실에서 적용하고 운용하는 것은 상대적이다. 상대적 가치는 각자 판단할 일이며 학교에서는 절대 진리를 가르쳐야 한다. 


    구조론이 상대적으로 틀릴 수도 있다는 식의 말은 멍청한 거다. 상대적으로 틀리는게 아니고 본인이 상대적으로 잘못 적용한 것이다. 수학은 무조건 맞지만 그걸 써먹는 것은 상대적인 차이가 있다. 개인적으로 나는 뚱뚱한 남자가 좋다거나 하는 것을 교과서에 실으면 곤란하다.


    인생에 도움이 되는 요령이나 꼼수나 실용주의나 처세술, 잔재주 따위를 교과서에 실을 수 없다. 공사구분을 해야 한다. 사적인 부분을 언급하면 그게 하지마라는 자기소개다. 권력의 메커니즘은 보편원리이며 널리 공유되는 것이다. 권력을 반대하는 일도 당연히 권력행동이다. 


    허무주의를 떠드는 사람도 사실은 허무를 강조하여 의미를 찾고 있는 것이다. 하나의 레토릭일 뿐 누구도 의미에서 벗어날 수 없다. 구조는 뼈대다. 구조가 뼈대라는 사실은 초등학생도 안다. 뼈는 절대적이고 살은 상대적이다. 뼈는 자연법칙이고 살은 인간이 기호에 따라 더한다.


    구조론은 뼈대가 되는 보편원리를 논한다. 굉장히 많은 사람들이 이런 점에서 공사구분을 못하더라. 비유하자면 왜 수학교과서에 사랑이 없느냐? 바둑을 장기알로 두면 안 되느냐? 알까기 실력도 바둑급수에 포함시키면 어떠냐? 축구시합을 야구공으로 하지 말라는 법이 있느냐?


    이런 식의 개소리다. 어느 분야든 전제와 진술이 있고 구조론의 대전제는 구조를 논한다는 것이며 구조는 서로 간에 공유되는 뼈대이며 그것은 절대적인 것이며 거기에 덧붙여진 살은 논외다. 절대와 상대를 분별하자. '세상은 절대냐, 상대냐?' 이런 소리를 하는 멍청한 사람도 있다.


    절대와 상대는 반드시 함께 가는 것이며 동전의 양면처럼 결코 뗄 수 없는 것이며 구조론은 절대를 논하는 것이며 상대는 각자 알아서 적응하기다. 진리는 절대다. 상대성의 영역은 혼자 알면 된다. 그걸 다른 사람에게 말하면 얼빠진 수작이다. 친구 사이에 잡담으로는 해도 된다.


    상대성 부분은 자기소개가 되므로 진지한 공간에서는 논하지 않는다. 인생은 허무하지만 허무한 부분은 논하지 않는다. 허무하다는 말은 의미 없다는 말이고 의미가 없는데 왜 떠들어? 바보 아냐? 의미와 허무는 동전의 양면이므로 허무가 있으면 반드시 의미도 있다. 둘은 하나다.


    인생이 허무하다고 말하는 사람은 의미를 긍정한 것이다. 의미와 허무가 공존한다면 의미를 논하고 허무를 버린다. 이긴 팀과 진 팀이 있다면 이긴 팀이 사강에 올라가고 진 팀은 탈락한다. 진 팀은 분명히 탈락했는데 사강 토너먼트 대결에서 패배한 팀을 언급하면 이상한 것이다.


    중국에는 원래 4000여 개국이 있었는데 3999개국이 망하고 중국 하나가 남았다. 망한 3999개국에 대해서는 논하지 않는다. 없기 때문이다. 없는데 어떻게 말하느냐고? 사건은 연결되는 것이며 연결되려면 라인이 살아있어야 한다. 라인이 죽으면 논할 수 없다. 왜냐하면 없으니까.


    인간은 허무를 딛고 의미를 추구하는 존재다. 마찬가지로 공사구분을 해서 공을 논하고 사는 개인적으로 간직한다. 공적 공간에서 그러하며 사적 공간에서는 사적인 논의를 할 수 있다. 진리는 공적 존재이며 구조론은 공적 영역에 속한다. 너와 나 사이에 살아있는 연결라인이다.


    쓸데없이 허무를 논하는 사람이 있다면 라인이 끊어져서 받는 사람이 없는 전화기를 들고 수다를 떠는 격이니 실패한다. 공은 너와 나 사이에 라인이 살아있는 것이며 사는 자신이 손에 든 수화기다. 서로 간에 라인이 살아있고 서로 공유하는 부분을 논하는 것이 게임의 규칙이다.


    구조는 뼈대다. 초딩도 안다. 구조론에서 ‘이곳은 왜 뼈대만 있고 살은 없느냐?’라고 묻는다면 기본 자세가 안 되어 있다. 유감스럽게도 기본이 안 된 사람이 너무 많다. 반대로 구조론은 기본만 지키면 된다. 동서고금의 철학이 모두 개소리인 이유는 기본을 지키지 않기 때문이다. 


    철학은 건조해야 한다. 노동자를 착취하는 악질 부르주아지를 때려죽이자. 하는 식으로 감정과잉이 되면 철학 할 자격이 없다. 기본이 안 된 거다. 철학은 너와 나 사이에 겹치는 부분만 논하는 것이다. 어린이의 태도라면 곤란하다. 정신적 부르주아 계급이라야 철학 할 자격이 있다.




프로필 이미지 [레벨:13]kilian

2020.07.24 (13:52:14)

"진리는 공적 존재이며 구조론은 공적 영역에 속한다. 너와 나 사이에 살아있는 연결라인이다."

http://gujoron.com/xe/122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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