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의 전기의 당쟁은 서인의 승리로 끝났다. 흔히 사색당쟁이라고 하지만 전기는 서인이 먹었고 후기는 노론이 먹었다. 서인은 율곡의 기호학파가 중심이 되고, 노론은 율곡을 계승한 송시열을 중심으로 하고 있다.
그러므로 큰 흐름에서 볼 때 율곡의 노선이 조선왕조 500년의 지배이념으로 채택되었다고도 볼 수도 있는 것이다.
영남을 중심으로 한 퇴계 문하의 관념파와, 기호지방을 중심으로 한 율곡 문하의 현실파가 대결하였던 것이다. 결과는 관념파의 패배, 그리고 현실파의 승리다.
물론 역사의 자잘한 부분까지 들여다 보기로 하면 퇴계의 문하에서도 여러번 정권이 나오고 있다. 그러나 대개 오래가지 못하였고, 정권은 다시 기호학파의 수중으로 들어가곤 했다.
퇴계의 관념론과 율곡의 현실론
왜 항상 기호학파가 승리했을까? 진짜와
가짜의 대결에서는 당연히 진짜가 이기고 가짜가 지는 것이다. 가짜는 관념이고 진짜는
현실이다. 오늘날 범진보진영 내부에서도 이와 비슷한 흐름이 반복되고 있다.
현실적으로 실현가능한 범위 안에서 사회주의적인 대안을 모색하는 사람과, 사회주의 유토피아론을 굳게 믿고 그걸로 소설 쓰는 사람의 대결이다. 율곡을 중심으로 한 기호학파는 부단한 개혁을 주장하면서도, 현실정치를 인정하고 현실의 테두리 안에서 문제를 해결하려 든다.
반면 퇴계를 중심으로 한 영남학파는 관념적 주장을 늘어놓으면서, 실제로는 번번이 개혁에 발목을 잡아왔다. 여기서 유교사상의 양면성이 문제가 된다. 유교주의는 일면 현실참여를 긍정하는 개혁사상이면서, 동시에 주나라의 이상정치 시대로의 퇴행을 꿈꾸는 철저한 수구사상이다.
유교주의의 개혁적인 측면을 부각시켜 이를 정치에 반영하자는 주장이 율곡의 현실참여주의이고, 주나라의 왕도정치를 꿈꾸면서 역사를 거꾸로 되돌리려는 수구사상이 퇴계의 입장인 것이다.
강준만과 진중권의 대립 또한 비슷하다. 자본주의가 쥐고 있는 현실을 인정하고 가능한 범위 안에서 사회주의적 대안을 모색하는 것이 강준만의 입장이고, 자본주의체제의 현실을 깡그리 부정하고 뜬구름을 잡아보자는 것이 진중권쪽의 발상법이다.
조선시대의 유교주의가 그러했듯이 현실을 무시한 지나친 관념적 접근은 결국 수구로 통한다. 진중권의 행태는 한나라당과 코드가 너무나 잘 맞고 있는 것이다.
진중권이 조선일보의 개가 된 이유는?
진중권이 왜 이한우의 밥을 얻어먹고
다녔을까? 그의 클론 김효원의 행적을 보면 알 수 있다. 김효원이 SBS드라마 여인천하에서
난정이와 협잡하여 정권을 잡았던 윤원형(이덕화 분)의 식객노릇을 한 것은, 자신은
군자인데, 군자가 소인의 밥을 먹는 것은 괜찮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당시 신진사림들의 논리는 주자와 구양수의 붕당론에 근거를 대고 있었다. 주자는 군자와 소인을 구분하고 군자들이 모여 붕당을 만드는 것을 긍정한 바 있다. 사림들은 자기네는 군자당이고 훈구대신들은 소인당인데, 주자의 군자론에 근거하여 군자당이 정권을 잡아야 한다는 논리를 폈던 것이다.
김효원의 사고방식에 의하면 군자와 소인은 유전인자가 다르고, 종이 다르고, 씨가 다른 별종이다. 예컨대 흑인과 백인이 다르듯이, 군자는 군자로 태어나고, 소인은 소인으로 태어난다. 흑인이 백인의 밥을 먹어도 여전히 흑인이듯이, 군자가 소인의 밥을 얻어먹어도 여전히 군자라고 믿었던 것이다. 이러한 논리는 진중권의 글에 흔히 나타나는 그의 독선과 맥을 같이하고 있다.
과연 그런가이다. 군자가 소인의 밥을 먹어도 여전히 군자일 수 있는가이다. 천만에! 군자가 따로있는 것은 아니다. 군자도 소인의 밥을 먹으면 곧 소인이 된다. 이 두가지 발상법의 차이에는 율곡과 기대승의 이기일원론과 퇴계의 이기이원론의 차이 만큼 원초적인 차이가 있다.
퇴계의 이기이원론과 기대승의 이기일원론
진중권의 발상법, 김효원의
발상법은 한마디로 2원론이다. 뿌리를 더듬어 보면 퇴계의 이기이원론을 만나게 된다.
