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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read 15470 vote 0 2010.10.13 (16:35:58)

 

 

  마음의 정체성

 - 부분적으로 지난 글 재탕입니다.-

 

 

  “자네가 무언가를 간절히 원할 때 온 우주는 자네의 소망이 실현되도록 도와준다네." (파울로 코엘료의 연금술사)

 

  “노랑제비꽃 하나가 피기 위해 숲이 통째로 필요하다. 우주가 통째로 필요하다. 지구는 통째로 노랑제비꽃 화분이다.” (반칠환의 노랑제비꽃)

 

  자신의 사소한 행동 하나에도 온 우주가 긴밀히 관여하고 있다는 말이다. 그것이 정체성이다. 정체성을 얻어야 긴장하고 집중할 수 있다. 내가 무심코 던진 돌멩이 하나에 우주 하나가 통째로 날아갈 수 있다고 생각을 해야 한다. 세상과 내가 긴밀한 관계를 믿고 있는 것, 세상과 친하기, 바로 그것이 정체성이다.

 

  정체성은 자신의 주소지를 찾는 것이다. 내가 누구인지가 명백해져야 한다. ‘너는 누구냐?’ ‘너는 왜 사느냐?’ 하는 질문에 똑바로 대답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없으면 뿌리없는 부평초처럼 떠서 흘러다니게 된다. 이것과 저것 중에서 하나를 골라잡아 선택하는게 아니라, 내 인생에 이 길 밖에는 길이 없어야 한다. 다른 길도 많은데 내가 왜 하필 이 길을 가는지 그 필연성을 찾아야 한다. 정체성을 얻을 때 마음은 태산처럼 의연해지고 당당해진다.

 

  당신은 세상과 친한가? 당신은 세상과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는가? 과연 21세기는 당신을 절실하게 필요로 하는가? 당신은 누구인가? 당신은 왜 사는가? 이 질문에 대답하려면 세상의 진보하여 나아가는 방향성을 알고, 그 에너지의 흐름에 자신을 올려태워야 한다. 세상과 내가 상관없는 존재가 된다면, 세상이 진보한다는 사실을 모른다면, 세상과 내가 다른 길로 간다면 실패다.

 

  5년간 우울증 약을 먹었다는 HOT 출신 토니안의 예를 참고할 수 있다. 얼마전 MBC 황금어장 강호동의 무르팍도사에 출연하여 고백한 바에 의하면 어린 나이에 미국으로 건너가 조기유학하며 자기 정체성을 잃고 자존감을 잃어버린 것이 우울증으로 나타났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우울증과 조울증 등 여러 증세가 나타나고 두통이 심해져서 잠을 이룰 수도 없게 되었다고 한다.

 

  다른 사람이라면 한창 어리광을 부릴 나이에 그는 어른처럼 행동해야 했다. 미국에 들른 이수만과 만나 단숨에 자신의 운명을 결정지어 버린 것이다. 겨우 잡은 끈을 놓치면 죽는다는 생각으로 오디션 중에 닳아버린 건전지 하나를 사기 위해 30분 동안 공원을 가로질러 뛰어갔다고 한다. 그는 많은 일을 해냈고 사업에도 성공하여 부자가 되었지만 오랫동안 모든 것을 혼자 책임지지 않으면 안 된다는 강박에 빠져 있었다. 그것이 이방인의 마음이다.

 

  이방인은 근거지가 없기 때문에 어떻게든 주인의 눈에 들어야 한다. 자신이 원하는 행동을 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이 원하는 행동을 해야 한다. 이방인은 언제라도 한 방에 훅 갈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것이다. 그곳이 자기 집이 아니기 때문이다. 자신의 독점적인 영역이 아니기 때문이다. 외부의 공격에 대응할 수단이 없기 때문이다. 자신이 의지하고 자신을 도와줄 주변이 없기 때문이다. 무리가 크게 세력을 이루어 함께 나아가는 방향성 안에서의 자기 포지션이 없기 때문이다. 당장 떠나버려도 아무도 아쉬워하지 않기 때문이다.

