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읽기
전여옥씨가 조선일보에 상업적으로 매우 성공적인 글 하나를 올려놓았다는 소식을 나는 뜻밖에도 알지 못했다. 대선이 끝난 이후 최소한의 사회적 도리를 감당하기 위한 활동을 제외하고는, 밀어둔 논문과 생계문제에 골몰하느라 세상 돌아가는 구석에서 발생한 이런 구린 일까지는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어쨌거나 그 글을 읽은 다음, 여기에 대해 반응을 하는 게 옳은가를 두고 약간 고민을 했다. 두 가지 이유에서다. 한 가지는, 전여옥씨의 글이 지닌 문제 자체가 주는 주저다. 어떤 주저였는지는 잠시 뒤에 쓰도록 하겠다. 또 한 가지 주저는, 지금까지 나는 노무현 대통령의 취임이후의 정치행위나 말에 대하여 이렇다 할 나 자신의 견해를 밝힌 일이 거의 없는데, 글쓴이 자신의 혼란과 저급함을 먼저 폭로할 뿐인 글 하나를 가지고 이야기하는 게 좀 형평성에 맞지 않는 것은 아닐까 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후자에 대해 먼저 해명을 좀 하자면, 내가 별다른 말을 하지 않은 것은 우선 노무현 정부의 과정적 실패에도 불구하고 결과적 성공을 과신했던 탓도 있고, 달라진 세상에 적응하기 위한 거국적 몸부림이 모든 분야에서 터져나오는 일은 당연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가장 중요한 이유는 내가 의식적으로 노무현 대통령의 행보에 대해 논평하는 것을 삼가기로 스스로에게 다짐을 해두고 있었기 때문이다.

취임 직후 나는 다양한 방법으로 소위 "참여"하는 국민의 권리를 행사하기 위하여 발언한 바 있다. 교육부총리 반대켐페인을 조직하기도 했고, 반전평화운동을 파병반대 운동으로 가장 먼저 전환하자고 주장한 사람이기도 하다. 특히 파병과 관련해서 나는 내 나름으로는 마음의 상처를 입기도 했다.

그러나 그 결과, 나는 나 자신이 모퉁이에서 기도하는 회칠한 무덤의 주인이 된 기분이 들었다. 나 자신의 정당성을 주장하기 위하여 노대통령을 담론의 희생물로 삼아버린 듯한 자괴감은, 내가 그를 대통령 자리로 보내기 위해 전력을 다한 사람 가운데 한 명이라는 반성에서 온다. 노무현이 대통령이 된다는 일의 의미는 대통령이란 무엇인가라는 의미와 조화를 이룰 때 제대로 성취되는 것이어늘, 나는 아마도 대통령이라는 자리 자체가 신통력을 얻는 마법의 주문처럼 여겼던 건 아닐까. 어쨌든 말하려면 아직도 한참 복잡하게 늘어놓아야 할 반성의 결과로, 나는 일단 "믿으며 지켜본다"라는 다분히 파스칼적 선택을 하기로 결심했다.

덧붙이자면, 나는 노무현 대통령의 업적은 그가 대통령이 된 순간 90% 이상 달성되었다고 보는 사람 가운데 한 명이다. 역사의 변혁기에는 존재 자체가 곧 의미의 성취가 되는 사람들이 오게 마련이다. 노대통령의 역사적 의의는, 그가 남북관계를 급진전시키거나 경제를 획기적으로 발전시키거나 하는 데 있지 않다. 4.19에서 부마로, 부마에서 광주로, 그리하여 전국적 규모로 불타올랐던 6월 시민항쟁의 정신이 드디어 승리한 데 있는 것도 솔직히 아니다. 그의 의의는 오히려 지배계급의 결정적 교체에 있다. 대한민국 건국 이래로 굳건하게 사회상층부를 지켜온 세력의 전면적 교체라고 하는 그 존재론적 다름에 있다. 이 교체만 제대로 수행된다면, 노대통령의 저 유명한 표현대로 다른 건 다 "깽판"을 친들 무슨 걱정이겠는가. 노무현 대통령 당선은 시지푸스의 돌을 결정적으로 산꼭대기 지점에 올려놓은 바로 그러한 일이기에, 그 자체가 바로 의미이다.

