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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read 4627 vote 1 2020.07.12 (18:53:58)

      
    민도가 천도다     


    구조론은 간단히 '말을 똑바로 하면 모든 문제가 풀린다'는 견해다. 공자의 정명사상을 떠올릴 수 있다. 반대로 노자의 ‘도가도 비상도 명가명 비상명’은 진리의 깊은 부분으로 들어가자면 어차피 인간 재주로는 말을 똑바로 하는게 불가능하므로 포기하자는 거다. 공자의 정명은 그래도 포기하지 말고 말을 바르게 하자는 것이다.


    그런데 어떻게 말해야 똑바로 말하는게 되지? 그건 공자도 몰랐다. 그래서 성리학이 나온 것이다. 성리학은 하늘의 법칙 곧 자연법칙에 맞추어 인간의 정치를 실현하자는 제안이다. 그런데 그 하늘의 법칙이 뭐냐고? 퇴계가 성학십도라고 그려준 그림에 그것이 있다. 음양오행에 주역을 더했다. 그게 근거라고? 믿을 수 있는가?


    율곡의 천도책이 그러하다. 왕도는 천도에서 나온다. 민심이 천심이라 했으니 21세기에 왕도는 민도라 하겠다. 자유, 평등, 정의, 행복 따위 엘리트 명망가에 의해 자의적으로 해석된 어거지 도덕률이 아니라 인간 마음에 내재하는 질서를 따라가야 한다. 민심이든 천심이든 그렇다. 최종적으로 마음에 닿는다. 양멱학이 나왔다.


    천도에서 인도가 나오고 인도는 심도에 닿는다. 양명학이 심학이 된다. 그러나 양명학은 심을 강조하다가 천에서 멀어졌다. 인간의 마음은 자의적으로 해석된다. 귀납된다는 말이다. 허황된 관념놀음으로 흘러가기 다반사다. 천도는 반드시 연역되어야 한다. 성리학이 바르고 양명학은 이단의 학설이다. 한국 유교에서는 그렇다.


    인간의 언어는 자연을 따라가야 한다는게 구조론이다. 노자의 무위자연을 떠올리는 분도 있겠다. 그렇다. 필자가 노자를 비판하지만 이는 최종결론이 그러하다는 것이며 어떤 면에서는 노자의 도덕경이 구조론과 가깝다. 다만 구조론을 어설프게 하면 위험하기에 경계하는 것이다. 정답이 나왔으니 정답 비슷한 것에 홀리지 마라.


    사실 노자의 도덕경은 심오하다. 공자는 정명을 말했지만 그게 무엇인지는 말하지 않았다. 정명을 추적하다 보면 희미해진다. 물질의 근거를 찾아 쪼개다 보면 양자역학에 닿고 양자역학이 세계는 희소하고 미미하니 그것이 희미다. 근거를 찾을수록 아리송해진다. 언어를 엄격하게 정의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수학이 있다.


    수학은 언어를 엄격하게 정의하여 확실한 근거로부터 연역한다. 자연의 존재하는 대상 자체에 내재하는 질서를 따라가야 한다. 거기서 근거를 찾아야 한다. 그런 점에서 사유와 관점을 바로잡아야 한다. 세상이 혼란한 이유는 인간이 말하는 법을 모르기 때문이다. 자연의 질서에 근거하여 말하는 법을 익혀야 한다. 구조론이다.


    연역의 근거는 의사결정구조다. 최종근거가 되는 하늘의 법칙은 무엇인가? 곧 사건이요 에너지요 수학적 질서다. 인간의 행동은 수학을 따르고 과학을 따르고 에너지를 따르고 사건을 따라야 한다. 사건 내부의 질서가 구조다. 그것이 일원론이며 곧 합리주의에 절대주의이며 민주주의에 진보주의 그리고 자본주의로 전개된다.


    우주의 진화하는 질서가 인간의 진보하는 질서로 연역되는 것이다. 자의적인 도덕률에 근거를 두면 곤란하다. 인간의 진보가 사랑, 정의, 평등, 평화 같은 관념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진보의 성과이며 곧 문명이라는 사건의 결과이며 원인이 아니라 그 반대편이다. 결과를 원인으로 도치한다면 머리가 나쁜 거다. 


