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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read 15140 vote 0 2010.10.14 (00:29:12)

 

 

 

  무의식

 

  프로이드의 잠재의식 개념이나 융의 무의식 개념 등은 그 모호성에서 불교의 공(空) 개념이나 무(無) 개념과 유사하다. 점차 신비주의로 빠져들게 된다. 현대 심리학이 길을 잃고 미로에 빠져들게 된 단초가 여기에 있다. 이드니 리비도니 하는 단어들은 불교의 무상이나 무아니 하는 수상한 단어들을 떠올리게 한다. 애초에 과학의 언어가 아닌 것이다. 잘못된 용어 사용이다.

 

  수학자가 숫자를 쓰지 않고 ‘1+2’를 ‘하나 더하기 둘’로 표기하며 애를 먹는 것과 같다. 수학자는 수를 써야하고 과학자는 과학의 언어를 써야 한다. 언어체계부터 정립되어야 한다. 현재로는 전혀 정립되어 있지 않다. 구조로 보면 명쾌하게 답이 나와준다. 구조는 과학의 언어이기 때문이다. 구조는 포지션으로 말한다. 수학자가 수를 쓰듯이 과학자는 구조어를 써야 한다.

 

  학계에서는 ‘무의식 개념’을 어디까지 인정할 것이냐를 두고 아직도 논쟁하고 있는 모양이다. 구조의 포지션으로 보면 정신은 상부구조와 하부구조가 있다. 생각, 감정의 하부구조는 분명하게 의식되고 정신, 의식의 상부구조는 잘 의식되지 않는다. 무의식이나 잠재의식은 의식되지 않는 상부구조를 말하는 것이다.

 

  의식되지 않는다고 해서 놀랄 것은 없다. 이드니 리비도니 하며 모호한 단어로 포장할 일은 전혀 아니다. 인간은 수다쟁이가 말을 하면서도 자기 입에서 1초 후에 어떤 단어가 튀어나올지 자기 자신도 모른다. 말이란 한번 컨셉을 잡으면 단어와 단어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연쇄반응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말이란 컨셉만 잡아주면 저절로 입에서 튀어나오는 거지 ‘어떤 단어를 어떤 순서로 이어붙여야겠어’ 하고 계획을 세우는 것이 아니다. 마음도 컨셉을 잡으면 저절로 진행된다. 무의식이다. 항상 그러한 것이 아니고 그러한 상황이 정해져 있다.

 

  인간의 말이 거의 대부분 무의식에 지배되는 판인데, 정신이 제대로 의식될 리가 없다. 그러나 쉽게 알 수 있다. 정신은 시스템 원리가 작동하는 포지션 구조 안에서 유도된다. 포지션 구조가 문법을 대신하고 있다. 문법이라는 메커니즘에 컨셉을 태우면 저절로 말이 나와준다. 마찬가지로 조직의 발전, 생명의 진화, 시장의 경쟁 등 시스템 원리가 작동하는 포지션 구조 안에서 정신이 유도된다.  

 

  상대와 내가 어느 지점에서 어떤 관계로 맞서있는지에 따라 정신의 포지션이 결정된다. 자신이 갑인지 을인지다. 주종관계인지 아니면 대등한 관계인지다. 산길에서 호랑이를 만났다면 보나마나 긴장해 있는 것이다. 가슴이 쿵쿵 뛰고 식은 땀이 나지 않아도 이미 긴장해 있다. 무의식이란 그러한 포지션을 보는 것이다. 물론 동물원에서 호랑이를 봤다면 전혀 긴장하지 않는다. 그 호랑이를 만난 장소가 산길이냐 아니냐 동물원이냐에 따라, 호랑이가 갑이 되고 자신이 을이 되는지 아니면 사람이 갑이 되고 호랑이가 을이 되는지가 정해진다.