전여옥의 글은 단순화시켜 말하면 그 존재론적 다름에 대한 기득권층의 불안과 노여움의 전면적 표출에 불과한 글이다. 그런 점에서, 굳이 내가 나서서 반박하고 말고가 있을까라는 주저가 아직도 안 드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전여옥의 입지는 실제로는 지금까지의 우리 사회의 소위 지도층을 형성하는 기득권 세력이라기보다는 그 기득권 세력의 세계관을 반영하는 것으로 사회적 위치를 구현하는 유사지식인의 입장이다. 일종의 용병인 셈이다. 따라서, 어쨌거나 같은 글쓰는 사람으로서의 할 말이 있다고 보기에, 갑갑한 마음을 걸머모아 이 글을 쓰기로 결심했다.

전여옥씨가 조선일보에 쓴 [그는 대통령이 되지 않는 것이 좋았다]라는 글을 읽은 다음 내가 느낀 것은, 전여옥 개인에 대한 한심함이라기보다는 그런 글이 신문에 버젓이 실릴 수 있고 또 실을 수 있는 우리 사회 소위 기득권층의 어떤 천박함, 그리고 그런 글을 기어이 입밖에 내어 말해야만 하는 어떤 절박함이었다. 그만큼 그녀는 수구세력의 용병으로서의 소임을 다한 것이다. 하지만 어쩌랴, 수구들은 용병을 잘못 선택한 것 같다. 사회귀족의 언어는 우아함과 세련됨이 그 생명이거늘, 그녀의 언어는 솔직히 좀 막되어먹었기 때문이다. 이것이 과연 누구의 책임일까? 자발적으로 수구의 입이 되기로 한 전여옥 자신? 아니면 알고봤더니 귀족의 품격을 전혀 지니지 못한 우리 나라의 전기득권층들?

전여옥씨가 쓴 글의 문제는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서 볼 수 있다. 우선 그녀가 "대통령이 되지 않는 것이 좋았다"라는 말을 했다는 사실 그 자체다. 그녀는 말하기를,

어느날 갑자기, 별로 기대로 하지 않았건만 민주당 경선의 회오리속에 ‘대통령 해보겠다’고 나서 사람 아닌까? 또 노무현 대통령 스스로도 인정했듯이 ‘대통령 노무현’을 원치 않았던 수많은 국민도 엄연히 존재하고 있었다. 전 국민이 열망아래 싫다는 사람을 억지로 시킨 대통령이 아닌 것이다.

라고 하고 있다. 전여옥씨 자신이 후보단일화 논의 과정에서 자신은 정몽준을 밀지만 누가 되어도 상관없다고 말했던 사실을 굳이 상기시킬 필요가 있을까? 그녀의 이 말은 노무현 대통령을 대통령으로 인정하지 못하는 수구세력들의 정신적 공황을 그냥 보여주고 있을 뿐 아니라, 공직에 대한 그들의 인식의 문제점도 그대로 드러내어 보여주고 있는 셈이다. 대통령은 타고나야 하는데, 자기가 하겠다고 나섰으니 문제다? 원치 않았던 수많은 국민도 있었다? 억지로 시킨 대통령이 아니다? 이로써 그녀가 주권재민의 근본원리와 민주적 선거제도의 특성과 다수결 원칙의 의의를 전혀 이해하지 못한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최선을 다해 경쟁하고 결과에 승복하는 건 정몽준씨나 이회창씨만 지켜야 할 미덕이 아니다. 유권자들에게도 마찬가지로 요구되는 덕목이다, 유권자는 쇼핑객이 아니라 대표권을 위임하는 자이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의 대다수 유권자들은, 전여옥씨가 말하는 것과 다르게 성숙한 판단력을 지니고 있다. 민주시민으로서의 성숙은 단순히 자신이 지지한 사람이라서 존중하고 지지하지 않은 사람이라서 비판하는 그런 차원에 머무르지 않는다. 지지하지 않았으나 다수의 선택에 의해 공동체가 결정한 것은 인정하고, 헌법이 요구하는 규칙 안에서 대표자로 뽑은 사람의 정책과 행위가 자신의 요구와 이해에 일치하도록 끊임없이 요구하고 참여하지만, 전여옥씨처럼 팔짱을 끼고 조롱하는 태도만은 결코 취하지 않는다. 그것은 주인됨이 아니기 때문이다.

