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죽이기 실패 상식적인 판결이다. 정치적 공방에는 당사자의 방어권이 있는 법인데 자신에게 불리한 사실을 널리 알리지 않았다고 처벌하는 경우가 어디에 있는가? 이재명 지지세력 일부의 저질행동에 분노하여 감정적인 대응을 한 가짜 문빠들과 이에 부화뇌동한 기레기들은 쪽팔려서 한 달간 마스크를 벗지 말아야 한다. 검사 - 자위행위를 하지 않았습니까? 이런 식이다. ‘친형을 강제입원 시키려고 한 적이 없다.’ 이 말을 트집 잡았다. 모든 사기꾼은 동사를 이용하여 사람을 속인다. 검사와 반란군 세력은 ‘없다’에 방점을 찍어 실제로는 그런 일이 있었으므로 허위진술이라고 몰고 간다. 이재명은 ‘강제입원’이 아니고 ‘강제진단’이라는 명사에 방점을 찍는다. 명제는 전제와 진술로 조직된다. 우리말은 문장이 동사로 끝나므로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동사에 집중하고 명사를 잊어먹는다. 사기꾼은 전제가 되는 명사 부분 곧 강제입원이냐 강제진단이냐는 뭉개고 즉 전제를 숨기고 동사만 부각하여 그런 일이 있다, 없다 중에서 선택을 요구하는 속임수 기술을 구사한다. 선택하란다고 선택하면 안 된다. 선택하는 사람은 을이다. 을의 포지션에 서면 이미 말려든 것이다. 말할 줄 아는 사람은 이다/아니다에 집중한다. 그것이 강제입원이다, 강제입원이 아니다로 판단해야 한다. 필자가 ‘왜?’라고 질문하지 말라는 말이 그렇다. 왜?로 가면 있다/없다 중에서 하나를 선택하게 된다. 이다/아니다는 선택이 아니다. 엄마가 꼬마를 다그칠 때는 ‘도둑질을 왜 했지?’ 이런다. ‘했다.’ ‘그런데 왜?’ 이렇게 된다. 즉 도둑질로 단정하고 있는 것이다. 꼬마는 나중에 돌려주려고 잠시 빌린 건데 말이다. 말솜씨가 딸리는 꼬마는 속으로 분노를 축적하게 된다. 일은 틀어지고 만 것이다. ‘왜’라고 묻지 마라? 전제를 숨기는 저급한 속임수 기술을 구사하는 사람과는 대화를 하지 말아야 한다. 지구는 왜 둥글지? ‘둥글다’에 매몰된다. 그게 지구 맞아? 이렇게 물어야 한다. 지구는 태양에 딸려 있다. 지구가 왜 둥근지는 태양에 물어봐야 한다. 그래야 만유인력을 발견할 수 있다. 지구에는 지구가 없다. 그것에는 그것이 없다. 서울에는 서울이 없다. 지방이 아닌 곳이 서울이다. 서울을 찾으려면 지방에 가봐야 한다. 어떤 그것을 찾으려면 그곳을 벗어나야 한다. 밥에는 밥이 없다. 밥을 알고 싶으면 밥을 먹어봐야 하는게 아니고 밥을 굶어봐야 한다. 반대쪽으로 가봐야 하는 것이다. 왜라고 질문하는 버릇을 들이면 홀려서 따라가게 된다. 귀신을 찾으려면 귀신을 따라가야 하는게 아니고 그 반대로 가야 한다. 귀신은 어둠 속에 있다. 그 반대쪽에 빛이 있다. 빛을 만나면 귀신은 사라진다. 귀신의 무서움은 귀신의 존재가 아니라 시각정보의 부재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많은 경우 답은 존재가 아니라 부재에 있기 때문에 반대쪽을 봐야 진실이 보인다. ### 이재명도 성숙해져야 한다. 사실 황당한 사건이 많았다. 도정을 열심히 해서 실력을 상당히 입증했으므로 이제 포용력과 협상력을 증명해야 한다. 언플이나 SNS 활동은 가급적 줄이는게 좋다. 구조론으로 말하면 지지세력을 플러스할 타이밍은 지났고 이제부터는 실수를 마이너스해야 한다. 재판부의 다수의견(7명)은 "후보자가 토론회에 참여해 질문·답변하거나 주장·반론하는 건 적극적으로 허위사실을 표명한 것이라는 등의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허위사실공표죄로 처벌할 수 없다고 봐야 한다"는 것이었다. 노무현 대통령이 기자의 질문에 대답했다고 처벌하는 식은 비열하기 짝이 없다. 이런 식이라면 누가 토론회에 나서겠는가? 말꼬리잡기는 박정희 시대에 민주투사를 잡아넣던 그 수법이다. 조선시대 당파싸움하던 수법의 말트집으로 정적을 한 방에 보내고 지갑 주우려는 얌체들을 족쳐야 한다. |
"전제를 숨기는 저급한 속임수 기술을 구사하는 사람과는 대화를 하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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