 

  무의식이라는 단어를 상부구조로 바꾸면 사리가 분명해진다. 정신≫의식≫의도≫생각≫감정의 전개에서 앞선 단계가 무의식이다. 정신은 나와 대상이 만나는 방식이다. 내가 세상과 어떻게 만나는가다. 산길에서 호랑이를 만나는가 동물원에서 호랑이를 만나는가다. 이때 자신이 처한 환경 자체가 인간의 사유를 대체한다. 그것이 바깥뇌 개념이다. 집단지능은 이 원리로 작동한다.

 

  잠재의식도 원리는 같다. 마음은 정신≫의식≫의도≫생각≫감정 순으로 전개되지만 인간의 행동은 99퍼센트 반복되는 일상에 포함되어 있으므로 정신≫의식≫의도≫생각의 전개과정은 사전에 이미 결정되어 있다. 처음 겪는 상황에서만 정신≫의식≫의도≫생각≫감정의 진행과정이 분명하게 드러난다. 관습이 쌓여 점차 편견에 찌들고 타성적이고 보수적인 태도가 되면 처음 겪는 상황도 과거에 겪은 상황으로 오판한다. 관행적인 태도를 보이게 된다. 이때는 인지부조화 현상이 일어난다. 처음 겪는 상황이므로 정신≫의식≫의도≫생각≫감정 순서로 마음을 작동시켜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않는다. 이때 팩트를 왜곡하는 것이 인지부조화다.

 

  고양이만 있는 것으로 알려진 산에 호랑이가 나타났다면 어떨까? ‘아냐. 저건 고양이가 틀림없어.’ 하고 자신이 눈으로 본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다. 사이비 종교집단에서 이런 현상을 흔히 볼 수 있다. 명백한 증거를 들이대도 ‘아냐. 속임수가 있을 거야.’하고 믿지 않는다. 요즘 인터넷에서도 흔히 찾아볼 수 있다. 처음 겪는 상황을 억지로 과거에 경험한 상황에 끼워맞춘다.

 

  타블로 사건은 처음 겪는 예인데 ‘아냐 과거 신정아 사태와 똑같아.’하고 끼워맞추는 것이다. 왜? 그래야 집단의 행동통일이 쉽기 때문이다. 집단의 행동통일이 이루어져야 자신의 행동이 유의미하기 때문이다. 이 사건이 처음 겪는 새로운 상황이라는 점이 밝혀지면 가치판단과 의사결정을 새로 해야 하는데 그게 번거롭기 때문이다. 의사결정의 효율성이라는 지엽적 합리성을 추구한다는 것이 그만 전체적인 비합리성의 오류에 빠지고 만 것이다. 어떻든 이 방법으로 의사결정의 속도를 빠르게 했으므로 부분적으로는 합리적이다. 그래서 인간은 그렇게 한다.

 

  잠재의식이란 과거에 진행해 둔 마음의 정신≫의식≫의도≫생각≫감정 전개를 재활용하는 것이다. 프로이드가 유년시절을 트라우마를 강조하는 것은 사고능력이 떨어지는 유년시절의 경우 자아가 미성숙하여 본능에 크게 의존하기 때문에 그것이 잘못될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유아의 본능이란 무조건 어른을 개입시키게 유도하는 형태로 되어 있기 때문이다.

 

  맹수의 습격을 받으면 죽은체 하는 동물이 있다. 죽은체 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기절해 있다가 일정한 시간이 지난 후 깨어나 도망치는 경우도 있다. 그렇게 하는 것이 생존확률을 높이기 때문이다. 인간도 위기에 처하면 이와 비슷한 짓을 한다. 일종의 자해행위를 하는 것이다. 트라우마는 원시의 생존본능이 작용한 일종의 자해행위일 경우가 많다. 원시의 정글에서는 그러한 자해가 부분적으로 생존확률을 높이기도 한다. 문명사회에서는 의미가 없다. 인지부조화 행동도 원시사회에서는 확실히 생존확률을 높이는 측면이 있었다고 보아야 한다.