 

  스탠포드졸업 학력을 의심받은 타블로의 예도 비슷하다. 어린 나이에 외국으로 떠돌면서 정체성을 상실하고 자존감을 잃어버렸다. 그 때문에 안티세력의 공격에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못했다. 타블로의 소극적인 대응 때문에 사건은 더욱 확대되었다. 문제는 오래 전에 쓴 타블로의 소설 ‘당신의 조각들’에 이미 이와 유사한 내용이 나와있다는 거다. 뿌리 내리지 못하고 파편화된, 음울하고 허망한, 신통한 일은 어디에도 없는, 아무도 자신을 믿어주지 않는 을씨년스런 뉴욕의 풍경들, 소년 타블로는 자신의 운명을 어느 정도 예감한 것이다. 타블로는 자신이 한 방에 훅 갈 수 있는 이방인이라는 사실을 정확히 알고 있었다. 그는 자신이 파도에 떠밀려 어디까지 흘러가는지 담담하게 지켜보고 있었다. 한국에서 그에게 일어난 일들은 미국에서도, 캐나다에서도 무수히 경험했던 일이기 때문이다.

 

  파울로 코엘료는 온 우주가 당신의 소망이 실현되도록 도와준다고 말했지만 타블로의 입장에서는 온 우주가 자신에게 차가운 냉소를 퍼붓는 것처럼 보여졌던 것이다. 어디에도 발붙일 곳이 없다는 거다. 세상과 자신의 존재가 톱니바퀴처럼 긴밀히 맞물려 있지 않고 반쯤 발이 허공이 떠 있었기 때문이다. 자신이 이렇게 하면 세상이 저렇게 반응을 해야 자기 포지션을 찾고 거기에 맞추어 역할을 할 수 있는데, 그것이 그렇게 맞아떨어지지 않고 계속 빗나가기만 하는 것이다. 이렇게 해도 되고 저렇게 해도 되는데 왜 반드시 이 길을 가야하는지가 명백하지 않은 것이다.

 

  토니안은 군대를 갔다와서 우울증이 치료되었다고 한다. 군대를 가서 한국과 밀접해지고, 한국과 친해지고, 인간과 친해지고, 온 우주가 자신을 필요로 한다는 사실을 깨우친 것이다. 과연 대한민국은 나를 절실하게 필요로 하는가? 타블로의 소극적 대응은 바로 그 점을 확신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토니안이나 타블로나 대개 부모의 욕심 때문에 어린 나이에 외국에 가서 자기 정체성 잃고, 자존감 잃고, 그것이 우울증으로 연결된 거다. 여전히 병역문제가 걸려 있는 타블로에게 한국인의 정체성이라는 본질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이상, 어떻게 안티세력을 설득한다고 해도 대중의 인기를 먹고 사는 연예인으로는 낙담이 크다. 좌절은 여전하다.

 

  조기유학이 자식을 망치는 길이 될 수도 있음을 알아야 한다. ‘군대가기 싫으면 미국시민권 따면 되고♪, 영어공부 힘들면 조기유학 가면 되고♪’ 하는 식의 요리 빠지고 조리 빠지는 편법으로는 대한민국호 안에서 확고한 자기 정체성을 얻을 수 없다. 적절한 자기 포지션을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이 그를 절실하게 필요로 하지 않기 때문이다. 유승준은 한국 국적을 포기했지만 대한민국은 지금 유승준 없이도 잘 돌아가고 있다. 이건 낭패다. 내가 있을 자리에 내가 있어야 한다.

 

  한국인의 정체성을 잃으면 자존감을 얻을 수 없다. 세상 앞에서 떳떳해지지 않는다. 그럴 때는 우울증이 찾아온다. 문제를 당하여 소극적으로 대응하게 된다. 과감하게 돌파하지 못하고 망설이고 주저하게 된다. 문제는 더욱 장기화 된다. 어떻게든 영어만 배우면 된다고 믿거나 어떻게든 학벌만 따면 된다고 믿고 편법 찾아 이리저리 헤매다가 정체성 잃고, 자존감 잃고, 포지션 잃고, 이것저것 다 어색해져서 영혼이 망가지는 잘못된 교육이 지금 한국에 횡행하고 있다. 타블로도 토니안도 그 피해자다. 지금 미국에 수만 명의 피해자가 대기하고 있다.

