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늘은 시퍼렇게 날을 세운채 기다리고 있는데
붕어는 입질만 분주할 뿐 물지를
않는구나.
상식으로 이야기하자.
먼저 고소를 해놓고 사과를 요구하는 것이 수순이 아닌가?
바보가 아니라면 내가 이 문제를 거론한 목적이 『안티조선을 주도하는 진보논객이 조선일보의 밥을 얻어먹고 다녀도 되는가?』 라는 질문을 공론에 부쳐 확답을 얻어보기 위한 수작임을 모르지 않을터.
이 말은 또, 독립운동가가 왜놈의 밥을 얻어먹고 다녀도 되는가? 또는 서구의 좌파지식인들도 극우주의자들과 호형호제를 하며 술잔을 나누고 있는가? 이런 문제와 폭넓게 연관지어 생각해볼 수 있다.
나는 그래서 안된다고 판단하고 있고 진중권은 그래도 된다고 믿고 있다. 과연 누구의 말이 옳은가? 답은 이미 나와 있다. 조선시대를 거슬러 올라가봐도 이미 유사한 전례가 얼마든지 있다.
김효원(金孝元) 자는 인백(仁伯)
김효원은 조식의 문하로 명종 20년
문과에 장원하여 병조 좌랑, 정언 등을 역임하였다. 선조 6년 이조 정랑에 천거되었으나,
사림파의 구세력인 이조참의 심의겸에 의해, 앞서 그가 권신 윤원형의 문객으로 그에게
아부했다 하여 비토되었다.
그는 결국 이조정랑에 기용되었으나, 이듬해 심의경의 동생 충겸이 이조 정랑에 천거되자 이번에는 전랑의 관직이 척신의 사유물이 될 수 없다는 이유로 반대하였다.
두 사람의 반목이 마침내 그를 지지하는 신진사림파와, 심의겸을 지지하는 기성사림파 사이의 대립으로 확대되어 동인과 서인 양파로 갈라졌다. 그의 집이 동대문에 있었으므로 김효원 일파를 동인이라 불렀다.
이에 당쟁의 폐해를 우려한 노수신, 이이 등의 조정으로 그는 부령부사로 좌천되어 외직을 떠돌게 되었다. 후일 그는 당쟁이 일어난 데 대해 크게 책임을 느끼고 시사에 관해서는 절대 입을 열지 않았다고 한다.
서프와 진보누리, 기성사림파와 신진사림파의 대결
내가 진중권을 거론하는 이유는 간명하다. 강준만 졸개들인 서프라이즈와
진중권 졸개들인 진보누리 간의 대결은 조선시대의 당쟁과 흡사하다. 즉 기성사림파와
신진사림파의 대결인 것이다.
신진사림파는 기성사림파를 사림(진보)도 아니라고 몰아붙이고 있고, 기성사림파는 니들은 윤원형(이한우)의 밥을 얻어먹고 다니지 않았느냐고 몰아붙인다.
이 일이 어떤 결말을 낳을 것인가? 역사를 배운 사람은 다 알고 있다. 김효원은 그를 비판한 심의겸의 동생이 이조정랑에 천거되자 진중권과 비슷한 논리로 반대하고 있다. 그러나 실제로는 개인의 복수심이 작용한 정치보복에 불과하다.
김효원은 진중권과 클론이다. 타임머신을 타고 조선시대로 돌아가서 김효원의 유전자를 복제한 다음 재생시키면 진중권이 태어난다. 이런 겉다르고 속다른 인물이 후일의 큰 재앙을 낳는 화근이 되는 것이다.
역사에 이와 유사한 사례는 얼마든지 있다. 그 결과 또한 항상 동일함은 물론이다. 진중권이 상식이 있는 사람이라면 범진보세력을 오도한데 대해 크게 책임을 느끼고 아가리를 닥쳐야 한다. 500년전의 김효원이 그러했듯이.
내가 진중권에 의해 설득되어 『아하 김효원이 옳았구나』 하고 고개를 끄덕이기 전까지 이 싸움은 계속될 것이다. 알잖는가? 레슬러의 방법을.
나는 인간이 설사 자신의 양심에 비추어 옳다고 믿더라도, 타인에 의해 나쁜 쪽으로 악용될 수 있는 일은 해서 안된다고 생각한다. 내가 선의를 가지고 민노당을 지지한 일이 결과적으로 한나라당에 이용되었을 때 거기에 책임을 느껴야 한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