 

  잠재의식은 지적 능력이 떨어지거나, 인격이 미성숙하거나, 정신적으로 나약하고 훈련되지 않은 사람에게서 특히 문제로 되는 과거 경험의 재활용이다. 프로이드의 리비도 개념은 이러한 정신의 메커니즘을 모르니까 억지로 설정한 포지션이다. 정신작용이 일어나는 최초의 출발점이 있어야 하니까 아무 데나 깃발 꽂아놓고 리비도라고 명명하고, 근거가 궁하니까 억지로 성(性)과 연결시킨다.

 

  정신작용의 최초 출발점은 나의 자아와 대상이 만나서 이루는 포지션 구조 그 자체다. 그것이 정신≫의식≫의도≫생각≫감정의 전개에서 첫 번째 정신이다. 그러한 포지션 구조가 얼마간 뇌의 역할을 대행한다. 상대와 나의 관계가 부자관계냐, 형제관계냐, 부부관계냐에 따라 나의 상대적인 행동이 결정되는 것이며, 이는 무의식적으로 일어나는 것이며, 그것이 정신이다.

 

  세상과 나의 관계설정이 중요하다. 무의식적으로 진행되는 세상과 나의 관계설정을 의식적으로 재정립하는 것이 깨달음이다. 서구에는 깨달음 개념이 없으므로 리비도니 무의식이니 하며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간 것이다.  

 

  포지셔닝이 중요하다. 세상 앞에서 나를 갑으로 볼것이냐 을로 볼것이냐다. 독립된 주인의 관점으로 볼것이냐 아니면 종속된 노예의 관점으로 볼것이냐다. 아기 때는 당연히 종속된 관점으로 본다. 위기가 닥쳤을 때는 무조건 울음을 터뜨려 현장으로 어른을 불러들이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어른이 되어서도 이런 유치한 짓을 한다는데 있다. 자아가 미성숙하면 그렇게 된다. 그것이 노예근성이다. 상대방의 행동을 보고 거기에 연동시켜 자신의 행동을 결정하는 소극적이고 방어적인 태도 말이다. 당연히 예속되고 만다. 한국은 후진국이어서 국가 자체가 전체적으로 잘못된 포지션을 가지고 있다. 동북아 중심국가로 일어설 생각을 못하고 미국이나 일본 혹은 서구에 빌붙으려는 태도 말이다. 이렇게 가다가는 점차 의식이 퇴행하여 판단력이 떨어지고 머리가 나빠진다.

 

  집단무의식은 바깥뇌의 작용에 따른 것이다. 인간은 생각하여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포지션 구조를 보고 직관하는 것이며, 그러한 포지션 구조는 집단 안에서 일정한 역할을 나누어 가질 때 잘 작동한다. 축구시합이라면 공격수와 수비수 간에 포지션이 나누어져 있다. 포메이션 구조 안에서 자신이 맡을 역할이 정해져 있기 때문에 창의적인 경기를 할 수 있다. 축구지능이 높아지는 것이다.

 

  만약 그러한 포메이션이 만들어져 있지 않다면? 축구 초창기에는 포메이션 개념이 없었다. 그때는 우르르 몰려다니며 모두가 공격하고 모두가 수비를 했다. 이때는 축구지능이 떨어진다. 그러자 펠레 혼자서 펄펄 날아다니게 되었다. 지금은 펠레가 나서도 협력수비로 잘 막아낸다. 포메이션 활용에 의해 축구지능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늑대무리는 누가 알려주지 않아도 정밀한 협력사냥을 한다. 한쪽에서 젊은 수컷이 공격하면 늙고 경험많은 두목 늑대는 반대로 돌아가서 길목을 지키고 있다. 손발이 척척 맞는다. 그것이 바깥뇌의 작동이다. 이심전심의 원리다. 이때 생각하지 않고 직관하기 때문에 집단 무의식이라고 한다. 그러나 포지션 구조 자체가 일종의 문법 역할을 한다는데 주의할 필요가 있다. 뇌의 역할을 대행한다.