 

  왜냐하면 대한민국호는 지금도 나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어제의 한국은 오늘의 한국과 다르다. 다르기 때문에 그 진보하는 에너지의 흐름에 박자를 맞추지 않으면 안 된다. 스탠포드를 졸업한 타블로가 유명한 학자로 성공하여 현지에서 크게 유명세를 떨쳤다면 어떨까? 노벨상 수상은 못해도 그 언저리까지 갔다면? 한국은 그를 환영했을 것이고, 그를 한국으로 불러들여 방송카메라 앞에 세우려고 노력했을 것이고 타블로는 자기 정체성을 확인할 수 있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 경우는 대한민국호의 진보하여 나아가는 방향과 일치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연예인이 되어로 돌아온 타블로는 여전히 연예인을 ‘딴따라’로 비하하는 한국인들에게 환영받지 못했다. 대중은 대한민국호의 나아가는 방향과 그의 활동이 일치하지 않는다고 판단한 것이다. 외부인이 끼어들어 내부의 밥그릇을 빼앗아 간다고 여긴 것이다. 침략당했다고 여긴 것이다.

 

  교포들을 말을 들어보면 이민한 시점에 의식이 멈추어 있는 현상을 발견하게 된다고 한다. 60년대 이민간 사람은 625직후의 싸늘한 공기가 지배하던 60년대의 극단적으로 보수의식을 가지고 있고, 80년대 이민간 사람은 독재가 기승을 부리던 80년대의 의식을 지니고 있더라는 말이다. 그래서 교포사회에서는 ‘서울며느리’ 이야기가 회자되곤 한다고. 서울며느리가 가장 진보적인 의식을 가지고 있어서 보수적인 교포사회와 마찰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미국에 살면서도 진보적인 미국문화에 동화되지 않고, 날로 혁신하는 한국의 발전에 박자를 맞추지도 못하고 이것도 저것도 아닌 사람이 되어 허공에 발이 떠버리는 것이다. 알아야 한다. 세상은 진보하는 것이며 그 진보의 흐름을 탈 때, 그 진보의 방향성과 자신의 의식을 일치시킬 때 밸런스를 맞출 수 있게 된다. 그럴 때 평안해진다. 노련한 사공이 파도를 겁내지 않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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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필 이미지 [레벨:2]김미라

2010.10.13 (22:03:42)


"한국인의 정체성을 잃으면 자존감을 얻을 수 없다"

예. 정말 많이 공감되는 말씀입니다.

나누어 주신 것처럼 한국에서 뿐아니라 이곳 캐나다에서도
결국 정체성의 문제로 마음 고생을 많이 하고 계시니까요.
특히 청소년의 경우, 문제는 더욱 심각할 수 있고,
실제로 심각합니다. 우울증이 결국 자살로 이어지는 일들이
빈번하게 이곳 한인 커뮤니티에서 일어나고 있으니까요.

저는 자주 한인 청소년들을 구약에 나오는 야곱의 열한번째 아들 요셉에 비유합니다.
아버지의 극진한 사람을 받았던 아들, 하지만, 그로 인해 형들에게 왕따를 당했던 요셉...
실제 이곳에 이민이든 유학이든 거의 백퍼센트는 '자녀교육'이 목적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이민을 왔거나 유학을 한 가정의 청소년들은 크게 두 그룹으로 나누어 지는데,
한 그룹은 요셉처럼 부모님의 '극진한 (아니 지나친) 사랑으로 타국에 온 그룹이고,
다른 한 그룹은 역시 요셉처럼, 이미 한국에서 부터 심각한 문제를 안고 이곳에 온 그룹입니다.
예를 들어 가정의 문제라든가, 학교에서의 부적응, 왕따등...
그래서 사실은 이곳 타국에 와서 문제가 생겼다기 보다는 이미 한국에서 부터 그러한 문제를 안고 오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잠재하고 있던 이슈가 스트레스 상황에 노출되면서 외부로 들어나는 것이지요.
그러나 한편 이러한 어려움은 '위험'이라기 보다는
오히려 한국에서도 찾지 못한 자신의 정체성을 찾을 수 있는  좋은 기회이기도 하구요.