"헌법"이라는 계약에 의해 이룩한 대한민국이라는 국가공동체의 일원인 우리 자신의 권리를 스스로 부정하는 그녀의 발언은 "대통령은 보통사람이 해서는 안된다. 대통령은 다른 사람이 상상할 수 없는 능력과 기대치 않았던 위기관리솜씨를 보여줘야 한다. 국민이 안심하고 살수 있는 확신을 심어줘야 한다."라는 말에 이르면 독재를 합리화하는 기이한 언술이 되고 만다. 시쳇말로 속이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그런데, 이 지점에서 기이한 생각이 든다. 전여옥씨가 국가의 주인인 국민으로서의 정체성을 스스로 각성한 사람이 아니라면, 이런 글을 왜 쓰는 것일까? 이에 대한 답은 좀 뒤로 밀어두기로 하자.

전여옥씨 글의 두 번째 문제점은, "대통령이 되지 않는 것이 좋았다"라고까지 생각하는 근거가 지극히 주관적이고 지엽적인 문제들이란 점이다. 그녀는 노무현 대통령이 언행이 "황당"하고 "물가에 내놓은 어린애" 같고 "아슬아슬"하다고, "황당"하고 "물가에 내놓은 어린애" 같고 "아슬아슬"하게 말하고 있다. 그러나, 그녀가 자신의 전유물처럼 말하는 "국민"이 실제로 그렇게 생각하는가 하는 것은 둘째치고, 이런 평가가 실제로는 그녀 자신의 주관성의 표출이란 점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왜 그럴까? 아마도, 그녀를 둘러싼 주위 환경은 그런 언어로 대통령을 평가하면서 고민들을 하고 있는 모양이다. 그녀의 대통령에 대한 평가를 많이 듣던 말로 요약하면 "불안함"과 "가벼움"이 될 것인데, 그 불안함의 근거가 바로 대통령의 말하는 방법에 기인한 것이라는 그녀의 주장은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크다.

말하기란 생각보다 계급적이다. 전여옥씨가 대통령의 언어를 황당하다고 말하는 이면에는, 이미 지적했든 대통령다운 말투가 따로 있다는 것을 전제하는 의식이 있다. 과연 영화 [마이페어레이디]에서 오드리 헵번은 상류사회의 교양있는 말씨를 애써 배워 신분상승을 한다. 그뿐이랴, 한 번 돌아보라. 소위 있는 사람들이 없는 사람들을 향하여 저지르는 말의 폭력 가운데 태반은 업는 자들의 표현방법의 무지막지함, 아는 것 없음에 대한 질타로 채워지고 이다. 그런데, 지배적인 교양어라고 하는 것이 그렇게 쉽사리 터득되는 것이 아니다. 충분한 교육기회 말고도 인맥과 접촉에 의해 문화의 터전을 공유해야 한다. 학교, 결혼, 사교계가 필요하다. 전여옥씨는, 이런 식의 문화공유에 의해 터득한 언어적 능력의 부재를 가리켜 "황당"하다고 말한 것에 다름 아니다. 황당한 것은 사실일 것이라 본다. 만일 노무현 대통령이, "대통령 노릇 못해먹겠다!’라고 말하지 않고 "대통령직의 원활한 수행을 어렵게 하는 많은 장애들 때문에 고충이 큽니다"라고 말했다면, 그녀가 이토록 황당해하지는 결코 않았으리라고 나는 본다.

물론 그녀의 말은 말꼬투리잡기이다. 그러나, 현직대통령에 대한 흔들기가 이런 말의 꼬투리를 잡아서 수행될 수 있다는 그녀의 판단이 뜻하는 바가 바로 노대통령의 말하기에 내재한 계급적 "다름"에 대한 민감함이다.