 

  천칭 저울 위에 두 사람이 올라가 있다. 이쪽 저울에 오른 사람이 한 걸음 뒤로 물러서면 저쪽 저울에 올라선 사람도 한걸음 뒤로 물러서야 한다. 이것이 이심전심이다. 구조가 작동하는 원리에 따라 각자의 역할이 지정되는 것이다. 이때 말로 전하지 않아도 저절로 자신의 역할을 알게 된다. 생각을 할 필요가 없다. 의식적으로 생각하지 않으므로 무의식이다. 혼자서는 그럴 일이 없으므로 집단무의식이다. 군중심리가 작동하는 현장에서 이러한 점을 발견할 수 있다.

 

 

 

 

http://gujoron.com




프로필 이미지 [레벨:2]김미라

2010.10.14 (06:48:10)


무의식, 잠재의식, 집단 무의식, 트라우마나  인지 부조화 역할

익숙한 단어들인데,  기존에  제가 정의하고, 알고 있던 것들과는
비교할 없을 만큼 다른 관점이시네요


포지셔닝과 정신에 대해 나누어 주신 관점들.. 제게는 또한 새로운 개념들이구요.

구조론에 조금 더 가까이 가서, 나누어주신 글을 문장 한문장 곱씹어야 할것 같습니다.

고맙습니다.

 

프로필 이미지 [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2010.10.14 (09:12:13)


구조원리에 따르면
논리를 전개하기 위하여 일정한 포지션들을 필요로 합니다.

원인과 결과, 작용과 반작용, 시작과 끝, 이런 식으로 세팅된 논리의 연결고리들이 있어야 한다는 거죠.
그런데 그걸 그냥 근거없이 아무러나 대략 만들어 냅니다.

프로이드나 융이 제 멋대로 소설을 썼다는 거죠.
그것이 필요하기 때문에 그것을 억지로 지어내는 것입니다.

구조론은 순수하게 포지션 그 자체를 봅니다.
무의식, 잠재의식, 집단 무의식, 트라우마나  인지 부조화 같은 단어들 사실 다 필요없는 겁니다.

구조를 모르니까 공연히 산만해 진거죠.
무의식, 잠재의식, 집단 무의식, 트라우마나  인지 부조화 등은 인간이 지어낸 소설이고

그에 따른 포지션들이 실제로 존재합니다.
TV에 나온 어떤 개는 단 한번도 개집 밖으로 나온 적이 없습니다.

먹이로 유혹해도 수캐를 데려와서 유혹해도 개집에 틀어박혀 안 나옵니다.
이건 트라우마죠. 새끼 때 대문앞에서 교통사고를 당한 겁니다.
 
문제는 그런 트라우마 행동이 개의 생존확률을 높였다는 거죠.
여성들이 특히 돌발적인 스트레스를 받으면 기절을 잘 합니다. 까무러치는 거죠.

일종의 퇴행이고 자해인데 그게 실제로 생존확률을 높였습니다.
유년시절에 학대를 받으면 지능이 떨어지는데 그것이 생존확률을 높였습니다.

특히 노예들이 그러한데 적에게 제압당한 상황에서 영리하게 반격하면 맞아죽을 뿐이지요.
양떼는 늑대의 공격을 받으면 바보처럼 한 곳에 모여드는데 그게 생존확률을 높이는 것입니다.

인지부조화 행동은 한 마디로 사실관계의 규명보다 집단의 유지를 더 중요시 하는 건데
사실관계의 규명을 통한 문제해결보다 마녀사냥을 해서 집단의 결속력을 유지하는게 더 생존확률을 높입니다.