아버지의 사랑받던 어린 (청소년) 요셉이 갑자기 노예로 팔려갔을 때의 심정에 대해 묵상해 보았습니다.
외로움, 슬픔, 상처, 좌절감, 그리움, 배신감....
무엇보다 사랑받는 아들에서 노예로..
 전혀 다른 문화와 생전 들어 보지도 못한 아랍어를 그러한 정신적 충격상태에서,
오직 살기 위해 배웠어야 했을 것입니다.
이곳 캐나다에 있는 많은 청소년들이 실제 자신들이 부모님의 기대나 그 무엇에 의해
자신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요셉처럼 팔려왔다고 느끼고 있고,
마무리 한국에서 영어를 공부하고 왔다해도, 언어나 문화로 인해 혼란과 어려움은
성인이 되어 온 저로써도 제가 누구인가를 흔드는 어려움이였습니다..
그래서 타국에서 공부하고 살고 있는  어린 청소년들이 겪고 정체성의 혼란은,
청소년기의 요셉이 겪었을 정체성의 혼란과 다르지 않습니다.

한가지 다른 것이 있다면,
그건 바로, 요셉은 '왜 자신이 그곳에 오게 된 것인지, 누가 자신을 그곳에 보냈는지' 알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무엇보다 자신이 누구인지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한 정체성에 대한 믿음은 온갖 유혹에도 담대하게하고, 
감옥에 까지 가게 되는 어려움을 겪게 되지만, 오히려 그러한 어려움들을
자신의 진짜 무엇을 잘 할줄 아는지 찾을 수 있는 더 없는 기회로 반전시켰지요. 

자신을 이집트로 팔아버린형들을 만났을때  이렇게 말합니다.
"미안해 하지 마세요. 이곳에 저를 보내신 분은 형들이 아닙니다. 바로 하느님이십니다"

미국이나 캐나다, 그리고 각국에 이민해 있는 청소년들은 왜 자신들이 그렇게 타국에 와 있는지 모릅니다.
이들을 데리고 온 부모님들 조차 그 '진짜 이유'를 알지 못합니다.

한국의 교육시스템때문에,영어를 배우기 위해서, 아니면 가정내에서의 문제를 피하기 위한 도피처로?

저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것들은 어쩌면 피상적인 이유에 불과하구요.

이곳에서 "내안에 요셉있다"라는 내용으로 한인청소년, 그리고 부모님들,
캐나다 선생님들께 강의를 한적이 있습니다.
이민 청소년뿐아니라 타국에 살고 있는 우리 모두가 미스, 미스터요셉이고
(종교에 상관없이 어떠한 분명한 목적을 가지고 있는. 아니 가지고 있어야 하는),
그래서 우리가 왜 이곳에 왔는지 그 목적을 찾고 잊지 말자는 뜻에서 입니다.
수상이 되어 나라를 구한 요셉처럼, 왜 우리의 1.5세, 그리고 2세들이 이곳에서
주지사가 되고, 수상이 되지 못하겠습니까?
 
타블로님이나 토니 안님의 이야기는 바로 우리들의 이야기가 될 수 있고,
우리들의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마음이 짠하고,  많이 아픕니다.

우선 저부터 왜 이곳에 와 살고 있는지 목적과 이유를 분명히 해야겠습니다.
'파도를 겁내지 않는 노련한 사공'이 되도록 노력해야겠습니다.

제 자신이 타블로이기도 하고, 토니 안이기도 하며,
매일 같이 이들을 만나고 있으니,
선생님의 글을 읽고 가만히 있을 수가 없네요^^

나누어주신 마음, 정신, 정말 고맙습니다.

프로필 이미지 [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2010.10.13 (22:36:14)


정체성을 그냥 애국심이나 애향심
혹은 가족, 족보, 혈연, 동향, 동창, 뿌리찾기, 우리것이 좋은 것이여, 신토불이, 생태운동
아이덴티티 정도로 생각할 수 있겠는데

그건 보통 사람들이 말하는 통속적인 시선이 되겠고
구조의 관점으로 보면

정체성은 자기 일관성, 계속성, 방향성, 자기 인생의 컨셉을 결정하는 것이고
그것은 환경의 변화와 자신을 일치시키는 데서 얻어집니다.
문제는 사회가 발달한다는 거죠.

조선왕조 시대라면 어제나 오늘이나 달라지는 것이 없으니까
족보만 챙겨도 정체성이 되겠으나 그건 조선시대 이야기고
지금은 사회가 광속으로 변하는 시대입니다.

지금 시대를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정체성은 자기를 이해하는 것이고 그것은 자기가 속한 집단을 이해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됩니다.
그 소속한 집단이 변하고 있다는게 제 주장의 요지가 되겠구요.