나는 전여옥 같은 사람들을 불안하게 만드는 바로 이러한 점이 노무현 대통령의 가장 커다란 장점이라고 말하기에 주저하고 싶지 않다. 왜냐하면, "못해먹겠다"는 말에 내포된 의미가 진짜로 대통령을 그만 둔다는 뜻이 아니라 내가 위에 쓴 그런 정도의 의미임을 박정희/전두환/노태우/김영삼이라는 4대에 걸친 경상도 대통령을 '보통이 아닌 대통령들로 섬긴' 바로 그 기득권층의 입인 그녀가 정말로 못알아들어서 문제삼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사석에서는 그보다 더 함한 말도 하는 그들도 공석에서는 교양있는 상류층의 의례적인 말투를 사용했다. 그로써 상층부에 편입되고자 하는 의지를 분명히 해온 것이다. 그러나 노대통령에겐 그런 의지가 없으며, 따라서 "못해먹겠다"는 표현이 공식석상에서 발설된다. 이는 위기감을 주기에 족하다. 그녀가 문제삼는 것은 "서민적인 표현법" 그 자체이며, 이는 각종 수구언론들이 노대통령의 언행을 바라보는 시각과 어떤 면에서 일치한다. 즉, 존재의 형식이 달라졌음을 말의 다름에서 발견하고는 당황한다는 것.

기득권층이 진짜로 불안해 하는 것은, 노무현 대통령의 언행의 가벼움이 아니라, "가벼움" "불안함"으로 딱지를 붙여 노대통령 스스로 버리게 만들고 싶은 저 "출신성분의 다름"을 드러내는 대통령의 "다른 말"이다. '다른 말'은 필연적으로 다른 존재의 지배력을 강화하므로, 노대통령 5년간에 달라질 문화를 생각하면 언어의 품격과 의전상의 예의바름을 요구하는 것이 절박한 일이 아닐 수가 없는 것이다.

전여옥씨의 글은, 그러한 편입의 노력이 수포로 돌아가고 있다는 것을 감자한 수구세력의 속내를 유감없이 드러내 보였다는 점에서 참으로 고마운 일이다. 신분제 사회가 변동을 경험할 때, 주인마님들의 입이 교양과 체통을 무시하고 좀 험하게 변하는 것을 사극에서만 볼 줄 알았더니 현실에서 목도하는 행운을 누린 셈이다. "네 이놈, 고이헌 놈!" 하고 상처입은 마님이 외칠 때, 그것이 혁명의 전조라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노대통령은 앞으로도 서민적 말투를 결코 버려서는 안된다. 바로 그 서민적 말로서만 드러낼 수 있는 서민들의 정서를 대통령이 대변할 때, 친일과 부역과 정경유착과 인맥 혼맥 학맥으로 얽혀 우리 사회를 지배하던 저 사람들의 기득권이 흔들리며 건강한 평등사회가 앞당겨질 것이다.

봉숭아학당의 세바스챤이 우리를 웃길 수 있는 건,"천박해! 천박해! 천박해!"를 외치는 그의 태도와 몸짓에 묻어나는 근원적인 천박함이 엄청난 아이러니로 다가오는 그 균열때문이다.세바스챤이 이미 귀족이란 존재하지 않으며 세상의 주인들은 그가 천박하다고 외치는 알프레도로 표상되는 건강한 민중임을 알아챌 때, 그리하여 더 이상 그들을 향하여 "나가 있어!"라고 말하지 못할 때, 세바스챤의 개그는 더 이상 개그가 아니라 비극으로 마감될 것이다. 나는 전여옥씨가 그런 비극적 종말을 맞지 않기 바란다. 알프레도와 기꺼이 같은 밥상에 앉아 밥을 먹는 회심을 이루어내기를 바란다. 그것이 지금의 사회귀족층과 그들에 봉사하는 사람들이 취할 수 있는 노블리스 오블리제가 아닐까? 자기 손으로 자기 품위를 먹칠하는 모습을 보는 것은, 아무리 그녀와 내가 다른 지평에 속한 글쟁이들이라 하더라도 안타깝기는 매일반이다. 황당하고 물가에 내놓은 어린애같이 아슬아슬하게 말을 뱉아 우리를 불안하게 하는 가벼움은 이제 그만 거두셨으면 한다. 자중자애하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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