퇴계의 이기이원론은 위와 아래를 구분하여 남존여비 식의 서열을 정하자는 것이다. 퇴계에 있어 이(理)는 곧 위에서 군림하는 사(士)계급이요, 기(氣)는 그들의 가르침을 따라야 하는 민중이다. 남자는 이, 여자는 기라는 식이다. 이는 하늘에 비유되고 기는 땅에 비유된다. 이는 군자에 비유되고 기는 소인에 비유된다. 이는 주류질서이고 기는 아웃사이더이다. 대개 이런 식이다.
기대승과 율곡은 상대적으로 일원론에 가깝지만 엄밀히 말하면 1.5원론이다. 사실 그들은 명백한 결론을 내리지 못하였다. 그러나 뒤로 갈수록 일원론화의 경향이 노골화되어 훗날의 화담 서경덕과 혜강 최한기에 이르러서는 명백히 기일원론으로 정리되고 있다.
여기서 율곡과 기대승이 처음 주장하고 화담과 혜강이 완성한 일원론의 논리적 근거가 무엇인지 살펴야 한다. 율곡의 기발이승일도설은 이를 원인으로 보고, 기를 결과로 보는 시각이다. 즉 이와 기는 다르지만 인과율에 의해서 하나로 통일되고 있으므로, 이기이원을 인정하고 있으면서도 결과적으로는 일원론에 무게가 실리는 것이다.
이 부분은 일정부분 불교의 연기론과 유사하다. 이 때문에 율곡은 한때 불교도로 오해되어 비판받은 바도 있다.
즉 세상은 하늘과 땅, 남자와 여자, 음과 양으로 구분되는 것이 아니라 동일한 하나가 원인(이)과 결과(기)에 따라, 이 또는 기로 나타나는 것이다. 즉 군자는 원래부터 군자이고 소인은 원래부터 소인인 것이 아니라, 동일한 하나의 진중권이 조선일보의 밥을 먹으면(원인-이) 곧 소인(결과-기)이 되는 것이다.
이것이 율곡의 이기이원론적일원론이다. 그러나 훗날 화담과 혜강에 이르러서는 완전히 일원론으로 정리되었다.
☞ 퇴계 - 남자와 여자, 군자와 소인, 진중권과 이한우는 원래부터 그 분별이 다르다. 그러므로 진중권이 이한우의 밥을 먹어도 진중권은 여전히 진중권이다.
☞ 율곡 - 세상의 여러 가지 분별은 사물에 내재한 본성이 되는 하나의 운동원리가 다양한 형태로 반영된 것에 지나지 않는다. 원인(이-진중권이 이한우의 밥을 먹음)이 작용하여 결과(기-진중권이 이한우의 개가 됨)를 유도한다.
김근태의 사고방식도 진중권과 비슷하다. 자신은 군자이므로 조선일보의 방상훈을 면회해도 괜찮다는 식이다. 이는 이원론적 사고이다. 유교주의의 나쁜 측면인 차별근성, 우월주의, 선민의식은 대개 퇴계와 주자의 이원론적 사고에 근거하고 있음은 물론이다.
그러면서도 유교주의는 한편으로 현실참여적인 개혁사상이다. 유교주의의 긍정적 측면은 율곡의 기호학파가 대개 이어왔다고 볼 수 있다.
김동렬이 진중권을 건드는 이유
서프에 매여 있을 때는 다른 필진들의
입장을 보호하기 위해 진중권이 서프와 관련하여 허무맹랑한 유언을 유포하고 있어도
해명할 수 없는 경우가 많았다. 해명하자고 나서면 동료필진의 입장이 곤란해지는
그런 상황이었던 것이다.
그동안 진중권이 서프에 대해 이런 저런 험담을 하고 소설을 쓴 것은 거의 대부분 임의로 지어낸 거짓말로 보면 된다. 진중권의 글을 다 읽어볼 여유가 없었기 때문에, 진보누리에 뭐라고 호작질을 해놨는지 내가 다 알 수는 없지만, 내가 변희재 등에 의해 왕따로 몰렸다느니, 진중권이 도와주었다느니 어쨌다느니 하는 수작들은 맹랑한 거짓말이다.
통밥이 없어도 어찌 그다지도 없을 수가 있다는 말인가? 모르면 아예 말을 말든지. 진중권의 거짓말이 너무 많이 쌓였기 때문에, 내 명예를 보호하기 위해서라도 시비를 붙어야 할 판이었다.
이것이 이유의 하나이고 두 번째 이유는, 조선일보의 친일은 분명히 응징되어야 하며, 김근태가 방상훈을 면회한 것은 분명 잘못된 일임과 마찬가지로 진중권이 이한우의 밥을 먹은 일 역시 잘못된 일로 보기 때문에 이것을 따지기 위해서다. 이한우 이 인간이 사람 숱하게 버려 놓는구만.
하여간 뿌린대로 거두니 이를 인과응보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