캐나다에 이민 가서 철저하게 캐나다인이 되어버리면 괜찮겠지요.
그럴 수 있다면 말입니다.
요즘은 교포 2세들의 경우
인종차별로 인해서 한국말 한 마디 못하면서
미국에 진출해 있는 한국회사에 들어오려고 한답니다.
뭐 다그렇지는 않겠지만

동양여자는 그럭저럭 인정을 받는데 동양남자는 진짜 인기가 없다더군요.
흑인은 동일한 업종이라도 백인에 비해 임금을 15퍼센트 적게받는다는 말도 있고.
미국 방송에 '한국인이 여기에 다 모여 있으니 그럼 오늘 세탁소에 옷은 못맡기는 거냐?' 이런 우스개도 나오고

제가 강조하는 것은
미국까지 혹은 캐나다까지 나와있다면 한국의 눈과 귀가 되어야 한다는 거죠.
철저하게 미국인 혹은 캐나다인이 못된다면 말입니다.
즉 한국을 위해 필요한 존재가 되어야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찾는 거죠.
그런데 요즘 역이민 하는 사람들이 많으니

갑자기 한국인의 콧대가 높아져서
교포들에 대해 그동안 품었던 열등감을 거꾸로 발산하여 보복하는 거죠.
한 동안 한국의 잘 나가는 여성 연예인은 교포2세 실업가와 결혼한다는 공식이 있었죠.
타블로에 대한 공격은 교포들의 신랑감 줏가가 떨어졌다는 거죠.
달러가격이 내려가고 있으니.

결론적으로 변화의 흐름에 올라탈 수 있어야 정체성을 얻을 수 있다는 말입니다.
정체성이 어떤 고정된 것, 과거의 것, 신토불이, 우리것이 좋은 것이여, 이런건 아니라는 거죠.
우리가 변하는 속도만큼 교포의 인식도 변해야 한다고 봅니다.

우일신 하는 역동적인 에너지 흐름 안에서 정체성을 찾아야 합니다.
자동차는 달리는 것이 정체성이고
말은 뛰는 것이 정체성이고
한국은 혁신하는 것이 정체성이라고 말하려는 것입니다.


프로필 이미지 [레벨:2]김미라

2010.10.13 (22:53:10)


, 알겠습니다. 선생님.

정체성이란
고정된것이 아니지요...
Identity
라는 말속에 sameness라는 뜻을 가지고 있어
,
일관성이 있는 것을 말하지만 말씀하신 것처럼, 환경과 사회의 변화의 흐름에

자신을 일치시키는 것이라는 말씀에 공감합니다.

그래서 어떤 하나의 정체성에 고정될 필요도 없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요즘은 ‘identity integration’이라는 말보다 ‘identity negotiation’이라는 말이

커뮤니케이션과 심리학분야에서 활발하게 연구되고 있습니다.

내안에
여러개의 identity 있을 있다는 것이죠.
지금까지는 계속 이러한 identity 어떻게 통합하느냐에 관심이 많았었는데
(
특히 multicultural psychology분야에서 연구가 활발합니다),
요즘은 내안에 여러개의 identity 환경과 상황에 맞추어 어떻게 끄집어 내는가에 초점이 있는 같습니다.


지금으로서는
뭐라 말할 없지만, 개인적인 경험으로는

통합하라면 강요받는 느낌이 들었었는데, negotiation해도 된다니 마음이 편해지더군요.

 

아무튼 캐나다가 한국에 비해 한참 촌동네인것은 분명합니다^^…

이곳에서 한국에 발을 맞출려면 몇배로 노력을 해야할것 같습니다.

* 한가지 더... 나누어 주신 말씀중에 한국인의 눈과 귀가 되어야한다는 말씀...
  맞습니다. 예전에는 한국인이라는 것이  이곳 사회에서 아마도 열등한 요인으로 작용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캐나다인 누구도 다다를 수 없는 대단한 경쟁우위가 되었습니다.
  (죽었다 꺠어나도 캐나다분들이 한국의 문화와 언어를 우리만큰 이해하기 힘들죠)
  영어만 강조하다가 한국말을 잘 못하게 되는 2세들이 한국사회뿐 아니라
  이곳 캐나다 주류사회에서도 외면당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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