    허황된 관념으로 무장한 명망가들이 떠들어대는 것들은 얼핏 보면 그럴듯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칸트와 같은 아스퍼거인들의 자기소개에 불과하다. 아스퍼거인의 괴팍한 행동을 인류가 금과옥조로 떠받든다면 불행하다. 진중권이나 유창선, 성한용들은 사이코패스가 아닌가 의심된다. 인류의 보편가치에서 멀어져 있다. 


    솔로몬의 재판에서 아기의 배를 갈라서 반씩 나눠 갖자고 떠드는 자들이다. 그런 조울증을 앓는 듯한 자들에게 끌려다닌다면 곤란하다. 수학적으로 연역되어야 한다. 전체에서 부분으로 가는 것이 연역이다. 전제에서 진술로 간다. 후건이 전건을 칠 수 없다는 하나의 규칙만 따르면 된다. 앞결정이 뒷결정을 제한하는 것이 수학이다.


    컴퓨터 프로그램이라도 그렇다. 먼저 게임의 규칙을 정하고 그 규칙이 정하는 바운더리 안에서 풀어낸다. 천도는 게임의 규칙이니 의사결정구조다. 이에 하늘은 천도를 따르고, 군주는 왕도를 따르고, 민주주의는 민도를 따른다. 민도가 천도라는 말이다. 진중권 부류 골방 샌님들의 도덕률은 귀납된 것이니 민도에서 멀어졌다. 


    원인과 결과가 바뀌었다. 부분이 전체를 제한한다. 동사가 명사를 지배한다. 한국어 문법에 안 맞다. 귀납의 병폐다. 적어도 한국어를 능숙하게 구사하는 사람이라면 그들의 주장이 궤변임을 알아차릴 것이다. 자본주의는 자본 자체의 내재한 논리를 따라야 한다는 것이 천도다. 부동산 가격을 잡는 목적을 따르면 천도에서 멀다. 


    자본은 자본으로 조져야 한다. 더 효율적인 자본으로 덜 효율적인 자본을 이기는 것이 천도다. 부동산을 잡으려면 더 효율적인 구조를 만들어내야 한다. 고효율로 저효율을 잡는 것이 천도다. 수요만 억제해서 풍선효과를 일으키면 천도에 어긋난다. 자동차의 핸들을 왼쪽이나 오른쪽으로 꺾으려 말고 파워트레인을 따라가라. 


    자동차 자체에 내재한 질서 곧 엔진과 미션과 바퀴로 이어지는 구조가 파워트레인이다. 좌파나 우파의 논리는 핸들을 꺾는 것이다. 그것이 임시방편은 된다. 때로는 수요억제책도 써야 한다. 근본 국민이 성숙해지는 것이 파워트레인을 업그레이드하는 것이다. 근래 민주당의 연승행진은 대졸세력을 고졸세력을 이긴 것이다.


    핸들을 꺾은게 아니라 자동차 품질이 좋아졌다. 더 우수한 국민이 등장했다. 물을 논하려면 눈에 보이는 색깔이나 물결의 무늬를 보지 말고 물 자체에 내재하는 수압이나 밀도나 점성이나 낙차를 따라야 한다. 바람을 다스리려면 기압을 따라야 한다. 태풍을 향해 ‘이놈 무례하구나. 썩 물러가지 못할까’ 하고 호통쳐봤자 의미 없다.


    대신 바람개비로 전기를 얻어야 한다. 양명학이 이단이지만 구조론으로 보면 심은 변덕스러운 인간의 마음이 아니라 즉 허구적인 관념이 아니라 중심이고 핵심이며 코어다. 의사결정구조가 심이다. 중앙이요 본체다. 본이 말에 앞서니 마음 곧 심을 따르는 것이 맞다. 그게 연역이다. 그러나 보통은 심을 그렇게 해석하지 않는다. 