집단의 결속유지를 문제해결보다 우선시하는 것은
교육받은 사람의 관점에서는 잘못된 것이지만 교육받지 않은 원시의 부족이라면 중요한 생존원칙입니다.

문제는 집단무의식이나 트라우마나 인지부조화 등이 하나의 원리에 기초하는데
이걸 각각 따로 설명하다보니 중복과 혼잡이 늘어나고

무의식, 잠재의식, 집단 무의식, 트라우마나  인지 부조화 등등 얄궂은 단어들이 점점 많아져서
나열식, 줏어섬기기식으로 되면 굉장히 혼란해 집니다.

사실은 전부 하나인데 말이지요.
단 하나로 설명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구조원리에 따른 입체적 모형이 필요합니다.

서구의학은 근본적으로는 전부 수술입니다.
약물치료도 하지만 메스가 닿지 않는 부분에 약이라는 칼로 찌르고 들어가는 거죠.

약물이든 수술이든 물리치료든 서구의학은 본질에서
환부의 원인측에 직접 타격을 가합니다.

약으로 메스로 물리자극으로 환부를 직접 공략하는 거죠.
여기에 인과법칙이 작동합니다.

한의학은? 중구난방이죠. 인과법칙이 없기 때문입니다.
정신분석이니 심리학이니 하는 것들은 한의학처럼 되어 이것저것 열거할 뿐

어떤 병이든 직접 작용하는 약은 단 하나의 화학적 성분일 뿐 왜 이렇게 약재가 많아?
무의식, 잠재의식, 집단 무의식, 트라우마나  인지 부조화 하고 이상한 단어를 늘리는게

십전대보탕에 감초부터 인삼 녹용 웅담 강활 마황 사향 등등 많이 들어가는 것처럼 황당한 거죠.
약의 숫자가 많을수록 엉터리인거죠.

하나의 통짜덩어리를 제시하지 못하고 이상한 단어들이 점점 늘어나서 혼란속으로 빠져든다는 거죠.
구조론은 다섯가지 포지션으로 전부 설명합니다.

무의식, 잠재의식, 집단 무의식, 트라우마나  인지 부조화는 그냥 상부구조 하나로 환원됩니다.
포지션은 일종의 수학입니다.

수학자는 기호를 써야 이런 열거법에 따른 혼란을 막을 수 있습니다.
구조론은 포지션 개념으로 모두 정리합니다.








[레벨:5]희정

2010.10.15 (16:17:39)

이런 글을 어디서 볼수 있을까요?
덕분에 좋은공부 많이 합니다.
돈주고도 살수 없는 보물보따리 같습니다.
보편타당하고 세상의 이치에 딱 맞는 이런 글을 보면
괜히 즐겁고 밥을 않먹어도 배부르다니까요.
노고에 거듭 감사드립니다. 
프로필 이미지 [레벨:2]김미라

2010.10.14 (14:47:50)


명쾌한 설명 감사합니다. 선생님...

그렇다면 '자살'은 구조론으로  어떻게 설명되어 질 수 있을 까요.
 
트라우마나 인지 부조화가 개인의 생존을 위한 전략이라면,

자살은 '자신이 속해 있는 집단의 생존'을 위한 또 다른 형태의 개인의 생존전략으로 보아야 하는 지요..

 
[레벨:5]희정

2010.10.15 (16:06:33)

