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더하고 빼고 연결해서 지식을 획득한다. 모든 지식의 출발점은 무엇일까? 그것은 ‘단위’다. 더하고 빼고 연결하는 단위다. 언어의 단위는 ‘낱말’이다. 수학의 단위는 자연수 ‘1’이다. 그러나 그것은 인간의 편의에 불과하다. 그것은 인간들끼리의 약속일 뿐 자연의 본래 모습은 아니다. 자연 스스로의 단위는 무엇인가? 존재다. 데카르트의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는 말이 이유있다. 제 1 원인이다. 제 1 명제다. 모든 사유의 출발점이다. 존재는 무엇인가? 철학자들이 이 문제를 파고들었지만 결론이 없다. 존재는 ‘있는 것’인데 있을 존存과 있을 재在가 둘인 것부터 수상하다. 존은 가리켜지는 명목이고 재는 시공간적 깃들임이다. 이쪽에서 손가락으로 가리키면 존이고 손가락이 가리키는 저쪽의 표적이 재다. 이쪽과 저쪽이 합쳐져서 존재가 된다. 우리말 ‘있다’는 턱으로 가리키는 동작이다. 영어로는 being과 existence가 있지만 어원을 추적해보면 ‘IT’에 도달하게 된다. is도 같다. 역시 턱으로 가리키는 동작이다. 인간에 의해 지목되는 대상이 존재다. 있음은 인간의 편의에 따른 약속일 뿐 자연의 실재가 아닌 것이다. 자연 스스로의 존재하는 모습은 원자론의 형태로 주장되곤 하지만 원자론은 수학의 원소와 집합 개념에서 아이디어를 빌린 가설에 불과하다. 인간은 주머니에 구슬을 담는다. 주머니가 집합이면 구슬은 원소다. 자연도 집합과 원소로 되어 있다고 추측한다. 자연의 기본단위도 구슬처럼 딱딱한 무언가로 되어 있지 않겠나 하고 추측할 수 있지만 그것이 진지한 태도는 아니다. 장난하냐? 유치하다. 불교는 제법무아의 논리로 그 대상의 존재를 부정한다. 존재는 인간의 약속일 뿐 자연의 실재가 아니다. 우리는 공간에 던져진 사물의 존재와 시공간에 얽힌 사건의 존재를 알고 있다. 물리학이 근원을 파헤칠수록 공간의 존재는 희미해지고 시공간적 사건의 존재로 나타난다. 사물은 그것을 지목하는 인간에 대칭되는 대상이므로 믿을 수 없고 스스로 움직여가는 사건이 명확하다. 즉 사물은 인간에 의해 지목된 것이며 사건은 인간과 무관하게 스스로 진행하므로 인간의 개입이 없이 객관적으로 존재한다. 사건은 무엇으로 단위를 짓는가? 대상 그 자체가 아니라 대상화하고 지목하는 행위 자체가 단위가 된다. 인간이 어떤 것을 대상화하여 지목할 수 있다면 자연도 지목할 수 있다. 그것은 관계다. 자연이 서로 관계맺는 방식이 단위다. 동시에 존재다. 사유의 출발점은 단위이며 낱말이나 숫자 1처럼 최소화된 형태를 가진다. 숫자 1은 인간의 지목행위가 1회라는 것이다. 사과가 한 개 있는 것이 아니라 사과를 가리키는 손가락이 한 개다. 그렇다. 만유의 단위는 자연이 서로 관계맺고 서로 지목하는 상호작용 그 자체다. 여기서 깨달음이다. 존재는 지목대상이 아니라 지목행위다. 인간이 손가락으로 it를 지목하듯이 자연도 서로 it를 지목한다. IT는 존재가 아니다. BE+IT=BEING다. 라틴어에서 온 existence도 마찬가지다. 라틴어 EX-가 영어BE-다. -Istence는 IT다. BE가 지목행위면 IT는 지목대상이다. 존재는 지목행위 그 자체다. BE가 존이면 IT는 재다. BE가 있는이면 IT는그것이다. '있는 그것'이 존재다. BE가 구조의 연결이라면 IT는 연결되는 대상이다. 존재는 인간에 의해 지목되는 공간의 대상이 아니라 자연이 서로를 지목하여 짝짓기하는 행위 그 자체다. 존재는 액션이며 움직임이며 능동이며 현재진행형이며 행위이며 시공간의 사건이다. 공간에 머무르는 지목대상으로서의 원자는 없다. 제법무아라 했다. 서로 지목할 뿐이다. 둘이 동시에 서로 지목하면 존재이다. 그것이 상호작용이다. 존재의 근본은 서로를 지목하여 관계를 맺고 짝을 지어 사건을 연출하는 액션 그 자체일 뿐 그 지목대상은 파헤칠수록 공허해져서 무에 가까워진다. 존재는 공간의 사물이 아니라 시공간의 사건이기 때문이다. 만유는 서로를 지목한다. 둘이 동시에 서로를 지목할 때 존재가 있다. 그러한 연결이 계다. 내가 네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동시에 네가 나를 쳐다봤다면 그 동시적인 상호작용에 의해 존재는 성립한다. 희미한 물질이 우뚝한 사건으로 도약한다. 존재는 섬광처럼 빛나는 마주침이다. 그것은 충돌이다. 성냥개비와 적린이 만나서 불꽃을 튀기는 그것이 존재다. 가만히 머물러 있는 존재라 해도 내부에서는 불꽃이 튄다. |
"존재는 인간에 의해 지목되는 공간의 대상이 아니라 자연이 서로를 지목하여 짝짓기 하는 행위 그 자체다. 존재는 액션이며 움직임이며 능동이며 현재진행형이며 행위이며 시공간의 사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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