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불이 빛난다고 생각한다. 틀렸다. 촛불은 밝은데 가스렌지 불꽃은 그다지 밝지 않다. 알콜램프 불도 마찬가지다. 불이 빛나는게 아니고 연소반응이 일어나기 전에 가열된 탄소가 빛을 내는 것이다. 에디슨의 전구에 필라멘트로 탄소가 쓰인 이유다. 우리는 나무가 탄다고 믿는다. 천만에. 나무는 타지 않는다. 목탄가스가 타는 것이다. 불에 의해 가열된 나무에서 나오는 목탄가스에 산소가 공급되면 연소반응이 일어난다. 뭘 그렇게 시시콜콜 따지느냐고 힐난할 법하다. 그러나 구조론은 진지한 이야기를 하는 곳이다. 대충 불이 빛난다고 해도 되지만 과학은 대충 하는게 아니다. 여러분이 뭔가 얻어갈 생각 없이 대충 넘어갈 요량으로 이 글을 읽는 것은 아닐 터이니 말이다. 당신이 어떤 생각을 하든 일단 틀렸다. 당신이 어떤 판단을 하든 일단 틀렸다. 안다는 것은 맞다/틀리다, 옳다/그르다, 같다/다르다, 있다/없다, 이다/아니다의 다섯 가지 판단을 완성하는 것이다. 당신이 어떤 판단을 하든 이 다섯 가지를 모두 충족시키지 않았으므로 일단 틀린 것이다. 사람들은 다섯 중의 하나만 맞아도 대략 맞다고 쳐준다. 그러나 이곳에서는 엄밀해야 한다. 다섯 중에 하나만 틀려도 틀린 것이다. 에디슨이 특허를 대충 딴 것은 아니다. 사실은 에디슨보다 먼저 전구를 발명한 사람이 여럿 있지만 실용적이지 못했다. 구조론은 처음부터 엄격하게 들여다보자는 원칙을 가지고 출발한다. 메커니즘을 정확히 알지 않으면 먼저 발명해놓고 에디슨에게 특허를 뺏긴다. 당신이 본 것은 잘못 본 것이고, 당신이 생각한 것은 잘못 생각한 것이고, 당신이 아는 것은 잘못 아는 것이고, 당신이 말한 것은 잘못 말한 것이고 당신이 한 것은 잘못한 것이다. 역설의 원리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당신은 무조건 틀리도록 세팅되어 있다는 점이다. 항상 틀리는 것은 아니다. 첫 번째는 무조건 틀리고 하나씩 보완해야 한다. 보통사람의 보통생각은 보통 틀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이 돌아가는 이유는 이중의 역설 때문이다. 역설에 대한 역설이다. 당신이 어떤 판단을 하면 상대방의 맞대응 때문에 일단 틀린다. 그러나 그것을 시정할 기회가 있다. 상대의 맞대응에 맞대응을 하면 된다. 특히 정치판에서는 전문가의 견해보다 대중의 생각이 잘 들어맞곤 한다.
프로야구 전문가들이 죄다 틀렸다. 이런 식이다. 그러나 일반인은 바르게 판단한다. 분석하지 않기 때문이다. 일반인들은 축구에 박지성 있고, 골프에 박세리 있으니, 야구에도 박찬호 있어야 박자가 맞아도 삼박자가 맞잖아. 이런 식이다. 즉 경험으로 직관하는 것이다. 그러나 전문가는 경험으로 대충 짐작하는게 아니고 세밀하게 분석한다. 전문가도 두 번은 틀리지 않는다. 그러나 새로운 이슈에는 늘 오판한다. 맞대응 때문이다. 환경의 맞대응이 있다. 그러므로 무슨 일을 하든 검증하는 절차를 밟아야 한다. 무뇌좌파가 정치실험에 실패하는 이유는 검증하지 않기 때문이다. 첫 번째 도전은 무조건 오판이라고 믿어야 한다. 틀리지만 일단 가봐서 경험을 쌓는다는 자세라야 한다. 우리가 아는 것은 불이 빛난다는 것이고 나무가 탄다는 것이다. 틀렸다. 물론 이렇게 대충 알아도 밥 먹고 사는 데는 지장이 없다. 대충 불 주변에서 빛나고 나무 주변에서 탄다. 근처까지는 갔다. 그런데 통제가 안 된다. 왜 가스렌지 불은 밝지 않은지 의심한 적이 있는가? 의심하지 않았다면 넋 놓고 사는 것이다. 세상은 언제나 역설이다. 그러나 우리는 역설에 대해서 역설할 수 있다. 대응할 수 있다. 그러므로 포기하지 말아야 한다. 한 걸음 더 나아가야 한다. 우리는 옳은 길로 가지만 시련을 거쳐서 간다. 중간에 한 번 쓰러졌다 일어나서 간다. 그런 과정 없이 잘 가고 있다면 아직 본론에 이르지 않은 것이다. 조만간 크게 한 번 쓰러질 일이 있다. 그래도 극복하고 가야 한다. |
"그런 과정 없이 잘 가고 있다면 아직 본론에 이르지 않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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