    심은 사랑, 행복, 정의, 도덕 따위 관념으로 해석되기가 다반사다. 그게 실은 호르몬이다. 강아지나 원숭이도 먹이를 공평하게 나눠주지 않으면 분노한다. 호르몬 때문이다. 어떻게 호르몬 따위가 진리의 근거가 되겠는가? 좌파들이 노상 생태타령 하면서 유기농이니 천연이니 하면서 폼을 잡지만 따지고 보면 그냥 호르몬이다. 


    왕수인의 양지와 지행합일은 귀납에 의해 필연적으로 다원론이 될 수밖에 없는 심학을 일원론으로 풀어내려고 노력한 흔적이다. 일원론이 정답이라는 사실을 본능적으로 아니까. 심즉리는 마음에 진리가 있다는 말이 아니고 코어가 주변을 장악한다는 말이다. 그래야 구조론과 맞아진다. 마음수양이나 하고 있으면 망한다. 


    노자의 도덕경이든 왕수인의 양명학이든 깊이 파고들자면 구조론과 통한다. 필자가 도덕경이나 양명학을 경계하는 것은 도무지 인간들이 어려운 구조론보다 쉬운 유사 구조론에 홀리기 때문이다. 구조론에는 관심이 없고 구조론과 비슷한 아류를 좋아한다. 고약하다. 공자는 구조에 대해 말하지 않았다. 노자와 왕수인은 말했다. 


    어설프게 아는게 위험하다. 왜곡하여 좌판 벌이고 딴짓한다. 라즈니쉬 짓거리로 간다. 수학의 연역에 근거하지 않으면 괴력난신이다. 노자의 도나 왕수인의 심은 하나의 단서다. 퇴계의 사단도 좋은 단서다. 단서에 홀릴 뿐 연역하지 않는게 병폐다. 음양에 오행을 추가하는 주역 패턴에 사단에 칠정을 붙이는 패턴으로 응답한다.


    퇴계의 개소리다. 율곡은 그런 삿된 짓을 경계한 것이다. 단서로부터 연역하는데 연역 그 자체가 근거라야 한다. 예수의 사랑이든 석가의 깨달음이든 단서에 홀리면 안 된다. 단서가 수학을 치면 안 된다. 오늘날 무뇌좌파의 병폐도 퇴계가 사단에 홀리고 왕수인이 심에 홀리고 주자가 리에 홀리듯이 하나의 단서에 홀리는 것이다. 


    단서는 스님의 화두와 같다. 석가는 강을 건넌 다음에는 뗏목을 버리라고 했다. 퇴계는 경을 화두로 삼았으니 그게 스님 짓이다. 뗏목을 짊어지고 가는 어리석은 사람이다. 풀어가는 과정이 중요할 뿐 단서는 버려도 좋다. 후건이 전건을 칠 수 없다는 하나의 논리를 견지해야 한다. 여기서 어긋나면 괴력난신으로 빠지고 만다. 




프로필 이미지 [레벨:13]kilian

2020.07.13 (03:48:19)

"구조론으로 보면 심은 변덕스러운 인간의 마음이 아니라 즉 허구적인 관념이 아니라 중심이고 핵심이며 코어다. 의사결정구조가 심이다."

http://gujoron.com/xe/1218820

[레벨:5]윤민

2020.07.13 (09:49:37)

댓글을 안 달수 없군요. 명문입니다!

프로필 이미지 [레벨:11]수피아

2020.07.13 (12:30:43)

항상 그렇습니다~^^ -내몸과 마음의 양식 구조론(하트뿅뿅)

[레벨:8]scofield

2020.07.14 (00:56:27)

대칭이 아닌 비대칭... 일원론을 주장하는 구조론은 비대칭....

눈도 그렇고 코도 그렇고 두개지만 한번에 하나를 주로 사용하는걸로 알고있습니다.

나머지는 예비나 교번하는 대상으로 작동된다고 들었습니다.

결국 두개가 중요한게 아니라 한가지로 작동되는 시스템이 있는거가 중요한게 아닐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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