자살은 고통으로부터 해방이죠.
얼마전에 행복전도사인 최윤희씨도 자살을 했는데, 여러 질병으로 극심한 고통을 겪었다고 합니다.
그런 극심한 고통을 벗어나고자 자살을 택했을 겁니다.
생존이라는 것이 어떤 극심한 상태에 놓여도 꼭 숨만 꼴닥꼴닥 쉬어야만 생존이라고 할수는 없겠지요.
늙으면 쭈글쭈글해지고 꽤재재해지고 냄새나고 흉물스러워지는데도 숨만 붙어있다고 생존일까요?
이럴때는 죽어없어지는 것도 집단생존을 위한것일겁니다.
만약 고통받는사람 실연당한사람 늙어서 똥오줌 못가리는 흉물스러운사람들이 주변에 널려있다면
집단생존이 위협받겠지요. 멀쩡한 옆에사람이 더 힘들거든요.
동물의 세계에서는 먹이사슬이 알아서 다 처리해주어 숲의 건강이 유지됩니다.
얼핏보면 윤리도덕상 사람은 그렇지 못한다지만, 또 그렇게 자연스레 처리(?)되는거 아닐까요?
이상은 여기서 집단생존을 줏어듣고 나름대로 제 개인생각을 믹서해서 어줍잖은 설명을 드려보았습니다.
진짜배기는 동렬선생께 직접 들으소서..
프로필 이미지 [레벨:20]아란도

2010.10.14 (19:18:14)


무의식, 잠재의식, 집단 무의식, 트라우마나  인지 부조화 ...모두 의식하나로 통일됩니다.
모두 인간의 의식에서 벌어지는 것이고, 집단과 연계될 때는 의식적 발현들이 정신을 통하여 오랜시간 축척되어온 것이 시대적 상황과 문명의 발달을 촉발시키는 것들이 만났을 때 서로 상호작용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인간이 인간을 스스로 부리고 통제할 때 상부구조가 복잡하면 하부구조는 어디에 맞추어야 할지 난감해집니다.
인간 자체만 놓고 볼 때 인간의 내외부를 조정하는 것은 의식하나 뿐입니다. 뇌인 것이지요.
그런 의미로 볼 때 정신은 의식의 용량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라고 봅니다. 뇌는 해부해보면 고만고만한 크기이지만 정신이라는 용량은 우리가 눈으로 측정하기가 불가능합니다. 그러다보니 다양한 말들로 그것을 설명하려 하였다고 생각됩니다.
무의식, 잠재의식, 집단 무의식, 트라우마나  인지 부조화는 원인이 아니라 결과적인 측면이 많은 것들이라서 상부구조가 아니라 이미 실행되고 나서 얻어진 다양한 값에 불과하여서 차라리 하부구조가 내놓은 결과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내놓은 결과들이 좋지 못해져 간다면 의식이 제대로 기능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고, 그것은 다시 의식에 영향을 미쳐서 점점 의식도 상태가 더 나빠지겠지요. 의식의 상태가 나빠지면 의식의 용량도 쓰레기만 가득차게 되는 것이니 ..점점 결과들은 좋지 않은 쪽으로 흐르게 된다고 봅니다. 그것이 오판을 일으키고, 또한 정신적으로 아프게 만드는 원인도 된다고 생각됩니다.

그래서 가장 현실적인 대안으로 좋은 친구를 만나야 하고, 좋은 책들을 읽어야 하고,  좋은 문화를 접해야 하고....등등으로 연결이 되는 것이라고 생각도 되구요. 물론 좋다 나쁘다를 딱 단정짓기는 어렵지만, 그렇다구요.^^;

프로필 이미지 [레벨:2]김미라

2010.10.16 (21:57:13)

자상한 설명 감사합니다.

아직은 제게 상부구조, 하부구조 등과 같은

구조론의 단어들이 익숙하지 않지만,

올려주실 글을 읽으면서 차츰 나아지겠지요?^^

다사한번 감사드립니다.

 

[레벨:7]꼬레아

2010.10.15 (14:13:08)

정신-의식-의도-생각-감정

김동렬님의 최근의 글들을 몇번씩 다시 읽어보니 이제야 조금 이해가 가는 듯 합니다
내가 불안한 이유는 결국 나의 훈련이 부족한 것이군요
결론은 역시 공부를 훈련을 더 해야겠다는 것

몇일동안 내 개인적인 일로 머리가 복잡해서 읽어도 읽어도 무슨 말인지 몰랐는데
집중해서 마음을 다듬고 다시 읽어보니
결국 나의 게으름이 구조론으로 가는 길을 막고 있었습니다

준비된 연주자는 못 되더라도
준비하는 연주자는 되어야 할텐데
준비도 안하고 정신이 딴 데 가있으니

지금부터라도 항상 공부 훈련으로 준비하는 사람이 되어야겠다

동렬님 고맙습니다

프로필 이미지 [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2010.10.16 (14:19:54)


자살은 여러가지 원인이 있기 때문에
하나의 이유로 논하는 것은 온당치 못합니다.

죽음은 결과일 뿐이고 과정을 논해야 하지요.
그냥 자살이라는 이름으로 일반화 한다면 곤란합니다.

의미있는 것은 죽음을 향해 거침없이 나아간 예수,
스스로 죽음을 선택한 전태일, 죽음을 선택한 안중근, 죽음을 무릅쓴 김구
죽음을 무릅쓴 이순신, 죽음을 무릅쓴 열사들입니다.
정글의 부족민(특히 인도네시아 정글, 뉴기니 등)은 남자 중에 40살 이상 되는 사람은 없습니다.
잦은 전쟁으로 다 죽는 거지요.
이 과정은 자살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상대의 손을 빌려 자신을 죽이는 거지요.
그들은 죽기 위해서 사는 사람처럼 행동합니다.
공동체 안에서 삶의 의미를 찾기 위한 추구가 극단적으로 치닫는 것입니다.
여성들은 자녀양육 등으로 삶의 의미가 있기 때문에 스스로 죽이지 않습니다.
남성들이 전쟁이라는 이름의 자살을 하지 않게 된 것은 부계사회가 등장한 이후입니다.

전쟁이라는 방식으로 집단적 자살을 하는 부족의 특징은 자기 아들이 없다는 것입니다.
모계사회에는 결혼이 없기 때문에 어머니의 아들은 있어도 아버지의 아들은 없습니다.

프로필 이미지 [레벨:2]김미라

2010.10.16 (21:52:28)

삶의 의미와 선택.. 그리고 과정 다시 한번 묵상해야 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선생님.

 

프로필 이미지 [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2010.10.17 (01:19:03)


저는 자살이란 없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자살의 의미를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따라 다르지만
가난에 따른 생계형 자살, 질병에 따른 자살 이런건 자살이라 하기가 좀 그렇고
봉건사회에서 주위의 부추김.. 남편을 잃은 과부에가 강요하는 열녀만들기 이런건 좀 아니고
민주화 투쟁에 자신을 희생시킨 경우도 자살이라고 일반화 하는건 무리고
청소년들이 부모에게 보복할 요량으로 하는 일종의 반사회적 공격행동은
자신이 자신의 의지로 죽음을 선택했다고 보기 어렵고(스스로 죽음의 선택이 아니라 주변에 불합리한 간여에 의한 일종의 사고)
자식을 서울대 가라고 압박해서 진학 스트레스를 견디다 못해 죽은건 일종의 사고죠.(누구도 죽음을 원하지 않았으니)
안재환 등 연예인의 죽음은 공동체문화의 실패에 가까운 것이고
공동체문화가 합리적으로 세팅되면 그럴 일이 없죠.
주변에서 구해주지 못한 실패입니다.
왜 주변에서 미리 알아차리고 돕지 못했느냐입니다.
주변의 압박 등으로 스트레스를 견디다 못해 죽음을 택한건 사고라 볼 수 있고
순수하게 자기 의지로 죽음을 선택했다면 철학적 자살이겠지요.
그런 경우가 얼마나 될까요.
주변에서 다들 한마디씩 해서 스트레스를 주어 죽음으로 몰아가놓고
자살이라고 쉽게 단정한다면 희생된 이이게 책임을 미루는 점에서 온당치 못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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